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10화. >
장저민은 눈을 부릅 뜨고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후진다오를 마주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공안들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치던 놈을 드디어 잡은 것이었다.
장저민의 뇌리속에 저놈 때문에 자신이 당했던 치욕이 스처간다.
'착각들 하시나 본데, 당신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천우진의 말이 뇌리에 스쳐간다.
핏덩이 같은 애송이에게 그런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까드득.
절로 어금니가 짓씹어진다.
왜 놈에게 맞고 떼 놈에게 화풀이하는 격이다.
장저민은 전형적인 제 잘난맛에 사는 놈이었다. 곧 죽어도 자신이 잘못하는 일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유형. 그러니 자신이 그런 치욕을 당한 것은 온전히 후진다오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애초에 후진다오가 설치지만 않았다면, 굳이 SKY를 중국에 발을 들이게 하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제 놈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죽어도 인정하질 않는다.
"부주석."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을 담지 마라! 이 인민들의 악적!"
당 지도부 인사들이 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비난을 서슴치 않는 후진다오.
당 지도부 인사들이 후진다오의 패기에 웅성웅성 지방방송을 켠다.
"미친놈."
"네 놈은 우리 인민들에게 거짓을 일 삼았다! 네 놈은 천자가 아니야! 물러나라 장저민!"
"제 정신이 아니군."
장저민은 그가 아는 후진다오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뭐, 얼마 전, 중국을 어지럽혔던 알 카에다 광신도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알 카에다의 주적은 중국이었다면, 후진다오의 주적은 자신이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장저민이 당 지도부 인사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아직도 이 자가 우리 공화국의 부주석이라 인정하는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예!'하고 대답했다가는 도매급으로 후진다오와 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고, 그렇다고 '아니오!'라고 얘기했다가는 흔들리는 정세에 밀려난 장저민 처럼 자신들의 자리도 위태로울까 싶기 때문이었다.
갈팡질팡.
그것이 현 중국의 지도부가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멍청한 놈들."
원색적인 비난이 장저민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고작 그런 동영상 몇개와 기자놈들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세상이 변할 것 같아! 이 하늘이 무너질것 같으냐고! 그런 간덩이로 무슨 혁명을 해!"
회의장을 쩌렁쩌렁 울리도록 호통을 친 장저민이 손가락을 뻗어 후진다오를 가리킨다.
"우리는 지금 위기를 맞이했다! 정체 불명의 세력이 국가운영비를 모두 털어갔어! 내가 어찌어찌 급한불을 껐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하지."
당 지도부 인사들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장저민의 손가락을 따라가 후진다오를 바라본다.
"나는 그 책임을, 저 미친놈이 지는게 옳다고 보는데?"
입을 떡 벌리는 사람들.
"내 생각에 이견이 있는 자가 있나!"
장저민의 서슬퍼런 기세가 흐르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 입이 있는데 어찌 말을 하지 않나!"
지금 장저민은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자신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후진다오를 선택할 것이냐를 말이다.
하나 둘.
"각하의 의중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국가재정부장 류칭을 시작으로.
"저 역시, 저 간악한 변절자가 책임져야 함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역겨운 놈, 도망을 쳤던 놈이 무슨 낯짝으로 다시 기어들어와?"
"공화국을 어지럽히다니, 인민들의 환심을 사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미국을 등에 업으려던 놈입니다. 분명 공화국을 통째로 그놈들에게 바치려고 했겠지요."
"쯧쯧 어리석은 놈이로고."
장저민이 아주 흡족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왕충헌을 대신해 수석 보좌관 자리에 오른 인물이 장저민의 곁에 다가가 속삭였다.
"각하."
"어허, 자네가 이 자리가 어딘줄 알고!"
"그것이 아니오라, 현재 각하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 확신을 받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장저민이 관심이 간다는 듯, 시끄럽게 떠드는 당 지도부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수가 있더냐."
"지금 각하의 편에 선 것처럼 떠드는 자들의 서명을 받으시지요, 수결을 받아도 좋지 않겠습니까? 옛날 삼국을 일통했던 그때 처럼 말입니다."
"호오."
수석 보좌가 얼른 품에서 서류를 꺼낸다.
"이미 준비 하였습니다."
"하하, 자네가 이제야 제법 내 사람 같구만."
기분이 좋은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는 장저민.
감읍하다는 표정으로 넙죽 허리를 숙이며 뒤로 물러나는 보좌관.
서류를 바라보는 장저민은 저 멀리 후진다오와 수석 보좌가 눈빛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
마카오는 아주 순탄하게 정리가 끝났다.
이제 유라시아 횡단철도에만 집중하면 될 터.
할아버지 발표 이후 많은 외신들이 관심을 보였고, 중국과 북한 역시 소란스러웠을테다.
"일본에서 자꾸 연락이 오는구나."
할아버지의 말에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육로를 개척하고 싶겠죠, 예전 세계대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래, 놈들의 속셈이야 빤 하니 뭐."
"별 다른 말은 없나요?"
"반 협박을 하더구나. 자신들을 그 사업에 끼워주지 않으면 손해를 볼 거라고."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과거.
극우파가 일본에 득세하던 시절,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한국을 열받게 했더랬다.
가령, 한국인 여행자들이 비자 없이는 일본을 방문하지 못하게 만든다거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반도체 소재를 부러 수출을 하지 않거나 하는 등의.
그러나 이미 나는 그에대한 대비가 끝난 상태였다.
일본놈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SKY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이상 대한민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은 없을테다.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제 놈들 살 깎아 먹는 짓인줄도 모르고."
"그래, 나도 그리 말했다. 흔들리지 말라고. 몇몇 국개의원 놈들이 얼굴을 붉히더구나."
멍청한 국회의원 몇이 아직 남아있었던 모양.
아마 그 놈들역시 할아버지의 살생부에 올랐을테다. 언젠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소리소문이 크게 나서는 교도소로 향할 운명일테다.
"기업 선정은 다 하셨어요?"
마음같아서는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을 SKY가 꿀꺽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극구 반대 하시었다. 진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싶으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 본심이 무엇이든, 내가 얻는 이득이 컸다. 단순 건설사업에 다른 기업들을 참가시키는게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 푼돈을 가지고 할아버지와 얼굴을 붉히며 대립 할 필요는 없다. 얼마전 중국에서 그것보다 큰 규모의 수익을 창출 해 냈으니까.
또, 마카오 역시 새로운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줄테고.
"그건 네 놈에게 맡기마. 서류만 올려주면 바로 처리하마."
입꼬리가 스륵 올라갔다.
할아버지의 말은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에 뛰어들 기업들을 내 입맛에 맞게 고르라는 말씀이었다. 내가 하나를 양보했으니, 할아버지도 하나를 양보해주시겠다는 뜻.
그리고 그 뜻의 깊은 곳에는 손자놈의 '명망'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이었다.
"공정하게 뽑죠 그럼."
할아버지가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신다.
자신이 양보했지만 끝내 받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드셨나보다. 부쩍 표정이 부드러워 지시고 언론에 노출되는 것 처럼 할아버지는 인자해지시고 계셨다.
누가 사채업계의 대호가, 산군이 이렇게 인자한 할아버지가 될 줄 알았겠는가.
"그나저나, 북한이나 중국이나 별 말이 없구나."
외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을텐데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대한민국의 말에 '동의'를 표했을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장저민은 지금 내부 권력다툼으로 정신이 없고, 김은정은 자신의 자리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정신이 없을테니 현 상황을 만천하에 드러낼 필요는 없다 생각했을테다.
해서, 우리나라 언론은 물론 외신들도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아무도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계약내용을 알 지 못했다.
"바쁜게 대충 정리되면 슬금슬금 고개를 들어 올리겠죠, 빳빳하게."
할아버지가 툭툭, 국가 간 인장이 박혀있는 서류를 두들기셨다.
"이게 있다만."
"독재자라는 놈들, 공산당이라는 놈들은 언제든지 그딴건 무시하는 놈들이니까요, 믿을게 못된다랄까요?"
"그럼 전쟁이구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이 되고 싶진 않다만."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에서 이긴 대통령이 되실 수도 있게 만들어야죠."
"국방비를 더 뜯어내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구나."
"하여튼, 귀신이시라니까?"
"이번에는 또 무엇이냐?"
"이번에 SKY항공우주기술에서 위성 발사 합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반드시 장착 하겠다?"
"예."
할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얼마를 주랴?"
"5개요."
"5조?"
"예."
"이 놈아 그 정도는 네 놈도 있잖으냐?"
"물 처럼 새는게 무기 기술 개발이에요. SKY는 뭐 자원이 무한 합니까?"
"국민들이 엉덩이를 들썩일 일이다."
"그니까 유라시아 횡단철도에 조용히 묻혀 가야죠."
"쯧, 꼭 필요한 일인데 국방비에 예산만 넣겠다고 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괜히 천조국이 세겠어요? 돈을 쏟아 부으니까 센 거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신다.
"오냐, 네가 일신이 잘 되자고 하는 일은 아니니, 적극적으로 나서 보마."
"옙! 저도 서둘러서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 추진하겠습니다."
"얼마나 걸리겠더냐?"
"일주일 뒤에 사업 입찰 진행하고, 또 일주일뒤에 개성공단을 통해 넘어가는걸로 하시죠."
"고작 2주?"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SKY 화학이 좋은 소재들을 많이 들고 있거든요, 창고가 터질 것 처럼."
"파하, 이 놈이 진즉부터 준비하고 있었구나. 어차피 다른 기업들이 건설에 달라 붙어도, 재료를 팔아 먹겠다?"
"그래도 이득일겁니다. 북한도, 중국도 인건비가 매우 저렴하니까."
"어쩐지 쉽게 승낙하더라니, 그런 꼼수가 다 있었구나."
"묘수죠, 묘수."
"알았다. 진행 해."
"옙-!"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그대로 청와대를 벗어났다.
이것저것 일정들이 겹치니 하루가 바쁘다.
"휴가 마렵네."
어느새 곁에 다가온 호석이 빙그레 웃으며 묻는다.
"휴가라... 그저 부럽습니다."
"왜요? 원하시면 보내드려요?"
"후우... 이번달이 마누라 산 달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하하, 왜요? 회장님도 세월이 빠르십니까?"
"큽, 그건 아니죠, 이야 우리 숙모 닮은 놈이 나와야 될텐데 말이죠?"
"커험, 저도 그렇게 외모는 나쁘지 않습니다."
"양심 어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던 호석이 차량에 오르고서야 본론을 꺼냈다.
차량 안은 감히 누가 도청장치 따위를 설치하지 않았음을 자신하는 것이리라.
"후진다오가 체포 되었습니다."
픽, 입꼬리가 들어올려졌다.
생각보다 북한전에 중국부터 먹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건 뭐, 후진다오가 능력이 좋은건지, 아니면 장저민이 멍청한건지."
호석이 픽 웃는다.
"회장님이 능력이 좋으신 것은 왜 배제 하십니까?"
"아이, 또 비행기 태우신다."
"왕충헌 놈에게서 가져온 약점들, 후진다오에게 보낼까요?"
"사본만 보내세요 사본만, 원본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예, 회장님."
< 제 31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