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29화 (329/458)

< 제 329화. >

말포이의 태도에 가만히 있을 치안국장이 아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엄연히 다른 국가가 어째서 우리 정부의 일을 대신 합니까!”

“네 놈들보다 우리 아이티 국민들이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배부른 것 좀 봐! 뭘 저렇게 잔뜩 처먹었을까?”

“저게 다 우리가 낸 세금이라지?”

“부끄러운 줄 알아라!”

여기저기서 욕설이 쇄도하자 치안국장의 얼굴이 울긋불긋 변해갔다. 제 놈도 창피하고 분한 것은 아는 모양.

“카메라에 담을 만큼 담은 것 같네요.”

내 말을 알아 들은 호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손짓했다. 그러자 PMC의 대원들과 치안국의 경찰들이 취재진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만큼 그들이 거리를 벌리자 나는 치안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내 눈에는 네 놈들이 무장단체 같은데?”

“뭐요? 이 사람이 보자보자하니까!”

카메라가 없어졌다 생각해서인지 더욱 날뛰는 놈.

“저기 뒤쪽에 있던 아이티의 국민들이 네 놈을 욕하던 걸? 네 놈이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내 말에 행정부 인사들까지 인상을 찌푸린다.

당장 욕을 먹은 게 치안국장이었을 뿐이지 그와 같은 부류에 자신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익히 아는 모양.

“멍청한 놈들이 감히 누굴 욕해!”

막무가내.

여태까지 저런 방식이 먹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한다. 무지하고 무식한 것은 이렇게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드니까. 말포이의 말마따나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기 바쁜데 어찌 배울 수 있었겠는가. 행정부 인사들도,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누구하나 제대로 깨어있는 자가 없었다는 방증이리라.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 아이티는 최빈국의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아마 오랫동안 제대로 된 놈들은 없었을 것이다.

“혁명단의 요구사항은 SKY와 대한민국의 개입이라고 보여지는데, 특사님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세계 평화를 위해 마땅히 대한민국이 나서는게 옳은 일 아니겠습니까? 과거 한국전 당시, 많은 국가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 처럼 말이죠.”

특사들의 말은 영어였기에 정확하게 알아들은 행정부 인사들의 얼굴은 더욱 더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

치안국장의 단호한 거절에 행정부 인사 몇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 생각한 모양이다.

“군사 개입도 생각하고 계십니까?”

“마침 이곳에 전투력이 훌륭한 SKY PMC가 있으니, 한국군을 대신해 의뢰를 하는 방법은 어떨까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쾅!

테이블을 때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치안국장.

“이 놈들이 대놓고 아이티를 먹으려고 해!”

“마냥 멍청한 줄 알았더니 눈치가 있긴 있네.”

툭하니 튀어나온 내 말에 놈이 부들부들 떨며 권총 쪽으로 손을 가져가려 한다.

“그거 뽑으면 넌 죽는다.”

치안국장의 눈이 또르르륵 주변을 살핀다.

저 멀리 언론인들의 카메라를 의식하는 모양.

“카메라가 이곳을 담고 있다고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거라 착각하면 곤란해.”

치안국장이 크게 침을 삼키는게 보였다.

권총을 뽑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얼굴. 나는 그를 무시하고 행정부 인사들을 바라보았다.

“국민투표라도 실시할까요? 어쨌든 아이티공화국도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 않습니까?”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투표용지를 제대로 읽지도 못할겁니다.”

“뭐, 다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투표를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슬쩍 호석을 바라보았다.

호석이 한국말로 작게 얘기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쪽에는 우리의 목소리가 닿지 않습니다. 도청 역시 깨끗합니다.”

다시 행정부 인사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곳 아이티가. 우리 대한민국의 특별자치령이 되었으면 싶은데, 당신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행정부 인사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 그 말은 지금··· 우리 아이티를 대한민국의 식민지화 시키겠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보장하겠습니다.”

“21세기에 식민지 화라니··· 가당키나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까?”

“될지 안 될지는 해 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픽 웃음이 터져나왔다.

역시나 이 놈들 역시 치안국장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놈들이다. 제놈들 욕심을 채우고 있던 것이라는 뜻.

아이티의 국민들을 위하고 진심으로 애국을 하는 놈들이 있을리 없었다. 그저 대한민국이라는 상대적으로 커다란 국력의 국가가 개입하면 자신들이 먹을 파이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것 뿐이리라.

“뭔가 대단한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달라진 내 말투에 대한민국 특사들은 조심히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이고, 아이티 행정부 인사들과 치안국장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지금 네 놈들한테 부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

“특사님 서류 주세요.”

“예, 회장님.”

대한민국 특사들이 내미는 서류.

“이곳에 사인 해. 복잡한 과정은 일단 뒤로 미루자고, 대한민국의 자치령이 되는 순간 아이티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참고로 괌이나 사이판처럼 미국의 북마리아나 제도처럼, 그렇게 해줄테니까 네 놈들도 제법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명심해. 국적만 대한민국이 될 뿐이야, 이 땅이 대한민국 땅이 되는 것 뿐이고.”

“그게 식민지배라는 것이오!”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뭐?”

“뭐요?”

“식민지배가 뭐, 어쨌다고? 억울하면 힘을 키우지 그랬어?”

“이익.”

행정부 인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모멸감에 치를 떠는 듯한 얼굴들이었다.

슥 고개를 돌려 치안국장을 바라보았다.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운 모양인지 아직도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 모습.

“답지 않게 생각은, 이봐.”

“나를 부르는 거요?”

“그래. 치안국과 여기 혁명단이면, 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모두 싹 긁어서 잡아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지?”

놀란 얼굴이 된 치안국장이 행정부 인사들을 살핀다. 이곳에 아이티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모인것은 맞지만, 주요인사 전부가 모인것은 아니었다.

행정부 인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치안국장을 올려다본다.

“서, 설마! 치안국장이 나라를 팔진 않겠지!”

어느새 저들은 애국자고 치안국장은 매국노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대한민국 특사중 한 명이 거의 백과사전 두께의 책을 꺼내더니 낭독하기 시작했다.

“아리엔 앙리, 현 아이티의 국무총리급 인사. 7명의 부인과 12명의 첩을 거느리고···”

현재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신상과 그들이 저지른 부정부패가 낱낱이 적혀있는 서류였다.

저만한 두께라니 절로 고개가 좌우로 저어지는 상황이었다. 고작 인구수 천만 정도의 나라였다. 그런데 정부관료가 저지른 부정부패가 저만큼이다.

“그린세프, 유니피스의 지원금과 지원품목을 중간에 가로채 도미니카 공화국에 저렴한 값에 리셀···”

“이 거지 같은 새끼들이!”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혁명단주 호세가 벌떡 일어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우리보다 더 더러운 새끼들이었네!”

“자, 앉지 정신 사나우니까.”

내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자리에 앉는 호세.

“내가 볼 때는, 여기 있는 치안국장 뿐 아니라, 당신들 역시 아이티라는 국가를 좀 먹는 무장단체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나는 계속해서 낭독을 이어나가려는 특사를 말리고는 백과사전 두께의 비리서류를 툭 하니 놈들에게 던졌다.

“자, 조약이나 맺자고? 사인만 하면 이 서류는 영원히 봉인 될 거야. 사인을 하지 않는다? 그럼 이 서류는 아이티 전역에 생중계되는 뉴스로 내보내 주지.”

놈들의 얼굴이 헬쓱하게 변했다.

놈들도 아는 것이다 당장 이 비리 서류가 공개된다면 성난 군중들이 언제라도 농기구와 총을 들고 자신들의 집을 쳐들어 올 것이라는 걸.

그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펜을 집어 사인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자리에서 일어서 있는 치안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은 서명하지 않을 생각인가?”

“이, 이제막 하, 하려고 했소.”

“빨리빨리 하자고.”

“예.”

이 자리에 있는 인사들이 아이티 공화국의 핵심 인사들임은 분명하나. 이들이 동의했다고 해서 당장 대한민국 자치령 아이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90퍼센트 완료되었다고 보는게 옳았다.

아직 여기저기 세계 열강이 치고 들어올 틈새 공간은 분명하게 있었다. 물론, 그들은 아이티를 취하는게 이득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테니 굳이 끼어들지는 않을 터.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력이 상승하는게 못마땅한 놈들은 딴지를 걸어올 게 분명했다.

이제 우리는 그 딴지를 걸어올 명분들을 줄여나가야 하는 일이 남았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쉬울 것이다.

“바로 전국민 대상으로 투표 준비합시다.”

행정부 인사들이 힘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현재 SKY와 대한민국의 위상이 아이티 국민들 사이에서 어떤지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아이티가 대한민국의 특별자치령이 되는데 동의하는 아이티인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것은 확정된 사실로 봐야 했다.

“경찰들은 병력 바로 물리고, 더 이상의 전투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치안국장이 뻣뻣한 고개를 끄덕인다.

혁명단주 호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혁명단도 며칠은 쉬어야겠지, 편하게 쉬고 있어. 따로 지시를 내릴 때 까지.”

“예.”

마치 지시를 내리는 상급자 같은 모습임에도 모두가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이 순간 행정부 인사들은 내가 혁명단을 컨트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몇몇 눈빛을 요사스럽게 빛내는 놈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주변에 뿜어져나오는 붉은색 아우라만 보아도 내게 적대적이라는 게 보였고.

“자자, 다들 돌아갑시다. 오늘 우리가 체결했던 이 조약은 아직 밝힐때가 아니니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처리 해 나갑시다.”

권유처럼 들리는 내 말이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이 명령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가장먼저 호석과 함께 짚차에 올라서 자리를 벗어났다. 나머지 사람들이야 알아서 자리를 벗어나겠지 싶었다.

“정대표님?”

“예, 회장님.”

“여기 사인한 놈들.”

“예.”

“처리하세요.”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다 물었다.

“혁명단을 동원할까요?”

“아니요, 깔끔하게 우리가 나서죠, 바깥에서는 티가 나지 않게 사고사 정도로 위장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이 나라 치안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이해했습니다.”

“내일부터 특사들은 아이티 대통령 관저로 출근하라 하세요, 그리고 나머지 주요 인사들에게 확실한 서명을 받게 만드시고.”

“예, 회장님.”

“아이티 국민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투표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특사들한테 머리를 굴려보라고도 전달하시고.”

“예, 알겠습니다.”

“이번 달 내로 아이티 완전하게 가져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카리브연안의 아름다운 풍광이 차량 밖에 스쳐간다.

“다른 국가들이 슬슬 이빨을 드러낼 겁니다. 대한민국이 너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느낄 테니까.”

“그렇습니까?”

“중국과 북한과도 사이가 좋고, 미국과도 사이가 좋아보이고. 아마 미국, 그러니까 부쉬 입장에서도 대선만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을 겁니다. 지금 자중하고 있는건 이라크와 아프간 때문이겠죠.”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러시아 놈들은 분명 뭔갈 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어요.”

“예, 회장님.”

“최대한 빠르게 아이티 국민들 동의 얻고, 완벽하게 장악합니다.”

“장악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제거. 이해했습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행정부 인사들에게 주었던 비리 백과사전이 내게도 있었다.

난 이곳에 적힌 이름들을 감히 한국의 특별자치령이 된 아이티내에서 숨 쉴 수 있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깨끗해야 하니까.

< 제 32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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