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24화. >
아이티 공화국의 수도 외곽에 펼처진 울창한 밀림.
그리고 그 밀림을 개간하여 세워진 마을.
앙상한 목책들 사이로 군데군데 웃통을 벗고는 소총을 무장한 사내들이 어슬렁 거리며 경계를 서고 있는 곳.
전형적인 남미의 마약상의 지역같은 느낌의 그곳에 이재형이 뚜껑이 없는 지프차를 끌고는 도착했다.
빵! 빵!
목책으로 둘러싸여있는 정문 앞에서 크락션을 울리니 무장한 사내 서너명이 나타났다.
“뭐야?”
이재형이 대충 구겨 놓은 종이를 툭 하니 처음 입을 연 사내에게 던졌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종이뭉치를 잡은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재형을 바라본다.
“보스에게 전해.”
“이딴 쓰레기를?”
“일단 전해.”
인상을 찌푸리던 사내가 입맛을 다시다 뒤로 돌아서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허겁지겁 달려온 사내가 손을 빙빙 흔든다.
“열어, 열어.”
정문이 열리고 이재형이 탑승한 지프차가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 이곳 주변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에 도착했다.
“보스는 서재에 계십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정장 사내.
아마 이곳 갱단 보스의 오른팔쯤 되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이재형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그의 앞을 가로막는 사내들.
“몸 수색을 하겠습니다.”
이재형은 편할대로 하라는 듯 양팔을 벌려 보인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무기가 없었기에 쉽게 집안으로 들어온 이재형은 안내를 따라 서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만하게 회장님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 놓은 갱단의 보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SKY가 보냈나?”
이재형은 피식 웃으며 서재에 준비된 소파 위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래.”
이재형의 태도가 건방져 보였는지 갱단 보스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건방진 부하군.”
보스의 말에 픽 웃음을 흘리는 이재형.
그의 눈에 한껏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아이티의 지배자라는 놈이 한 없이 가소로웠다.
북한의 정상, 중국의 정상도 씹어먹던 이재형이 고작 아이티의 범죄좌 우두머리에게 예의를 보인다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회장님께서, 너희가 아무런 행동이 없다고 경고를 바라시더군.”
이재형의 말에 갱단 보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아직 그의 몸 속에 ‘천우진’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는 모양.
“약속을 이행할 시간은 충분히 주었다는 게 회장님의 생각이다.”
“조금 부족했다. 나라를 바치라니,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흥, 그럼 네 놈의 목을 바쳐라.”
갱단의 보스가 눈썹을 꿈틀 거리며 권총을 집어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두려워 한 것은 SKY의 군대였지 너 따위가 아니야, 설치지 마. 여기는 나의 공간이니까. 이곳에서는 잘난 너의 회장도 날 어쩔 수 없어.”
씹듯이 뱉어내는 갱단 보스의 말에 이재형은 싱긋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확실하나?”
“뭐?”
“이곳에서는 감히 회장님도 네 놈을 어쩔 수 없다는 말, 확실하냐고.”
갱단 보스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총구를 이재형에게 겨눴다.
“궁금하면 시험해보던가.”
이재형이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입꼬리를 더욱 진득하게 들어올렸다.
“그래볼까?”
“뭐?”
팍.
탕! 탕!
순식간에 갱단 보스에게 쇄도한 이재형의 왼팔이 총을 쥐고 있는 놈의 팔을 천장으로 들어올렸고, 오른손으로는 서재 테이블에 있던 날카로운 펜을 잡아서 모가지에 가져다 덴다.
“쉬운데?”
이어진 이재형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갱단 보스.
보스의 눈알이 자신을 금방이라도 죽일듯 노려보는 이재형에게서 출입문 쪽으로 옮겨졌다.
팍, 팍.
탕! 탕!
드르륵, 드르륵.
다양한 소음이 서재 바깥에서 들려온다.
보스는 저 소리가 자신의 수하들이 달려오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시 눈알을 돌려 이재형을 바라보았다.
“네가 죽는 다는 건 변하지 않아.”
“확신하나?”
“확신 한다.”
히죽 웃은 이재형이 목 언저리에 가져다 데었던 펜을 움직여 권총을 꼭 쥐고 있던 보스놈의 손등을 찍었다.
“큭.”
자연스럽게 권총을 빼앗은 이재형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다시 소파위에 앉는다.
어느새 바깥의 소란은 조용하게 변하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서재의 문이 열린다.
“저 놈을 죽여버려!”
손등에서 펜을 뽑으며 외치는 보스.
그러나 서재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들은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제압했습니다. 코드원.”
“훌륭하다. 경계를 서도록.”
“예!”
이재형이 잔뜩 당황을 머금은 갱단 보스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생각은 변함이 없나? 이곳에서는 우리 회장님이 네놈을 어쩌지 못한다는 그 생각.”
부들부들 몸을 떠는 갱단의 보스.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재형의 수하들 뒤로 바닥에 누워 곤히 잠든 부하들이 보였다.
“제기랄··· 무기도 없는 셋에게?”
홀로 중얼거리는 놈에게 이재형이 말했다.
“애들부터 물려, 벌집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인상을 찌푸리던 놈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기를 들어올리고는 외쳤다.
“됐어, 아무 일 아니니까 평소처럼 일이나 하고 있어!”
쾅.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은 보스놈이 이재형의 맞은편 소파에 털썩 앉는다.
이재형은 무료하다는 얼굴로 천천히 눈을 움직여 보스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언제, 어느 순간,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널 죽일 수 있다.”
“까드득.”
이재형의 말이 진실임을 알기에 갱단 보스는 분을 삭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회장님께서는 빠른 시일내에 네 놈이 약속을 이행하길 바라신다.”
“후우··· 준비는 거의 끝났다. 실행하지.”
“일주일 안으로.”
이제는 기간을 완벽하게 정해주는 이재형.
“알겠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갱단의 보스.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이재형의 눈을 피하지 않는 놈.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린 이재형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휙 하니 보스에게 던졌다.
“그럼, 또 보지.”
전혀 무방비하게 보스를 스쳐지나가는 이재형, 그것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언제든 보스가 권총을 들어 이재형을 쏠 수 있지만, 마치 ‘쏠 테면, 쏴 봐.’하는 태도였다.
물론, 제 목숨이 귀하다는 걸 아는 보스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치욕스러움에 어금니를 짓 씹을 뿐.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집단이야!”
홀로 버럭 소리를 질러보는 갱단의 보스.
황급히 달려온 그의 오른팔.
“말포이 이 멍청한 새끼! 어디서 뭘 하고 있었어?”
“죄, 죄송합니다. 이런일이 생길줄은···”
“됐고, 타격대 지금 뭐 하고 있지?”
“관광객들은 물론, 자원봉사단체들이 계속해서 입국하는 중이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쓰잘 데 없는 삥이나 뜯고 있단 소리군.”
“······”
“이제 더는 버틸 여력이 없다.”
“역시 SKY가 재촉 하는 것입니까?”
“그래.”
말포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성공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 무조건 죽는 일입니다.”
대통령을 죽여버린다면 분명 다른 공권력과 전쟁을 치뤄야 할 테다.
죽이는데 실패한다면 공권력과 전쟁은 물론이고 SKY의 암살 위협에 시달릴게 불보듯 뻔한 상태.
갱단의 보스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티의 경찰과 군대를 상대하는게 더 쉬운일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권총탄을 피하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쇄도한 이재형의 모습이 눈 앞에 다시 재생된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갱단 보스.
“SKY는··· SKY야.”
“예?”
“하늘이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감히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말포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보스, 약이라도 먹었습니까?”
“닥쳐, 말포이!”
“······”
“대통령 스케쥴 뽑아 와, 일주일 안에 처리한다.”
“군대와 전쟁을 해야 한다고요!”
“SKY랑 전쟁을하면 무조건 져.”
“군대와 하는 전쟁은 쉽습니까?”
“상대적으로 SKY보다는 쉽겠지.”
“후우··· 보스의 뜻, 알겠습니다. 준비하죠.”
***
전 세계의 이목이 내가 있는 이곳 아이티 공화국에 집중되었다.
물론 일반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곳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 각국의 주요인사들 뿐이었다.
기업가들은 SKY가 이곳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
건설사들은 SKY건설이 이곳에서 하고 있는 건설물들의 기술이 궁금해서이고, 신재생에너지와 각종 에너지 회사들은 SKY에너지와 SKY화학, SKY전기가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태양광발전시설에 집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도가 큰 분야는 역시, 세계 각국의 정보부서였다.
과연 SKY가. 대한민국이 아이티 공화국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가 주된 관심사라 할 수 있었다.
[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오늘 오후 3시경, 괴한들의 피격에 의해 총상을 입고 자리에서 사망··· ]
TV에서 내가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티 공화국의 현 대통령이 사망했다.
원래도 반정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아이티 공화국에 그 쿠데타가 원래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을 뿐이다.
“반정부 세력이 아니라, 내가 주도하는게 또 다른 거고.”
본래라면 반정부 세력이 국가를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을테다.
그리고 그 반정부 세력은 군부에서 쫓겨난 놈들과 갱단의 화합의 장이 되었을테다. 그러니 국가 전체가 범죄집단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몰렸을 아이티 공화국을.
대한민국이.
SKY가 꿀꺽 하는 일일 뿐이었다.
TV로 볼일은 다 봤으니 그대로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시가를 입에 물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모두들 움직임이 분주하다.
TV에서 분명 아이티 공화국의 대통령 피살 사건이 보도되었을테니 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각국의 정보부 요원들이 특히나 그럴 터.
“잘 속아내고 있으시죠?”
“예, 회장님. 문제 없습니다.”
호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었다.
“전화 좀 주시겠습니까?”
“예, 회장님. 어디로 연결할까요?”
“김은정이 목소리나 좀 듣죠.”
바로 위성전화기의 다이얼을 몇 차례 누른 호석이 내게 전화기를 건냈다.
-전화 받았습네다.
“발표 해.”
-때가 되었소?
“그래, 최대한 시끄럽게 여기저기 소문이 퍼지게.”
-알갔습네다.
“조만간 보자고? 철도 건설 잘 되고 있나 볼 겸.”
-기대하지요.
용건만 간단히.
누가 북한 놈 아니랄까봐 스몰토크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이어서 바로 다이얼을 눌렀다.
-오냐.
“예, 할아버지. 아이티 공화국, 이제 먹습니다.”
-사전 준비는 튼튼한게야?
“그럼요, 아이티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바랄겁니다.”
-오냐, 바로 특사들 파견하마.
“예.”
다시 전화기를 호석에게 건네고 한가롭게 시가를 피웠다.
“자, 이제 누가누가 방해를 하나 봅시다.”
“하하, 예 회장님. 꼼꼼하게 기록 해 놓겠습니다.”
“데스노트라도 쓰시는 건가요?”
“하하, 예.”
웃으며 대답한 호석이지만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진짜 데스 노트라는 걸.
< 제 32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