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07화. >
말을 잃고 볼살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장저민을 바라보았다.
"지금 전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중국의 현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보고 있죠, 누구보다 이런일에 관심이 많은건 기업인들인 법이죠."
"......"
"후진다오가 어떻게 나타났냐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후우..."
장저민이 풀썩 자리에 앉았다.
별로 길게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제 놈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아는 모양.
"당내 지도부는 어떻습니까?"
"혼란스럽소... 그대와 함께 일을 하며 입지가 넓어졌었으나... 후진다오의 등장과 그리고, 모종의 일로 현재 우리 공화국은 돈이 없소."
"애초부터 돈이 없던게 문제가 되었던 것 아닙니까? 그것때문에 SKY가 중국시장에 진출한거고요."
"그... 후, 그런일이 있소."
국가운영비가 모조리 털린 상황.
당연히 장저민의 입장이 난처할테다. 거기에다 왕충헌이 모아놓았던 국가운영비를 대신 충당할 재물까지 싹 쓸어 왔으니 아주 난감한 상황일터.
"그래서, 내게 연락을 했던 이유는 뭡니까?"
몰라서 묻냐는 듯 날 바라보는 장저민.
"후진다오의 얘기라면 더 할 얘기가 없으니, 돌아가시죠."
"커험."
불편하다는 듯 기침을 내뱉고는 입을 연다.
"커험... 돈을 좀 유통하고 싶소."
"돈을 유통한다?"
"그대의 조부도... 그리고 그대도 과거 고리업을 하지 않았소?"
"아하."
미친놈이다.
감히 사채를 쓰겠다고 말하다니, 그것도 국가적 단위로.
"해서, 사채를 쓰시겠다?"
"후우... 고사리손이라도 빌려야 할 시기니 별 수 있겠소?"
"얼마를 말씀하십니까?"
"한화 5조."
"파핫."
웃음이 튀어나왔다.
5조라니.
저렇게 큰 금액을 사채로 쓰는 사람이 과연 있긴 한가 싶었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크흠..."
"만약 빌린다면 국가의 이름입니까, 아니면 장저민 주석, 당신의 이름입니까?"
"국가의 이름으로 빌리겠소."
"중국의 이름으로 빌리겠다?"
"그렇소."
갈때까지 갔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현 장저민이었다.
저 자가 저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5조라... 못 빌려드릴 것도 없지요."
장저민이 눈을 부릅 떴다.
"현금으로 5조가 있다는 얘기요?"
"20개쯤 있습니다."
"2, 20조?"
"뭐, 그건 별개고. 하여튼 5조면 당장 급한불은 끈다는 얘깁니까?"
"그렇소... 외화는 다른 거니까."
"그 말씀은 위안화를 찍어내겠다는 얘기로 들리는군요."
"우선 당장, 국무원들의 봉급이 막혔으니."
말 그대로 급한 불만 끄는 행위였다.
국고에 외화를 채우고, 그 외화를 믿고 위안화를 크게 늘린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화폐의 가치가 미친년 널 뛰듯이 널 뛸테다. 그러면 그때야 말로 정말 심각한 경제파탄이 오는 것이었다.
"돈 벌 구석이 있는데 이거 내주지 않기가 어렵군요."
"승낙으로 이해해도 되겠소?"
"사채는, 그러니까 고리는 이자가 비쌉니다. 이해하십니까?"
"후우. 별 수 있겠소?"
"한국의 현 법정 최고이자는 연 66퍼센트입니다."
눈을 부릅 뜨는 장저민.
"오, 오할이 넘는단 말이오?"
"중국은 제한선도 없지 않습니까?"
"커험."
"주석과 내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어떻게 최고 이자를 받겠습니까? 딱 절반, 오할만 받지요."
1년만 지나도 원금 5조에 이자 2조5천억이라는 얘기다. 이런 좋은 캐시카우가 절로 내게 온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후우... 1년안에 청산하리다."
글쎄, 그게 장저민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호석을 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호석.
몇분 지나지 않아 계약서를 가지고 온다.
오히려 이쪽이 호석의 전문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몹시 신속한 일 처리였다.
"빠르군."
"뭐, 전문이 아닙니까?"
장저민이 서류를 읽다가 팍, 인상을 찌푸렸다.
"나 하나의 서명으로 부족하다는 말이오?"
"우리도 국가에게 돈을 빌려주기는 처음이라. 여러곳에서 보증을 받아야겠습니다. 나중에 나몰라라 강짜라도 부리면 어쩌겠습니까?"
"허허."
"중국도 그렇겠지만 우리 한국에서, 감히 천가의 돈을 떼 먹고, 편히 사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보증서류와 함께 우리가 드린 계약서에 서명을 해 오시길."
내 입에서 떨어진 축객령.
장저민이 두 손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약서에 서명이 끝나면... 바로 입금되는 것이오?"
"은행 네트워크가 허락하는 선에서 반드시."
"후우... 하루의 말미를 주시오."
"그러시죠."
장저민이 계약서를 들고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 바쁘게 돌아다니며 당 지도부에게 저 서류를 내밀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 돼지가 남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조를걸 생각하니 벌써 웃긴데요?"
호석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놈이 동영상을 봤으니, 후진다오를 공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 거의 10할의 확률로 그럴테죠."
"대원들을 조금 더 붙일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만 않으면 됩니다. 놈들이 후진다오를 체포하면, 그때야 말로 완벽한 외통수가 될테니까요."
"어떻게든 암살하려 하겠군요."
"예, 그럴겁니다."
"정예 대원들을 붙이겠습니다."
빈 컵을 흔들며 저 멀리 밝게 웃고 있는 바텐더에게 보여주자 고개를 끄덕인다. 열심히 이것 저것 음료를 섞으며 칵테일을 제조하는 그녀에게서 다시 호석에게 시선을 옮겨 말했다.
"김은정 불러오시면 좋겠네요."
"이 곳으로 말씀이십니까?"
"예, 내일 장저민이 올테니까, 김은정도 같이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
오전 10시.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호석이 곁에 다가왔다.
"회장님."
"예."
"식사중에 죄송합니다. 김은정이 왔습니다."
"일찍도 왔네요."
"뭐, 가깝지 않습니까?"
"식사중이니까 기다리라고 하세요."
호석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사라졌다.
천천히 천천히, 시리얼 한알 한알을 음미하며 식사하기를 한 시간.
자리에서 일어나 김은정이 기다리고 있을 미팅룸에 들어갔다.
"일찍 왔습니다? 두 분?"
그곳엔 장저민 역시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는 매우 불만인 눈으로 김은정을 힐끗 거리고 있었다.
"커험, 천 회장. 나는 우리사이의 일이 바깥에 얘기가 들리길 원치 않았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마 여기, 북한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김은정씨도 같은 생각일겁니다."
눈을 크게 뜬 둘.
한 명은 김은정이 북한의 통치자라는 말에, 그리고 한 명은 그것을 외부에 알렸기 때문에.
"그게 무슨!"
"천우진 동무! 이것은 약속이 다르지 않소!"
난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여기 장저민 주석은 국가운영비를 홀라당 날려 먹으시고 내게 돈을 빌리려는 자리입니다."
한국말로 했기에 김은정만 내 말을 알아 들었다.
김은정이 장저민을 보며 중국말로 말했다.
"중국이 국가운영비를 날려 먹었단 말입니까?"
"커험, 서로의 비밀을 공유 했으니... 함구 하도록 하세나."
"쯧, 그러죠."
둘의 이해관계가 조금은 맞는 모양이다.
"우리 둘은 같은 자리에 부른 이유가 무엇이요?"
김은정의 질문에 호석이 그들의 앞에 탁, 탁. 두 개의 서류를 내려 놓는다.
"유라시아 횡단 철도?"
김은정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장저민이야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니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내가 사업을 하나 진행할까 하는데, 그 사업에 여기계신 두분의 국가정상의 동의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지금 우리 공화국은, 외국인이 발을 디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공화국도 마찬가지오."
호로롭 따뜻한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둘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잔뜩 불만들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자,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면 할 수록 둘 모두에게, 그리고 나까지. 우리 셋 모두 이익입니다."
"우리 북조선인민공화국은 현재, 외세의 침입을 받아 들일 수 없소."
"후진다오놈과 당내 지도부가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황인데, 이런 시국에 국가적 사업은 위험성이 높소."
그러니까 예쁜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이지만 결국은 제 놈들 자리 지키기 급급하니, 다른데 신경쓸 시간이 없다는 소리였다.
하여간 돼지 새끼들은 욕심만 가득하다.
돼지에게 비유하는게 미안 할 정도로.
"자, 먼저 중국을 봅시다."
장저민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장 내게 5조원을 빌려간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급한 불일 뿐이잖습니까?"
"커험."
"위안화를 찍어낸다 했지만, 그 위안화를 지급할 명분은? 어차피 일자리가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을 계속 못 살게 될겁니다. 결국 위안화는 원래 가진 놈들에게만 돌아가겠죠."
"흐음."
"그리고, 지금 후진다오의 주축 세력은 '없는자들'아닙니까? 그 없는 자들에게 일 자리를 제공하고, 일을 한 사람들은 노동의 대가를 얻어간다. 아주 기본적인 경제활동이라는 얘기죠."
장저민이 고심에 잠긴다.
내 얘기에 문제 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좋으면 좋았지 문제 될 소지는 전혀 없었다.
물론, 내가 조건을 어떻게 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본질은, 중국이 국가적 입장에서 손실을 보겠지만, 결국 중국 사람들은 이득을 보는게 맞으니까.
"위안화를 마구 찍어내어 뿌릴 명분이 있습니까? 지금 유라시아 횡단 철도 건설만큼, 확실한 명분은 없는 것 같은데요?"
"커험..."
슥, 고개를 돌려 김은정을 바라보았다.
"이제 북한을 얘기하자면, 현재 김은정씨가 가진 세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만."
"크음."
"현재 자리를 공고히 굳힐려면 그런 당근만 주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나 욕심에 눈이 먼 군부라도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당신은 그 자릴 지킬 힘이 있습니까?"
"감히, 내게 반기를 드는 반동분자는 없을 것이오."
"사람 일 모르는 법이죠, 누가 당신이 그 어린 나이에 북한의 정상이 되리라 생각했겠습니까?"
"유라시아 횡단철도 건설에 우리 공화국이 뛰어들면 뭐가 다르오?"
홍차를 호로록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김은정씨가 그렇게 좋아하는 인민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겁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현재 북한인들도 굶주렸을테니까."
"일자리와 식사?"
"장기적으로는 해외 시장 개척이 되는 것이겠죠."
"오히려 공화국이 손해를 보는 것 아님메?"
"뭣 보다. 당신이 앉은 그 자리. 그 자리를 여기 장저민 주석과 내가 지켜줄겁니다."
장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북한이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에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다.
장저민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어떻게든 동참하게 만들어야 했다.
"우리 국가안전부가, 굳이 백두산을 넘을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협박.
장저민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네가 승낙하지 않으면 제 놈이 억지로라도 승낙하게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크게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내 말에 그들이 내게 다시 집중했다.
그게 무엇이냐는 듯 날 빤히 바라보는 둘.
"당신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
"뭐요?"
"...까드득."
김은정은 이를 꽉 물고 장저민은 도끼눈을 뜬다.
"돈이 필요 없나 봅니다?"
장저민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렵게 앉은 자리, 다시 내려오고 싶습니까?"
김은정 역시 대답하지 못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안 그래요?"
툭, 툭.
유라시아 횡단철도에 관한 합의서와 계약서가 둘 앞에 놓여졌다.
"서명하세요, 조건은 후하게 주었으니까."
장저민이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손을 덜덜 떨며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김은정 역시 같은 수순을 밟는다.
스슥, 슥.
스스슥.
둘이 서명을 했다.
나는 인주를 쓰윽 밀어서는 말했다.
"국가 도장, 지장까지 찍읍시다."
< 제 30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