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35화 (335/458)

< 제 335화. >

놈들의 얼굴은 천천히 살펴 봤다.

잔뜩 당황이 역력한 모습들이었다. 나름 연기를 펼치는 놈들도 있었지만 이미 우리 SKY PMC 정보부의 정보들로 얻어낸 게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의 정보부를 털었던 그 일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국제법상 타 국가에서의 정보원 활동은 제한된다. 신분을 밝히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들의 신분은 대부분 항공사 직원 혹은 구호단체 직원 정도로 포장되어 있으니 얼마든 문제를 삼으려면 삼을 수 있는 것.

미국을 비롯해 몇몇 국가에서는 정보원을 파견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한국과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전 세계적인 이목이 쏠린 아이티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순수한 마음으로 구호물품과 구호팀을 보낸 것이다.

"네들은 다르고."

다시 한 번 내 입에서 한국말이 튀어나갔다.

몇몇은 알아듣기도 한 것 같고, 또 몇몇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나라와 나를 주요 인물로 선정하고 왔을테니 한국어 능력자가 없는게 더 어색한 일일지 모르겠다.

"경고하지."

해서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놈들에게 내가 그들을 부른 이유를 설명하기로 했다.

펄럭.

때마침 PMC의 정예 대원들이 완전 무장을 갖추고는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각국의 정보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는다. 고도의 훈련을 거쳐 선발된 최정예 인원들이 아닌 어느정도 정보가 공개된 정보원들이라 그런지 그 반응들이 많이 어설펐다.

"허튼짓거리 하지마. 가령, 아이티의 정치 상황에 개입한다거나, 군사 상황에 개입한다거나. 그런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다시는 네놈들의 고향땅을 밟을 순 없을테니까. 이해했나?"

아주 노골적인 살해 협박이었다.

그리고 내 한국말을 찰떡 같이 알아들은 몇몇의 서양 코쟁이들이 어렵사리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보인다. 그리고 내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한 놈들 역시 보였다.

제 놈들이 한국어를 배워오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일이다. 여기 있는 다른 정보원들이 과연 그들에게 내 말을 통역해 줄까? 절대 그럴리 없었다. 국제사회는 그렇게 매끄럽고 아름답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 그런 생각을 품지도 않을 터.

뭐가 되었던 제놈들의 국가가. 국익이 최우선인 놈들이다. 가장 먼저 훈련받는 부분이 그런 정신과 생각이니 절대 서로를 돕지 않을 터였다.

"이해했으면 꺼져."

길게 얘기 할 필요는 없었다.

놈들은 내가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동의 폭이 몹시 좁아질테니까.

함부로 갖가지 이유를 핑계로라도 아이티의 정치인들이나 기득권층에 접근하기도 어려울테다. 그런 인물들에게는 하나같이 이미 PMC의 정보원들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아이티인들을 고용해서 정보원 역할까지 맡기고 있는 상태였다.

기득권의 사용인들이라던가 하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돈을 주고 그들의 스케쥴을 요구하면 아무런 죄책감없이 술술 입을 놀릴 아이티인들은 새고샜다.

다시 한 번 놈들의 면면을 날카롭게 쏘아보고는 그대로 지휘부 막사를 벗어났다. 본래 이곳은 내가 아니라 SKY건설의 최명규 대표가 사용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

"가시죠."

"예, 회장님."

***

천우진이 사라진 막사 안.

다행인지 불행인지 SKY PMC에 관련된 인물은 막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각국의 정보부 인물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서로의 면면을 살핀다.

서로 아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상황.

"이봐 알렉세이."

"왜, 윌리엄."

"도대체 우리 정체를 어떻게 알았을까?"

"글쎄... 우리 등급이 낮은 편이니까."

윌리엄이라 불린 MI6의 인물이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그래도 국가기밀 중 하나야, 그런데 그런걸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 그것도 하나의 기업에서 눈치를 챈다? 이건 문제가 아주 심각한 거라고."

윌리엄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

"만약에... SKY라는 일개 기업이 그 정도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면... 무시 할 수 있는 작은 단체라고 보긴 어렵겠군."

알렉세이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윌리엄.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뭐를?"

"허튼짓을 하지 말라 경고하지 않았냐 이 말이야. 난 모가지가 소중해서 그럴 생각인데, 물론 상부에 보고도 하고. 정체가 발각되서 임무가 불가하다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알렉세이

이게 민주주의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차이라는 걸 여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윌리엄은 상부에 저딴식으로 보고를 해도 별 피해가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은 달랐다. 당장 직장내 입지부터가 달라진다. 임무에 실패한 요원은 조금씩 조금씩 본인의 가치가 수직하락 하는 법.

"제기랄..."

"잘 생각하라고 친구, 뭣보다 내 목숨이 먼저 아니겠어?"

국가에 충성을 해야 할 놈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기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윌리엄의 말을 공감하고 있었다.

"윌리엄?"

누군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윌리엄.

"반갑습니다. 나는 프랑스의 윌리앙이오."

"그런데?"

"혹, 아까 SKY의 천우진 회장의 말을 번역해주실 수 있소? 분위기만 봐서는 좋은 내용은 아닌듯 한데, 그대는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아 부탁합니다."

니글거리는 발음의 영어를 다 들은 윌리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자유를 준다고 하더군,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도 했고, 임무를 하고자 한다면 조심히 하는게 좋을거야."

태연하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윌리엄의 모습에 곳곳에서 표정관리를 하는 정보원들이 보였다. 알렉세이와 눈이 마주친 윌리엄이 눈썹을 살짝 찡긋 거렸다.

"아, 그렇군. 친절한 번역 감사합니다."

"행운을 빌지 친구."

프랑스어로 뭐라 씨부린 놈을 무시하고 천막을 벗어나는 윌리엄. 알렉세이 역시 그를 따라서 천막을 벗어난다.

"왜 거짓말을 했나?"

"어디 한 번 보자고, 경고를 무시한 놈이 정말 죽는지 사는지."

알렉세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네는 정말 악질이군."

"러시아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쯧... SKY가 정말 정보부 요원을 죽일만큼 자신있을까?"

"모르지, 얼마나 과감한 놈들일지. 그것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나? 어쩌면 상부에 보고할 핑계거리도 생기고."

"우리의 능력이 부족하니, 더 상급 요원을 투입시킬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지, 적어도 아이티는 아닐테지만."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이미 우리가 실패했는데 같은 국가의 새로운 인물이 진입한다는 것 자체가, 경계의 대상이 되겠지."

"하여간 일단 보자고, SKY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는 며칠 미뤄도 되겠지."

"그러지."

"이번에는 내게 자네가 한 번 빚을 진걸로?"

"쳇, 어디서 목숨줄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오케이?"

"오케이."

***

달리는 차 안.

호석이 머리를 흩날리며 카리브해의 바람을 느끼고 있던 내게 큰 소리로 묻는다.

"회장님, 놈들이 구호물품을 나눠주기 시작하면 아이티인들의 마음이 일렁이지 않겠습니까?"

"SKY와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함이 희석된다?"

"예, 회장님."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이티의 공항은 작다.

그리고 그 작은 공항에 세계 각국의 화물선이 많이도 날아왔다.

즉, 놈들이 가지고 온 비행기가 점보 화물기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래도 비행기니까 제법 많은 물품들이 실렸을테고, 화물기이기에 승무원들이 적을테니 그 부분까지 다 화물로 채울 수 있었을테다.

그러나, 그 크기가 압도적으로 작다 할 수 있었다.

SKY 식품의 창고에 보관된 어마어마한 양의 식량, SKY PMC의 창고에 보관된 여러 보급품들과 질 좋은 전투식량과는 비교를 하기 힘들 정도로 허접한 것들이 대부분일테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전투식량은 원래도 호평이 자자했는데, SKY 항공우주기술은 더욱 더 뛰어난 퀄리티의 전투식량을 만들지 않았던가. SKY식품의 첫 생산 식품이 전투식량일 정도로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극악하기로 유명한 전투식량들이나 각종 보존식품들이 우리의 퀄리티를 따라오긴 힘들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습니까?"

"질이며 양이며, 우리는 지지 않을 테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짧은 대화였지만 대화가 끝날 쯤에는 어느새 SKY PMC 훈련소에 도착한 상황.

정문부터 시작해 길게 늘어선 줄.

따로 보급차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때마다 식량을 나눠주지만 이렇게 굳이 SKY PMC 훈련소가 있는 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셀레나?"

"네, 네..."

"오늘 아침에 이미 당신의 어머니 로사가 3인분의 식사와 식수를 받아갔는데 왜 또 왔죠?"

우리 SKY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다. 저들은 다시 줄을 서거나 가족 구성원 중 다른 인물을 보내는 등의 얕은 수법으로 많은 양의 식사를 가져가려 욕심을 부린다.

언제 배불리 먹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다고 보였다. 그리고 또, 언제 지원이 끊길지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벌써 근 일주일 째 SKY가 아이티를 먹여살리고 있는 형국.

그들이 우려하는 것이 무엇일지는 우리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SKY LINE의 점보화물선의 모터가 쉴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정도.

비용소모 역시 어마어마했다.

"저번에 경고 했을텐데요? 셀레나. 우리는 여러분들 모두가 얼만큼의 식량과 식수를 받아가는지 제대로 체크하고 있다고."

"죄, 죄송합니다. 동생이 너무 배가 고프다고 해서요."

"쯧... 자. 이거라도 가져가요, 이제 꼼수는 부리면 안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에 손에 쥐어진 것은 작은 크림빵 3개.

아이티에서는 보기 힘든 귀중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군인들도 보급으로 나오면 싫어하는 종류의 빵이었다.

소녀가 밝게 웃으며 SKY PMC의 정문을 벗어난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모두가 기대감에 차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떠세요?"

호석이 흐뭇한 얼굴을 하고선 엄지를 척 들어 올린다.

"지금도 아까 한 말 유효합니까?"

"아닙니다. 여러 국가가 구호물품을 우리만큼 전달하진 못할테니까요, 아이티 인들은 금방 실망하고 다시 SKY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각국에서 정보원들을 '구호'라는 핑계로 보냈다는 걸 내가 알았다. 그 말은 언제든 그들의 구호물품 역시 내가 관리감독을 하더라도 저들은 이렇다 할 시그널을 보낼 명분이 없다는 얘기.

그들은 내게 국제적으로 큰 결례를 범하는 것이었다. SKY를 적대한다고 봐도 좋을 만큼의 결례기에 내가 구호물품을 내 마음대로 쓴다 해도 뭐라하지 않을 것이다.

"SKY랑 돈으로 싸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도전하라고 해도 좋습니다. 난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당장 아이티의 천만인구를 먹여살리는 싸움.

나는 질 자신이 없다. 국가에게 구애 받지 않는 나만의 제국이 SKY니까.

국가는 국민에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당장 어느나라던 엄한 다른 나라 천만명을 위해 혈세를 대거 투입한다 하면 쌍욕을 박을 것이다.

그러나 SKY는 다르다.

SKY의 유보금을 비롯해, 내가 얻는 수익. 내 자산으로도 한동안은 한 국가와 비등하게 싸워볼 만큼의 재력이 있었다. 당장 SKY 인베스트먼트에 49조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분 구조가 내가 94퍼센트를 가지고 있으니, 얼마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소리다.

"멍청한 놈들이 아니라면 감히, 돈 지랄로 날 상대하려 하진 않겠죠. 구호물품 꼬라지도 보니까 애초에 그런게 목적도 아니고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아이티 중요인물들에게 마킹 철저하게 하세요, 딴짓 하는 놈들 보이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예, 회장님."

< 제 335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