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17화 (317/458)

< 제 317화. >

원래였다면.

원래의 내 계획은 이미지 메이킹으로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닌 미래의 ‘이미지’ 파워, 혹은 브랜드 파워를 창출해 낼 생각이었다.

SKY는 고객들을 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런 이미지를 말이다.

너희들이 우리의 제품을 사면, 그 중 일부는 세상에 환원된다. 그런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시작한 사업이 SKY식품이었다.

물론, 미래의 식량난 역시 내 예측 안에 넣어둔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 모를 ‘전쟁’에 대비하였다.

그게 가장 확실한 이유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기’도 아니고 ‘병력’도 아니고 ‘식량’이라고 확신한다.

점점더 발전해나가는 현대 사회에서 다 거기서 거기인 무기들과 다 거기서 거기인 병력규모를 가지고 있을 때, ‘식량’만큼 장기적으로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데 필수적인 요소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식량’에 대한 가치를 간과하곤 한다. 왜냐면 주변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까. 선진국이면 선진국일수록 ‘식량’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법이었다.

아이티공화국과 같은 개발도상국들은 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에 날파리가 들끓어 참을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내 대답에 와락 인상을 구기는 대통령.

“어떻게 하자는 얘깁니까?”

“아이티의 공권력을 믿을 수 없고··· 내가 볼때는 대통령께서도 경찰들이 우리에게 보호비 명목의 돈을 뜯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는데요?”

“그, 그럴리가요.”

아니, 이 놈은 분명 알고 있었다.

아이티 공화국의 멍청한 윗대가리들은 지금 SKY가 커다란 이익을 위해 이곳에 투자하고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코코넛, 사탕수수, 갖가지 열대 과일이나 작물들.

그걸 팔아서 SKY가 몇푼이나 번다고 그딴 생각을 했을까? 무시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무시하게끔 만든다. 생각이 너무 편협하고, 잣대가 너무 작다고 해야 할까?

“아이티 국민들을 위해 시작한 사업인데 말입니다. 생각이 참 짧아요.”

대통령이 내 눈을 살살 피한다. 얼굴을 붉히는 것 같아 보인다. 뭣보다 대통령의 몸뚱이 주변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붉은색 연기만 보더라도 이 놈이 좋은 놈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멍청한 놈이 대통령이랍시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

“국책사업으로 대대적인 농장지대를 만듭시다.”

“우리는 그럴 돈이 없습니다.”

단호한 거절.

“나는 그럴 돈이 있습니다. 아이티공화국에 저리의 이자로 빌려줄 돈이.”

“돈을 빌린 다음, 다시 SKY에 투자하라는 얘기입니까?”

“왜요? 싫습니까?”

“커험.”

대통령이 대답을 미루는 사이, 뒤쪽에 있던 호석을 바라보니 준비되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인다.

대통령을 만나러 오면서 사전에 미리, 내가 조건을 얘기했고, 그 조건에 대한 서류를 SKY그룹 본사에서 작성을 해 놨을테다.

내게 다가온 호석이 서류를 앞에 내려놓았다.

스윽.

그 서류를 대통령에게 들이미니 눈썹을 꿈틀거리며 천천히 읽는다.

“하.”

기가 찬다는 반응.

“답변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후우··· 회의를 통해 연락드리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길 권고하고 싶군요, 후회하기 싫다면.”

“······”

어금니를 꽉 깨문 대통령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었다. 누가보면 내가 갑질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뭐, 명백히 말하면 갑질이 맞았다. 그러나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를 훈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티 공화국의 대통령이라는 놈은 아무리 봐도 아이티공화국 국민들의 삶 따위는 관심이 없어 보이니까.

문맹률이 높은 국가였다.

일례로 구호물품의 제조일자를 유통기한으로 착각해서 구호식량을 바다에 버리거나 땅에 묻어버린 사건도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교육받았다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없었을테다.

옛날부터 인간은 아랫사람들이 멍청하길 바란다.

그래야 조용조용하게 혼자 해처먹을 수 있으니까. 지금의 아이티공화국의 대통령의 모습도 그 선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욕심이 그득그득한 전형적인 탐관오리들 말이다.

드르륵.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대통령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쓸 데 없이 금박으로 장식을 해 놓은 이 집무실은 정말이지 꼴불견이다. 서울에서 땅값이 드높기로 유명한 강남의 SKY사옥의 내 집무실도, 이것보다는 검소하니까.

“의외로 쉽게 물러나셨습니다.”

호석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보였어요?”

호석이 날 빤히 바라보다 이내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미끼를 던지셨군요.”

“빙고.”

내 예상이 맞다면.

대통령이 무식한 탐관오리가 맞다면.

아마 내가 준 서류에 사인을 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또 뒷주머니를 마련하려 들겠지.

“아마, 놈들 마음처럼 일이 진행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갑시다. 소장님이 코코넛주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니, 기대가 되네요.”

“하하, 예.”

***

허름한 짠내가 날 것 같은 나무 테이블 식탁 위.

“이야.”

싱싱한 해산물 한상이 차려졌다.

“이거 맞습니까?”

과연 아이티공화국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상이었다. 한국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진귀한 해산물들의 향연이었다.

“인근의 바다도 SKY의 소유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회장님.”

“아, 그래요? 아이티가 바다도 팔아 먹었나 보군요.”

“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이건 크레이피쉬고, 이야 이건 코코넛크랩이네요? 이건 유니콘피쉬인가요?”

“오, 회장님 해양 생물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아뇨, 뭐 다큐멘터리를 즐겨 봅니다.”

“유니콘 피쉬는 쥐취의 일종이라 육질이 훌륭합니다. 여기 이 회는 다금바리랑 비슷한 종류라고 하더군요.”

나와 호석은 얼른 다금바리와 비슷하다는 생선 회에 젓가락을 놀렸다.

사전에 소장에게 주문을 받아 다양한 식료품을 한국에서 가져 왔기에 와사비와 간장, 초장 같은 것은 풍족했다.

연구소장이 다금바리 회를 두점 집어들어 초장을 듬뿍 찍으며 말했다.

“캬, 이 초장이 어찌나 그립던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초장맛 아니던가.

회를 씹으며 제법 커다란 정글도로 코코넛을 분해하기 시작하는 연구소장.

어느새 코코넛의 껍질을 완벽히 벗기고는 속 내부의 두꺼운 껍질을 일부 도려내더니 그 안에 우리가 가져온 병 소주를 콸콸콸 붓는다.

“이야, 칵테일 죽이네.”

내 입에서 터져나온 감탄사에 호석 역시 엄지를 척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런게 여행인가 싶었다.

신선한 해산물에 술이 몇 순배 돌고, 어느새 얼굴이 붉어진 연구소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빈 껍데기만 요란한 식탁에서 손을 내려 호석이 내미는 시가를 입에 물었다.

“한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코코넛 크랩이랑 크레이피쉬 몇마리는 잡아갈까 봐요.”

“아, 준비하겠습니다.”

“잘 안 죽는 갑각류들이니까 포장에 신경쓰시고, 넉넉하게 잡으세요, 실한 놈들로.”

“예, 회장님.”

“우리 집에도 가져가고, 가서 숙모님도 좀 드리시죠? 이런 건 못 드셔보셨을테니.”

“하하, 감사합니다.”

시가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주정을 날려보내고는 말했다.

“갱단 조사는 끝났나요?”

“예, 회장님.”

“규모는 어때요?”

“아이티 전체에 약 2만명의 정규 조직원을 가지고 있는 갱단이었습니다.”

“2만명? 갱단 주제에?”

“정규 조직원만 그렇고, 비정규 조직원들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20만명을 예상합니다.”

“이야, 규모 봐라?”

놀라운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왜 당당히 대통령 관저에도 총질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만큼 돈도, 식량도 많이 필요할 겁니다.”

“근데, 비정규는 뭐고, 정규는 뭐에요?”

“정규는 현역군인이고, 비정규는 예비군정도로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예.”

머리를 긁적였다.

쉽게 봤는데 이건 뭐, 어지간한 군대를 상대해야 하는 일 처럼 보였기 때문.

“이건 거의 전쟁이겠네요, 놈들 처리하려면?”

“그렇습니다. 때문에 아이티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게 아닐까요?”

“놈들이 아이티의 경제를 얼마나 지탱하고 있습니까?”

“거의 좀 먹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허름한 배로 해적질까지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오호라.”

“가끔 UN이나, 유니피스, 그린세프의 구호물자도 약탈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종도 못할 쓰레기들이라는 뜻이었다.

“뭐, 다른 범죄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도미니카 공화국 쪽이랑은 어떻고요?”

“중남미 전체에 걸쳐서 다양한 무역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카르텔이나 마피아 놈들이랑도 연결점이 있다?”

“예, 값싼 가격에···”

“오케이, 거기까지.”

아마 호석이 하려던 말은 값싼 가격의 마약류, 그리고 사람을 일컬었을테니까. 그리고 그 돈으로 ‘무기’를 가져오는데 주력했을테다. 어쨌든 정부와 대척점을 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자력으로 무기를 수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테니 어쩔 수 없이 바깥에서 무기를 사 와야 하는 입장일 터.

별이 쏟아지는 아이티의 하늘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중국의 훈련소 말이에요.”

“예, 회장님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에 있는 PMC훈련소 말씀하시는군요.”

“예, 그거. 이제 우리 대원들도 좋은 훈련소에서 지낼때가 된 것 같은데요?”

호석이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SKY건설에 얘기해서, 빠르게 오라고 하세요.”

“예, 회장님. 바로 진행시키겠습니다.”

“훈련소 건설되는 기간동안, 인재충원이 먼저겠네요. 바로 실전에 들어갈수도 있으니, 각오들 단단히 하라고 해주시고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냥 조용히 자선사업이나 하다 갈까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그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았다.

각종 해산물의 껍데기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코코넛들이 가득한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버리기엔 너무 맛있지.”

***

이틀 만에 다시 만난 대통령.

눈에 욕심이 그득하고 몸뚱이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연기는 여전했다.

눈만 보고도 놈이 SKY가 제안한 계약서에 서명을 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음에 결정은 하셨습니까?”

“음, 전문가들을 초빙해 자문을 구한 결과, 귀하의 회사에서 우리 아이티에게 아주 유리한 조건의 대출을 준비해주셨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혓바닥이 길다.

더 바라는게 생긴 모양.

“그렇다면 계약 진행 하면 되겠군요?”

“헌데, 비용을 조금 더 늘려주실 순 없으실지?”

“대출금을 늘려달라? 지금도 한화 약 1조 규모의 대출입니다만.”

“2조 규모라면 당장 아이티가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픽 웃음이 터져나온다.

“어떻게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질 않니.”

갑작스레 터져나온 내 한국어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아이티 대통령.

“예? 영어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상관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티 공화국에 돈을 지급하고, 다시 돈을 받아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니, 2조원 만큼 SKY가 알아서 공사를 진행해드리죠.”

“예?”

“굳이 우리가 돈을 받고 공사를 진행하나. 공사를 진행하고 공사대금을 가지고 있나 차이가 없잖습니까?”

“아, 아니. 그래도 일에 순서라는게 있는 것 아닙니까?”

“바쁘지 않습니까? 아이티에는 투자가 시급하고요.”

“그, 그렇습니다만.”

“어설픈 계획은 실패하는 법입니다. 대통령, SKY의 돈을 꿀꺽 삼키는데 쉬운 일일 줄 알았습니까?”

쿵.

“애초부터 알고 있었구나!”

대통령이 테이블을 때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거든, SKY에서 돈을 빌리고, 그 돈은 꿀꺽하고 농장지대 개간 사업은 나몰라라. 아니야?”

“흥, 아이티 정부는 SKY에게 협조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돈을 빌리려고 했고?”

“SKY가 아이티에서 돈을 벌어 가고 싶으면 그만큼 투자를 해야지.”

가면을 벗고 본격적으로 제 얼굴을 드러낸다.

“그 투자를 왜 네가 받지?”

“내가 이 나라 대통령이니까.”

“2조나 되는 돈으로 뭘 하려고?”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 돈으로 학교라도 지어주지 그랬나?”

“굳이? 멍청한 놈들은 어차피 글자도 배우고 싶어하지 않을 걸?”

“그게 국민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어차피 그 놈들도 날 욕하는 걸 뭐, 피차일반이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어쨌든 대출 계약은 하지 않겠다?”

“그래.”

“그게 가능할까?”

놈이 올라간 내 입꼬리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쿵.

문이 열리며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인파.

촤라락, 촤라락.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이었다.

그것도 아이티가 가장 무서워하는 외신기자들이었다. 놀란 얼굴이 된 아이티 대통령.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밝게 웃으며 대통령만 들을 수 있게 작게 속삭였다.

“네가 복을 발로 찼다는 걸 아이티 국민들이 알게된다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이미 해외 언론들은 물론이고 아이티 언론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거든, SKY의 투자를.”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 놈에게 건넸다.

“사인 해. 그 잘난 대통령자리 계속 앉아 있고 싶으면.”

“······”

나와 기자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대통령이 결국 내 손에서 만년필을 받아들고는 서명하기 시작했다.

< 제 31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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