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90화 (290/458)

< 제 290화. >

김은정이 씹듯이 뱉어내는 말들을 깔끔히 무시하고 사택으로 들어가는 김일정.

그는 아무것도,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5일 밤낮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격무에 시달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막내 도련님이, 옳게 배워 오셨습네다."

눈쌀을 찌푸린 김일정이 호위총국장을 바라본다.

"내레 들으라고 하는 말이가?"

"그렇잖습네까? 저리 훌륭하게 성장하실지 몰랐습네다."

"내 눈에는 멋 모르는 어린 아이 같아 보이는구만 기래."

"사상이 훌륭하지 않슴메? 인민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 고운 마음이 좋습네다."

"쯧쯧."

혀를차며 고개를 흔드는 김일정.

호위총국장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한다.

"인민들에게 느끼는 측은지심. 기딴건 밥을 맥여주디 않아! 우리가 먹고 살려면, 우리가 썩어지지 않을려면, 공화국에는 핵폭탄, 장거리 핵폭탄! 기기만 잊디 말라."

호위총국장이 아쉬운 눈초리로 김일정을 바라보았다.

"무력부에서... 또 예산 요청이 왔습네다."

"보내라, 어떻게든."

"그렇게 되믄... 함경도 일대에 배급이 끊길 겝니다."

"정신력으로 버텨야디, 아 새끼들이 더 좋은 곳에 살게 하고 싶으면은. 혁명뎍으로 생각하라 혁명뎍으로!"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반대의사를 보이고 있잖습네까? 이번 부쉬도, 푸틴도... 별로 좋아하디 않았습네다."

"흥, 경계 하는 것 아이갔네? 러시아도 결국에 중국에게 핵탄두를 주었다 이기야."

"고것은... 오래된 이야기가 아입네까?"

"기때도, 우리가 중국보다 먼저 들이댔다면 얘기는 달랐겠디."

어느새 호위총국장은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다.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본 김일정이 거칠게 신발을 벗어 던지고는 침대위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호위총국장."

"말씀하시라요, 최고 사령관 동무."

"기, 눈깔. 많이 보던 눈깔이구만 기래."

무감정한 목소리에 담긴 말 뜻을 알 길이 없어 호위총국장이 슬쩍 김일정의 눈치를 살폈다.

"변절자 아 새끼들이 꼭, 그런 눈깔을 했디."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서 날카롭게 변한 김일정은 계속해서 지난날 있었던 남조선의 일정에서 호위총국장을 비롯한 친위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이 협조한 게 아니라면, 감히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리고 그 사실을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던 호위총국장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리며 크게 말했다.

"아입네다!"

"아이여야지, 눈깔 똑바로 뜨라. 기 눈깔이 또 보이면은... 그대 명이 짧아져."

"아, 알갔습네다."

"나가서 일 보라, 사흘은 날 찾디 말라."

"예, 최고사령관 동무."

***

차갑게 돌아서서 제 할말만 하고 떠난 김일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은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리재형 동무!"

"말씀하시라요."

"내레 뭐 잘못했소?"

이재형은 고개를 저었다.

"왜 아바이 동무는 저리 꽁지를 빼고 사라지시요?"

"모르갔습네다."

"인민들은 한시가 다르게 말라가는데... 아바이 동무는 잠을 자겠다고 하시는 구만 기래."

"격무에 시달려 피곤하신 것이 아니갔습네까?"

"피곤? 잠이 쏟아져? 인민들의 걱정에 밤잠을 설쳐야 하지 않음메?"

"기것은 이상적인 생각이 아니갔습네까?"

"이상? 동무도 내가 이상에 빠진 개대가리로 보임메?"

"아입네다."

김은정이 쾅, 자신이 타고 온 차량의 타이어를 발로 차며 분을 삯혔다.

"동무가 말한 혁명. 그거이 뭐이요?"

이재형이 팔을 들어 주석궁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무께서 저 곳의 주인이 되는 것입네다."

팍, 인상을 찌푸린 김은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한참 남지 않았소? 못해도 20년은 필요할 게 아니오?"

싸늘하게 굳은 얼굴의 이재형이 김은정을 바라보았다.

"결정만 해주심메... 뜻을 함께할 동지들을 찾겠습네다."

김은정이 마구 떨리는 동공으로 이재형을 바라보았다.

"내레 제대로 들은 것이 맞소?"

"틀림없이 들으셨습네다."

"동무레 지금... 아바이 동무를 숙청하라 얘기하고 있슴메... 이 공화국 최고 지존을 말이오."

"아니면, 방법은 있습네까? 동무가 말하신 20년, 기다릴 수 있겠습네까?"

"......"

"20년 동안 썩어질 인민들을 생각해보시라요."

김은정이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김일정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귀찮아 했지만, 뭐가 되었든 자신의 아버지였고, 이 북조선자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존이었다.

패륜을 저지를 만큼, 아직 김은정의 머리는 여물지 못했다. 아비와 나눈 정이 있고, 현재 가지고 있는 욕심이 크지 않았다.

물론 그 욕심은 정권을 갖겠다는 것이 아닌, 인민들을 개혁시키고 혁명시키겠다는 욕심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님메... 다른 방법을 생각하시오."

"웃대가리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배를 곯던 아이들은 숨을 멈추디요... 시간이 흐를수록, 공화국에 아이들이 없어딜 것이고, 그것은 곧... 미래가 없음입네다."

"아니라고 하디 않소! 그거이... 그거이 방법이 될 순 없음메!"

'쯧'하고 혀를 찬 이재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법이라... 생각은 해보갔습네다."

"후우..."

품에서 담배를 꺼낸 김은정이 김일정이 들어간 사택을 바라보며 불을 붙였다.

그 사이 사택에서 나오는 호위총국장은 김은정에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직 안 가셨습네까?"

"아바이 동무께서는... 어째서 저러십네까?"

"남조선에서 일이 조금 있었습네다."

"일?"

"고저... 변덕 이디요."

고개를 갸웃거린 김은정.

호위총국장과 제법 오랜시간을 보냈지만, 그가 자신 앞에서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것을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었다.

"낯설구만 기래... 호위총국장께서 내게 그런 말을 다 하고."

"이제 저도 늙어가는게 아니갔습네까?"

"늙어 간다라..."

"최고사령관 동무께서는, 사흘간 아무도 찾지 말라 말씀하셨습네다. 오늘은 날이 아니니 돌아가시디요."

"사흘? 사흘이나 쉬시겠단 말입네까?"

"기렇습네다."

김은정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얘기하고 서둘러 김일정을 설득하고 싶었다. 어떻게는 인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그러고 나서 '후일'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안됩네다! 내 당장 아바이 동무를 뵈야겠시야요."

호위총국장이 튀어나가려는 김은정을 만류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심기가 불편하십네다... 정말 오늘은 날이 아니디요."

"그럼 내레 사흘이나 참으라는 말이오?"

"별 수 없디 않습네까... 최고 존엄이십네다."

"공화국의 아이들은, 사흘을 버틸 힘이 없소!"

입술을 깨문 호위총국장.

그도 직접 본 적도 있고, 또 보고를 받고 있으니 평양을 벗어난 인민들의 팍팍한 삶 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악착같이 평양에서, 당 지도부에서 버티고 있는 것 역시, 자신의 가족들이 그 팍팍한 삶을 경험하게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네다... 허락 할 수 없습네다."

"지금 날 막는 것입네까?"

"명령이니 따릅네다. 나는 공화국의 전사고, 공화국의 전사는 공화국의 최고사령관 동무의 말만 듣습네다."

"그 명이 달라졌다 이 말 아이오!"

"내게 달라질 건 없습네다."

"이익!"

김은정이 흥분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호위총국장을 날카롭게 쏘아 보았다.

호위총국장은 길을 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이어서 김일정의 친위대원들이 사택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디금부터, 사흘간. 최고사령관 동무의 허락없이는 모든 출입을 통제한다."

""예! 동무!""

김은정이 거칠게 호위총국장의 어깨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진정 이럴겝니까?"

"명령에 따릅네다. 그것이 내 숙명이야요."

까드득.

이를 짓 씹은 김은정.

호위총국장의 얼굴에서는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었다. 이내 김은정은 고개를 돌려 이재형을 바라보았다.

"아님메, 그래도 그것은 아님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이재형이 할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말을 뱉은 김은정.

그는 곧, 축 처진 어깨로 차량에 탑승했고, 이재형은 호위총국장에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예를 표하고는 김은정과 함께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위총국장의 입가에 씁쓸하지만 그래도 제법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가 걸렸다.

"기래도... 공화국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구만 기래... 부디, 장성하시야요."

***

SKY항공우주기술의 본사에 도착했다.

오늘 드디어, SKY가 개발하고, 직접 제작한 '항공기'가 완성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커다란 점보 여객기에 손을 올려 보았더니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내 말에 흐뭇하게 웃고 있는 연구원들과 개발팀, 그리고 SKY항공우주기술의 대표.

"1대 생산하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현재 CAPA는... 참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립니까?"

"아직은 숙달되지 않았으니, 최소한 3개월은 필요 할 것으로 보입니다."

"3개월이라... 그래도 준수하네요."

"고잉사의 생산라인을 참고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라는게 자동차와 다르게 '수작업'으로 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자동차와 비교했을때 그 크기부터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니 당연한 일이었으며, 우리가 개발한 SKY AIR - 자이언트 역시 일반 여객기와 다르게 점보 여객기 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고잉 747기라는 희대의 점보 여객기를 모티브로 개발을 했으니, 단점은 빼고 장점은 부각시키며, 우리 대한민국만의 아이덴티티를 담아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게 SKY AIR-자이언트다.

"이제 항공사를 만들면 되겠군요."

대표가 피식 웃었다.

여객 항공사가 없었을 뿐이지, 이미 SKY는 SKY AIR라는 항공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대부분 SKY LINE에 쓰이는 화물선이지만.

"아무래도, 그... 국적기 사업하는 양반 좀 만나야겠네요."

슬쩍 호석을 쳐다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 조양구 회장이랑 최태수 회장이랑 사이가 별로였죠?"

"예, 회장님."

"좋네요, 최태수 회장 좀 호출하죠."

"예, 바로 부르겠습니다."

"오늘 미팅은 여기 우리 자이언트의 퍼스트 클래스에서 해봅시다."

연구소장이 직원들에게 뭔가를 말하고는 내게 말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회장님."

"네."

연구소장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을 때, 나는 SKY항공우주기술의 대표에게 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넸다.

"금일봉입니다. 오늘은 진탕 마시고 노세요, 전 직원 3일 휴가까지 드리죠,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주말 까지 푹 쉬다 오시면 되겠네요."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대표.

"직원들이 아주 좋아하겠군요."

"다른 라인들도 걱정하지 말고 쉬세요, SKY항공우주기술 3일 쉰다고, 아무도 굶어죽지 않습니다."

"하하하, 예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앞장서서 걸었고, 대표는 얼른 무엇인가를 조작해 비행기의 문을 열었다.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내부로 들어가니 과연, '고급스럽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질 만큼, 퍼스트 클래스의 내부 인테리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좋네요, 돈 많은 사람들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겠어요."

대표가 '하하' 웃으며 한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퍼스트 클래스에 붙어있는 기내 '바' 테이블이었다.

뚝딱, 뚝딱. 조작을 하니 어느새 그럴듯한 원형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이런 기능도 숨어 있나 보군요."

"예, 회장님. 엔진 기술이 월등하다 할 수 없으니 다른 부분에서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확실히, 프리미엄급 여객기로 자리매김 하기에 좋은 아이디어 입니다."

"감사합니다."

"휴가가 끝나고, 계속 생산에 매진해주세요, 재고가 쌓일 걱정은 필요 없습니다. 바로 여객 사업을 시작할테니."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표가 사라지자 호석이 말했다.

"한잔 내올까요?"

"음, 좋죠?"

호석의 손짓에 장저민이 한눈에 반했던 바텐더가 나타났다.

"음? 같이 다니시나요 저분?"

"하하, 바텐더는 옵션이고, 우리 PMC의 대원입니다."

"아~ 오늘 근무시간이시구나."

"예, 이번주는 계속 같이 있을겁니다."

나는 잘 부탁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고,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기내 바를 훑어보았다.

"코드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예."

"말씀 해 보세요."

"김은정을 설득하는 중이나, 아직까지는 패륜을 걱정한다 합니다."

"확실히, 제 아비의 모가지를 치는 일은 쉽지 않겠죠. 마음이 다르니까."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김일정이 김은정의 간곡한 외침을 무시한다고 하더군요."

"흐음, 흔들린다라..."

"예."

"그럼 좀, 꼬셔 봐야겠네요. SKY이름으로 쌀이라도 보내 주세요, '남조선 아새끼들은 다르구만 기래'하게 끔 생각이 들게."

호석이 피식 웃으며 대원 중 하나에게 눈짓을 보내자 대원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아마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위함일 터.

"김일정이 잔뜩 쫄아있다가 돌아가서 다시 '패왕'짓거리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네요, 아들의 간청도 무시하고."

"예, 사흘간 외출을 자제하고 '휴식'에 전념한다 합니다."

"사흘이라... 그 시간 동안 김은정 계속 흔들면, 입질이 있겠는데요?"

"코드원 역시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최태수 회장 미팅 끝나고, 도곡동에서 머리좀 맞대 봅시다."

"예, 회장님."

< 제 29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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