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06화 (306/458)

< 제 306화. >

와인이 몇 순배 돌았을 때.

부쉬가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우진.”

“예.”

“요즘 북한이 심상치 않게 움직인다는 정보가 있습니다만··· 혹, 한국과 관련 있습니까?”

김은정이 ‘숙청’을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을테고, 위성으로 항시 북한을 감시하는 미국 입장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할 법도 했다.

“글쎄요? 무슨일 있답니까?”

“흐음··· 북한의 넘버 원이 통,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 2주 전부터.”

제법 정확한 정보.

역시 천조국의 정보력은 무시 할 수 있는게 못 되었다. 공개적으로 말을 하진 않겠지만 아마 중국에도 감시의 눈을 붙여 놓았을 테다.

중국만 그렇겠는가? 러시아도 미국의 감시망을 피해 갈 순 없을터. 어쩌면 일본도 감시하고 있을테지.

“혹, 그대와 관련이 있다면 내가 따로 언질을 하기 위해 물었습니다.”

나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얘기.

“하하, 걱정해주시니 이거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나의 영원한 파트너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얼마전 제법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부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이제 대선이 코 앞이다 이거겠지.

“음, 아직 별다른 얘기는 없어서 모르나, 혹. 파트너의 힘이 필요할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요, 내게 우진의 전화는 항상 즐거울테니.”

나는 화제를 바꾸었다.

“중국도 요즘 시끄럽다는데 알고 계십니까?”

부쉬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실종됐다 알려진 후진다오 부주석이 바쁘게 움직인다지요?”

“덕분에 장저민이 아주 곤란한 모양입니다.”

부쉬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때, 우진이 내게 준 무기 말입니다. 그걸 쓸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한국에 계신 그대의 조부가 아무런 언질이 없으니.”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내가 부쉬에게 주었다는 무기. 정확히는 할아버지를 통해 전달했던 스파이 명단이 들어있는 USB를 말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와 미국에게 그 USB를 주며 할아버지는 아직은 사용하지 말아달라 권고하셨다.

푸틴도 부쉬도 흔쾌히 수락했다.

감히 자신들의 나라에 사람을 심어 놓은걸 참기 어려웠던 모양.

그런 자신들도 중국에 분명 스파이를 심어 놓았을 게 불보듯 뻔하다. 특히 러시아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을 터.

“곧, 적당한 시기가 올 겁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그렇습니까? 나라를 좀 먹는 벌레들을 하루 빨리 처리하고 싶은데··· 가만히 놔 두며 월급을 주고 있자니 배알이 꼴려서 말입니다.”

부쉬의 진담 반, 농담 반에 테이블에 웃음이 흘른다.

부쉬쯤 되는 자리에 앉으면 그런 푼돈에는 연연하지 않는 법이었다. 부자들이 변덕을 부리면 백화점이나 축구 구단을 통째로 사는 것과 같은 이치.

“후진다오가 시끄럽다고 하니 곧 좋은 때가 있겠지요.”

“알겠습니다. 따로 연락을 기다리죠.”

***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시작된 타도 장저민 시위가 어느새 불길 번지듯 번저 칭다오 시까지 번졌다.

조금만 더 시위가 번지면 베이징 까지 닿을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 후진다오는 얼굴 가득 희열에 담긴 모습으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천자를 사칭하는 장저민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인민들은 굶어 죽는데, 제 잇속을 챙기는 놈을 어찌 천자라 할 수 있겠더냐! 견자 장저민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주석궁의 장저민을 끌어내고, 굶어죽는 인민들을 살려내자!”

““살려내자! 살려내자!””

시위가 어찌나 거셌는지, 중국 방송에 따로 실리지는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중국 전체 지방에 빠르게 소문이 나고 있었다.

오죽하면 후진다오가 없는 곳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자체 시위대가 머리에 중공기를 두르고는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부르르릉.

장갑차 수대와 군용트럭 수대가 후진다오가 점령하다 시피한 도로위를 거세게 질주했다.

당황한 시위대가 우왕자왕 하는 사이.

타다당!

군용트럭 위에 탑승하고 있던 군인 하나가 허공에 총탄을 갈겼다.

순식간에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눈치를 살핀다.

-더 이상의 반역 행위를 그만두고 해체하라.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후진다오가 앞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양팔을 벌리고 마주 달려오는 장갑차 앞에 양팔을 쫙 벌리고 외쳤다.

“군자는! 폭력 앞에 뜻을 굽히지 않는다!”

웅성웅성.

시위대가 후진다오의 용기에 감탄한듯 눈을 빛낸다.

“천자를 사칭하는 견자 장저민은 물러나라!”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반역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은 즉시 단체를 해체하고 돌아가라!

타다당.

다시 한 번 허공에 총탄을 쏟아내는 군인들.

“너희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 총탄은! 굶주린 인민들에게 줄 만두보다 더 비싸다 이놈들아! 총탄을 아껴 인민들을 살려내라!”

절규.

후진다오는 절규에 가까운 호통을 내뱉고 있었다.

타다당.

다시 한번 허공에 총을 쏜 군인들.

그런데 어째서인지 총구는 후진다오를 향하지도 않았건만, 후진다오가 어깨와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뒤로 풀썩 쓰러졌다.

“노, 놈들이 부주석을 쐈다!”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불처럼 시위대를 잠식했다.

“이 자라 같은 놈들이!”

“저 놈들이다! 저놈들이 견자 장저민의 명령으로 후진다오 부주석을 쐈다!”

군인들이 잔뜩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어떤 새끼야! 어떤 놈이 쐈어!”

군관 하나가 미친듯 소리를 쳐 보지만 그 누구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아무도 후진다오를 조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후진다오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르륵.

그의 팔을 타고 흐르는 피와, 누런 삼베옷이 붉게,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인민들이여! 폭력에 맞서 같은 폭력을 쓰지 마라! 우리는 견자 장저민과 다른 사람들이다! 저 인민군들 역시 우리의 동포요! 우리의 인민들임을 잊지 마라!”

“아아! 부주석이시여!”

“이럴수가··· 이럴수가! 자신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인민들을 먼저 생각해주다니!”

“저기! 저기 진짜 천자가 있다! 천자는 후진다오 부주석님시다!”

“후진다오 부주석이 천자다!”

“진실된 천자를 우리 공화국의 주석으로 옹립하자!”

““옹립하자! 옹립하자!””

후진다오는 여한이 없다는 얼굴로 털썩, 무릎을 꿇더니 이네 얼굴부터 도로 위에 처박으며 쓰러졌다.

시위대가 얼른 달려가 그를 부축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조용히 캠코더에 담고 있던 사내들이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 처럼, 자연스럽게 소란을 틈타 사라졌다.

***

아이티와 미국에서.

온전히 루시와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나는 며칠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자유를 써야 할 곳은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중국 베이징의 높다란 SKY빌딩의 최상층.

언제나 SKY의 건물들 최상층은 ‘공실’이다.

보통은 다른 곳에서 연수를 온 직원들이나. 연회를 위해 마련해 놓는 공간이지만, 유사시. 그러니까 내가 방문하는 날은 ‘나의 숙소’가 되게끔 만들어 놓은 구조였다.

세상 어느 곳보다.

나에게는 SKY의 건물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원한 것이라기보다는 호석과 철웅의 결정에 따른 것 뿐이다. 그들이 내 경호 담당이니까.

호석이 싱글벙글 웃으며 내가 사랑하는 피나콜라다와 함께 스윽, 캠코더 네대를 쟁반에 받쳐 가져왔다.

“특이한 조합이네요? 피나콜라다에 안주로 캠코더?”

별로 웃긴 농담은 아니었는지 호석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는 쟁반을 내려 놓았다.

“거, 대표님 요즘 점점 삭막해지십니다?”

“마누라가 임신 6개월차입니다.”

“오케이, 인정.”

“감사합니다.”

피나콜라다를 한모금 쪽 빨고는 캠코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원을 켜고 저장된 동영상을 재생시키니 아주 작은 화면에 한 사내가 장갑차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는게 보였다.

“오, 얘가 후진다오에요?”

“예, 그렇습니다.”

“어이쿠, 우리 후진다오 일 열심히하네.”

“하하하, 패기가 좋습니다.”

캠코더 동영상에서 작은 소리로 후진다오가 고함치는게 들렸다. 그 내용이 제법인지라 나도 모르게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야, 누가 정치인 출신 아니랄까 봐 혓바닥이 살아 있네요.”

“회장님께서 의도하신대로 나왔습니까?”

“예, 이정도면 아주 훌륭하네요. 중국에서 진행된 비폭력 시위. 세상이 집중할 만 하잖아요?”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표정은 좋지 않은 호석.

“외신들이 뭐라 떠들던, 결국 중요한 것은 중국 자국내의 여론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언론을 통제할테니 일반인들은 모른다?”

“예, 회장님.”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얼마나 되죠?”

“회장님이 진출시킨 SKY통신의 여파로, 작년 10.3퍼센트에서 6포인트 상승한 16.3퍼센트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의 중국보다 훨씬 진보된 상황이다.

“인터넷 제재 수준은요?”

“아직 인터넷의 위험도에 대하여 잘 모르는 중국 당 지도부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멍청하다고 전 세계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네요, 민주주의도 아닌데 인터넷을 통제하지 않는다니.”

피식 웃는 호석.

이제야 내 뜻을 눈치 챈 모양.

“마이튜브 중국 서버에 업로드 하겠습니다.”

이제 척하면 척이다.

“예, 당연히 언론사에도 뿌리시고, 외신들에도 뿌리시고, 마이튜브 글로벌 서버에도 뿌리셔야겠죠?”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현 중국의 실태를 정확하게 보여주세요, 아주 적나라하게.”

“예, 회장님.”

대충 준비를 끝마쳤다.

“자, 그럼. 이제 어디 장저민 그 돼지새끼의 똥 씹은 얼굴을 구경해 봅시다.”

호석이 시계를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아직 도착까지 약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더 좋네요, 동영상 업로드 할 시간이 필요할테니.”

20분 뒤.

장저민은 어딜가나 일찍 다니는 놈이 아닌데, 그런 놈이 무려 10분이나 일찍 SKY빌딩에 도착했다.

“하, 이 곳에 이런곳이 있었군.”

여유넘치는 걸음걸이를 보이고 있으나. 그의 온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붉은색 연기는 그에게 지금 한 줌의 여유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게 만든다.

항상 노란색에서 주황색 연기를 내뿜던 장저민이 이제는 완전한 붉은색의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 나면 당장이라도 내 머리에 총을 들이밀 것 처럼.

“오셨습니까?”

“천 회장, 어째서 연락이 되지 않소?”

“앉아서 주석의 전화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뭐요?”

“나도 바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장저민이 고개를 모로 꺾었다.

놈이 느끼기에 내 말투가 심히 바뀌었음을 눈치 챘을 터. 그러나 지금 그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건 저 돼지 놈도 잘 알고 있기에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어째서 후진다오가 살아 있는 것이오?”

“글쎄요?”

“글쎄요라니! 그대가 내게 후진다오를 처리해주겠다 하지 않았소?”

“쥐도새도 모르게 숨은 놈을 찾는 재주까지는 없습니다만.”

“그럼 그렇게 얘기를 했어야지!”

“언제 내가 후진다오의 신변을 확보했다 얘기한적은 있습니까? 여태껏 백방으로 찾고 다녔단 얘깁니다.”

“하! 그걸 말이라고!”

쾅.

다 마신 피나콜라다 잔을 테이블 위에 강하게 내리쳤다. 유리잔이 깨지며 유리가 내 손아귀를 찌르고 들어온다.

“이봐.”

“뭐, 뭣?”

“내가 당신 아랫사람으로 보여? 지금 하는 꼬라지가 꼭 명령을 내리는 것 같은데, 기분이 뭣 같군 그래.”

“뭐, 뭐라? 천회장 당신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아니오!”

“하, 돼지 새끼.”

장저민이 벌떡 일어나 내게 삿대질을 한다.

“어린 놈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박박 기어서 살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쯧쯧.”

“네 놈이 정녕!”

어느새 곁에 다가온 호석이 노트북 화면을 장저민이 볼 수 있도록 돌려 놓고는 마이튜브에 있는 동영상 하나를 재생한다.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동영상을 확인하는 장저민.

“이, 이게 무슨.”

장저민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한데, 이어질 다른 것들을 접하면 정말 뒷목이라도 잡고 쓰러질까 걱정되었다.

앞으로 준비된 게 많은데 말이다.

< 제 30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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