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16화 (316/458)

< 제 316화. >

카리브해의 짠내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은 공기.

“언제 봐도 경관은 정말이지.”

불쑥 튀어 나온 말에 호석이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아이티는 언제와도 멋진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도시 주요 경제 지분의 40퍼센트를 더러운 갱단 놈들이 먹고 있어서 살기는 팍팍하지만 말이다.

여차하면 대통령 관저 안까지 총기를 무장한 갱단이 처들어가 총질을 해대는 나라니 공권력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갱단 놈들이 이 아이티라는 국가를 꽉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야, 이런 차는 또 어디서 구하셨데.”

“좋지 않습니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면 유리창을 제외하고는 유리창이 없는 오프로드 차량. 미래에 확실히 이런 차량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지프사의 랭글러였던가?

“SKY자동차에도 한번 생각을 해봐야겠네요.”

“하하, 경차 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회장님.”

“그렇죠?”

“예, 요즘에 부쩍 SKY 오픈카가 만이 보입니다.”

“그러니까요, 한국의 계절에는 어울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선호도가 높으니 그것도 참 신기하네요.”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동남아 지역에서도 SKY오픈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작고 콤팩트한 디자인에 성능까지 우수하고 연비 또한 훌륭하니 좋아 하는 것.

또, 클래식한 디자인에 모던한 실내 디자인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SKY자동차의 공신력은 가파르게 상승 중이었다.

단지 ‘디자인’이라는 것을 새롭고 신선하고, 실용적으로 바꾼 것 하나만으로 말이다.

물론 경차라는 장점은 ‘가격’에서도 나온다.

다른 경차에 비해 많은 기능이 들어가 있으니 당연히 가격도 높지만 그래도 디자인 면에서 비용투자를 할 가치가 넘치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카리브해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주행하기를 잠깐.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새롭게 SKY 식품 연구소장이 된 박영만 교수가 나에게 달려나온다.

참 순수한 사람이지 싶었다.

“아이고, 관절도 안 좋으실텐데.”

“하하, 아직 거뜬합니다!”

다 죽어가던 몰골이 어째서인지 아이티에서 며칠 지냈다고 확 폈다.

“얼굴 많이 좋아지셨네요?”

“돈 걱정 없이, 농사지으니까 이게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쁩니다.”

픽, 웃음이 터져나왔다.

확실히 돈 걱정 없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연구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삽질을 하고 모종을 심고 어떻게 자라나는 가 따위를 연구하면서 말이다.

당장 수확 해 팔 것도 아니고 그저 연구단계에 지나지 않으니 재미있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돈은 SKY가 알아서 지급해주니까.

“교수님.”

“하하, 이제는 그냥 소장입니다. 회장님.”

“예, 소장님. 연구는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으세요?”

“워낙 땅이 좋고 기후가 좋으니 농사가 잘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품종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이 부근에서만 특별한 맛이 나는 농작물이면 될 것 같군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 밖에 문제는 없나요?”

박영만 소장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 아무래도 노동력인데.”

“네, 노동력인데 뭐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여기 부근의 순박한 사람들은 조금만 돈을 쥐어줘도 좋다고 일을 하니까요.”

“그렇겠죠, 그들에게는 제법 큰 돈일테니까.”

“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큰 기회라고 합니다.”

“네, 그런데요?”

“처음엔 괜찮았습니다만, 한달쯤 지나니 조금씩조금씩 지역 갱단에서 ‘수금’을 하려 들고 있습니다.”

팍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지금, 동네 양아치가 감히 SKY한테 삥을 뜯으려고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예.”

“하.”

어처구니가 없었다.

멍청한 갱단 놈들이 내가 돈을 벌려고 농사나 짓고 있는줄 착각하는 모양이다.

적은 값의 노동력으로 농작물을 생산해 전 세계에 수출하면 그게 큰 돈이 될 것이라 착각하는 것일까?

물론, 해당 사업으로 SKY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이미지 메이킹.

그것은 특색있는 디자인 만큼이나 기업의 개성을 알려주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SKY의 이미지는 ‘부의 재분배’를 목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SKY식품은 아이티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몇 곳과 아프리카 등지에 터전을 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노동의 대가로 ‘돈’을 주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고질병인 식량난과 경제난을 해결시켜 주기 위해서 말이다.

“경찰은 뭐랍니까?”

공권력이 아무리 개판이라고 해도, 엄연히 군부와 경찰은 있는 곳이었다. 박영만 소장이 급격하게 어두워진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다.

“왜요?”

“그게··· 보호비를 달라고.”

“미친 새끼들 보게.”

그러니까.

갱단도 돈을 내놓으라고 하고, 경찰놈들도 뇌물을 달라 했단 얘기다.

“이건 뭐.”

쌍욕이 튀어나올 뻔 했으나, 연장자인 박영만 소장을 보고는 씹어 삼켰다.

고개를 돌리니 호석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음. 우선 SKY식품의 각 지부마다 SKY시큐리티의 잉여자원을 투입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PMC와 다르게 경비, 경호 업무를 주로 하는 시큐리티는 당연히 훈련도와 대원들 개개인의 스펙은 PMC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보호’업무에서는 그들 역시 스페셜 리스트라 자랑할 수 있었다.

SKY PMC&시큐리티는 설렁설렁 해서 버틸 수 있는 훈련들이 아니니까.

“예, 본사에서 인력충원에 힘 쓰라고 하시고, 올 하반기 대대적인 채용 하라고 하세요.”

“예, 회장님.”

“그리고, 계획은 바꿉니다.”

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바라본다.

“원래는 순수하게 ‘공익’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것들 하는 꼬라지가 그래서는 안 되겠네요.”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그.

“하하, 놈들이 자처해서 지옥도를 열었습니다.”

박영만 소장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와 호석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알길이 없는 모양.

“아이티 대통령, 미팅 요청 하세요.”

“예, 회장님. 바로 연락 넣겠습니다.”

나는 항상 나를 경호하는 약 40여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움직인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 아이티에 최정예PMC대원 40여명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동네 갱단이라고요?”

박영만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일단 제가 듣기로는 그렇습니다만, 아이티는 어느 동네를 가던 결국 갱단은 하나로 귀결된다 합니다.”

“지부나 분타같은 느낌이라는 얘기네요?”

“예, 회장님.”

“이해했습니다. 머리만 처리하면 일은 쉽겠네요.”

직원 하나가 내가 화가 났음을 알았을까, 신선한 코코넛 열매를 가져다 준다.

“냉동실에 넣어 놨던 거라 시원합니다 회장님.”

“아, 고맙습니다.”

몇 모금 삼키니 확실히, 오묘한 코코넛 향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진짜는 안쪽에 들어있는 신선한 과육일테지만 코코넛 과즙 역시 훌륭한 맛이었다.

“부지 매입은 미리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장님.”

“예, 회장님.”

박영만 소장이 빠르게 지도를 펼쳐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고, 이곳 주변으로 평야 20만평이고 산지가 90만평입니다.”

“음, 농사지을 땅이 많지는 않네요.”

“예, 또한 특별히 회장님의 지시로 여기, 해안을 따라 펼처진 백사장 부지와 뒤쪽의 평야, 산지 역시 구매를 완료하였습니다. 철저하게 SKY그룹의 사유지입니다.”

“그럼 농사는 20만평의 대지에서만 진행 할 계획인가요?”

“아닙니다. 국토 특성상 산지가 많은 아이티기 때문에, 산에서 지을 수 있는 농사들을 연구중에 있습니다. 가령 더덕이나 도라지, 고사리 등을 말입니다.”

“아아, 확실히 산지에서 나는 작물들도 있죠.”

“예, 회장님.”

테이블에서 일어나 직사각형으로 길게 뻗어 있는 창을 통해 바깥을 쳐다보았다.

지도에서 보니 SKY그룹의 사유지는 모두 내 시야에 닿아 있을테니 실제로는 어떤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는곳까지 모두 우리 땅입니다. 회장님.”

“예, 코코넛 나무가 참 많네요.”

“아이티는 코코넛 생산량이 높은 국가입니다.”

“신의 열매라던데, 활용도가 다양하죠?”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렇지 않아도 코코넛 열매의 품종 개량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오.”

방금 부분은 제법 놀라웠다.

코코넛 열매는 미래에도 대단한 식품으로 치부하던 것이었다. 껍질부터 속살까지 버릴게 하나 없다는 그 코코넛이다. 어떤 것이던 그 쓰임새가 훌륭해 ‘신의 열매’라는 별명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그것을 품종개량을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 시킨다? 단 한번도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이었다.

“코코넛 열매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그것이 개발도상국의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당장 먹고살기 급급하니 연구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것 보다는··· 이상하게 더운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게으르더군요, 변화를 싫어하고요.”

무슨뜻인지 알 것 같았다. 배우지 못해 ‘발전’이라는 기대감 좋자 품지 않는다는 말이었으리라.

“좋습니다. 코코넛 개량이라··· 기대 되네요, 열심히 해 주세요 소장님.”

“예, 회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기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고소득자가 아닙니까··· 그러니 신이 주신 선물을 감사히 여겨야지요. 꼭, 밥값은 해 내겠습니다.”

뒤쪽으로도 틔어져 있는 창을 보는데 작은 언덕들이 요란한 산지가 보였다. 저 멀리 확실히 높은 산들도 시야에 닿는다.

“그러니까 주변의 산지 모두 우리 것이라는 말씀이시죠?”

“예, 회장님.”

“이야, 저런데서 나오는 더덕은 무슨 맛일지 궁금하긴 하네요.”

“하하, 더덕은 없지만 고구마 비슷한 작물들은 제법 캐 왔습니다.”

“오, 그래요?”

“예, 회장님 맛이 제법 좋습니다. 저녁에 함께 드시지요.”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때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호석이 다가왔다.

“바로 이동하시죠 회장님.”

“아, 대통령 준비 됐답니까?”

“예.”

***

인구 약 천만명의 작은 나라.

한반도의 8분의 1의 크기를 가진 아이티답게,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깡마른 아이티인들의 몸매와 달리 대통령은 제법 살집이 있어 보였다. 고급스러운 자기에 금박을 씌운 찻잔에 커피를 가득 따라서는 내게 내민다.

“먼길을 오셨습니다.”

제법 좋은 발음의 영어였다.

“예, 멀리 왔네요.”

“SKY그룹의 명망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국토부에서도 SKY그룹의 투자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그렇습니까?”

“농사를 지으신다고요?”

“예, 아이티 국민들의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해줄까 했습니다.”

“하하, 이것참. 국민들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누가보면 아주 좋은 대통령인 것 같았다.

“그러신가요? 그럼 하나 묻겠습니다.”

가타부타 길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말씀하시지요.”

“우리 SKY그룹의 사유지에 갱단 놈들이 와서 삥을 뜯던데, 알고 있었습니까?”

대통령이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알지 못했습니다만, 솔직히 예상은 했습니다.”

“그럼, 경찰들이 와서 보호비를 내놓으라 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까?”

이번에도 고개를 젓는다.

“그렇군요, 나는 SKY그룹의 땅을 지켜야겠습니다.”

대통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내 사유지에 무장한 경비들이 배치 될 것입니다.”

“으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본래 아이티 국민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고 싶어 시작한 농장이었습니다만.”

“예.”

“멍청한 갱단과 경찰놈들을 보자니, 속이 뒤집히는 군요.”

“······”

“아이티에 돈을 빌려 드리죠, 저리의 이자로.”

“예?”

“그러니, SKY 식품의 아이티 농장을 함께 개발 하시죠?”

잠시간 멍하니 있던 대통령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제게 돈을 뜯으려 하시는 겁니까?”

“이건 뭐, 공권력도 믿을게 못되서 말입니다.”

맞다.

나는 지금, SKY식품이 좋은 마음으로 진출한 나라에서 마음을 바꿔 ‘돈’을 뺏기로 마음 먹었다.

< 제 31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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