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02화 (302/458)

< 제 302화. >

하루라도 분내를 맞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아난다는 소문이 있는 장저민 답게, 그는 주석궁이 아닌 주석궁 바깥의 사택에서 눈을 떴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눈을 뜨자 마자 날카롭게 외친 장저민.

그도 그럴게 아직은 그가 일어날 시간이 아니었다. 오전 9시가 되어서야 눈을 뜰까말까한 장저민이 시계를 보고 버럭 화를 낸 것.

시간은 막 오전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

"음? 뭐야 너는? 왕가는 어디가고?"

"나,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각하."

수석 보좌가 있음에도 다른 보좌관이 등장한 것에 의아함을 느낀 장저민이 대충 가운을 두르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어디!"

소리를 꿱 지르는 장저민.

보좌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연신 꾸벅거렸다.

사택의 연회장을 벗어나 입구로 향하니 보좌관이 땀을 뻘뻘 흘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저게 무엇인가?"

장저민의 질문에 보좌관이 얼른 대답했다.

"왕 수석 보좌 입니다."

"뭣?"

놀란 장저민이 쭈뼛쭈뼛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인물에게 다가갔다.

"어, 얼굴을 돌려 봐."

제 손에 피가 묻기는 싫은지 다른이를 시켜서 자신에게 잘 보이게 만든 장저민.

"이, 이럴수가."

진짜 왕충헌이 맞으니 매우 놀란 얼굴.

보좌관 하나가 왕충헌의 손에 들려있던 PMP를 장저민에게 건넸다.

"이걸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가 묻은 그 물건을 눈쌀을 찌푸리고 바라보는 장저민.

"이게 뭐하는 기계야?"

"동영상을 재생시키는 기계라 합니다."

"동영상?"

"예, 각하."

"틀어 봐."

제 손에 피가 묻는게 싫은지 보좌관을 시킨 장저민.

현명한 보좌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

"안에 어떤 동영상이 있을지 모르는데 여기서 재생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 아닐지..."

장저민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변에 있던 사용인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장내에 사람이 보좌관과 자신, 그리고 왕충헌만 남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장저민.

보좌관은 알았다는 듯 손을 움직여 PMP속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어헉, 어헉.

-흑흑, 흑흑흑.

여자는 울고, 남자는 욕정에 껄떡인다.

"이, 이게 무슨?"

보좌관은 매우 놀라 PMP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장저민은 얼른 PMP를 맨발로 수 차례 밟아서 부숴버렸다.

씩씩 거리던 장저민이 제 손에 피가 묻던 안 묻던 신경쓰지 않고 왕충헌의 몸뚱이를 거칠게 흔들었다.

"왕 보좌! 왕 보좌!"

서슬퍼런 눈으로 왕충헌의 수하를 바라보는 장저민.

"이 놈 살아있는 거 아니었어?"

"마, 맞습니다."

"의료진부터 불러와!"

"예! 각하."

막 뒤돌아 움직이려는 보좌관을 다시 부르는 장저민.

"이봐."

"예! 말씀하십시오."

"방금 본 것은 머리에서 지우는 게 좋을거야."

"며, 명심하겠습니다."

"빨리 움직여!"

"예!"

장저민은 부서진 PMP와 왕충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PMP에 등장한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셋 뿐이었다.

"아니지, 둘이던가?"

싸늘하게 굳은 장저민이 왕충헌을 쳐다보았다.

분명, PMP에 등장한 소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런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 명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네 놈이 감히... 딴 마음을 품었다?"

현재 장저민의 기분은 알 수 없이 의식을 잃은 왕충헌.

헐레벌떡 의료진과 함께 돌아온 보좌관.

장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왕충헌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기, 저기다. 빨리! 왕 수석 보좌를 살려!"

의료진이 다급하게 달려와 왕충헌을 살피려는 때.

"됐다. 이미 떠났어."

싸늘한 장저민의 말에 보좌관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어, 의료진이 맥박과 호흡을 체크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쯧, 의료진이 도착할때까지 조금만 참지,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갔을꼬."

안타깝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보좌관은 보았다.

장저민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음을.

"국가안전부와 공안부를 불러, 진상 조사를 시작해!"

"예, 각하."

그러나 그 사실을 입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저기 누워있는 왕충헌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장저민은 출근하자 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왕충헌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업무가 거의 마비되다 시피 한 것이다.

"미치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석궁 소파에 뒤통수를 기대는데 노크소리와 함께 국가안전부장과 공안부장이 들어왔다. 눈을 반쯤 뜨고 그들을 확인한 장저민.

"바로 보고해, 한 시가 급하니까."

장저민의 말에 국가안전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왕 수석 보좌의 집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으며, 식솔들은 기절한 상태라 아무것도 모른다 합니다."

"국가안전부에서 보내준 인민군들이 철통같이 경비하는 곳 아니었나?"

"맞습니다. 각하."

팍 인상을 찌푸린 장저민.

"지금 네 놈이 맞다고 말을 할 때야?"

공안부장이 이때다 싶은지 입을 열었다.

"국가안전부 소속 인민군들 역시, 괴한들의 습격에 모두 기절한 상태였습니다."

장저민이 날카롭게 국가안전부장을 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 공안부장을 바라보았다.

"자세하게 얘기해 봐."

"우선, 지난 밤 왕 수석 보좌의 집에 출입했던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샤락, 샤락.

"모두가 국무원 요직을 차지한 인물들이군."

"그렇습니다. 전부 당내 지도부 인사들입니다."

"그래서?"

"기절했던 국가안전부 소속 인민군들의 말에 의하면..."

"짧게 요약해, 자네가 언급 하지 않아도 국가안전부는 면책을 면치 못할테니까."

"예, 각하. 인민군들의 말에 의하면 집에 방문하는 인사들마다 모두 한 보따리씩 뭔가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장저민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마 왕충헌은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움직이고 있었을테니, 그 뇌물들은 모두 자신의 곳간을 채워줄 것이었을 터.

"그러나, 왕 수석 보좌의 집안에 어떤 재물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괴한들이 가져갔다?"

"예, 각하."

"인민군들의 말에 의하면 적은 규모가 아니었을텐데?"

"비밀번호로 잠긴 금고를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습니다. 금고의 규모는 20평에 육박했으니, 그곳을 털었다면 아마 많은 물류이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장저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 물류이동부터 조사를 시작하면 되겠군."

"예! 그렇습니다."

"바로 조사시작하고, 국가안전부장은 물심양면으로 공안부장을 돕도록."

"까득... 예, 각하."

"나가면서 보좌관 불러와."

"예!"

둘이 물러나고 이제 왕충헌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보좌관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당내 회의 소집해."

"예! 각하."

"20분 내로 모이라고 해."

"예!"

탕!

테이블을 때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장저민이 당내 지도부 인사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국가운영비를 털리고 감히 그것을 갖잖은 뇌물로 덮으려고 해! 네 놈들이 제정신이야!"

서슬퍼런 기세를 흩날리는 장저민을 바라보며 어처구니 없어하는 사람들.

"주석, 고정하시고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십시오."

"네 놈들이 전날 밤 왕충헌에게 국가 운영비 절도에 대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을 국가안전부와 공안부가 동시에 확인했다. 이래도 변명의 여지가 남았나?"

지도부 인사들이 똥을 씹은 표정을 하고는 장저민의 눈을 살살 피했다.

국가재정부장 류칭이 장저민에게 말했다.

"그것은 오해십니다. 각하, 왕 수석 보좌를 불러주십시오, 다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쾅!

다시 한번 테이블을 내려친 장저민이 말했다.

"왕 보좌는 오늘 아침, 시체가 되었다."

입을 떡 벌리는 지도부 인사들.

게 중 류칭이 손을 덜덜 떨며 말했다.

"그,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재 조사중에 있으니, 곳 명명백백 밝혀 지겠지."

"맙소사... 허면 재물은... 그의 집에 있던 재물은 어찌 되었습니까?"

고개를 흔드는 장저민.

"그의 집에선 아무런 재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린 류칭.

그것은 다른 당내 지도부 인사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이내 서로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지도부 인사들.

류칭은 빠르게 상념을 털어내고 다급하게 장저민에게 말했다.

"각하, 우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뭐라? 그럼 무엇이 중하다는 것이야!"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성난 민심?"

"현재 국가운영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저 류가가 왕 수석 보좌에게 내민 돈은, 국가 운영비를 일부나마 충당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류칭의 말에 너도나도 '저도 그랬습니다!'하고는 외친다. 유야무야 '뇌물 수수'를 넘기려는 것.

"헌데 그 재물들이 사라졌다면... 당장 국무원에서 일 하고 있는 인민들부터 난리가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

장저민은 미처 그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 말을 잃었다.

"류 부장."

"예, 각하."

"만약... 월봉을 지급하지 못하면 어찌 되겠는가?"

"당장, 국가 경제 기반이 흔들릴 것입니다."

"겨우 월봉 때문에 그렇단 말인가?"

"최소한 여섯 달은 제대로 지급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럼 그 사이 당연히 소비는 위축 될 것이고... 장사치들부터 피해를 봅니다. 이어서 기업들이 피해를 볼 것이고, 나아가 수출입 사업에도 피해가 번질 것입니다."

"미친......"

"그렇게 된다면, 들불처럼 일어난 성난 민심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각하. 조속하게 움직이셔야 합니다!"

장저민은 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

덜컹덜컹.

이 놈에 모랫길은 언제 달려도 뭣 같았다.

엉덩이가 아픈 것은 둘째치고 속이 멀쩡하질 못하다. 진짜 도로라도 닦아야 되나 싶을 정도로 심히 짜증이 났다.

물론, 지반이 무른 모래지대 위에 도로를 닦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참아야 했다. 아직 이 타클라마칸 사막은 '내 것'이 아니니까.

"후우 올 때 마다 확확, 짜증이 올라오는 곳이군요."

"헬기를 마련하겠습니다."

호석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디, 꼭 그랬으면 싶다.

"바로 진행시키세요."

"하하, 예 회장님."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를 걸어 PMC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로 둘러싸인 안 쪽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터가 나왔다. 보통 대원들이 체력단련이나 단체 훈련등을 하는 곳이었다.

물론 이곳을 주로 사용하는 인물은 대원들이 아닌 후진다오였다.

"아아! 아아아아!"

후진다오가 나를 발견하고는 마치 메시아라도 발견한 인물처럼 미친듯이 달려와 털썩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는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호석을 바라 보았다.

어깨를 으쓱이는 호석.

"주군, 주구우우운! 이 사막에, 사막에 봄이 왔습니다."

절이 끝났는지 바닥에서 작은 잡초같은 것을 뽑아 내미는 후진다오.

"호오."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의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확실히 물을 뿌려 댔더니 사막에서도 풀이 자라긴 자라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그가 내민 잡초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드디어, 드디어! 이 후 모가 할 일이 생긴 것이옵니까? 분명, 주군께서 사막에 봄이 오면... 제게 길을 알려주실 것이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사옵니다."

툭, 툭.

나는 후진다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말했다.

"그래, 이제 네 쓰임을 한 번 보자."

후진다오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떤 일이든, 뼈가 가루가 되도록 매진 할 것이옵니다. 주군의 앞날에 영광이 깃들기를!"

"그, 그래. 부탁하마."

"예! 맡겨만 주십시오 주군."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후진다오의 두 눈을 보자니, 확실히 선동질은 잘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중국은 틀렸다."

"그렇사옵니까? 주군께서 불쌍한 인민들에게 광명을 내려주소서."

"어, 그래... 어쨌든, 현재의 중국은 국가운영비를 탕진하고 국무원들에게까지 월봉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가 파탄되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더냐?"

"무지몽매한 장저민이라는 작자가 천자를 흉내내오니, 하늘이 노하신 것이 틀림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네가 나서서 그 무지몽매한 장저민을 밀어 낼 수 있겠더냐?"

"맡겨만 주시옵소서, 이 후모가 앞에 계신 진실된 천자를 몰라보는 무지몽매한 것들에게, 본을 보이겠사옵니다."

다시금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절을 올리는 후진다오.

온 몸에 손발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에 어깨를 털며 말했다.

"그럼, 그리 하라."

"예! 주군!"

< 제 30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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