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03화. >
다 헤진 옷을 입고, 머리에 붉은 중공기를 두른 후진다오가 목이 터저라 외치며 신장위구르 지역의 주요 도시를 누비고 있었다.
"천자를 사칭하는 장저민은 물러나라! 국가 운영비를 빼 돌리고, 굶어죽는 인민을 돌보지 않는 지도자는 필요없다!"
한족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째려보았다.
중국에서 주석을 대놓고 욕하는 것은 한족들을 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구르 자치구라는 특성상, 위구르족들은 후진다오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했다.
"그렇지! 우리가 굶어 죽든지 말든지, 제 놈은 매일 분내에 빠져 산다며?"
"저 치는 누군데 저렇게 용기를 내나? 보기에는 한족 같은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나?"
위구르족 사내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집중했다.
"저 자가 누군데?"
"어허! 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부주석 후진다오가 아니신가!"
"뭐어? 아니 부주석이라는 사람이 저리 남루하게 입고 다닌단 말인가?"
"장저민 그 놈이 자기 사리사욕만 챙긴다는 방증이지! 부주석이란 사람은 저리 남루하고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데, 장저민 그 자를 보시게, TV에서도 포동포동한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겠지!"
주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벌써 북경 밑 주요 도시에는 국무원들의 월봉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장저민은! 국가운영비의 사용처를 투명하게 밝혀라!"
웅성웅성.
워낙 외진곳에 있는 곳이라 수도 근처에서 저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의 동요가 점점 커져갔다. 그 동요는 슬슬, 위구르족들 뿐 아니라 한족에게도 번져가기 시작했다.
"안되겠구만, 부주석께서 저렇게 목숨을 내놓고 우리들을 위해 외치는데, 우리라도 도와야지!"
"그래 도웁시다! 어차피 맞아 죽나, 잡혀 죽나! 굶어 죽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오!"
사람들이 너도나도 집에 들어가 중공기를 머리에 두르고는 후진다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장저민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천자를 사칭하는 무뢰배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신장위구르에서 시작된 장저민 몰아내기 운동은 그렇게 가을바람을 타고 중국 전역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
쾅.
테이블을 내려친 장저민의 눈치를 살피는 보좌관.
엎친데 덮친격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지금 장저민은 업무가 마비된 상태였다.
"후진다오라니! 후진다오라니! 그 치가 어디에 숨어 있다 이제 나타난단 말인가!"
"우선, 공안부에 연락해 후진다오 부주석을 모셔오는 게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모시긴 뭘 모셔! 체포해도 모자랄 판에!"
보좌관은 땀을 뻘뻘 흘렸다.
원래 일선에서 장저민의 저 괄괄한 성격을 받아주던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으니 자신이 대신 받아내고 있었다.
헌데, 죽은 왕충헌을 존경스럽다 생각할 정도로 장저민의 성격은 보통이 아니었다.
며칠전 자신의 부인에게 큰소리를 떵떵 치며 국가 수석 보좌가 될 것이라 어깨를 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자리가 부담되고 있었다.
"천우진 이 개 자라같은 놈!"
"예?"
"커험, 됐고. SKY그룹에 전화 돌려!"
"예? 예!"
보좌관은 어째서 현 상황에서 장저민이 천우진을 찾는지 알 순 없었다.
현재 중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SKY그룹의 오너를 저리 부르다니, 행여나 장저민이 그에게 실수라도 한다면 정말 공화국의 사정이 깜깜해질까 우려가 되었다.
"그..."
"닥치고 전화나 돌려!"
"예, 예. 각하!"
고개를 꾸벅 숙이며 주석실의 인터폰을 들어올린 보좌관.
-네! 전화받았습니다 각하.
"각하께서 SKY그룹의 총수를 찾으신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슬쩍슬쩍 장저민의 얼굴을 살피는 보좌관.
시시각가 더 어둡게, 더 무섭게 변하고 있는 장저민의 표정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보좌... SKY그룹 총수가 휴가를 떠났다 합니다.
"뭐? 어떻게든 연결하라 그래!"
-그렇게 의사를 전했으나 감히... 아무에게도 연락을 받지 않겠다 하였다고...
보좌관이 안절부절 못하며 인터폰을 들고는 눈치를 보자 그의 귀에서 확 수화기를 가로챈 장저민.
"무슨 일이야!"
-가, 각하!
"무슨 일이냐고!"
-현재 SKY그룹의 총수가 휴가중이기에 연락이 불가능하다 합니다.
"내가 장저민이야!"
-따로 지시사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겠다고...
"이익."
쾅, 쾅, 쾅.
인터폰을 수차례 내려처 부숴버린 장저민이 서슬퍼런 눈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공안부와 국가안전부장에게 당장 후진다오 체포해 오라고 해!"
"예? 예! 알겠습니다."
***
아이티 공화국.
다사다난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빈국중 하나였다. 으레 최빈국들이 그렇듯 아이티 역시 현 다양한 국가에게 식민지배를 받았던 순간이 있었다.
동쪽으로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마주하고 있으며 소규모 전투, 쿠데타등이 끊임없이 터지며 안정되지 않은 치안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불문율은 있었다.
봉사 활동을 오는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치안이 나빠도, 아이티의 국민들을 돕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다양한 지원물품을 보내오고, 의료용품을 보내온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들이 봉사단체이니, 아이티 사람들은 그들에게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주저없이 ‘록펠러 재단’을 얘기 할테다. 감히 테러단체라고 부르기도 어설픈 무장단체들이 범접할 수 있는 단체도 아니거니 와,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매년 지원해주고 있으니 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공격할 이유도 없었다.
“이야.”
내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에서 나오자 마자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리브해에 있다더니 확실히 경치하나 끝내주네.”
혼잣말에 루시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치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치안이 좀, 그러니까.”
“태양이랑 별이도 이런 자연의 재미를 느끼면 좋을텐데.”
“에이, 아직은 어리지.”
“그렇겠지?”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경호를 꾸린다고 해도, 역시 내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오는 건 무리가 따른다. 잠시 부모의 품에 떨어져서 며칠은 울어재낄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루시도 나도 가끔은 이런 휴양이 필요하지 싶었다.
“일정만 끝나고 빠르게 돌아가자 루시.”
“응, 벌써 아이들이 눈에 밟혀.”
“우희랑 데비 할아버지가 잘 돌봐주실거야.”
“음~ 그 둘보다는 아산댁 아주머니가 더 믿음직스러운 걸?”
“크큭, 그건 부정 할 수가 없네.”
우리보다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던 호석이 곧, 검은색 세단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 준비 되었습니다 회장님.”
우리가 탑승한 차량의 앞 뒤로 두대씩 커다란 SUV가 자리 잡았다. PMC대원들이 나와 루시를 경호하기 위함.
잘 닦였다 볼 수 없는 도로위는 한산하기만 했다. 지나다니는 차를 본다는게 어색할 정도로 차량 유동이 없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현재 아이티 공화국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경치는 진짜 죽이네.”
나도 루시도 창밖에서 고개를 떼지 못할 정도로 자연이 살아있는 아이티는 아름다웠다.
한 10분쯤 움직였을까? 도로가 제대로 나 있었다면 더욱 빨리 도착했을 거리에, 반가운 얼굴들이 우리를 마중나왔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가장 먼저 내게 인사한 것은 찰리 박이었다.
“오랜만이구만.”
“오느라 고생했어요.”
이어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나를 반기셨다.
장모님 록산나 여사와 루시는 찐한 재회를 하더니 둘이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자들끼리 회포는 알아서 풀어라 하는 듯 보였다.
자연스럽게 나와 장인어른, 그리고 찰리 박과 호석이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뭐 한다고 여기까지 왔나? 바쁠텐데.”
장인어른이 반가우시면서 괜히 아닌척 무뚝뚝하게 말씀하셨다.
“요즘 우리 장인어른 어떻게 계시나~ 하고, 궁금해서 와 봤습니다.”
장인어른이 피식 웃는다.
“입에 침이나 바르시게, 이제 슬슬 움직이자고 옆구리나 찌르러 왔겠지.”
호부 밑에 견자 없다더니.
장인어른은 항상 돈이나 권력과 멀리 떨어저 지내는 삶을 살고 계시지만 핏줄이 어디 가는 건 아닌모양이다. 단박에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맞추셨다.
“티가 많이 났습니까?”
“저기~ 공항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냄새가 나더구만, 귀찮은 냄새.”
“에이~ 꽃 냄새에 가슴이 벌렁거리신 건 아니고요?”
“파핫, 자네 말솜씨가 늘었구만.”
“원래 한 혓바닥 했었습니다.”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장인어른이 피식피식 웃으며 테이블에서 일어나 손수, 음료를 만들어 오신다.
“자~ 얼음일세, 이거 아주 귀한 놈이야. 여기서는 냉동고 보기도 힘들거든.”
“그래요?”
“그래, 먹고 살 음식도 없는 판국에 냉장고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겠는가?”
“잘 마시겠습니다.”
힐끗 고개를 돌려 찰리 박을 바라보았다.
그간 카리브해의 따사로운 햇볕에 많이도 그을렸다.
볼과 코끝이 붉은게 지금도 한창 익어가고 있는 중인가 보다.
“일은 재미 있으셨습니까?”
예의상 던진 질문에 찰리 박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어휴, 말도 마십시오··· 하루라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마를 날이.”
“예?”
“하루만 여기 계셔도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장인어른이 찰리 박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이 친구가 고생이 많았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봉사활동이라는게 참, 그래. 더 돕고 싶고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싶지만 사람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든, 그 사람의 평생을 책임져줄게 아니라면 때로는 모르는 척도 해야 할 줄 알아야 하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그런 말씀.
대충은 알아 들었다.
단순히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한 번 주는게 그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는 일은 아니라는 뭐 그런 뜻인 것 같았다.
아이티가 빈국인 그 원인을 뿌리뽑지 않으면 아이티의 1000만도 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살리기란 요원한 일이라는 말일 터.
“그렇죠, 선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 우리가 돈을 쏟아 붓는다 한 들, 저 썩어빠진 윗대가리들은 국민들에게 풀지 않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이 주먹구구식 운영을 해야하지.”
“막말로 천만명이나 되는 아이티 국민들 모두를 삼시세끼 챙겨 줄 수도 없잖아요?”
“뭐, 그렇지.”
하여간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아이티 국민들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그것 때문에 찰리 박이 마음고생을 했나보다.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사냥꾼 답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도 나이를 먹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맡으신 일은 하셨죠?”
찰리 박이 고개를 끄덕이며 USB여러개를 내밀었다.
“여기 모두 있습니다. 인터넷을 하기 어려워 직접 업로드는 못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죠, 하여간 이제 돌아가시죠 장인어른.”
“명성은 쌓을 대로 쌓았다고 생각하는 겐가?”
“적어도 의원 노릇 하실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하실만한 능력이 되시잖아요?”
찰리 박도 장인어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엇부터 하면 되겠는가.”
“하원은 건너 띄고, 상원부터 하시죠.”
“후··· 이거 시작부터 엘리트 코스구만 그래.”
“에이, 좋으시면서.”
“아니라고는 못하겠구만.”
“이틀 뒤, 복귀하시는 걸로?”
“그래··· 그래야지, 당분간 록산나가 외롭겠구만, 나 없이 봉사활동을 다니려면 말이야.”
“그거야 말로 완벽한 내조가 아니겠습니까? 장인어른의 이미지가 날로 좋아질테니까요.”
장인어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내가 봉사활동을 한 게, 꼭··· 이런 명성 때문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장인어른의 뜻을 곡해 하는 사람도, 그대로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꼭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달라질 게 없겠죠.”
“그렇지.”
이내 장인어른이 확고한 눈을 하고는 날 바라보았다.
“이왕 시작하는 거, 난 반드시 최고의 자리에 앉길 원하네.”
역시 피는 못 속인다.
나의 처가, 대 록펠러 가문의 장자 다운 욕망이었다.
“당연하죠, 누구 장인어른이신데요.”
“좋아, 가 보지.”
< 제 30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