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30화. >
아이티 공화국이 대한민국의 특별 자치령이 된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지자 여기저기 21세기 식민지배라는 자극적인 언론들의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는 오히려 탐탁치 않아 하는 반응이 더 높았다.
해외 언론들은 식민지배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이 아이티 공화국에 대하여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
한 순간에 최빈국이 경제력 9위의 국가가 되버리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게다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력은 수직 상승 할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대한민국 국민들의 입장에서 불만을 드러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에 이득이다. ]
[ 아이티 공화국 흡수, 대한민국에게는 어떤 이득이 있는가. ]
[ 영토확장? 식민지배? 아이티 특별 행정 자치구 이모저모를 알아보자. ]
한국의 다양한 언론들은 그나마 객관적인 사실들을 보도하려 애썼다. 물론 할아버지 천혁수 대통령과 SKY그룹이 아이티 공화국을 흡수하는데에 앞장서고 있으니 예쁨을 받으려는 경향이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전화 연결 좀 해주세요.”
인터넷 포털을 구경하다가 뱉은 내 말에 호석이 얼른 위성전화기를 꺼낸다.
“어디로 연결할까요 회장님?”
“김은정.”
“예,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바쁘게 다이얼을 누르고는 얼른 내게 전화기를 내미는 호석.
전화기를 받아들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전화 받았습네다.
“이제 발표 합시다.”
-남조선이 상당히 시끄럽습메, 저기 먼 나라를 가져왔습네다?
“육로길도 뚫었으니 바닷길도 뚫어야죠.”
-알갔습네다.
“김일정이 죽고, 그대가 북한의 통수권자가 되었으며, 앞으로 북한은 대한민국과 화합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할 생각이다 정도로 대충 둘러대면 되겠네요.”
-음, 길케 하디요.
“그리고 하나 더.”
-말씀하시라요.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영향력을 키우는데 이것만큼 좋은게 없을 것 같았다.
“동북아연합을 만드는게 어떨까 싶은데?”
-동북아연합?
“북대서양연합기구, NATO처럼. 우리도 연합을 만들자는 얘기죠, 중국, 북한, 대한민국.”
-크하하하하, 쪽바리 아 새끼들이 입에 거품을 물갔습네다.
김은정의 호쾌한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일본 입장에서는 후달릴 게 분명했다. 놈들은 대한민국을 밟고 넓은 중국땅과 러시아 땅을 밟고 싶을 테니까.
“이해한걸로 알겠습니다.”
-북한의 최고사령관이 바뀌었다는걸 공표하믄서, 삼국간에 정상회담 역시 야기 하겠습네다.
“오케이, 중국쪽에는 따로 의사전달 하죠.”
-알갔습네다.
전화를 끊자 호석은 뭐라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위성전화 다이얼을 눌러 후진다오를 연결했다.
-전화받았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말씀 편히 하시지요, 천자께서 우리 한족에게 광명을 내리시니, 어찌 편하게 지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후진다오의 언어는 도통 뭘 말하고 싶은지 제대로 알기가 힘들었다.
“중국, 북한, 대한민국. 이 삼국이 동북아연합이라는 조합을 만들었으면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아! 그렇게 된다면 천자께서 활동하시기에 더욱 편한 세상이 오겠군요, 적극 찬성하겠습니다.
“중국은 뭐, 별 문제가 없나보죠?”
-지금 우리 중화민국의 인민들은 대한민국과 SKY그룹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친우라고 부르짖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래요?”
-SKY가 일자리를 주고, 경제력을 상승시키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장저민의 수족들은 다 잘랐나요?”
-우매한 놈들은 당연히 사라지는게 옳습니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고 있으니, 천자께서는 염려치 않으셔도 좋습니다.
자신만만한 후진다오의 대답.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아이티 특별 행정 자치구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예, 우리 정보부에서도 말이 많습니다.
“놈들의 시선을 좀 돌려놓고 싶네요, 아직 아이티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더 자극적인 얘기들이 필요하다는 얘기에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럼 내가 얘기 한 것들, 최대한 빠르게 부탁하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좋아요.”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후진다오의 말이 들려왔다.
-러시아에서 정상회담 제안이 왔습니다.
“음,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죠.”
-우리 중국과 서양의 이리같은 미국놈들에게 동시에 연락을 돌린줄 압니다.
어느새 미국을 서양의 이리라 칭하는 후진다오.
어쩔 수 없는 중화 사상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물론, 후진다오에게 중화사상의 꼭대기에는 내가 앉아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
“미, 중, 러 삼국 정상회담이라.”
-천자께서 날이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뭔가 해보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또, 러시아 정보부 요원들이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사막의 SKY 에너지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보입니다.
“놈들이 자주 들락거립니까?”
-예, 아무래도 대체 에너지원이라는 생각을 하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우선 알겠습니다. 동북아 연합을 조성하고 나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네요.”
-정상회담은 그들의 요청에 따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편할대로 하세요.”
-예, 천자시여.
전화를 끊고 호석을 바라보자 부드럽게 미소지은 그가 말했다.
“김장원 사장과 독거미에게 언질을 주겠습니다. 러시아에서 열심히 해 보라고.”
“추운 나라에 가서 꼭 붙어 지내는 모양이네요, 별 소득이 없고.”
“돌아가는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둘도 알고 있을 겁니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다행이고요, 어쨌든 활동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하세요, 조만간 러시아쪽에서 한국인들에 대한 감시가 올라갈 것 같으니까.”
“예, 회장님.”
***
러시아 모스크바.
푸틴의 비밀 집무실 안.
그 위치를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집무실.
음모론 속에는 비밀 집무실이 세계 각지에 퍼져 있으며 그 인테리어가 똑같아 구분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대한민국이 결국, 아이티를 먹었군.”
“언론들을 자극해 조금 더 강경하게 나갈까요?”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푸틴.
“어째서인지 중국도, 북한도, 미국도, 일본도 참 조용한거지? 한국이 성장하는 것을 제일 경계해야 할 놈들이 입을 닫고 있으니 이거 참, 내가 여태껏 국제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가 싶기도 하군.”
“정보부를 바쁘게 돌려 보겠습니다.”
“쯧. 이제와서?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고르바초프?”
“죄송합니다. 각하.”
“죄송할 시간에 더욱 빨리 움직였으면 좋겠군, 아무래도 대한민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태풍의 눈이랄까?”
“명심하겠습니다.”
짤그락 거리는 위스키잔을 흔들려 TV에 집중하는 푸틴. 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화면이 전환되며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북한의 국기 아래 서 있었다.
“저건 또 뭐야?”
TV를 확인한 보좌관 고르바초프가 말했다.
“김은정이라는 인물로 김일정의 막내아들로 보입니다.”
“저 놈이 왜 TV에 나왔지?”
고르바초프가 뭐라 답변을 하기 전에, 먼저 흘러나오는 김은정의 음성.
[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통치자 김일정 아바이 동무가 서거하고··· ]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푸틴.
“김일정이 죽었다고? 언제?”
고르바초프가 흠칫 놀라며 푸틴의 눈치를 살핀다.
그로서도 김일정이 언제 죽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북한이 국경을 너무 쉽게 연다 했더니!”
북한은 체재상, 국경을 쉽게 개방해서는 안 되었다. 중국에게는 그나마 쉽게 개방을 하는 편이지만, 대한민국에게 쉽게 개방해서는 안 되었다.
공산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조금만 오염이 되어도 체재 자체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현대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조금만 국민들이 깨어나도 공산주의는 망한 체재라는것을 눈치채는 것이 태반.
결국 러시아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하게 되었으며 중국 역시 서서히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 체재만 아직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 러시아와 중국이었다.
북한은 상황이 조금 달랐는데, 자본주의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독제 체재를 더욱 고수하던 국가였다. 어떻게든 통수권자, 그러니까 중앙집권을 더욱 단단히 만들려고 노력하던 국가라는 뜻.
“그냥 자본주의를 슬쩍 받아들이려나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군.”
쨍그랑.
푸틴의 손아귀에서 위스키 잔이 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르바초프 보좌관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긴장한다.
“우리 정보부는 저걸 몰랐나? 김일정이 죽고, 김은정이라는 저 핏덩이 자식이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되었는데, 그걸 몰랐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 죄송!”
푸틴이 손아귀에 남아있던 유리조각을 고르바초프에게 던져버렸다.
핏, 핏.
몇개의 유리조각이 고르바초프의 안면과 목 언저리등을 스치고 가며 기다란 상처를 내었다.
깊이가 깊지는 않지만 따끔한 느낌마저 없다 할 수 없는 상처.
“국경을 맞댄 국가의 이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면, 누가 이 러시아를 두려워 하겠나?”
“북한을 너무 무시한 것 같습니다.”
“정보부놈들이 감히 편견을 가져? 인간이기에 편견을 가졌다 할 셈인가?”
“철저하게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정보부는 어떤 편견도 가져서는 안돼! 나라에 대한 사명감 하나로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만 보고하도록, 다시 교육시켜.”
“예, 각하.”
털썩, 다시금 자리에 앉은 푸틴이 의자 팔걸이를 톡톡톡 두들기다 말했다.
“유라시아 횡단철도.”
“예, 각하.”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고, 방해할 방법 역시 알아 봐.”
“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미국이랑 중국과 정상회담 연결은?”
“중국은 찬성의사를 전해왔으며 미국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픽 웃음을 흘리는 푸틴.
이제 북한의 저 발표를 들었을테니 부쉬 대통령 역시 움직일 수 밖에 없을 터였다.
“멍청한 놈이 아니고서야, 제 아랫놈이 고개를 치켜든다는데 움직일 수 밖에 없겠지.”
푸틴은 서슴없이 대한민국을 미국의 아랫놈이라 칭하고 있었다.
“으음, 일본 놈들이랑은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말이야.”
일본과 러시아는 당연히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각종 영토분쟁부터 시작해서 해협 분쟁역시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은 너무 나댔다. 러시아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는 얘기.
“일본도 슬슬, 찔러 봐. 놈들도 대한민국의 국력 상승에 대해서 불만이 많을테니까.”
“예, 각하.”
***
[ 미, 중, 러. 삼국 정상 회담. 격동하는 세계 정세. ]
[ 대한민국의 가파른 국력 상승을 견제하기 위한 회동일까? 미, 중, 러. 삼국 정상회담 내달 베트남에서. ]
[ 북한의 정권교체! 전 세계는 어떻게 대비하여야 하는가! ]
[ 북한은 앞으로 대한민국과 상생하며 성장하겠다. 충격적인 김은정의 말! ]
[ 이미 상생은 시작되었다?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 가파르게 진행 중. ]
[ 야베 일본 총리, 대한민국의 아이티 점령 두고 볼 수 없다. 미국에게 ‘군사’ 동원 허가 바란다. ]
세상이 후끈 달아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들의 정세가 바쁘게 돌아가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다는게 참 아이러니 한 상황.
“이야, 할아버지 바쁘시겠다.”
아침을 먹으며 뱉은 말에 루시가 푹,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밥 먹을 때 신문보지 말라니까 허니.”
“음? 아 그렇지. 미안미안.”
“나중에 우리 태양이 별이도 우진을 따라할까 봐 겁난다구.”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 할 게.”
“흥.”
아침부터 귀여운 루시의 허벅지를 쪼물딱 걸리며 그녀가 입에 떠 먹여 주는 코코넛 핫 케잌을 음미했다.
“오, 좋은데?”
“맛있지? 코코넛이 정말 신기한 열매인것 같아. 신이내린 열매라는데 믿음이 간다니까?”
“이거 루시가 만든거야?”
“응, 아산댁 아주머니에게 배웠어.”
“오, 우리 마누라 음식솜씨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데?”
루시가 잔뜩 뿌듯하다는 얼굴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회장님!”
다급한 호석의 부름에 입맛이 싹 가셨다.
자연스럽게 루시와 나의 표정이 좋지 못하게 굳었다.
“무슨 일입니까?”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예?”
“지진, 대지진이 일어날거라는 보고입니다!”
루시도 나도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제 33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