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95화 (295/458)

< 제 295화. >

동이 트고 나서야 비트에서 나올 수 있었다. 호석에게 듣기로는 밤 시간대에 차량 운행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라고 들었다.

북한군이 불빛을 보고 타겟팅 한다면 순식간에 벌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편안한 침대가 아닌 흙바닥에서 설잠을 자서 그런가 제 컨디션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해서, 집이 아닌 SKY 호텔로 향했다. 마누라 잔소리를 듣기에는 심신이 너무 지쳐있었으니까.

욕조에서 몸을 지지고 바깥으로 나오니 피로가 한 결 물러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

"오래도 씻는구나, 묵은 떼라도 벗겼더냐?"

할아버지가 특유의 핀잔으로 날 반기셨다.

"아침 댓바람부터 호텔로 오셨어요?"

"궁금해서 왔다 이놈아. 어제 통문 통과를 누가 시켜줬는데?"

맞다.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통문 통과 절차가 상당히 복잡했을터였다. 물론, 내가 들어가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들어 갈 순 있었을 테지만 급작스럽게 움직여야 할 때는 대통령의 권한 만큼 편한 게 없었다.

"김은정이는 잘 만났더냐?"

"예, 얘기는 잘 됐습니다."

"믿을 만 한 놈이고?"

"그건 지켜봐야죠."

"쯧, 수십명의 한국인이 월북을 한 일이다. 예삿일이 아니야."

"다시 탈북 할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 되어야 할 게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신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낮에도 밤에도 통~일."

"뭐하세요?"

"이 노래를 아느냐?"

"알죠, 배웠던 노래인데."

"국민학교에서 배웠지?"

"아마도요?"

"네 놈 계획이 성공하면, 통일 하는 것이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아니고, 천천히 가시죠. 바로 통일 한다고 하면, 우리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이 될 테고, 국민들도 여러가지 걱정하는 게 많을 겁니다."

"여기저기 불협화음이 나오겠구나."

"거쳐야 할 과도기죠."

"그럴테지... 어쨌든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은 되겠구나."

"예, 아마 통일을 이뤄낸 대통령이 되실겁니다."

"허, 참."

할아버지가 오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신다.

"네 놈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양지에 올라서고 싶었더랬다."

"그러셨어요?"

"헌데... 네 놈이 오고 내가 양지에 올라서고 나서 이렇게 대통령까지 하는구나, 그것도 역대 가장 높은 지지율로."

"자랑 하시는 건가요?"

"고맙다고 이 놈아!"

얼굴을 붉게 물들인 할아버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칭찬이 익숙하지시 않은 모양.

그 모습이 퍽, 귀엽다고 느껴졌다.

"좌우지간, 네놈 사람들 살려서 데려 오거라, 사람을 중히 여겨야 미래가 있는 법이야."

"예, 그렇게 할 겁니다. 따로 다른 것도 준비하고 있어요."

"다른 것? 김일정이 놈 모가지 따는 것 말고 또 뭐가 더 있더냐?"

"김은정을 완벽하게 믿을 순 없잖아요? 보험을 들어 나야죠."

엉덩이를 떼셨던 할아버지가 다시 자리에 앉으셨다.

"커험, 그래?"

"아침이나 같이 드실까요? 아직 조식 전인데."

할아버지가 힐끗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호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가 할아버지의 보좌진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나와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식탁이 있는 곳에 마주 앉았다.

"음, 쌀이 아니구나."

"가볍게 드시죠, 에그베네딕트도 나쁘지 않아요."

"시리얼도 있구나."

"우리 호텔 셰프가 직접 만든 요거트에 버무려 드시면 맛이 좋을 겁니다. 간이 심심하면 거기 옆에 있는 자연선 꿀 넣어 드세요."

"이 놈아, 이 할애비도 외국물은 좀 먹었어."

어깨를 으쓱이며 요거트에 버무린 시리얼을 한 입 크게 떠 먹었다.

아그작 하고 씹히는 견과류와 시리얼의 조화가 매우 고소하게 느껴졌다.

"자세하게 얘기 해 보거라."

"뭐, 자세하게 얘기하기에는 제가 가진 군사지식이 모자르고요, 대충 얘기하자면 김은정이 삐딱선을 탔을 때, 할아버지 힘이 좀 필요 합니다."

"그게 무엇이냐?"

"김은정 입장에서는 김일정을 죽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제 아비에게 반기를 들었으니까요, 독재자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살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독재자를 없애야 하는 상황인거죠."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김은정이 제 아비를 죽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문제는 그 다음이죠."

"산 정상에 오르면 세상이 달리보인다?"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전 삶 김은정은 정권을 쥐어잡고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피의 숙청을 거듭하던 놈이었다.

애초부터 제 아비의 숨을 제 손으로 거두려는 놈이었다.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뜻. 그러니 경계해서 나쁠 게 없었다.

"감투를 쓰면,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놈들이 꼭 있기 마련이죠."

"그렇지... 간사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지."

"그러니, 삐딱선을 탈 때. 아직은 내실을 제대로 다지지 못했을 때, 할아버지의 힘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캐슈넛을 아그작 씹으며 말했다.

"군사 작전 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침략'이 될 터 였다.

"명분은 있느냐?"

"명분은 만들어야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할아버지.

"어떻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겠습니까? 명분이라는 그거 말이죠."

"흐음."

"러시아는 몰라도 중국이나 미국은 조금만 꼬셔도 별 말 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만만 하구나."

"미국은 대선 때문에라도 몸을 사릴거고, 장저민은 제가 알아서 구워 삶아 보겠습니다."

"러시아는 내가 알아서 해결 해라?"

"그냥 무시해도 되겠죠, 러시아는."

"흐음... 중국과 미국이 묵인하는데 러시아가 감놔라 배추놔라 하기에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더냐?"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생각하는구나, 푸틴이라는 놈은 생각보다 미친놈이야."

"유라시아 횡단철도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겠다고 협박하면 알아 들을 겁니다."

"음, 확실히 그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러시아가 동유럽 진출에 목을 매는 이유기도 하니까."

"알아서 육상 진출로를 깔아준다는데 거절하기 힘들걸요?"

할아버지가 '하!'하는 탄성을 뱉으며 읊조리셨다.

"교묘하구나, 교묘해."

"그러니 북한만 처리하면 됩니다. 처음에야 불협화음이 나겠지만 결국은 한국과 SKY가 가장 큰 이득을 취하고, 러시아와 중국은 작은 이득을 취할겁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실수했다.'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건 훗날의 문제죠."

"미국이 태클을 걸기전에 미국도 삼키겠다는 생각이구나."

"이왕이면 말이죠."

"중국과 러시아가 순순히 따라준다니... 어색할 것 같은데? 놈들의 체재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일이야, 육로가 연결된다는 것은 문화와 사회 전반적인 사상이 흔들리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정확했다.

할아버지가 꿰뚫어 보는 미래가 말이다.

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문화, SKY라는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유라시아 횡단철도가 지나가는 나라들은 몸살을 앓게 될 것이었다.

대한민국도 훌륭한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도 하는 나라가 아니던가.

독재 체재의 기반이 흔들릴수도 있다는 얘기.

그러나 푸틴과 장저민은 오만하며 자만하고 있었다. 언제든 자신들의 명령 한번에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꿀꺽하고 국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터 였다.

과연 제 놈들의 뜻대로 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내가 가만히 당해주고 있을리가 있나.

"앞에 놓여진 문제들부터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시죠 할아버지. 그게 맞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신다.

"오냐, 지금껏 네 놈 말을 들어서 후회한적이 없으니 믿을 수 밖에, 성과가 증명하는데 부정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지."

"어쩐일로 이 손자를 인정을 다 해주시고?"

"흰 소리 하지 말고, 군사작전은 얼마나 생각하는 것이냐?"

"단숨에 평양을 장악할 정도요."

"휘유..."

절로 한숨이 나오시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할아버지.

"국경만 열어주십시오, PMC가 처들어갈겁니다. 국제법에서 제법 자유로운 위치잖아요?"

"쯧, 부디 그런일이 없게 만들었으면 좋겠구나, 스케일이 너무 커,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곳곳에 산재 해 있다."

"예, 그러니 일단 바쁘게 움직이고 계셔야 할 겁니다. 국정원, 합참, 육참 등, 아마 군부랑 회의를 제법 하셔야겠죠."

"오냐, 알았다."

***

김은정이 아침밥상을 받고는 앞 자리에 앉아있는 이재형에게 물었다.

"동무레, 언제부터 내통했네?"

"기게 중요 합네까?"

"내레 배신감을 느껴서야."

"언제부터인지 기딴건 중한게 아입네, 지난 수십년간 공화국은 퇴보를 거듭하고 있습네다. 기 사실만 염두하고 계시라요."

"쯧... 또 말을 돌리는구만 기래."

김은정이 고깃국을 한 모금 퍼 올렸다.

"인민들에게는 기런 고깃국은 명절에도 구경 못할 정도로 귀한 것입네다. 기걸 명심하시라요."

"기만 하라, 알아 들었으니."

밥을 먹으면서 고개를 이리 저리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는 김은정.

"꼭, 나를 감시 하는 것 같구만 기래."

"오늘이 거사 입네다. 기러니 자연스럽게 신경이 날카롭겠디요."

"거사라..."

"오늘 최고인민회 고위 간부들과 함께 최고사령관 동지의 연회가 있습네다. 연회장 내부... 모든 인사들은 살아 나오지 못합네다."

"공교롭구만 기래."

"남조선에서 보내오는 쌀과 밀가루, 공산품에 대한 회의가 끝났겠디요."

팍 인상을 찌푸리는 김은정.

"인민들은 굶어죽어가는데, 제 놈들 몫을 다 챙기고 그게 뭘 잘했다고 연회 씩이나 할 일이네? 당장 썩어지게 만들라!"

"곧, 기케 될 겁니다. 단숨에 평양을 장악해야 하는 만큼, 동무께서는 바쁘게 친지들을 모아야 할 겝니다."

"걱정하디 말라, 아침부터 고깃국을 먹는 이유가 있으니."

***

마카오의 한 카지노.

곳곳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들 사이로, 한국인이라면 정겹다 느낄 사투리가 들려온다.

"으따, 더럽게 안 맞아 분다잉..."

입 맛을 다시며 일어서는 사내는 김장원 사장이었다.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김장원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바 테이블에 앉아있는 독거미에게 다가갔다.

"으따, 혜미씨. 게임은 안 허고, 술만 푸요."

"우리 놀러온거 아니에요, 김 사장님."

"커험, 도박쟁이들 우째 사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디, 너무 힘들게 허지 맙시다."

슬금슬금, 팔을 움직여 독거미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김장원.

탁!

쳐다보지도 않고 김장원의 손등을 사정없이 내려 친 독거미.

"내 어깨에 팔 올리라고 허락한 적 없는데요?"

"커험, 아따 후끈 허네... 마카오가 날씨가 참 좋습니다. 잉, 인자 우리 한국도 겁나게 더워불겄소."

"그렇겠죠, 여름이니까."

"거시기, 쪼까. 그... 수영장에서 몸이나 푸는게 어떻겄소?"

"임무에나 집중하세요, 다시 말 하지만 우리 놀러온 거 아닙니다."

"임무가 바뀌었잖소, 아따 알믄서 그라요."

김장원이 툴툴 거리면서 바텐더에게 막 술을 시키려는 찰나.

독거미에게 다가온 아름다운 여성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첫째 돼지가 수영장에 나타났습니다."

"흐흐흐."

그녀의 보고에 김장원이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갈끄나요? 혜미씨? 나가 우리 혜미씨 입으시라고 겁나 예쁜 수영복 준비 혔는디."

"흥."

콧방귀를 낀 독거미가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네.

"회장님, 저예요."

-목소리 듣고 바로 알았습니다.

"첫째 돼지 위치 확보 되었습니다."

-바로 잡을 수 있게, 마킹만 붙혀 놓으세요, 지시가 떨어지면 어떤 조건에서도 10분 내로 사로잡아야 합니다.

불쑥 고개를 들이민 김장원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김장원입니다!"

-예, 김 사장님.

"아따, 우리 혜미씨가 돼지놈이 수영장에 있다는디, 일 할 생각이 없어붑니다."

-김 사장님이 우리 팀장님 몸매에 관심이 많은게 아니고요?

"으따, 나으 회장님께서 우째 그런 서운한 말을 하신다요."

수화기 너머 천우진이 피식피식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오자 김장원이 흐뭇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천우진이 웃는다는 건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팀장님?

"네, 회장님."

-수영장 한 번 가주세요, 더운데 시원하게 물놀이도 좀 하시고.

독거미가 쫙! 소리가 나도록 김장원의 등짝을 후려쳤다.

"으메 따거라."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저는 일 때문에 수영장 가는거란 걸, 알아주십시오."

-그럼요, 우리 팀장님 일 밖에 모르는 사람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후.

카지노가 있던 호텔의 수영장.

도박과 유흥은 빼 놓을 수 없는 만큼 아름다운 여인들도 빼 놓을 수 없는 법.

덕분에 호텔 수영장은 휘황찬란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고, 주변에 관광을 온 여인들 역시 해당 수영장을 사랑했다.

곳곳에 선녀들이 즐비한 곳에 검은색 딥 커팅 비키니를 입고 등장하는 독거미.

"브라보!"

김장원이 박수를 치며 그녀에게 환호를 보냈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리고, 독거미는 특유의 도도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 쓰지만, 입수 전 했던 샤워 때문인지 붉게 달아오르는 그녀의 얼굴은 감출 수 없었다.

"닥치세요."

"흐흐, 걱정하지 말아부쇼, 혜미씨한티 들이대는 넘들은 나가 확 조사불라니까. 커험."

냉수 풀에 몸을 밀어 넣은 독거미, 그리고 그녀의 곁에 꼭 붙어 앉은 김장원.

"떨어져 앉으시죠."

"어허, 우리 커플 아닙니까 커~플~"

분명 커플로 위장하긴 했었다.

독거미가 차갑게 '흥'하며 고개를 돌려 타켓인 첫째 돼지를 바라보았다.

"으따, 저 놈도 아주 권력에 잔뜩 취해부렀구마."

김장원의 말에 독거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비가 독재자인게 좋긴 좋은갑소. 저런놈 사로잡아서 우리 회장님은 뭘 하려고 그랄까요?"

독거미가 고개를 돌려 김장원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도 모르시나요?"

"잉? 혜미씨는 아요? 워따, 우리 회장님 나한티만 설명을 안 해 주셨남?"

"명분이죠, 명분."

"맹분?"

"김일정의 장남. 그것만큼 좋은 명분은 없으니까요."

< 제 29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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