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96화. >
김일정의 102호 사택.
그가 가장 애용하는 큰 규모의 저택이면서, 바로 옆에 중앙당 조직지도부 5과, 일명 기쁨조가 곁에 있었다.
오로지 김일정의 '기분'을 위해서 존재가치가 있는 조직, 그리고 김일정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곁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향락에 빠져들었다.
당내 지도부에도 김일정이 연회를 열 때면 언제나 기쁨조의 아가씨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파하하하."
"크하하하."
인민들은 하루하루 배고픔과 싸우고 있을 때, 휘황찬란한 평양식 음식들과 먹고 죽을 쌀도 없는데 쌀로 만든 각종 주류까지. 아주 호화로운 테이블 위에서 전라에 가깝게 옷을 벗어던지고 놀고 있었다.
"이번 핵실험만 성공하면, 공화국에 혁명의 날이 밝을 것입네다!"
중앙당 최고인민회의에서 혁명회를 담당하는 위원의 말에 김일정이 흡족한 얼굴로 '그럼그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마시라! 마시고 썩어디자! 이틀은 휴가를 주갔어."
"우리 자랑스러운 공화국 최고수령 동무를 위하여!"
"위하여!"
그들이 한창 술과 향락에 빠져 있을때, 102호 사택의 바깥에서는 은밀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SKY PMC의 대원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김은정.
"후욱, 후욱. 동무...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되겠네?"
복면을 쓰고 있는 이재형이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여유있소."
이것보다 더 천천히 움직일 순 없다는 뜻이었다.
"동무레... 확실히 공화국 특급전사가 맞구만 기래."
"동무께서 훈련을 소홀히 해서 그렇습네다."
"커험..."
"앞으로 지도자가 되어서도, 체력훈련을 게을리 하디 않는 것이 좋겠슴메."
"날래 움직이자."
어차피 김은정과 이재형이 있는곳은 최후방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은정은 김일정의 최후를 봐야하기 때문에 먼저 당해서도 안 되었다.
저쪽에서는 김일정이 최후의 최후까지 지켜야할 존재라면 이쪽에서는 김은정을 최후의 최후까지 지켜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원래 국제 용병들이 저렇게 날래네?"
"공화국 특급전사들을 압도할 전투력을 가지고 있디요."
김은정이 놀란 눈으로 빤히 앞서 걷는 이재형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참이네?"
"보면 모르갔습네까? 나도 공화국 특급전사 입네다."
"길티... 동무도 저들을 이길 수 없네?"
"기건 아닙네다. 하디만, 저들은 SKY PMC의 정예중의 정예입네다. 어지간한 특급전사들은 비빌 수 없디요."
"길쿠만... 동무는 비벼볼 수 있다는 얘기구만."
"기렇습네다."
-치익, 돌입.
아직 102호 사택이 손가락 하나로 가려질 만큼 작게 보이는 상황에서 SKY PMC대원들의 작전이 시작되는 알림이 들려왔다.
"늦었습네다. 얼른 움직이시라요, 빠르게 움딕여야 합네다. 호위총국장이 오기 뎐에, 우리가 먼저 가야 함메."
"후우... 차를 이용하면 편하디 않았네?"
"구르마를 끌고 가면 바로 걸렸습네다."
"쯧."
"그나마, 호위총국장 동무가 최고사령관 동무에게 신임을 잃어서 이런 상황이 가능했습네다. 다시 없을 기회란 소립네다."
"날래 가자우, 알았으니."
거친 숨을 뱉으면서도 숲 길을 헤쳐나가는 이재형과 김은정.
어느새 손바닥으로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랗게 보이는 102호 사택.
지근 거리에까지 왔음에도 총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잘못 된 것 아이네? 총 소리가 없니?"
"총기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을 거임메, 진입하면 알갔디요. 문제가 있었으면 무전이 왔을겝네다."
"돌입하자우."
숲에서 빠져나와 당당히 정문으로 향하니, 정문을 지키고 있었을 친위대원 둘이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이재형은 능숙하게 그들이 무장하고 있던 소총과 탄창을 챙겨 무장하고는 '쿵!'하고 정문을 발로 차 열어버리고는 진입했다.
"허."
시산혈해.
분명 옛 전쟁터에서는 그런 사자성어를 썼다고 들어봤던 김은정은, 지금 자신이 보는 장면이 그것과 비견되지 않을까 싶었다.
친위대원들은 바닥에 피웅덩이를 만들며 쓰러져 있었고, 복도 벽에는 여기저기서 튄 혈흔이 가득했다.
김일정이 있는 곳이었다.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가 호화 연회를 즐기고 있는 곳이었으며, 중앙당 최고인민회의 위원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런곳을 약 40명의 용병들이 휩쓸고 있었다. 소총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소음기가 달린 권총과 군용대검을 이용해서 휘젓고 있었다.
"정리 된 것 같으니, 속보로 걷겠습네다."
"길케 하라."
기가 한풀 꺾인 김은정의 반응에 이재형은 가타부타 말 없이 빠르게 앞장서기 시작했다.
아무리 크기가 크다고 해도, 고작 별장이었다.
사택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가운데 연회장이 훤히 눈 안에 들어왔다.
"쿨럭."
곳곳에서 피가 섞인 호흡을 내뱉는 인원들, 그리고 전라 상태로 바닥에 이마를 데고 엎드려 있는 사람들. 여인들도 있었고 사내들도 있었다.
연회장에 서 있는 인물들은 SKY PMC의 대원들이 전부였다.
그둘 중 하나가 이재형에게 다가와 말했다.
"클리어."
세음절이었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알아 들은 이재형이 턱짓으로 엎드려 있는 인원들을 가리켰다.
그 중에 김일정이 누구냐는 의미였다.
대원이 고개를 돌려 총구로 방향을 알려주기도 전에, 김은정은 대번에 자신의 아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전라로 엎드려 있는 인물들 중, 유독 눈에 띄는 붉은색 가운을 걸치고 있는 인물.
자리에 엎드려 덜덜덜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가 과연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광경이었다.
저벅, 저벅.
김은정이 걸음을 옴길때마다 엎드려 있는 사람들 모두가 몸을 떨었다. 그들에게는 그 걸음 소리가 저승사자의 입장을 알리는 것 같았기 때문.
"아바이 동무."
두려움에 몸을 떨던 김일정이 흠칙 놀라며 힘겹게 목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으, 은정이네?"
"기렇습네다."
"자, 잘 왔다. 이 간나새끼들 처리하라!"
"아바이 동무."
"간나 새끼들 처리하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네?"
"아바이 동무!"
버럭 소리를 지른 김은정.
그의 눈에는 한심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뭐, 뭐이네?"
"내레, 더이상 공화국이 망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습네다."
잠시 패닉에 빠졌던 김일정이 이내, 현재 장내에 있는 이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이 누구로부터 발로하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네, 네가... 감히 변절을 해?"
"변절은, 여기 있는 아바이 동무와 최고인민휘의 위원들이 했디요."
"공화국에서! 내가 법이고 신이야!"
"내레 오기 전까지는 그랬겠디요, 이제는 다를 겝니다."
김은정이 허리춤에 있던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철컥 하고는 장전했다.
"으, 은정아! 이러디 말라! 내가 보기 싫어도 네 애비가 아이네?"
"공화국에, 아바이 동무가 있는 한. 미래는 없음메."
"개돼지보다 못한 인민들 때문에 은정이 네가 이 아비를 배신 하겠다는 말이네?"
"개 돼지는... 여기 있는 당신들이야."
탕!
풀썩.
김은정이 쏜 권총 탄알에 김일정의 머리통이 뚫리며 그대로 엎어졌다.
눈 앞에 공포가 펼쳐져 있었지만, 곁에 최고 권력자가 살아 있었다는 생각이 방패라도 되었던지, 나머지 인문들은 김일정이 죽자 아무런 저항 없이, 두려움도 없이 사람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는 멍하니 김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 같디 않은 것들을... 치우라."
이재형이 다가와 말했다.
"5과 소속 인민군들은 잠시 격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네까?"
"길티... 그리 하라."
PMC대원들이 권총을 권총집에 집어 넣고는 군용대검을 꺼내, 장내에 있는 모든 사내들의 숨통을 끊어 놓는 사이.
타다다다다다.
복도에 울리는 군홧발 소리에 김은정은 의자를 끌어다 놓고는 연회장 중앙에 앉았다. 그의 주변으로 피가 흥건하게 모여 있었다.
북한의 지도부가 한순간에 붕괴했음을 의미하는 피였다.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호위총국장이 놀라 걸음을 멈추더니 소리쳤다.
"정지! 아무도 오디 말라!"
호위총국장의 외침에 거짓말 처럼 시끄럽게 울리던 군홧발 소리가 멈추었다.
뚜벅뚜벅.
김은정의 앞에 다가온 호위총국장.
"동무... 내레 제대로 보고 있는게 맞습네까?"
"보면 모르네?"
"이거이... 이거이... 동무께서 원하는 공화국의 모습임메?"
"내레 기딴건 모르갔고... 인민만 생각하갔어."
"......"
김은정이 혼란한 모습을 보이는 호위총국장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리영철 동무!"
화들짝 놀란 호위총국장이 김은정을 바라보았다.
"뭐하고 있네! 공화국의 새로운 최고 사령관에게 경례 올리라!"
사택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릴 호통에 호위총국장이 빤히 김은정을 바라본다.
손은 권총집에 가 있었고, 아직도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내레 리영철 호위총국장의 말을 아직 잊지 않았슴메, 언제니 인민들을 생각하라는 그 말을 여기! 여기!"
가슴을 탕탕 두들기는 김은정.
"여기에 품고 살갔다. 약속하디. 그러니 경례 올리라. 리영철 동무와 새 공화국을 만들어 가고 싶으니."
호위총국장 리영철이 고개를 들어올려 장내를 장악하고 있는 검은색 일색의 무장단체를 바라보았다.
"저들은 누구입네까?"
"내레 지원군을 불렀디."
"공화국에... 외세를 가져 오셨습네다."
"리영철 동무는 할 수 있었나? 저들이 아니라면! 누가 독재자를 듁일 수 있었네?"
"......"
"복잡한 것은 생각하디 말라, 공화국의 혁명을 위해. 인민들의 해방을 위해, 싸우라. 패륜을 저지른 천벌은 썩어지고 나서 달게 받을테니, 동무레... 나를 도와주라."
호위총국장이 권총집에서 권총을 빼 내었다.
"공화국 최고 지존의 숨을 앗아간 놈들입네다. 기냥 보내 줄 수는 없디요, 저 놈들이 없어도. 동무께서 인민을 위해 살아 갈 수 있음메."
김은정이 벌떡 일어나 호위총국장의 권총을 잡았다.
"기러디 말라... 공화국의 미래에는 꼭 내가 있어야 하니."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김은정을 바라보는 호위총국장.
"기둥을 잃은 공화국이디... 내실부터 다지자우, 외세랑 싸워서 이길 수 없어."
"마음이 어찌 되었건, 방법이 옳지 않았음메... 동무. 언젠간 반드시 후회의 날이 올것입네다."
"배불리 먹어 살이 오른 인민들을 보게 된다면, 후회 해도 좋디 않간?"
스르륵.
호위총국장 리영철이 결국에는 총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PMC대원이 뚜벅뚜벅 그들에게 걸어가 촬영본과 또 하나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
이것 하나로도 공화국내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동영상 안에 등장하는 인물.
"김남정 동무..."
김은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 처럼, SKY PMC의 대원들을 죽였다면 아마 한국은 김남정을 명분으로 북한에 처들어왔을 터 였다.
결국 공화국의 미래는 자신의 손이 아닌, 한국의 손에 결정될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이재형의 완벽한 한국어.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숨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던 모양.
"리, 리재형 동무?"
"다시 소개하죠, SKY PMC 이재형 대원입니다."
김은정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완벽하게 SKY가 던진 그물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복귀하는 동안, 문제가 발생된다면 제 2의 한국전이 터질 겁니다. 김은정씨... 당신이 아끼는 인민들의 아까운 목숨을, 그런 허튼 곳에 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재형이 품에서 SKY전자의 캠코더를 꺼내 김은정에게 건넸다.
"복귀한다."
""예!""
김은정은 사라지는 이재형의 뒤통수보다 캠코더에 재생되는 인민들의 삶에 집중했다.
"길을 열라."
김은정의 읊조림에 호위총국장이 망설였다.
"다 죽이고 싶네? 길 열라!"
호위총국장은 결국, 크게 소리쳤다.
"전군 무장 해제 하라우!"
< 제 29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