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21화 (321/458)

< 제 321화. >

쿵쿵쿵쿵.

지이이이이이잉.

다양한 중장비가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공사현장.

중장비는 모두 대한민국 유수의 회사가 만들어낸 것들이지만, 공사현장은 놀랍게도 대한민국이 아닌, 자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불리우는 북한이었다.

짧게 줄여 북한의 평양이 개간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 멀리 공사가 완료된 부분은 벌써부터 철길이 깔아지고 있었다.

“일이 일케 되었구만 기래.”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은정의 말에 그의 오른팔이 된 호위총국장 리영철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불도저 같은 동무입네다.”

“길티, 나이는 엇비슷한데 말이디.”

“최고사령관 동무께서도, 뒤지지 않습네다.”

“기래야디, 내 어깨에 인민들이 올라탔어.”

“예, 전심전력으로 돕갔습네다.”

“이제 좀,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가는구만 기래.”

“다음 달부터는 조금 더 인민들의 삶이 나아질겝니다.”

“그, 월봉이라는 것 때문에 그렇간?”

“기렇습네다.”

김은정은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래도 소소한 기쁨은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이런 공사현장이 북한의 곳곳에서 전국적인 단위로 시행되고 있음이었다. 밤낮없이 진행되는 고강도의 공사지만 인부로 참여한 북한의 인민들은 누구 하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삼시세끼는 물론이요, 하루 세번 ‘참’이라고 하는 간식까지 제공되는 현장은 ‘모집’공고가 붙으면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인부들이 가득했다.

하다못해 여인네들마저 일자리가 있을 정도로 대규모 공사였다.

또, ‘돈’역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국가기반 특성상 모든 돈을 인민들이 가져가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일부’라도 가져가 쌀과 밀가루를 사고, 사치품이라 불리던 ‘빵’도 살 수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회’라고 생각하는 인민들이 늘어나고 그것은 선순환이 되어 공사의 진도는 계속해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유라시아 횡단철도 개간사업을 위해 북한에 들어온 한국인들이 놀라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참 신기한 동무디, 안 기렇소?”

김은정이 말하는 인물이 천우진이란것을 아는 호위총국장 리영철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동무 때문에··· 우리 지지기반이 늘었습네다.”

피가 흐르던 북한최고위원회.

총을 들이밀고 갖은 협박을 해도 흔들리지 않던 원로들이 인민들의 웃음꽃에, 굶어죽는 인민들이 크게 줄어드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것으로, 고작 몇개월의 시간으로 김은정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횡단철도 개간사업만으로 김은정의 당내 지지율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해도 과언이아니었다. 이제는 김은정이 무엇인가 하겠다 하면, 원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달려와 ‘찬성!’을 외칠 정도였다.

의도 했던, 의도 하지 않았던.

이제는 천우진 때문에 김은정의 자리가 공고히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 소리.

“쯧.”

그것을 아는 김은정이나 리영철 입장에서는 절로 씁쓸한 표정을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저벅저벅.

감히 북한 최고권력자 두명의 곁에 다가온 인물.

“오랜만이구만 기래 동무.”

“예, 오랜만입니다.”

“남조선 말이 아주 능숙해.”

김은정의 말에 이재형이 피식 웃는다.

“원래부터 대한민국 사람이었습니다.”

“기래··· 기랬지, 내레 기래도 동무를 지우라 생각했디.”

“그렇습니까.”

“동무는 아닌 모양이오?”

어깨를 으쓱인 이재형이 품에 손을 넣자 리영철이 빠르게 허리춤의 권총으로 손을 뻗는다.

이재형이 왼 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펼쳐보이고는 리영철을 바라본다.

“전화기 꺼냅니다. 전화기.”

리영철이 인상을 찌푸리고 이재형이 품에서 꺼내는 것에 집중한다.

전화기가 꺼내지니 다시 자세를 풀고 먼저 손을 뻗어 전화기를 잡는다.

“회장님께서 연락을 하셨습니다.”

“기것 때문에 직접 왔소?”

“겸사겸사, 친구 얼굴도 좀 볼겸.”

김은정이 픽 웃으며 리영철의 손에 있던 전화기를 받아 들고는 말한다.

“전화 받았소.”

-공사는 문제 없죠?

김은정이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지금 천우진이 자신에게 ‘공사 똑바로 하고 있냐?’하고 묻는 것 같기 때문.

실제로도 그런 의미로 물어본 것이 정확했다.

완전한 아랫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으니 할 수 있는 행동. 자연스럽게 김은정은 자존심이 꿈틀거렸던 것이다.

“문제 없소, 기것 때문에 내게 전화를 했소?”

-날카롭기는.

“내레··· 공화국 최고 존엄이오.”

-똥 싸고, 밥 처먹고, 뒤지는 건 사람 다 똑같습니다. 이상한 계급사회 만들지 맙시다.

“기카는 동무는 뭐 다릅네까?”

-나는 뒤에서 내 욕 하는 사람 있어도 웃어 넘깁니다. 당신은 그럴 수 있습니까?

“······”

-조선시대에도 뒤에서는 왕을 욕했어, 그 병신같은 사상이 박혀있는 이상 북한은 발전 할 수 없을 거요.

워딩이 좀 세기는 했으나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는 것을 아는 김은정. 그렇기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지만 화를 씹어 삼킨다. 화를 내 봐야 제 놈이 왕보다 더한 권력자라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 왕조는 무너졌고, 결국 실패한 세상이라는 건 그 역시 알고 있으니까.

“명심 하갔소.”

-이제 북한도 안정 된 것 같은데, 아닙니까?

“기렇소.”

-그럼 이제 당신이 북한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는 걸 선포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보안절차 까다롭게 하는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차피 각국 정보부들은 대충 눈치채고 있을 테니까.

“아직은 모를 가능성이 높소, 아바이 동무를 찾고 있겠디.”

-슬슬 타이밍이 온다는 소립니다.

“공개를 해라?”

-지금 당장은 아니고, 내가 적당한 타이밍을 얘기할테니, 그때 발표하면 됩니다.

김은정이 한참을 대답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을 말이오?”

-이거 명령 맞으니까, 시킬 때 발표 하세요. 간단하죠?

“··· 알갔소.”

-내 명령이 듣기 싫다면 덩치를 키워, 그리고 복수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김은정이 아랫입술을 깨물다 입을 크게 벌렸다.

오만했다.

너무나도 오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렇다고 김은정이 놀라 입을 벌린게 아니었다. 그가 하는 말은 아주 무서웠다.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어떤 근원적인 공포가 담겨 있었다.

‘복수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 봐, 난 자신 있어.’

그런 표현으로 들렸기 때문.

김은정은 불쑥 화가 올라오기보다는 공포가 올라오는 자신에게 놀란 것이었다.

벽.

천우진과의 짧은 전화에서 절대 자신이 넘어 설 수 없는 어떤 벽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가. 과연 어떻게 해야 천우진을 넘을 수 있을까?

-그게 안 된다면, 그냥 기어. 받아들여. 당당히 내 밑으로 들어와, 창피한 일 아니니까.

“그렇소?”

-그래, 중국의 후진다오도 내게 고개를 조아려, 그런데 네가 뭐라고 자꾸만 고개를 빳빳이 세우려고 하는지 난 이해하기가 힘든데? 어린 마음의 치기인가?

노골적인 반말과 무시.

김은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대우.

“그렇구려··· 중국의 주석이···”

-이빨을 드러내고 싶으면, 그럴 힘을 키우란 소리야. 그 때까지 자꾸 내 말에 토를 달지 마, 죽여버리고 싶잖아.

거악.

절대자.

어째서 김은정은 자신의 머릿속에 ‘천우진’이란 인물이 그렇게 그려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그를 거스를 수 없다.’ 였다.

“명심하리다.”

-따로 연락을 취하면, 바로 전 세계적으로 발표를 하도록, 네가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고.

“알겠습네다.”

씁쓸한 얼굴로 다시 전화기를 이재형에게 건네는 김은정.

“최고 사령관 동무, 괜찮으십네까?”

리영철의 말에 쓰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은정.

“호위총국장 동무.”

“말씀하시라요.”

“천우진 동무가, 내를 죽이려고 하면, 막을 수 있소?”

리영철의 동공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군사적인 전투력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김은정은 반드시 죽는다. 그것은 절대 불변이었다. 당장 대한민국의 국방력이 강력해서가 아니고, 든든한 미국이라는 우방국이 대한민국 곁에 꼭 붙어 있어서도 아니었다.

전쟁이 터지는 순간, 북한의 인민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은만큼 김은정을 가져다 바칠 것이다.

단순히 몇 개월만에 김은정에대한 충성심이 오른 인민들, 그러나 그들의 마음 깊숙한 기저에는 SKY라는 뿌리가 내렸다는 것을 결코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늦었습네다.”

“동무의 생각도 기렇소?”

“면목 없습네다. 최고 사령관 동무.”

오히려 홀가분 하다는 듯 픽 웃어버리는 김은정.

“내레 생각을 잘못 하고 있었소, 호위총국장 동무.”

“기렇습네까?”

“기래, 이제야 좀 세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구만 기래.”

“······”

김은정이 고개를 돌려 이재형을 바라보았다.

“천우진 동무에게 말씀해주시라요.”

이재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전할까요?”

“내레, 인민들을 위해서만 살갔다고. 그러니, 천우진 동무께서는 우리 인민들을 생각 해 달라고, 내레 간청하더라 하고.”

완전한 굴복.

김은정은 호위총국장이자 현 북한의 2인자인 리영철 앞에서 서슴없이 SKY에게 또, 천우진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재형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꼭 전해드리리다. 내 친구가 회장님을 믿는다고.”

“고맙소.”

***

두 다리에 붕대를 칭칭감은 아이티 최고의 갱단의 보스는 자신의 망가진 다리를 내려다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얼굴, 그것은 천우진의 싸늘한 눈빛과 함께였다.

“후우···”

“보스!”

곧 다가온 수하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그.

“공항에서 군인들이 내리고 있습니다!”

“군인들?”

“예, 200여명이 넘고, 무기가 어마어마합니다. 비행기에서 계속 무기가 나옵니다.”

“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아이티 공화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지우고, 그곳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쓰고 싶군.’

천우진의 그 말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다.

살기 위해서 무조건 ‘YES’를 남발하던 제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SKY PMC는 좀 알아 봤어?”

“예 보스!”

“어떤데?”

“어마어마 했습니다. 이라크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의 독종들도 치를 떨 만큼··· 듣기로는 그들에게는 자비라는게 없답니다. ‘대항하면 죽인다.’가 기본 원칙이라고 합니다.”

“미친놈들이라는 소리네.”

“예, 보스.”

“후우··· 대항하면 우린 죽을까?”

수하가 흠칫 놀라지만 이내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죠, 보스 답지 않습니다!”

“이 두 다리를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그건!”

“닥쳐! 말포이!”

“······”

“그 놈은 우리를 전혀 두려워 하지 않았다고! 대통령이랑은 차원이 다른 놈이야! 우리 갱단 전체가 덤벼 들어도 벌집이 되는 건 우리가 될 뿐이야.”

“무기를 더 사오는 건 어떨까요?”

고개를 젓는 그.

“자꾸 멍청한 소리 그만하라고 말포이···”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멕시코의 블랙맘바를 죽였다지?”

“SKY PMC가요?”

“그래, 듣기로는 흡수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티 갱단의 주요 고객중 한 그룹이 멕시코의 더러운 놈들이었다.

“후우··· 자세하게 조사를 좀 더 해보고 일단 타격대 준비 시켜.”

“타격대요? 어딜 치시려고요?”

“후우··· 그가 원하던 게 있었어.”

“그게 뭔데요?”

“대통령 모가지.”

눈을 크게 뜨는 말포이라는 수하.

“예? 보스! 이건 미친짓이에요! 아무리 우리라지만··· 경찰 놈들이 가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요!”

“일단 준비만 시키라고! 내가 당장 처들어 간데?”

“미친··· 보스, 차라리 우리 도망갑시다 그럼. 돈도 많잖아요!”

“야이 미친놈아! 형제들을 다 버리고 도망간다고 우리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닥치고 일단 준비만 해!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도대체···”

“닥쳐 말포이!”

“쓋··· 알겠습니다.”

아이티 최대의 갱단 보스.

실질적 아이티의 지배자.

그는 누구보다 살고 싶었다.

< 제 32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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