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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재벌-297화 (297/458)

< 제 297화. >

끼이이이익 쿠웅!

커다란 철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PMC 대원들과 함께 이재형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평양에서 이곳까지 먼길을 걸어온 나의 소중한 대원들이었다.

나를 보고는 알아서 각을 잡고 서 있는 대원들을 한명 한명 손을 마주 잡고 눈을 마주쳤다.

이내 이재형의 차례가 오고,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고생많았습니다. 대원."

이재형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라 '대원'이라는 호칭을 써 줬다.

그는 SKY PMC 내부에서 대원들에게는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의 능력은 거짓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게는 언제나 '이방인'대우를 받고 있었다. 나 역시 은연중 그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허나, 내 입에서 '대원'이란 소리가 나오니 그의 동공이 작게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이재형도 내 품에 들어온 것이다. 지켜야 하고 행복해야 할 사람이란 소리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복잡하게 감정이 얽히고 섥힌 인사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이동하면서 하죠."

"예!"

탁.

이재형은 다른 대원들과 다르게 나와 같은 차량에 올랐다. 대원들은 그들을 위해 마련해 둔 고급 벤 차량에 오르면서 나와 같은 차를 타는 이재형을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그를 특별대우 한다고 그들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고독하게 싸우고 있었을 그 였기에 한 명의 대원도 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터.

차량이 움직임을 시작하자 눈치를 보던 이재형이 입을 열었다.

"북에는 코드 쓰리와 세븐이 남았습니다."

"음, 그들의 정체는 아직 밝히지 않은 모양이죠?"

"예, 회장님."

"안전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호위총국장의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현재 불안한 정세에 고사리 손이라도 필요할 사람들이니, 쓰리와 세븐의 정체를 밝혀 추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죠, 그 독재자가 죽었으니까."

굳이 우리 손으로 그 독재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놈은 언젠가 죽을 운명이었다. 기억에 의하면 13년도 겨울 때 였던 것 같았다. 놈이 죽고, 지금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지만 차지할 것이라 거의 확정된 김은정이 자리를 물려 받았었다.

그러고 나서 북한이 크게 달라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일부, 조금조금씩 경제 개방을 모색하긴 했으나 지지부진 하긴 마찬가지였고, 제 아비를 똑 닮아 독재자의 삶을 영위하던 놈이었다.

그러니 이재형이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대원들과 함께 복귀 하기를 명령했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했던 다른 대원들이 북한에 대한 보고를 담당하면 될 일.

"휴가 좀 다녀오세요, 여동생이랑 편안 하게."

"예, 회장님."

이재형과의 짧은 대화가 오가고, 눈치를 보던 호석이 불쑥 끼어들었다.

"회장님, 첫째 돼지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김은정이 삐딱선을 탈 것을 대비해 사로 잡은 '명분'에 대한 처리를 묻는 호석.

"흐음... 그러게요 김은정이 순순히 나오니까 갑자기 애매해지지 싶기도 하네요."

"처리할까요?"

호석의 말에 솔깃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렇게 하릴없이 써먹기에는 제법 아까운 존재였다. 김은정이 제 아비의 자리를 물려받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정적에 대한 숙청'이었던 이유.

그것은 언제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일테다.

김남정 역시, 그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이라 판단했으니 외국에서 '독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을 터.

그러니 아직 그 첫째 돼지는 숨이 붙어 있는게 맞았다.

"후진다오는 잘 지내고 있죠?"

"예, 뭐...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체력단련 역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고 하더군요."

"호오, 달라졌네요."

피식 웃은 호석이 말했다.

"우진교를 믿는 신도 아니겠습니까."

헛웃음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우진교라니, 그 종교 참... 이름이 별로네, 하늘교나 SKY교 정도로 정정합시다."

내 농담에 운전을 해주는 대원도, 호석도. 그리고 옆자리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이재형도 피식피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제는 대원들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아도 도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불평불만 없이 잘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교육이 아주 제대로 성공했나보다.

참 인간이란 동물은 신기했다. 교육하고 세뇌를 당하면 생존본능 때문에 어느 순간 순응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후진다오한테 친구 하나 보내주면 되겠네요."

"아, 첫째 돼지를 말씀이십니까?"

"예, 김장원 사장한테 잘 포장해서 보내라고 하세요."

"예, 회장님."

***

빰빰~ 빰빰빰~ 빰빠라빰빰 빰빰빰~ 빰빰빰.

기상나팔 소리.

한국에서는 군대를 다녀온 사내들에게 PTSD를 불러일으키는 소리지만, 후진다오는 그 소리가 들리면 아주 흡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얇고 거친 이불을 각을 잡아 게고는 교관이 오기도 전에 점오를 준비한 후진다오.

끼이익.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리고 들어온 교관.

"음, 바람직하군."

"아닙니다!"

"그래, 문제 없지?"

"예! 그렇습니다! 오늘도 주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싱글벙글.

교관이 등장하면 항상 겁에 질려있던 후진다오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이제는 교관의 얼굴도 사뭇 부드러워져 있었다. 고생을 전혀 시키지 않는 교육생을 데리고 있으니 어느새 둘 사이의 거리는 제법 좁혀진 듯 보였다.

"가자, 아침 먹고 시작해야지."

"예! 교관님!"

교관은 무방비하게 등을 내주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후진다오가 매일같이 체력훈련을 한다고 하지만 뼈가 앙상해진 그가 덤빈다 하여 교관은 자신이 다칠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진다오 역시, 몇번이고 저 무방비 한 등을 향해 맹공을 날려본 경험이 있으나, 언제나 바닥에 누워 있는 건 자신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오늘 메뉴는 뭐지?"

교관의 질문에 후진다오가 얼른 그의 곁에 다가서서는 조잘대었다.

"오늘 메뉴는 한식, 소고기 야채 볶음, 계란 토마토 볶음, 배추김치, 감자 계란국, 오징어 젓갈이며 양식으로는 늘 나오는 메뉴입니다!"

"좋아, 우리는 한식을 먹자고!"

"저도 그게 좋습니다!"

언제나 이곳의 음식은 훌륭하다 생각하는 후진다오였다. 물론, 세상의 떼가 묻어 있던 시절에는 이런 것 쯤이야 언제든 먹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후진다오지만, 그 떼를 벗기는 과정에서 먹었던 돼지죽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정상적으로 교관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매일 하루에 두번씩 물류차가 이동하며 신선한 식자재를 공급하고 있었다. 그런 것 모두가 천우진이 SKY를 생각하는 마음이었고, 후진다오는 '주군께서 우리를 배려한다.'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후진다오."

"예, 33교관님."

교관들은 후진다오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단순히 교관들의 번호를 알려줄 뿐이었다.

"오늘 신병이 온다."

후진다오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교관을 바라보았다. 진짜냐는 질문이 내포되어 있는 눈빛이었다.

"신병 들어오면, 후진다오 네가 잘 교육시켜."

후진다오의 입꼬리가 헤벌쭉 크게 벌어졌다.

"넵! 감히 하늘같은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 할수 있도록 관리하고 관리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짜식, 요즘 일 잘하고 좋다."

"감사합니다!"

나이로 봐도 후진다오가 훨씬 윗줄이지만 교관도, 후진다오도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완벽한 상명하복에 의해 나이를 초월한 계급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물론 그 계급의 꼭대기는 두말 할 필요 없이 천우진이 앉아 있었다.

가장먼저 식사를 끝낸 후진다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교대조 잔구류 정리하러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그래그래, 일 보고, 편하게 자유시간."

그를 식당으로 데려온 교관의 말에 헤벌쭉 웃은 후진다오가 신이 나는지 궁뎅이를 씰룩이며 자신이 먹은 식판을 깨끗하게 설거지 하고는 식당을 빠져 나갔다. 그가 바쁘게 걸음을 옮긴 곳은 교관들의 숙소가 있는 곳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막 숙소로 돌아온 교관들이 김이 펄펄 올라오는 방탄조끼와 함께 소총과 탄띠를 거칠게 풀어 헤치며 손을 들어 후진다오를 반겼다.

"그래, 오늘도 기운 넘친다?"

"하하, 아닙니다!"

후진다오는 웃으며 그들이 내미는 각종 장비들을 받아 탁탁,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뭐야?"

"21교관님이 좋아하시는 소고기 야채 볶음 입니다."

"캬, 굴소스에 소고기는 언제나 옳지, 단백질 충전하러 가볼까?"

교관들이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며 저들끼리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주변에 실탄이 장전된 소총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듯 한데도 그들은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후진다오가 마음 먹고 하나의 소총을 집어 난사를 하기라도 한다면 방안이 피바다로 변해버릴 것 같은데 그들은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21번 교관이 힐끗 후진다오를 보며 말했다.

"왜? 오늘따라 소총 오래 만진다? 또 쏘고 싶냐?"

"아,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먼지바람이 심했는지 소총이 오염되어 수입중이었습니다!"

"확실해?"

"옙! 그렇습니다!"

"이따가 실탄 센다. 무슨 말인지 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후진다오는 알고 있었다.

군기를 찾아볼 수 없는 교관들이지만, 후진다오가 철컥 하고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거나 장전을 하는순간, 그들은 표홀한 표범이 되어 사방에서 그를 덮쳐올 것이라는 것을.

한 발이라도 제대로 쏘면 모를까 결코 한명의 교관도 후진다오는 제 실력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머리로 아는게 아니라 실제로 몸에 새겨진 교훈이었다. 피식 웃으며 등을 돌리는 21번 교관에게 사흘 밤낮을 처 맞고 깨달은 교훈. 감히 그의 등에서 소총을 장전했다는 이유로 그는 흉신악살보다 더한 악귀가 되었었고 후진다오는 감히 교관을 헤하려 했던 자신을 나무라고 나무랐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천히 해, 너무 급하게 할 필요 없어."

21번 교관이 부드럽게 후진다오를 다독이고는 방을 빠져 나갔다. 고요한 숙소 내부에는 어느새 후진다오가 홀로 남아 있었다. 수많은 소총들과 함께.

그러나 후진다오는 소총에 수작질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괴물 같은 교관들은 1g의 무게만 달라져도 반사적으로 소총을 검사하는 인간들이었다. 잔뜩 풀어진 군기를 보이지만 총을 잡고 무장하는 순간 그들은 인간이 아닌 기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모드 온, 모드 오프. 그런 버튼이 있는 인간들 같았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숨어있다는 얘기.

곧, 1개 소총의 수입을 끝냈을 때 교대자들이 들어와 소총과 무장을 점검하고는 나가기 전, 힐끗 후진다오를 바라본다.

"지금 신병 데리러간다. 준비 해."

"아! 그렇습니까?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어, 한 두 시간 23분쯤 걸릴 거다."

"예!"

교관들은 시간을 초 단위로 정확하게 맞추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분단위의 시간을 말했다는 것은 변수가 몇개 섞여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변수들은 저 괴물들의 괴랄한 전투력에 산산히 갈려 나갈 테지만, 어쨌든 오늘 저들이 다녀왔을때 후진다오는 알아서 설설 기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피냄새를 맡은 짐승은 날카로워 지는 법이니까.

"신병,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막 바깥으로 나가려던 교관이 '아!' 하면서 후진다오를 돌아보았다.

"바깥에 나가 봐라, 네가 좋아할 만한 일 생겼더라."

"예? 그렇습니까?"

"어, 사막에 봄이 올 때, 네 인생에도 봄이 온다며?"

소스라치가 놀라 수입하고 있던 소총을 털썩 떨어뜨린 후진다오.

"보, 봄이 온 것입니까? 정말, 이 척박한 사막에 봄이 온 것입니까?"

"궁금하면 직접 보던가."

후진다오가 교관들을 제치고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문을 열고 바깥의 풍광을 확인했다.

눈 앞에 펼처진 끝 없는 모래색 지평선.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구나 싶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 후진다오의 발 아래, 녹색의 작은 생명들이 빼꼼히 구경을 나와 있었다.

털썩.

후진다오가 두 무릎을 꿇고 척박한 땅에서 솟아난 새싹을 자세히 관찰했다.

"봄이... 봄이 오고 있구나... 이 타클라마칸 사막에, 봄이."

후진다오의 머릿속에 천우진의 말이 스쳐간다.

'사막에 봄이 오면, 그때 네 쓸모가 증명 될 지도 모르지.'

세상 사람들은 미쳤다고 할지 모를 기적을.

그의 주군 천우진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 제 29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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