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09화 (309/458)

< 제 309화. >

김장원이 앞장서서 발을 들인 곳은 마카오의 유흥가였다. 마카오의 밤 문화를 책임지는 곳 답게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그런 곳이었다.

포르투갈의 양식, 중국의 양식.

그리고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이국적인 양식의 건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소리치는 그런 곳.

"오."

그 특이한 모습에 나 역시 감탄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건물들과 네온사인 사이로 보이는 유흥가 특유의 더러움이었다.

골목이 좁기 때문에 차량으로 이동이 어려워 도보 이동을 하고 있는데 역시 기분이 좋지 않다.

"놈들이 나를 실험하고 싶은가 보네요?"

어느새 푸근하기만 하던 호석의 기도가 날카롭게 변했다. 그 역시 지금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

"감히, 말입니다. 회장님."

나는 부드럽게 입가에 호선을 띄며 편안하게 유흥가를 구경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이니 관광이나 하는구나 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짝입니다 회장님."

김장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자 호석이 뒤쪽으로 손짓했다. 두명의 PMC대원이 허름한 대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고 이어서 호석, 그리고 나. 내 뒤로 김장원과 독거미, 다른 PMC대원들이 속속들이 그곳으로 입장했다.

겉보기와 달리 안쪽은 제법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해 놓았다.

아마도 카지노에서 돈 꽤나 딴 놈들을 데려와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내놓는 일종의 VIP클럽 같아 보였다. 잔잔한 음악과 뒤섞인 남녀의 옷들이 하나같이 고가인것만 보더라도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된다 합니다."

호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김장원이 덩치에게 다가가 중국말로 뭐라뭐라 얘기를 하자 그가 우리를 안내했다.

철컥.

놈이 안내한 곳의 문을 여니 내부가 훤히 드러나는데, 감탄이 터져나올만큼 고급진 인테리어였다.

"이야, 수영장도 있네?"

약 60평형 정도의 대형 룸에는 욕실, 화장실, 커다란 침대들과 온수풀까지. 개인 DJ부스까지 있으니 거참 대단하다 싶었다.

바깥에서 본 건물이 이정도 규모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여간 돈 많은 놈들은 이상하게 은밀한 것들을 좋아한다.

"당신이 천우진이야?"

머리가 히끗한 사내가 대뜸 중국말로 질문했다.

"어."

나 역시 가볍게 대답했다.

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왜? 반말해서 기분 나빠?"

엄연히 중국말도 연장자에게 하는 말이 있다.

그러나 상대가 먼저 건방지게 나오니, 나 역시 그를 대우 해 줄 필요는 없을 터.

"하, 빵쯔 새끼가 간덩이가 부었군, 여기가 어딘지 몰라?"

노골적인 무시.

인종차별적 발언.

씨익,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신사적으로 얘기하려 했는데, 뭐 그럴필요가 있나 싶었다. 내가 이곳으로 발걸음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끗 독거미를 바라보았다.

"저 놈들 서류좀 줄래요?"

"네, 회장님."

커다란 명품 핸드백에서 서류뭉치를 꺼내는 독거미.

인신매매.

고리대금.

마약판매.

개미굴까지.

"이건 뭐,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놈들이네."

돈이 되면 무엇이든이 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다. 단어만 들었을때는 단순하게 나쁜 짓을 하는구나 싶겠지만, PMC 정보부가 조사한 바로는 어마어마하게 나쁜짓거리를 일삼는 놈들이었다.

괴담도 있잖은가?

신혼여행 온 부부가 탄 택시에, 택시기사가 차가 이상하다며 남편에게 차를 밀어달라고 하고, 부인이 탑승한 택시는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것.

서류뭉치를 다시 독거미에게 주고는 머리가 히끗한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들 세상에 지워도, 아무도 모르겠다 야. 관심도 없고."

"뭐라는거야 이 빵쯔 새끼가."

한국말이라 못 알아 들은 모양.

나는 친절하게 입을 벌려 중국말을 해 주었다.

"짱깨, 네들 내일 해는 못 본다고."

척.

호석에게 손을 내미니 눈치껏 허리춤에 숨겨놓았던 군용대검을 내 손에 올려준다.

손잡이가 손아귀에 잡히자마자 그대로 머리가 히끗한 놈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런 미친! 다 죽여! 저 빵쯔 새끼들......"

푸욱.

"빵쯔, 빵쯔, 시끄럽네."

그대로 목에 박혀있던 칼을 뽑으니 놈이 부르르 경련을 떨며 풀장을 붉은색으로 물들이고는 쓰러진다.

다급하게 품에서 각자의 무기를 꺼내는 중국놈들이 보였다.

PMC대원들은 무표정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명령을 기다리는 것.

"입은 하나면 될 것 같네요, 이 놈으로 하죠."

내가 들고 있는 군용대검의 끝에, 양쪽으로 여자를 품고 있던 젊은 놈 하나가 부르르 몸을 떤다.

"예, 회장님."

호석의 대답과 함께, PMC대원들이 그리고 독거미와 김장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푹, 픽.

날카로운 물체가 인간의 여린 피부를 파고드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린다.

"윽."

"커헉."

"끄읍."

고통에찬 신음들 역시 함께였다.

찰박, 찰박.

무릎 높이의 풀장을 가로질러 풀장안에 소파를 묻어 놓고 그 안에서 발개벗고 있는 젊은 놈에게 다가갔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여인들은 나를 두 눈으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안쓰럽게 몸을 떨고 있었다.

칼을 흔들자 내 제스쳐를 알아들은 여인들이 옷을 걸칠 생각도 하지 않고 풀장을 벗어나 저기 어딘가의 벽쪽으로 파다닥 뛰어갔다.

꿀꺽.

크게 침을 삼킨 놈 앞에 차려진 술상을 발로 대충 치웠다.

풍덩, 풍덩, 풍덩.

테이블위에 올려진 술병이나 안주따위들이 마구 풀장위에 떨어졌다.

털썩.

놈을 마주보고 앉아 물었다.

"이름."

"자, 장위."

"뭐 하는 놈이냐?"

"마카오 행정장관의 아들 장위요."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그냥 제 아비의 권력을 등에 업은 한량이란 소리를 그럴듯하게 토해내고 있었다.

내가 웃으니 놈의 얼굴에 안도가 피어오른다.

나는 칼 끝으로, 머리가 히끗한 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수영하고 있는 놈은 누구냐?"

"수, 수영... 커험, 흑사회 마카오 지부장 청웡촌이오."

"아, 쟤가 내가 필요한 입이었네, 별로 필요없는 입을 살려놨네."

놈이 눈을 부릅뜬다.

이내 놈이 앉아있는 부분에서부터 누런색으로 염색되는 수영장의 물.

찰박.

얼른 다리를 들어 올렸다.

"아이."

불쑥 올라온 짜증.

"사, 살려주십시오, 무엇이든! 무엇이든 말씀드리겠소!"

"일어나."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장위라는 놈.

"등."

"예?"

"업으라고, 더러워서 여기 못 있겠으니까."

"아, 예."

놈의 등에 업혀서 풀장을 나왔다.

"뭐든지 얘기하겠다?"

"예, 질문만 해 주십시오! 성실하게 대답하겠습니다."

"흑사회인지 뭔지 하는 짱깨들 대가리는 어디서 만날 수 있지?"

"제가 전화 한통만 하면 바로 달려올겁니다."

"그래?"

"예!"

"그럼 불러."

"예! 바로 부르겠습니다."

풀장에서 나온 놈이 저기 테이블 어딘가에 있는 전화를 들어올린다.

귓가에 전화기를 가져가는 놈의 몸뚱이에서 뭉게뭉게 붉은색 기운이 흘러나온다.

저벅저벅.

놈에게 다가가 망설임 없이 허벅지를 찔렀다.

푸욱.

"끄읍, 끄아아아악."

왜 자신을 찔렀냐는 듯 고통에찬 동그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장위.

"그냥."

욕이라도 한바탕 내뱉고 싶은 모양이지만,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에 찬 눈으로 바쁘게 전화를 한다.

놈이 수작을 부리는 걸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여유롭게 독거미가 내미는 수트를 받아 들었다.

장내는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고, 나는 편안하게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었다.

장위는 작은 소리에도 계속 출입구를 바라보며 제 허벅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애쓴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장위의 얼굴에 화색이 띈다.

"여기다! 여기야! 여기라고!"

쩔그럭.

다 마신 위스키 잔을 내려놓고 나 역시 출입구 쪽을 살폈다. 한 눈에봐도 '조폭입니다.'하는 놈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그 뒤로 정치인으로 보이는 놈과 공안으로 보이는 작자들도 들어온다.

"이야, 대놓고 유착관계임을 드러내네."

그들의 당당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들, 내 아들!"

장위에게 달려온 늙은이가 이 마카오의 대가리인 모양이다.

"네 이놈! 감히 내 아들에게 손을 대?"

도무지 중국 정치인 놈들은 뭐 하는 놈들인지 모르겠다. 생각이라는 게 없을까?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인다는 건 어딘가 믿을 구석이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진짜 모르는 것일까?

철컥, 철컥.

공안들이 권총을 장전해 우리 일행을 조준한다.

나는 양손을 들어올리고 천천히 한 손을 품에 넣었다가 휴대폰을 꺼내어 그들이 잘보이게 한 번 흔들어주고는 액정을 터치해 다이얼을 눌렀다.

"이게 SKY 터치폰이라는 건데, 당신들도 기회 되면 사 봐."

"미친놈이 이 와중에 헛소리를 하는구나!"

기세등등한 마카오 행정장관.

-전화 받았소이다.

"아, 주석. 바빴습니까?"

-커험, 아니오... 그대의 전화는 받아야지.

"아하, 생각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아니외다. 하실 말씀을 하시오.

"아,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행정장관이 '흥'하고 콧방귀를 뀐다.

내가 '주석'이라 말했는데 그것을 허세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휴가 차 마카오에 들렸는데, 이곳 치안이 영, 엉망이군요, 다짜고짜 흑사회라는 놈들이 달려들지 뭡니까."

-크음... 대국의 수치같은 놈들이외다... 내가 처리 해 주겠소.

"그렇습니까? 마침 여기 마카오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이란 놈도 왔습니다. 그런데 공안을 데리고 와서는 흑사회놈들과 함께 내게 총구를 들이미는군요."

-뭐요? 그것이 사실이란 말이오?"

"거짓말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런 자라 같은 작자가! 바꿔주실 수 있겠소?

나는 웃으며 놈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흥, 그 전화가 주석 각하이시다?"

"받아 봐."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전화를 받는 놈.

"감히 대국의 천자를 사칭하는가!"

전화를 들자마자 버럭 호통을 치는 놈.

-야이 멍청한 자라 새끼야! 어디서 언성을 높혀!

장저민이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여기까지 수화음이 들렸다.

이내 서서히 사색이 되는 마카오 행정장관의 얼굴.

안고 있던 제 아들을 옆으로 밀치고는 스르륵 무릎을 꿇고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전화기를 받든다.

"예, 예, 각하. 예, 예, 알겠습니다. 오늘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예!"

내게 무릎으로 기어와 전화기를 건네는 놈.

"예, 주석. 전화받았습니다."

-미안하외다 천 회장, 이 장모가 아랫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덕함을 용서하시오.

"아닙니다. 여기 일은 잘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또, 좋은날 뵙기를 바라오.

글쎄, 장저민과 다시 만날날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때는 장저민이 국가 주석이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전화를 품에 넣고 가만히 벌벌 떨며 눈치를 살피는 행정장관을 바라보았다.

"저기 말이야."

"예!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나에 대해서 장저민에게 설명을 들은 모양.

"내가 마카오에서 사업을 좀 하고 싶은데."

"주석 각하께서, SKY그룹의 진출은 언제나 환영하라는 언질이 있으셨습니다."

"그랬어?"

"예! 회장님."

"근데 네 아들이 흑사회랑 붙어 먹고 나 방해 하더라?"

철썩, 철썩.

허벅지에서 피를 흘리는 아들놈의 뺨을 올려부치는 행정장관.

"에헤이, 애 잡겠다. 애 잡겠어."

"크흠,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확실히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예! 남아일언중천금, 추후에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제 목을 취하시지요."

"일 잘하네, 주석께 언제 한 번 얘기를 해야겠어."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고개를 들어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흑사회 놈들을 바라보았다.

"쟤들이 흑사회 대가리야?"

"예! 12인의 위원회 위원들입니다."

"쟤네가 나한테 복수한다고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행정장관이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저 깡패새끼들 체포 해!"

"자, 장관님!"

툭툭,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말했다.

"여기 삼합회인가? 그런 애들도 있다며?"

"처, 처리하겠습니다."

"확실해?"

"제 숨이 다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기대해도 되지?"

"예! 회장님."

"그래, 그럼 여기 정리 부탁하고?"

"살펴가십시오."

< 제 30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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