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98화 (298/458)

< 제 298화. >

한바탕 난리가 났던 김일정의 평양 102호 사택.

내부는 어느새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고 호위총국장 리영철과 김은정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 놓여진 크리스탈 재떨이에는 어느새 담배 꽁초가 산을 쌓고 있었다.

"내레... 어찌해야 좋겠습네까?"

김은정의 말에 호위총국장이 푹 큰 날숨을 뱉었다.

막막하기는 리영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 내레 최소한 입 막음을 해도 나흘이 한계입네다."

"나흘 안에는 처리하란 말입메?"

"최고사령관 동무 뿐만 아니라... 최고인민회의 대부분이 날아간 일입네다. 한 마디로, 각 군의 지도부 빼고는 모두가 날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닙메."

"길티... 내 손으로 직접 머리통에 구멍을 냈으니 잘 알고 있디."

리영철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김은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자고 뒷일도 생각않고 일을 처리 했습네까?"

"... 리재형, 아니... 이재형 동무가 이렇게 갈줄은 몰랐디."

"후우... 하! 생각해보니까, 최고사령관동무..."

말을 하다 눈썹을 꿈틀 거리는 김은정을 확인하고는 목을 가다듬은 리영철이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전 최고사령관동무의 몸뚱이에 구멍을 낸 무뢰배들이 이재형, 그 놈의 동무들이었던 것 같습네다."

"그 뒤에 남조선 대통령의 손자가 있습네다."

"덫에 걸린 겁네다. 우리는."

"어쩌겠소... 아바이 동무가 그대로 있어도 공화국에 미래가 없는데."

"후우... 엿같구만 기래."

김은정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끄고는 말했다.

"한탄은 기만 두고, 해결책이나 말해보시라요."

"우선은... 고용희 여사의 힘을 불러 올 수 밖에 없습네다."

"얼굴도 잘 모를 친인척에게 기대라?"

"별 수 있습네까? 당장 평양성의 주석궁부터 방어 해야디요."

"기러고?"

"현해철 인민무력부장이 죽고, 무주공산이 된 그곳을 가장 먼저 장악해야 함메. 길케 되면, 자연스럽게 핵실험장도 우리께 될 것입네다."

김은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다 리영철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내레 나흘간 아주 바쁘게 움딕여야 겠구만 기래."

리영철은 김은정의 눈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시하고 싶으신 일이 있습네까?"

"내레 바쁘게 움직일 동안... 불안 요소를 제거해주셨으면 좋겠소."

리영철이 고개를 갸웃 거리고는 되물었다.

"불안요소?"

"그 동영상을 못봤습네까?"

"첫째 도련... 봤습네다."

"내 위로는 형님이 하나 더 있디요."

호위총국장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김은정은, 차남 김철정을 죽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혼란이 가득하던 호위총국장 리영철이 짧은 고민끝에 물었다.

"그것이... 최고사령관 동무의 뜻입네까?"

어느새 그의 입에서는 김은정을 북한의 통수권자로 인정하는 호칭이 흘러나왔다.

김은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리영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명령을 받는 군인처럼,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

"명 받습네다. 나흘안에 깨끗하게 치우겠습네다."

다시 고개를 끄덕인 김은정이 손을 뻗어 담배괍을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남조선 아새끼들이... 내 큰형님을 인질로 잡고 있디요, 가능한 인계받고 싶디만, 천우진 그 아새끼레 눈치가 보통이 아닌것 같소."

리영철의 눈이 몹시 흔들렸다.

과연 그는, 얼마전부터 보이던 인민들을 위하던 김은정의 모습이 진실이었을까 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행여나... 천우진 그 아새끼가 수작질을 걸었을 때, 우리 공화국은 흔들리지 않아야 함메."

"기, 기렇습네다."

"제대로 알아 들었습네까?"

"명심하갔습네다."

"큰형님의 손 발들... 어떻게든."

"예! 최고사령관 동무."

***

누구도 사막에 봄이 올 것이라 믿지 않았지만, 이 척박하고 생명이 죽어 있는 듯 보이던 곳에 푸르른 새 생명이 탄생한 모습을 보자니 정말 기적이 따로 없게 느껴지는 후진다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새싹들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후진다오는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는지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그의 감정이 표현되고 있었다.

부르릉.

저 멀리 사막용 짐차가 거칠게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게 보이자 소스라치게 놀란 후진다오가 앞으로 튀어갔다.

"멈춰! 멈추라고! 이쪽으로 오지말고! 도로쪽으로 도로쪽!"

그가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차량은 들은채도 하지 않고, 본래의 목적지까지 거침없이 질주했다.

이제 막 새생명을 꽃피웠던 푸르른 새싹들은 차량이 지나간 타이어의 밑에서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러고는 뜨거운 모래속으로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으아아아아!"

후진다오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소리를 질러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분노를 느끼는 후진다오였다.

딸깍.

사막용 짐차의 트렁그가 열리고 PMC 대원들이 거칠게 포대기 하나를 바닥에 내던졌다.

퉁.

제법 묵직하게 모래위에 떨어진 포대. 그 포대가 꿀렁이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생명체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단밖에 후진다오는 그 포대기 안에 아침에 교관이 얘기했던 새로운 교육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들끓던 후진다오의 분노의 칼은 그 교육생에게 향했다. 교관들이 포대기를 가리키며 후진다오를 말 없이 쳐다보았다.

저벅저벅 걸음을 옮긴 후진다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탕탕 뼈가 앙상한 가슴을 쳤다.

"호오, 살살 해."

교관 하나가 후진다오의 눈에 언뜻 비치는 살기를 느꼈는지 주의를 주고는 떠나자 후진다오는 포대기를 열어볼 생각도 없이 미친듯이 발길질을 시작했다.

퍽, 퍽, 퍽.

"윽, 뭐이네? 뭐이네?"

한국어와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언어에 후진다오는 그것이 본능적으로 북한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때는 중국의 부주석의 자리에 있던 후진다오였다.

그런 그가 북한 사람들과 만남이 없었을리 없으니, 어쩌면 알아 들을 법도 하지만 그의 발길질에 자비는 없었다.

"이 개새끼! 자라같은 새끼! 네가 감히 주군의 봄을 망쳐?"

"중국인? 나 조선인민공화국 김남정이야! 이거 풀어!"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런 개 코딱지만한 나라에 김남정이면 어쩌라고?"

무차별한 발길질을 맞다보니 처음에는 크게 반항하려는듯 이리저리 움직이던 포대기도 잠잠하게 변했다. 어느새 후진다오의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진다오는 헐떡이는 숨을 내뱉으며 거칠게 포대기를 찢듯이 열어 젖히고는 안에 들어 있는 김남정의 상태를 살폈다.

숨은 쉬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그대로 땡볕 아래로 굴려버리곤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수통을 입에 물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던 후진다오가 물 한모금을 입에 머금고 놈에게 다가가 '푸우우우'하고는 입 안의 물을 뿌렸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김남정의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바닥을 똑바로 보게 만든 후진다오.

"이것이 우리가 뫼실 주군의 봄이다. 똑똑히 기억하라, 생명이라고는 다시 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막에 봄을 피워낸 분이시니."

어느새 정신을 차린 김남정은 매우 놀란 모습으로 후진다오를 쳐다보았다.

"부, 부주석? 후, 후진다오 부주석께서 어찌 나를?"

"나를 아네?"

"저는 김남정입네다."

"김남정?"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동무가 내 아버지 되십네다."

"아, 그 망나니 장남."

그제 기억이 또렷해진 후진다오.

기대 가득한 눈이 된 김남정.

"그런건 필요 없다. 교육생."

"예, 예?"

"살고 싶으면, 주군을 뫼셔라."

"예?"

허리춤에서 포승줄을 꺼낸 후진다오가 아직 몸을 가누기 힘든지 꿈틀거리는 김남정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우리가 모실 분은?"

"예?"

후진다오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그대로 땡볕 아래 김남정을 방치한채 뒤로 물러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

이재형이 북한에서 돌아온지 이틀이 지났지만, 김은정에게 이렇다 할 연락은 없었다.

"아기 돼지가 많이 바쁜가 보네요."

티라미수 라떼를 음미하며 뱉은 말에 호석이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예, 현재 그의 어미가 되는 고용희의 친인척들과 잦은 만남을 갖는 것이 보고 되었습니다."

"일단 비호세력을 늘리겠다?"

"예, 그렇게 보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놈이 좀 세력이 없었죠?"

"전무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나마 코드원의 보고에 의하면 얼마전 호위총국장 리영철이 그에게 마음을 주었다고 하니, 세력이라고 해봐야 호위총국, 그러니까 김일정의 친위대가 전부일 것입니다."

"확실히 부족하긴 하네."

"그래도 사단급 병력입니다."

그렇게 많냐는 듯 호석을 바라보았다.

"숫자는 대대급이지만, 전투력을 감안한 수치입니다."

"아~ 하긴, 친위대원이니까 제법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겠네요."

"예, 회장님."

"또 다른 보고는 없나요?"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호위총국장 리영철이 병력을 여러개로 잘게 쪼개서 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장을 하고요?"

"예, 게릴라를 준비하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짧게나마 북한의 현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김은정의 밝혀졌던 성향을 집어 넣었다.

"아, 가지치기 할 생각인가보네요."

"음..."

호석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제 자리에 위험이 될 만한 요소를 제거 한다고요, 제 손으로 아비의 머리에 구멍을 뚫은 것 처럼."

"숙청을 한다는 말씀이군요."

"네, 아마 그럴거에요. 제 아비의 핏줄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 욕심이 그득그득한 돼지 새끼일테니까."

"컨트롤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베타 작전을 진행할까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김남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잘 움직이고 있는 알파를 벌써부터 버릴 필요는 없었다.

"아직, 조금더 기다려 줍시다. 베타도 아직 준비는 안 됐고요."

"박차를 가하라 얘기 하겠습니다."

열심히 김남정을 가르치고 있을 후진다오의 생각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후진다오 그놈, 신났겠는데요? 후임 받아서."

"듣기로는 전문가 저리가라 한다고 합니다."

"오우야, 당한게 있으니 보상심리라도 작용했나 본데요?"

호석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최태수 회장 올 때 된것 같은데요?"

"자신있게 만남을 요청했으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것 같습니다."

호석의 말에 속에서 기대감이 피어 올랐다.

내가 얻고자 하던 항공사를 통으로 가져왔을지 어쨌을지 궁금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만남을 요청하다니, 확실히 최태수 회장 역시 조양구 회장에게 원한이 있던게 분명했다.

언제든 여유만 된다면 칠 생각이었나보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비서의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KS그룹 최태수 회장님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철컥.

문이 열리며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최태수 회장.

"확실히 회장님도 양반은 못 되시나 봅니다."

"아하하, 제 얘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예, 이제 오실때가 됐겠거니 했습니다."

"이런,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여유가 있어서 그런거니까."

최태수가 자리에 앉으며 내 커피를 힐끗 바라본다.

"처음보는 차군요."

"아, 티라미수 라떼라고 달달하니 괜찮습니다. 같은걸로 한잔 하시겠습니까?"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호오."

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최태수 회장의 모습에 기대감을 품고는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비서가 차를 준비하러 간 사이, 내 시선은 다시 최태수에게 멈춰섰다.

"어디 땅콩항공을 얼마나 털어 왔는지 볼까요?"

"예?"

아, 아직 세상은 땅콩항공이라는 별명을 모르나보다. 하긴, SNS가 세상을 지배할때 알려진 일이니 그럴만도 했다.

"아뇨, 한국항공이요."

"아, 예."

호석이 피식 웃으며 일순간 긴장했던 최태수에게 농을 건넸다.

"가끔 회장님이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아마 조양구 회장이 땅콩 만해서 그렇게 말씀하신건 아닐까요?"

"하하하하, 어디가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 제 29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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