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15화. >
영상 가득.
웃음꽃이 가득한 가족들의 식사가 나오고, 나래이션이 나온다.
[ 행복한 가족 식사. ]
밝게 웃으며 아이들이 음식으로 장난을 치고, 그것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음식으로 그러면 안 돼.’ 하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에 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흙탕물 앞에 어린 남매가 꼭 붙어 앉아 있는 화면이 나온다.
[ 어린 소피아는 가족이라고는 톰, 남동생 하나가 전부입니다. ]
다시 화면이 전환되고, 웃음꽃이 가득하던 가족들이 식사가 끝났는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 누군가는 항상 배가 부르고 행복할지 모릅니다. ]
다시 화면 전환이 되며 흑탕물 앞에 앉아 있던 어린남매가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그 아이들의 배가 홀쭉하고, 갈비뼈가 앙상하다.
[ 누가 이 어린 남매에게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요? ]
흔하디 흔한.
하지만 사람들을 주목 시키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의식을 갖게 하는 그런 공익광고라고 느껴지는 화면.
이어서 사진이 빠르게 지나가듯한 화면전환이 사용되며 등장하는 소피아와 톰 남매.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하고, 울상이던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웃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
짧게 짧게, 2초 혹은 3초.
한 두장의 사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 3세, 록산나 록펠러.
그 둘과 함께 웃고, 공을 차고. 수영을 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 소피아 남매.
자랑스러운 나의 장인, 장모님의 진심어린 행복한 얼굴,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많은 아이들.
[ 록펠러 재단, SKY재단, 역사바로알기 재단. 지금 우리는 소피아 남매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
내레이션을 끝으로 ‘쿵!’하는 BGM과 함께 등장하는 사진 하나. 어렸을 적 잔뜩 울상이던 소피아가 밝게 웃으며 명문대 입학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끝으로 광고는 끝이났다.
“좋은데요?”
광고가 끝나자마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좋네요, 기승전결도 확실 한 것 같고, 영상 어디에도 ‘후원하세요’따위의 강요도 없고.”
“감사합니다. 회장님.”
“번역이나 나레이션은 어떻게 되죠?”
“세계 각국의 언어와 아나운서등을 통해 따로 후시 녹음을 딸 생각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영상은 한글로만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마이튜브에 대대적으로 광고 하시고, 전 세계 황금시간대에도 광고 뿌려주세요.”
“예, 회장님.”
SKY아트센터.
대단한 규모의 회사는 아니지만, 우리 SKY그룹과 산하 재단들의 마케팅및 홍보등을 담당하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 미디어 문화생활 전반에 깊게 관여를 하고 있는 계열사였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커다란 아웃풋은 아직 없는 상태. 평소 의기소침 해 보이던 아트센터의 대표는 오랜만에 밝은 얼굴을 보인다.
“잘 하고 계십니다. 큰 돈 벌자고 하는 일 아니에요, 그것만 명심해주십시오.”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예, 회장님. 명심하겠습니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그런 회사로 거듭나겠습니다.”
“예, 그거면 됐습니다. 다큐멘터리 쪽에도 투자를 해 주세요, 단순히 돈을 벌자는 취지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사업 정도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자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회의실을 나가는 대표.
고개를 슥 돌려 우희를 바라보았다.
천우희.
나의 하나뿐인 동생.
“어땠어 우희야?”
“음, 아이들을 너무··· 불쌍하게 보여준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
“응, 단순한 동정표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해.”
히죽 입꼬리가 들어올려졌다.
얼마나 깊은 생각을 했으면 저런 말을 할까.
“때로는 있는자들이 보내는 그 동정어린 시선이 더 상처가 되는 법이니까.”
안다.
지금 우희가 무슨말을 하는 것인지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왜냐고?
나도 한 때는 고아였지 않은가.
절실하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누군가에게 ‘도와주세요’라는 말 조차 못할 만큼, 그들이 보내는 동정의 눈은 ‘상처’가 분명했다.
하지만 알아야했다.
죽음보다는 동정의 눈이 더 낫다는 것을.
스스로의 가난과 스스로의 처지를 ‘자존심’으로 무장해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이해해야 했다.
굳이 우희에게 가타부터 설명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생각해 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희야.”
“응?”
“한 명은 먹여 살릴 수 있어.”
조용히 내 얘기를 경청하는 우희.
“열명도, 백명도, 천명도 가능하겠지. 내가 쌓은 부는.”
“응.”
“만 명은? 십 만명은? 백 만명은? 천 만명은?”
우희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머릿속이 복잡할테다.
“한 번 고민 해봐, 앞으로 재단일은 네가 할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우희.
“어머, 회장님. 아가씨 너무 기죽이신다.”
현 SKY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인숙 이사장의 말에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그러니까, 우리 이사장님이 우희좀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호, 알겠어요 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광고는 정말 잘 나왔네요, 불쾌하지 않으면서 자극적이지도 않고요. 소소한 ‘밥상’이라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생존’과 연관되었다는 메시지도 좋았습니다.”
완벽하게 광고의 의도를 꿰뚫고 있는 모습.
“그렇죠? 유니피스나 그린세프 같은 노골적인 느낌 아니라서 좋잖아요? ‘후원’구걸도 없고.”
“네, 회장님 확실히 그랬습니다.”
짝.
손뼉을 마주치고는 말했다.
“뭐, 광고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고, 이사장님이랑 우희는 따로 가시는 걸로?”
“네, 회장님 일 보세요.”
“고생해, 오빠.”
우희의 어깨를 부드럽게 만져주고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호석이 바짝 붙는다.
“영상 잘 뽑혔죠?”
“예, 회장님. 좋았습니다.”
“영상만 보내주고, 돈만 띡 하고 보낸다는 느낌보다는 근본적인 뭔가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여기저기, 식재료 생산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죠,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대가로 받으면서.”
단박에 내 말을 이해한 호석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예, 회장님 부지매입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전문가들 움직이게 해서, 쉽고 빠르고 최대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적절한 생산작물도 알아 보시고요, 미래에는 전 세계에 식량난도 있을테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호석이 가볍게 대답했다.
나는 진심을 다해 한 말이었다.
인간에게 ‘먹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호석 역시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적당한 기관을 인수하거나, 이번에 아예 설립하는 것도 좋겠네요. SKY 식품 정도라는 이름으로.”
“음, 본격적이시군요.”
“대비 해서 나쁠 건 없잖습니까? 상품성이 떨어질 것도 아니고.”
“SKY항공우주기술 산하에 계열사를 만드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호석이 제법 좋은 아이디어를 말한다.
“오, 그것도 좋네요.”
“우주식량, 군용식량도 함께 연구를 하면서 다양한 작물들의 품종개량 역시 진행하고, SKY가 직접 관리하고 재배하는 식자재라면 사람들이 신뢰할 것 같습니다.”
“식자재에 SKY로고를 박자?”
“하하, 그러면 작물이 상할테니. 포장 정도에는 박아도 되지 않을까요?”
확실히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개발도상국이나 빈국들 위주로 알아보세요, 이왕이면 SKY재단과 록펠러 재단, 그린세프, 유니피스가 후원을 많이 하는 나라들로.”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알아보고 따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예.”
***
한달 뒤.
전 세계 동시에 마이튜브를 통해 SKY아트센터에서 제작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 깨끗한 기업, 착한 기업. SKY ]
[ SKY와 록펠러, 그들의 러브 스토리. ]
[ 노빌리스 오블리주의 온상. ]
[ 공익광고 이후, 후원문의 쏟아지는 SKY재단, 록펠러 재단! 그린세프, 유니피스 화들짝 놀라다. ]
우리나라 기사의 헤드라인들은 너무 당연하게도 SKY를 빨아준다.
SKY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와 민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혹자는 ‘SKY가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라고 얘기하니까.
[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 3세, SKY에서 제작한 광고 덕분에 지지율 껑충. ]
[ 그렇지 않아도 압도적이었던 록펠러, 이제는 거의 당선 확정. ]
장인어른의 선거도 순풍에 돗단듯 진행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각종 헤드라인을 보던 내가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호석에게 말했다.
“하하, 심심하십니까?”
솔직히 아니라고 하기 어려웠다.
요즘 정말 한가하니까.
중국은 후진다오가 알아서 하고, 북한은 김은정이 알아서 한다.
러시아는 어째서인지 조용하고, 아마도 저기 깊숙한 곳에서 더러운 짓거리를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게요, 한동안 조용히 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영··· 좀이 쑤신달까요? 미국놈들이랑 러시아, UN놈들 눈치가 보여서 쉽게 움직일수가 있어야지 원.”
호석이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슬슬, 한국도 추워지는데 따뜻한 나라 어떻습니까?”
“따뜻한 나라요?”
“마침 SKY항공우주기술 산하, SKY식품이 신설되지 않았습니까? 여기저기 부지를 사들이고 있고요.”
“그렇죠.”
“아이티쪽에서 문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픽 웃으며 말했다.
“왜요? 알박기라도 있답니까?”
부동산 ‘투기’라는 것과 재개발 ‘열풍’이 있으면 꼭 한번씩 나오는 ‘알박기’란 단어.
아이티에 그런게 있을리 없었지만 농담삼아 던진 말이었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어딜가나 썩은물들이 문제지요.”
호석의 말에 대충 알아 들었다.
“정부와 마찰?”
“정확히는 정부와, 그들 뒤에 있는 더러운 놈들입니다.”
“오호라, 우리 SKY를 방해하는 양아치들이 있다?”
“아이티 외에도,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야, SKY식품 열심히 일 하네요?”
“우리나라 농작물 시장이 많이 무시를 당하더군요.”
“그랬어요?”
“예, 회장님. 그래서인지 대규모로 연구원들을 모집하니 아주 신나서 달려들더랍니다. 아이디어들도 쏟아지고, 다양한 환경에서 연구하는게 꿈이었다는 사람들도 많고요.”
이건 또,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였다.
“학구열이 높은 분들이 많으셨나보네요.”
“농고, 농대를 나와서 박사까지 따고도 어디서 써주는 곳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교수는 좀··· 연줄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놈에 학연, 지연, 혈연은 질리지도 않나.”
호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어쨌든, 그런 분들이 외국에서 참 몹쓸짓을 많이 당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오늘따라 호석이 말이 많았다.
대충 그 이유는 알 것도 같았다.
요즘처럼 내가 조용하면.
호석은 칼퇴근이다.
중년의 남성은 칼 퇴근이 무서운 법이다.
집에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뭣보다.
“희아가 이제 옹알이 하겠네요?”
“커험···”
“한창 보고 싶으실 때 아니세요?”
다 알면서 뭘 묻냐는 듯 호석이 날 빤히 바라본다.
그래, 육아는 행복한 지옥이다.
잠시 도망가고 싶을 만큼.
“루시가 장기 출장 간다고하면 좋아할까 모르겠네요.”
내 말에 호석이 반색하며 가방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더니 얼른 내 책상위에 올려 놓는다.
샤락, 샤락.
서류를 살피니.
묘하게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회장님.”
“이야, 준비 살발하시네.”
“하하.”
“오케이, 내일 점심때쯤에 출국하는 걸로.”
“준비하겠습니다!”
출장이 저렇게 신이 날까?
어쩐지 나도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억지로 내렸다.
< 제 31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