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19화 (319/458)

< 제 319화. >

밤일을 끝내고 SKY식품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박영만 연구소장과 최명규 대표는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일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제법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인사하는 그들.

“체력이 좋으신데요? 소장님, 대표님?”

“파하하, 코코넛 주 이거 아주 요물입니다. 상품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 할 만큼.”

“그래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코넛 주 브랜드가 있지 않나요?”

“아아, 말리부 말씀하시는군요.”

“예.”

“확실히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맛인데, 아쉽군요.”

저렇게 술이 취해있으면서도 회사의 이익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던 모양이다.

특히 SKY식품의 박영만 연구소장의 경우, 현재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렇다 할 성과도 없으며, 갱단과 정부가 얽히는 짜증나는 일을 겪게 만든 원인이 자신이라고 자책하는 모습을 간혹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

그러니 뭐라도 성과를 내고 싶은 모양이다.

이왕이면 식품과 관련된 성과를 말이다. 그리고 그게 ‘코코넛 술’에 대해 깊게 얘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고.

최명규 대표와 박영만 연구소장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얼른 쉬시죠? 사업 계획은 나중에 따로 진지하게 말씀을 나눠 봅시다.”

눈치가 빠른 최명규 사장이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곤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박영만 연구소장역시 그와 함께 숙소가 자리한 곳으로 떠나고, 나는 호석과 그들이 남겨놓은 술자리 테이블에 앉아 시가를 입에 물었다.

“생각보다 느리네요.”

“그렇습니까?”

호석이 조심스럽게 내게 술잔을 내민다.

“얼른 제 형에게 달려갈 줄 알았는데 말이죠.”

“제법 거리가 있으니 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게 아닐까요?”

“인간에게는 문명의 이기가 있을텐데 말이죠.”

내가 가리킨 것은 전화였다.

분명 갱단 지역의 보스라는 놈은 갱단 전체를 아우르는 우드머리에게 연락을 취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으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제법 긴 시가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제법 신중한 놈인 모양이에요, 겁이 많거나.”

호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나저나 밤바다 경관이 정말 죽이는 군요.”

내 말에 호석 역시 작게 감탄하며 시가를 입에 문다.

적당하게 떠오른 달빛, 반짝이는 별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어둠에 잠겨 보이는 것은 쏟아지는 별들 뿐이지만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을 보고 있자니 썩 마음에 드는 광경이었다.

“가지고 싶어지는 밤 하늘이네요.”

“시적입니다 회장님.”

픽 웃으며 코코넛 주를 한 모금 마셨다.

확실히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해볼 가치는 있는 듯 싶었다. 물론 추억보정이 살짝 들어간 맛일테지만.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쉴까요?”

“예, 회장님. 편안한 밤 되십시오.”

***

바깥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스륵 눈이 떠졌다.

다다다닥.

군홧발소리와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는 사람들의 음성. 그리고 저 멀리 ‘타다당’하는 총성까지.

유독 방음에 신경쓴 방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소리가 전해들려오니 현재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하나, 의문이 드는것은 호석은 왜 날 깨우지 않았는가였다.

“읏차.”

자리에서 일어나 철컥 하고 문을 열었다. 마침 맞은편에 호석이 서 있었다.

“아, 깨셨습니까.”

“예, 몇시죠?”

“오전 7시가 조금 안 됐습니다.”

“부산스럽네요.”

호석이 한쪽 입꼬리만 들어올리고는 말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시던 놈들이 왔습니다.”

“갱단?”

“예, 놈들의 머리가 직접 왔습니다.”

“총성은 그래서 들렸나요?”

“예, 놈들이 경고사격이라도 하고 싶은지 허공에 난사 하더군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잠옷 바람 그대로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SKY식품의 높은 철책 앞에 갖가지 트럭들이 보이고, 그 주변에 소총을 무장한 흑인들이 가득 보였다. 군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복색이니 ‘무장단체’라고 보는게 옳아 보였다.

“저 놈들인가보네요?”

“예.”

무시하고 싶지 않은데.

외관이 참, 아쉬운 느낌이었다.

SKY PMC의 대원들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과 같은 느낌이라면 저들은 그저 허세 가득한 어린 아이가 소총을 들고 설치는 느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창시절 학교를 주름잡는 ‘일진’무리와도 크게 다를게 없었다. 제 놈의 무리를 믿고 설치는 그런 부류 말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다른 것은.

일진 무리들은 어디까지나 미성년들이라는 것이고, 저기 있는 갱단은 그래도 성인일테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본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벅저벅.

내가 앞으로 걸어가니 호석이 얼른 내 앞을 막아선다.

“굳이 대면을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갱단의 우두머리라는 놈. 제법 똑똑한 놈일겁니다. 멍청하기도 하겠지만.”

호석은 내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

“차라리,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어차피 못 쏩니다. 안 쏠거고요.”

“그래도 위험합니다 회장님.”

“쯧.”

“문 열어주세요, 그럼.”

호석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의 안전 책임자인 그의 입장에서 굳이 소총을 무장한 단체가 저 철책을 안전하게 건너오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아이티공화국. 내가 가져야겠습니다.”

호석이 입술을 질끈 깨물다가 이내 손을 들어 손짓한다.

퉁!

여러발의 총성이 마치 하나의 총성처럼 울려퍼졌다.

피탄지는 그들이 두들기고 있는 철책의 바닥이었다.

흠칫 놀란 놈들이 뒤로 한 두어걸음 물러났을 때.

멀리서도 철책이 열리는게 눈으로 보였다.

철책이 열리자 의아해 하는 흑인들 사이로,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정장을 입은 흑인이 금색으로 도금된 소총을 매고는 안으로 당당히 걸어온다.

“저 놈인가 봐요?”

“예, 회장님.”

뚜벅뚜벅, 당당하게 내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에이~ 돈 많은 형제, 네가 내 동생 몸뚱이에 구멍을 뚫었다며?”

실실 웃으면서 특유의 양아치같은 영어를 구사하는 놈. 대통령에게도 막한다는 갱단이라 그런지 정말 겁대가리를 상실 한 것 같았다.

“왜 왔지?”

내 질문에 피식 웃으며 특유의 허연이를 드러내는 놈.

“돈 많은 친구가 우릴 부른거 아니었어?”

어깨를 으쓱였다.

맞다.

난 분명 놈을 부른 것이었다.

단, 이런 방식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일 뿐이었다. 원초적이고 아주 무식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래서 저 잘난 보이스카웃들을 데리고 오셨나?”

보이스카웃이라는 말에 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호석이 다시 손을 들어 올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PMC대원들이 완전무장을 하고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순한 소총들과 저격총 뿐 아니라, 중화기 역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헬기도 떨어뜨린다는 일명 게틀링건 부터 시작해서 작은 로켓포 같은 것들이 말이다.

분홍색 정장을 입은 놈의 볼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여태까지 해적질 해 먹고, 대충 털어 먹던 곳이랑 내가 같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고 얘기하고 싶군.”

“화, 확실히.”

호석에게 손을 내미니 호석이 내 손에 글록 권총을 쥐어준다.

탕! 탕!

나는 망설임 없이 분홍색 정장을 입은 놈의 양 다리를 쐈다.

“크억!”

자연스럽게 바닥에 무릎을 꿇은 놈.

막 소총에 손을 가져가는 놈의 이마에 뜨거운 총구를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네가 누군지, 뭐 하는 놈인지 그딴건 궁금하지도 않아.”

놈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지금 고민중이야.”

“뭐, 뭘?”

“네 놈들을 이자리에서 다 죽여버릴까, 아니면 천천히 공포속에 살게 만들며 천천히 죽여버릴까.”

“이,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네 잘난 동생에게 얘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지? 난 정부의 공식 의뢰를 받은 PMC의 꼭대기야. 네 놈들을 언제 어디서 죽이던 합법적이라는 얘기지.”

“······”

“SKY는 우리 천가는. 감히 내게 이빨을 보인 짐승새끼를 살려주지 않아.”

놈의 동공이 크게 확대된다.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자각한 듯 보였다.

이렇게 허접 할 수가.

애매한 꼭대기에 오른 놈들은 자신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장저민이 그랬고, 부쉬가 그랬고, 지금 이 놈이 그랬다.

장저민과 부쉬.

그래 그 놈들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힘이 있는 놈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아이티공화국이란 작은 나라의 갱단 우두머리 주제에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우쭐대는 꼬라지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살고 싶나?”

“예, 예.”

“기억해라, 네게 나는 항상 올려다 봐야 할 존재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스로 모시겠습니다!”

놈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분홍색 정장 바깥으로 넘실넘실 넘쳐흐르던 붉은색 연기가 완벽하게 초록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굴복.

놈은 지금 내게 완벽하게 굴복하고 있었다.

몇분 전까지만 해도 하늘 무서운 줄 모르던 놈이 이제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아이티를 가져와.”

“예?”

“이 공화국을 내게 가져오라고, 그럼 네 놈을 살게 해주지.”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친히, 놈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아이티 공화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지우고, 그곳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쓰고 싶군.”

놈의 검은색 동공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해했나?”

“이, 이해했습니다.”

“가져와, 빠르게.”

“예! 예! 알겠습니다.”

총구를 거두고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놈의 두 손에는 아직도 금색 도금이 반짝거리는 AK소총이 들려있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이미 꼬리를 말고 도망친 개새끼는 두렵지 않은 존재니까.

“호오.”

뻥 뚫린 시야 사이로 아이티공화국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곧 아이티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질지 모르니 어쩌면 지금 떠오르는 저 해가 내가 보는 아이티공화국의 마지막 일출일지도 모르겠다.

“살려주십니까?”

호석의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시간을 낭비하십니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쓰레기를 살려주는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이제이라는 말 아십니까?”

“예, 적의 적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모양새를 일컫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적’이라고 거창하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은데, 뭐, 그런 느낌이죠.”

“아이티 대통령을 치우고 싶으셨나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저 분홍생 정장을 빼 입은 갱단의 머리에게도 말했지만, SKY는, 그리고 우리 천가는.

감히 이빨을 드러낸 짐승새끼를 용서하지 않는다.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행동이 내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아이티공화국을 완전히··· 장악하실 생각이십니까?”

“대한민국은 대대로 식민지배를 당해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죠?”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안타깝게도··· 슬픈 역사가 많지요.”

중국에게, 일본에게, 서구열강에게.

항상 힘이 없던 대한민국은 당하고만 살았다.

뭐 거창하게 국가를, 나라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 슬슬. 준비를 끝낸 SKY는, 우리 천가는. 기지개를 켜야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호석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날 빤히 쳐다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말씀하신, 철혈의 제국을 세우시렵니까.”

“아쉽지만, 일단은 여기부터 시작하죠, 저기 태양을 보세요 이 일출 하나만으로 이 나라를 가질 가치는 충분 한 것 같은데요?”

고개를 돌린 호석이 태양을 바라본다.

“예, 확실히 기억에 남을 일출입니다.”

“저 일출처럼, 이제 잠에서 깨어난 우리도 떠올라 봅시다.”

“예, 회장님.”

< 제 31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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