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32화 (332/458)

< 제 332화. >

푹, 푹, 푹.

삽질.

그것을 이번 삶에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전 삶, 삼현의 사냥개가 되었을 때는 나도 제법 삽질을 하던 사람이었다. 2.5m깊이 정도는 파 줘야 사람 하나 묻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동물들이 그 땅을 파헤칠 일도 없고.

무슨 소리냐면.

“회장님, 삽질은 처음 아니셨습니까?”

“뭐, 남자들 기본 소양 아닙니까?”

“하하, 그건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나 그런 것 아니었습니까?”

미안하지만 이번 생이 2회차라 군대라는 곳도 다녀온 적 있다. 이번 삶에도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병역특례를 받지 않았던가? 물론 권력이라는 힘 앞에 훈련소도 알아서 빼주긴 했지만.

“지금 훈련소도 안 다녀 왔다고 쿠사리 주시는 겁니까?”

내 말에 호석이 픽 웃으며 말한다.

“설마요, 그냥 삽질 경험 없으신 분이 너무 잘하셔서 그렇습니다. 아, 우리 PMC 훈련에서 비트나 참호 만드신 적이 있던가요?”

“그랬죠?”

그랬다.

내가 대한민국 육군 훈련소를 가지 않은 이유는, PMC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그러니까 육군 특전사는 물론 707, UDT, SDT, HID등. 다양한 부대와 함께 훈련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굳이 예비군으로서 기본 소양을 갖추기 위해 갈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물론, 누가 지시를 해서 훈련을 받은게 아니었다. PMC 대원들에게 남부끄럽지 않은 상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지휘관이랍시고 저 멀리서 저기를 쳐라, 쟬 죽여라 지시만 내리는 사람이라면 몸 쓰는 사내들은 쉽게 무시하곤 했다.

내가 삼현의 삼남을 그렇게 무시했었으니까, 가끔은 보안실, 비서실 직원들과 뒷담화도 늘어 놓았고 말이다. 해서, 뒷말이 나오지 않고 진심으로 존경 받을 수 있는 상사가 되고자 노력했을 뿐이었다.

“훈련이 헛되진 않았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하는 얘기에 주변에서 열심히 삽질을 하던 대원들이 피식 웃는다.

물이 흐를 수 있는 도랑을 깊이 1m 너비 3m를 파는 일이었다. 저기 멀리서 열심히 포크레인이 움직이고 있지만 지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미리미리 대비를 해 놔야 했다.

“학교들이랑 다른 부대시설에도 연락 돌렸죠?”

“예, 해안선과 가까운 곳은 특별히 더 신경을 쓰라 얘기했습니다.”

우리쪽은 그나마 중장비가 들어와 있어서 상황이 나쁘지 않지만 다른쪽은 아니었다. 중장비가 없거나 어설픈 건축공법으로 마련된 임시 공간들도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 그나마 SKY건설 최명규 사장의 말로는 지반공사를 튼튼히 했다하니, 그 부분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대충 수로는 다 판 것 같고··· 벽은 저거면 버티겠습니까?”

연병장을 빙 둘러서, 그리고 가로질러서 수로들을 파 놓았다. 혹시모를 파도에 휩쓸리더라도 그 피해가 넓게 퍼지지 않게끔 만들려는 의도였다. 건축기술자들이 이곳에 많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러게 수로를 만들고 수로를 만들며 발생한 흙을 포대자루에 넣어서 일명 ‘사대’라 불리는 모래주머니를 미친듯이 만들었다. 그리고 훈련소 담벼락 바깥에 높게, 넓게 쌓았다. 해일의 힘에 담벼락이 무너지지 말라고.

“최명규 대표가 조경까지 신경써서 했기 때문에, 이곳까지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바깥에 촘촘하게 심어진 나무들.

그것은 위성 촬영등, 각종 촬영에서 이곳 훈련소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였으며, 훈련에 필요한 요소이기도 했고, 위급상황시 방어체계를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무협지와 비교하자면 약간의 기관진식이랄까? 나무들 사이에 덫이나 부비트랩이 깔아 놓는다면 몰래 침투하는 적들을 방어할 수 있다는게 호석의 뜻이었다.

“읏차.”

허리를 세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남았죠?”

“예상시간은 이제 5분여가 남았습니다.”

“오케이, 작업 중단하고 이제 안전한 곳으로 옮기라고 지시하세요.”

“예, 회장님.”

“저기 중장비들은 해안선과 가까운 담벼락 뒤에 주차 시키세요.”

멀리서 삽질을 하던 최명규 사장이 내 말을 들었을까? 화들짝 놀라며 달려온다.

“회장님, 자칫 중장비를 잃을 수 있습니다!”

“담벼락이 넘어져서 사람을 잃는 것 보다 낫습니다.”

“아아···”

“중장비는 다시 사면 됩니다. 건축이 늦어진다고 죽지 않습니다. 잠깐 불편할 뿐.”

“맞습니다···”

“SKY의 가족들을 최우선 하세요.”

“예, 회장님.”

어쩐지 최명규 사장이 날 바라보는 눈이 뜨겁다.

노가다 판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 사람들도 한수 접어주는 괄괄한 성격의 사내가 날 저런 눈으로 바라보니 어깨가 으스스 떨렸다.

“최명규 사장, 여자 좋아하죠?”

내 농담에 주변에 있던 대원들은 물론 호석이 피식 웃는다. 최명규 사장도 잠시 당황을 하다 호탕하게 ‘크하하하’하고 크게 웃는다.

당장 자연재해가 들이닥친다는데 너무 긴장해서 좋을게 없잖은가?

“자, 서둘러서 안전한 곳으로 움직입시다.”

“예! 회장님.”

다들 괜찮은 얼굴들이다. 지진이고 해일이고 다 이겨낼 수 있을 듯 한 얼굴들이다.

막 태양이와 별이를 품에 안고있는 루시에게 다가섰을 때.

출렁.

땅바닥이 출렁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게 뉴스에서도 속보로 내보내는 그런 지진인가 보다. 중심을 잡기 어렵고 순식간에 루시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린다. 얼른 한걸음 크게 옮겨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려는 루시를 받쳤다.

침을 꼴깍 삼키는 루시.

어느새 곁에 다가온 우희도 자세를 낮추고 앉는다.

“오빠···”

금방이라도 속이 뒤집힐 것 같은 꿀렁거림의 연속이지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루시와 우희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무일 없다. 걱정하지 마.”

“응.”

“으아아앙!”

“흐아아앙!”

태어나 경험해보지 못한 지진에 태양이와 별이의 울음소리가 세상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마치 ‘지진아 덤벼라!’하고 우는 것 같았다.

***

카메라도 없는 상황 푸틴, 후진다오, 부쉬는 편안하게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제법 중요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드라이 할 정도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들. 모두가 속에 비수 하나쯤은 감춰 놓았을 테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자신의 수를 까 놓지 않는다.

“중국은 요즘 어떻습니까? 정권이 교체되고 제법 바쁠 것 같은데요?”

부쉬의 부드러운 질문에 후진다오가 빙그레 웃음을 보인다.

“SKY와 대한민국이 진행하는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 덕분에, 인민들이 배불리고 있으니 정권교체에 만족을 하고 있다 얘기하겠습니다.”

“다행이군요, 여론이 나쁘지 않다는 소리로 들리니.”

푸틴이 히죽 웃으며 끼어들었다.

“유라시아 횡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면 참 좋겠군요?”

아무렇지 않게 도둑놈 심보를 드러내는 푸틴.

“아무래도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주체가 대한민국과 SKY다 보니, 내가 왈가왈부 할 거리가 없군요.”

간접적인 거절.

푸틴이 눈썹을 씰룩인다.

여태까지의 중국의 정상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거만하고 오만하면서 무엇이든 제 뜻대로 하려던 사람들과 후진다오는 어딘가 달라보였기 때문.

저벅저벅.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세 명의 국가정상들의 보좌관들이 그들의 티 테이블에 다가온다.

“무슨 일이야?”

각자의 언어로 질문을 토해내니 보좌관들이 각국의 정상들에게 귀엣말을 전한다.

그러자 셋은 제각각의 표정을 짓는다.

부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얼굴.

후진다오는 인상을 찌푸린 얼굴.

푸틴은 빙그레 웃는 얼굴.

셋은 모두가 같은 보고를 들었음을 깨닫는다.

“본토에서 가까우니, 우리쪽에는 피해가 없을지 기상청과 국토안전부 검토하라고 전해.”

부쉬의 말에 보좌관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진다.

“대한민국과 SKY가 엮여있으니··· 피해상황 자세히 알아보고, 지원이 필요하면 인력지원을 해 주도록.”

“예, 각하.”

후진다오와 보좌관의 대화를 알아듣기 힘든 부쉬와 푸틴.

“알아서 위기를 자초하는군··· 헬기를 타고 피했든 어떻게 했든, 그들은 멀쩡할 것이다. 지원을 핑계로 요원들 몇 심어.”

“예, 각하.”

“그리고 요원들한테 안 좋은 소문을 내라고 해, 그런거 있잖아? 왕이 신에게 미움을 받아서 나라가 어지럽다 하는 그런 류의 소문.”

“아아, 이해했습니다.”

“여론을 먼저 어지럽히고, 틈을 찾는다.”

“예, 각하.”

푸틴의 말 역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러시아와 중국의 언어가 이곳에서 장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셋이 지은 표정으로 대충 그들의 생각을 유추할 순 있었다.

정치계라는 곳이 눈치싸움이 주가 되는 곳이니까.

후진다오는 가만히 부쉬와 푸틴을 바라보며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었다.

“천자께서 적이 많구나.”

그의 혼잣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지진이라··· 별 피해가 없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부쉬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드라이하게 말한다. 걱정이 담겨 있어야 할 단어들을 뱉었지만, 그의 어투에서는 전혀 걱정이 느껴지지 않아 보였다.

푸틴과 후진다오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했지만, 그들에게도 ‘걱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재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지만,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 그러니까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하는 인물들은 고작 자연재해에 잘못되는 경우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

얼마나 흔들렸을까?

곳곳에 넘어지거나 엎드려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흔들림이 완전히 멈췄다고 판단이 되는 순간 루시와 우희의 눈을 한번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부상자부터 확인해!”

““예! 회장님!””

대원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고 바쁘게 움직였다.

나만 속이 불편한 것은 아닌지 고작 1분여만에 헬쓱해진 얼굴이 된 호석이 물었다.

“회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예, 보시다시피.”

“다행입니다.”

“대표님은 괜찮으세요?”

“거뜬합니다.”

“진도는 얼마나 나왔을까요?”

“예상치는 6.0 미만이었습니다.”

“도심 부분에는 제법 피해가 있겠는데요?”

“예,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피해상황 보고부터 최우선으로 확인하시고, 여진을 대비해 오늘은 SKY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두가 텐트에서 노숙을 합니다.”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대자연의 위대함.

고작 1분여의 짧은 진동이었지만 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2010년에 일어났다는 아이티 대지진 사태의 7.0이라는 진도는 어떤 흔들림일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고층 건물이 별로 없는 아이티기에 피해가 적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이니까.

“회장님.”

어디서 나타났을까? 이재형이 나타나 날 불렀다.

“예.”

“감시탑에 오르시겠습니까?”

“멀쩡한가요?”

최명규 사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진도 8.0도 버티도록 설계했습니다. 장담컨데 멀쩡 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시탑에 올랐다.

PMC의 훈련소는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아이티에서도 제법 높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고층 빌딩들이나 건물들이 별로 없고, 사시사철 맑은 하늘을 자랑하는 아이티 답게 가시거리가 길었다.

거기에 쌍안경까지 사용하니 저 멀리 도심지도 훤히 들여다 보였다.

곳곳에 부서지거나 무너진 건물들이 보이고 먼지구름이 자욱한 곳들이 보였다.

몸을 돌려 해안가를 살폈다.

해저 지진이 무서운 이유는 해일을 동반하기 때문, 이번 지진은 분명 대륙판이 움직이며 발생하는 해저지진이라 했으니 혹시 모를 해일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흠.”

바다는 잔잔하지만 아직은 모른다. 어디서부터 해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이 시절 ‘아이티’라는 나라의 소식에 집중하는 나라들은 없었다.

2010년 대지진 이후 급격하게 주목을 받았지만, 그 전부터 최빈국이었고, 항상 갱단이 사고를 치는 나라답게 ‘당연히’ 못살고 힘들겠거니 생각하는 그런 나라 중 하나였다.

자연재해가 2~3년 터울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도시니까 이 정도 지진은 뉴스거리도 안 되었을지 모르겠다.

“지프 준비하세요.”

이재형이 흠칫 놀라 되 묻는다.

“어딜 가시려고 합니까?”

“도심지 깊은 곳까지, 지진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죠, 여진에 대비하라고.”

“으음. 아직 위험합니다 회장님.”

“그러니까 적은 인원으로 움직입시다. 확성기 달린 지프로 준비하세요, 목소리 좋은 아이티 사람도 한명 준비 시키고.”

“예, 회장님.”

< 제 33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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