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83화. >
솔직히 남자라는 동물들은 어쩔 수 없나보다.
처음에는 마지 못해 자리를 잡았지만 역시, 싫지는 않았다. 물론, 거의 헐 벗은 여인들이 날 수발하는 것이 지금 이 자리가 싫지 않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뭐라고?"
잔뜩 성이난 얼굴로 언성을 높이며 보좌관을 바라보는 장저민의 얼굴이 헐벗은 여인들의 부대낌보다 날 더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아까전 그러니까, 장저민 저 돼지새끼가 헐벗은 몸뚱이로 정사를 치르고 나와 허허롭게 웃던 그 웃음을 그대로 따라하며 물었다.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장저민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심기가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내고는 날 바라보다 '커험!'하며 헛기침을 내뱉고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오, 잠시 일이 있어서 그러니 그대 먼저 즐기고 계시오."
손목을 들어올려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 시간에 말입니까? 자정이 훌쩍 지났는데요?"
"커험, 국가의 정상이란 자리에 주야가 있겠소?"
지랄은.
난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껏 내 옆에서 아양을 떨며 낙지처럼 내 몸을 감싸오는 여인네들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장저민이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옆자리에서 거의 석상처럼 자리만 지키며 앉아있던 호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여인네들과 있기가 뻘쭘하니 그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셋째는 빨리 가져야겠습니다. 흠흠."
"하하하, 이런자리가 불편하십니까?"
"루시가 더 예쁘잖아요?"
"그건 맞죠. 인정합니다."
힐끗 저쪽 구석에서 뭔가를 심각하게 대화하고 있는 장저민과 보좌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대로 끝난 모양이에요?"
"보고 받은 회장님이 아주 좋아할 만큼 끝났을겁니다."
"이거 벌써 기대가 되네."
***
권총집에 아직 뜨거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권총을 갈무리 한 철웅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그의 부름을 받은 사내 하나가 얼른 방안을 가득채우고 있는 컴퓨터의 앞에 앉았다.
"뭔지 알겠어?"
"이거 벗어도 됩니까?"
"편하게 해, 어차피 다 처리했으니까."
"하하, 예. 철웅아재 진짜 무서븐 사람이었네요?"
피식 웃은 철웅 역시 복면을 벗었다. 이미 CCTV는 다 무력화 시킨 상황이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철웅을 따라 복면을 벗은 사내는 놀랍게도 SKY SOFT의 총괄 디렉터 철수였다.
"오랜만에 철수 네 능력좀 보자, 회장님이 인정하는 실력이니까 쉽겠지?"
"그럼요, 요즘에 천가키즈 교육만 시키느라 실전을 못나가서 찌뿌둥 했는데 잘 됐죠."
"그러니까 빨리 애들좀 키워봐라, 그러면 너 불려다닐 일도 없잖냐."
"에이, 저는 오히려 제가 나오고 싶은데요?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으면 진즉에 알려주셨어야죠? 하여튼 회장님도 너무해."
"네가 따로 건의 해 봐. 회장님은 너는 우리와 다른 족속으로 생각하시니까."
"그래요?"
철웅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에도 널 별로 안 쓰고 싶어 하시더라, 하여간 회장님도 정 한 번 주면, 격하게 아끼신다."
"오호, 회장님한테 개기던 과거의 나에게 쌍욕을 하고 싶어 지네요."
"잘해 그러니까 짜식아, 연봉도 어마어마 한 놈이."
철수가 으쓱이며 팔을 쭉 내밀어 손목을 이리 저리 꺾는다.
"그럼 실력 발휘 해 보겠습니다."
"오냐, 싹 털어버려라. 회장님이 1원도 남기지 말고 털라시더라, 장저민이 어지간히 꼴 봬기 싫으신 모양이야."
"그렇다면야."
타라라락, 타라라라라락.
미친듯이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하는 철수.
수학 천재였던 그를 단숨에 사로잡은 컴퓨터 언어는 어느새 그를 천재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세간의 평가였고, 천우진의 평가는 달랐다.
'미친 해커네.'
말 그대로 미친 실력을 자랑하는 보안전문가가 된 철수. 그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SKY 전자 등, 중요 보안시설에 온라인 침투를 감행하며 방화벽을 만드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알게 모르게 SKY SOFT의 보안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가 다 있었다.
미국 유수의 전자 기업들은 모두 SKY SOFT의 보안프로그램을 사용할 정도로 그 성능이 매우 뛰어났고, 그 프로그램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철수였다.
지금도 매일같이 업데이트를 위해 본인이 직접 프로그램을 침투하며 계속 변화시키고 있으니 다른 해커들은 감히 SKY의 보안시설에 접근을 꺼려하고 있었다.
오프라인. 그러니까 아날로그식 침투는 철웅과 호석이 담당하는 SKY시큐리티&PMC가 처리하고, 온라인. 디지털식 침투는 철수가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일은 매우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철수는, 오늘 이 작전에 자신이 투입되어서 기쁜 모양.
타라라락. 탁탁.
"찾았네요."
모니터를 툭툭 두들기는 철수.
철웅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벌써? 한 2분 지난 것 같은데?"
"에헤이, 대표님 날 뭘로 보시고? 총괄 디렉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대단히 촉망받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총괄 디.렉.터."
"그래그래, 너 잘났다."
"돈 많은데요? 이게 그, 국정원? 걔네들 활동자금 맞아요?"
"국정원 아니고 국가안전부, 중국은 그런 명칭이야."
"어쨌든, 와, 이 정도면 여기 중국 지부에 있는 SKY직원들 월급은 거뜬히 나오겠는데."
철웅이 쪽지 하나를 철수에게 내밀었다.
"저 돈이 옮겨질 최종 목적지야."
"몇번 우회시켜서 옮겨야겠죠?"
"수수료 20퍼센트 선에서만 처리 해, 그러면 추적하기 어려울테니까, 그 계좌 자체가 추적이 안 되겠지만."
"어디 계좌인데요?"
철웅이 웃으며 철수의 머리를 헝크러뜨린다.
"알면 다친다."
"와, 서운해. 설마 저 못 믿으시는 거?"
"일이나 해, 공안들 오기까지 5분 남았어."
"더 털어야죠? 국가안전부? 걔네가 전부는 아닐거 아니에요?"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고, 원래의 목적이니까."
"예."
타라라락.
타라라락.
바쁘게 키보드를 두들길때마다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던 중국의 정보부 운용자금이 이 은행, 저 은행을 거치다 종래에는 철웅이 알려준 계좌에 입금된다.
"예금주 명이 SKY 인베스트먼트네요?"
"어, 파나마 지부."
"와, 계좌 잔액 실화에요?"
"어차피 비밀번호 없으면 못 뽑는다. 일이나 해."
"회장님한테 보너스나 두둑하게 넣어 달라고 해야겠네, 이거뭐 손 벌린다는 말이 무색할 잔액인데요?"
"네가 달라면 1조 까지는 그냥 주실것도 같고?"
"헤엑, 그 큰돈을요?"
쉴새없이 수다를 떨면서도 철수는 계속 키보드를 두들겼다. 국가안전부의 운용자금 말고도, 다른 부처의 운용자금들을 쉴새없이 은행 여러곳을 들려 파나마 지부의 SKY인베스트먼트 계좌에 넣고 있었다.
말 그대로 중국이 제대로 털리고 있는 중이었다.
디지털 사회의 장점이자. 폐해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타라라락, 타라라라락.
키보드를 두들기다 두들기다 고개를 젓는 철수.
"이제 더 없는데요? 주석궁이라도 털어야 될 거 같은데요?"
슬쩍 시계를 확인한 철웅이 철수에게 물었다.
"주석궁 털면 더 있을것 같고?"
"여기 독재자들 사는데니까. 뭔가 꽁쳐둔게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걸리는데?"
"보자... 보안 최고등급회선이니까 한 5분?"
"쯧..."
짧은 고민을 하는 철웅.
아직 철웅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철수는 시간을 아끼고자 일단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철웅은 대원 하나를 불러 묻는다.
"공안들과 전투를 가정하고, 퇴로 미리 만들어 놔."
"시간이 더 필요하신 겁니까?"
"그럴 것 같다."
"알겠습니다."
"공안 도착하면 병력규모부터 파악해서 보고 해."
"예."
거의 키보드와 한 몸이 되듯 두들기고 있는 철수를 방해하지 않는 철웅.
이제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본래의 목적은 달성한지가 오래였다. 그러나 작전 실행 바로 전에 천우진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엿 한 번 먹입시다. 제대로.'
짧은 명령이었지만 철웅은 그것을 최대한 많은 것을, 가능하다면 모든것을 털어버리란 뜻으로 이해했고, 철수가 가능하다 하니. 그도 철수를 지킬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강구했을 뿐이었다.
"어째 일이 커지는 것도 같고."
철웅의 혼잣말에 철수가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피식 웃는다.
"회장님이랑 일 하면서 한 두번도 아니고, 그러려니 하셔야죠?"
철수의 말에 철웅역시 피식 웃어버렸다.
"그것도 그래, 그치?"
"오케이, 주석궁 내부 진입완료."
"장저민 비자금 위주로 찾아 봐, 독제하는 놈들이 대게 뒷구녕을 마련해 놓는 법이니까."
"옙."
"가능하면 우리나라에 심어 둔 스파이들이나 해외에 심어둔 스파이들도 찾아봐라."
철수가 자신이 보고 있는 모니터 말고, 바로 옆 모니터를 툭툭 두들겼다.
"그건 벌써 여기 있죠."
철웅이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확인하니 전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의 스파이 명단이 쫘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철웅은 재빠르게 USB를 꽂아 그 자료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근데 대표님."
"어."
"이 정도면 중국 망하는 거 아닌가요?"
철수의 질문에 철웅도 긴가민가 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망하나?"
"우리 엄청 큰일을 엄청 쉽게 하고 있는 느낌인데요."
"회장님이랑 일 하면서 그런게 하루 이틀이냐, 그냥 하자."
"크큭, 예. 장저민 주석 비자금 확보 했습니다."
"옮겨 그럼."
"옙."
USB에 데이터가 모두 이동되는 순간, 다시 등장한 대원 하나.
"공안이 도착했습니다."
"규모는?"
"순찰차 세대가 전부입니다."
"뭐?"
고개를 갸웃거리는 철웅.
예상했던 규모는 대대급 병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국가시설이 털리는데 순찰차 세대?"
"여기 모르는 것 같습니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철웅이 말했다.
"그 정도면 들여보내고, 총 쓰지 마."
"예, 재우겠습니다."
의도치 않게 시간이 널널해진 상황.
철웅이 철수를 바라보았다.
"뭐 더 있나 뒤져 봐."
"오호, 하늘이 돕나?"
"그러게 말이다."
"이상하게 회장님이 꾸미는 일에는 항상 행운이 따르는 것 같지 않아요 대표님?"
철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천우진의 계획들이 대단한 것도 맞지만, 이상하리만치 천운이 따르는 것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PMC 정보부는 천우진이 지시하는 그 어떤 것이든 찰떡같이 믿는다.
요즘은 천우진이 '난 신이다.'해도 '오오 그럴줄 알았어!'하고 믿을 것 처럼 광신도들도 등장하고 있는 추세였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회장님이 실패를 모르잖아요? 난 그게 신기하던데, 진짜 난다긴다 하는 천재들도 실패를 하던데 회장님은 안 하더라고요."
"그런가?"
"하긴, 그 정도 되니까 우리 회장님이지."
철수가 철웅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순박하고 풋풋하던 중학생 철수의 얼굴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뭐 나온 거 없냐?"
"보좌관 컴퓨터에서 이상한거 나왔어요."
"뭔데."
"동영상인데, 아무래도 이거 재미있는 거 맞는 것 같은데요?"
"재생 시킬 수 있어?"
"예."
"해 봐."
철수가 키보드를 조금 두드리자 곧, 모니터 가득 남녀가 부등켜 안고 있는 동영상이 실행되었다.
그리고 철수와 철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와 미친."
그리곤 동시에 같은 말을 뱉었다.
"난리나겠는데."
"난리나겠는데요."
철웅이 불쑥 철수에게 USB를 내밀었다.
"챙겨."
"옙!"
어쩐지 철웅은 자신이 모시는 회장 천우진이, 파나마의 계좌로 송금된 돈 보다 이 동영상을 더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완전히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장저민이 여인네들에게 거의 파묻혀 있는 내게 다가왔다.
"천 회장, 이만 일이 있어 자리를 파해야겠소."
나느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어쩔 수 없죠, 안 그래도 피곤했습니다."
"커험... 다음에 봅시다."
"예, 그러죠."
엉덩이에 불이라도 난 듯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돼지새끼를 보자니 씰룩씰룩 입꼬리가 춤을 추었다.
"어우야... 표정관리 빡세네."
호석이 피식 웃으며 내 몸에 낙지처럼 달라붙은 여인네들을 떼어낸다.
"가시죠 회장님."
"예."
"철웅이가 아주 좋은 걸 주워왔다고 합니다."
"오, 그래요?"
"예."
"호오,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니 궁금하긴 하네요."
"얼른 가시죠."
< 제 28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