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81화. >
오랜만에 내 전용기에 사람이 가득 찼다.
평소라면 나와 호석, 그리고 날 경호하는 경호팀 20명 정도가 전부이지만, 오늘은 그 외에 30명 정도가 더 탑승했다.
덕분에 늘 편안하게 일을 하던 승무원들이 바빴다.
승무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조만간 항공사 하나를 인수하거나 차려야지 싶었다. 이제 슬슬 SKY 항공우주기술에서도 항공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고잉사의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
"시간 더 줄 필요 있습니까? 빠르게 처리하죠, 지금은 우리가 건넨 가짜 USB로 이목이 쏠려 있지만 곧 눈치채고 다시 SKY를 기웃거릴테니까."
"예, 회장님."
나는 중국 SKY 공장을 철수 시킬 마음이 없었다. 유라시아 횡단철도는 그저 허황된 계획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실행시킬 중요한 계획중 하나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중국을 볶아 먹어야겠지만, 그것은 차근차근 진행 될 예정이었다.
당장 북한만 어떻게 해도 충분히 5년 안에, 중국 내륙을 철로로 움직일 수 있는 횡단철도는 깔 수 있을테다.
중국인들의 빨리 짓기 신공이야 익히 유명하니까, 거기에 관리감독을 SKY 건설이 나선다면 안심이다. 인력이 남아도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그 정도 국책사업이면 제법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테다. 가끔 양꼬치 같은 것도 먹고.
어쨌든, 유라시아 횡단철도가 생기더라도, 한국 공장에서 움직이는 것 보다 중국, 동남아 등등. 각지에서 공장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것이 유통마진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기도 했으며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당연히 한국보다 인건비가 싸기에 가능한 일.
물론, 그렇다고 그들에게만 일감을 몰아줘서는 안된다. 핵심 기술, 핵심 개발 등은 한국에서 진행해야 하며, 서비스. 그러니까 고객응대등과 같은 것은 당연히 한국에서 진행해야 했다. 개도국이나 중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 안에 보이는 서비스를 진행해야 항상 원할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 타국가의 인건비가 싸다고 그들만 쓴다면, 한국의 경제 상황이 위태롭게 변하고, 그것은 종래에 SKY에게도 타격을 미치게 되어 있었다. 돈이 없으면 물건을 못사고 물건을 못팔면 회사는 망한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고회로니까 어느 정도 적절한 선을 유지해야 한단 소리다.
"그래서, 작전 계획은 완벽하게 세웠나요?"
"미리 중국에 들어가 있는 대원들이 이미 해당 건물의 동선과 경계인원등을 파악 해 둔 상태입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진입 가능합니다."
"그쪽을 치면 확실히, 우리가 원하는 계좌가 있겠죠?"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케이, 장저민 뚜껑 열리게 한 번 해봅시다."
"하하, 예."
"오늘 밤은 푹 쉬라고 해 두세요, 나만 따로 움직여서 장저민 만나고 오는 방향으로 가죠."
"예, 회장님."
***
덜덜덜 굉음을 내며 떨리는 트럭 위에 오른 김은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재형을 바라보았다.
"이 지긋지긋한 탄광도 끝이구만 기래."
잔뜩 그을음이 낀 얼굴로 해방감을 토로하는 김은정의 모습은 이제는 완전히 북한 최고지도자의 아들이라는 느낌은 사라져 있었다.
"다음은 어디네?"
김은정의 질문에 피식 웃음을 흘리는 이재형.
"이번엔 수용소로 갑네다."
"수용소?"
"게 중에서도 가장 드세다는 정치범 수용소입네다."
"하... 또 진절머리가 나갔구만 기래... 어디서 한 사나흘 쉬고 가디 동무."
이재형이 무감정한 눈으로 김은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민들은 배고픔에 굶주리다 굶어 죽기를 반복하고 있디요."
김은정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다.
"후... 동무레 마음대로 하라."
"예, 동무."
"내레 어쩌자고 동무와 움딕였는디... 후회가 되는구만 기래."
"동무께서 원하던 것 아니었음메?"
"기리니까 조용히 있디 않네?"
픽 웃음을 흘린 이재형이 김은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곳 탄광에서 2개월은 어땠습네까?"
"지옥이었디."
"인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것 같습네까?"
"후우... 평양과는 천지차이디."
"이거이 공평함을 외치는 우리 공화국의 현실입네다."
김은정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조심하라. 듣기에 따라 반동분자가 될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십네까?"
"후우..."
"내레 동무가 이렇게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으면, 함께 하디 않았어."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디 않습네까?"
"그러니 조용히 있디 않네? 피곤하구만, 동무도 눈이나 붙이라."
이재형이 피식 웃으며 김은정에게 물었다.
"이제 이런 차에서 잠도 잘 수 있습네까?"
"눈만 감을 수 있으면 천국이라고 어떤 동무가 그러더군."
"그렇습네까?"
"영영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는 세상에, 내일이 있다는게 천국이 아니면 뭐냐고 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디."
이재형이 고개를 돌려 눈을 감으며 작게 읊조렸다.
"그런 공화국이 옳습네까?"
"그만하라. 내레 아딕 동무레 모가지 하나쯤은 날릴 수 있으니."
"알갔습네다."
이재형은 완전히 눈을 감고 잠에 들기 전.
이제는 김은정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대계가 멀지 않았어."
이재형의 혼잣말은 작았기에 트럭의 커다란 소음에 묻혀 누구도 듣지 못했다.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고 있는 김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
장저민이 유유자적한 얼굴로 내게 천천히 걸어온다.
특유의 팔자걸음에서 오만함이 잔뜩 느껴졌다.
"허허, 자주 보는뵙소이다."
"그러게요, 어쩌다보니 자주 뵙네요."
돼지 같은 놈이 내가 준 가짜 정보가 진짜인줄 알고 신이 난 모양이다.
"커험험, SKY전자는 문제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요, SKY는 항상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게 움직이지요."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웃음을 짓는 장저민.
"그렇다면야 다행입니다."
속으로 날 놀리고 있을 장저민을 생각하니 웃음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주한 중국 대사가 우리쪽에 돈을 빌리고 행적을 감췄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괜히 나를 건드리려 하던 장저민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커험, 그런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뭐, 아시겠지만 원래 내가 고리를 했었습니다."
"그렇지요, 지금 한국의 대통령께서 천 회장의 조부가 아니오?"
"맞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주한 중국 대사가 꿀꺽한 돈이, 내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아, 그대가 쩐주이셨군."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홀짝였다.
장저민이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것은 바로 지급해주라 일렀으니 너무 심려치 않아도 되오, 우리가 대국의 자존심이 있지 설마 소국에게 내준 채무를 이행하지 않겠소이까?"
감히 내 앞에서 대국이 어떻고 소국이 어떻고를 지껄인다. 중국 놈들이 워낙 '대국의 자존심'을 씨부리는 것을 알고 있으니 크게 개의치 않고는 말했다.
"오호,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알고 계십니까?"
"이자?"
"일반 금융업체와 다르게 고리는 이자가 센 편이지요."
"하하, 지금 천 회장께서 내게 이자를 내 놓으라 하고 싶어서 오셨소이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설마 그것만이 목적이겠습니까? 겨우 한화 20억에 대한 이자가 얼마나 된다고요, 주석께서 코웃음을 칠 금액이 아니겠습니까."
띄어 주니 좋다고 헤벌쭉 웃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장저민.
"그렇지요, 이자라. 그래 얼마입니까? 대국이 채무를 저 버릴 순 없으니 바로 지급 해드리리다."
"그렇습니까?"
"그럼요, 남아일언중천금이 아니겠소."
"얼마 안 됩니다. 7억2천이 조금 넘는데, 우수리떼고 7억만 받아가지요."
"20억을 빌리고 두달 쯤 되었는데 7억이라."
"원래 고리가 비싸지 않습니까?"
"커험... 알겠소, 곧 20억을 입금했던 계좌로 넣어드리리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받아야겠습니다. 내가 이쪽으로는 확실하게 처리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까드득.
제 놈이 먼저 대국의 자존심을 씨부렸으니 거절하긴 어려울테다. 내가 완강하게 요청하니 들어주기야 하겠지만 기분이 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 딴에는 내가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기를 바랬겠지만 내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나는 장저민에게 아쉬운게 없으니까.
뒤쪽으로 거칠게 손짓하는 장저민.
그에 보좌관이 발소리 없이 후다닥 달려와 고개를 푹 숙인다.
"저번에 주한 중국 대사에게 돈을 빌려줬다던 그 계좌로, 한화 7억 송금시켜 바로."
"예, 각하!"
"대외 활동 하는 간부들에게 알려, 앞으로 채무 관계에 신경 쓰라고."
"예!"
됐냐는 듯 날 바라보는 장저민.
난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SKY가 사막에서 무엇을 하나 궁금했는데 행여나 그것이 헛짓은 아닐까 싶더이다."
한 방 먹었으니 또 한 방 날리고 싶은 모양이다. 굳이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에 있는 SKY 지부들을 거론한다.
"글쎄요? 우리 SKY의 직원들이 워낙 유능한 터라. 이유 없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만."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무엇을 하나 궁금해 한 번 확인해 봤습니다만, 태양광 발전을 하고 있더군요."
"아, 맞습니다. 사막만큼 태양광 발전 효율이 좋은 곳은 없을테니까요."
"그 얼마 안되는 전기를 모아서 물을 사더니 모래 위에 뿌리더이다."
"오, 그렇습니까?"
히죽 웃은 장저민이 그것도 몰랐냐는 듯 날 놀리려는 눈깔을 하고는 바라본다.
"다 이유가 있겠지요, 흐음, 모래바람을 줄여 태양광 발전에 도움이 되려는 행위가 아닐까요?"
"오호라, 그런 깊은 뜻이 있는 행동이었다라."
"애초에 목적은 태양광 발전에 대한 '연구'이니까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효율을 높이고 완벽한 '대체' 에너지원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게 그들의 과제입니다."
"거기에 요즘 부쩍 이슈가 되는 환경문제까지 해결하고요?"
"SKY는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큰 기업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기업이 이미지가 좋아야 하지요, 가령 친환경 기업과 같은. 그래야 글로벌한 그룹사의 이미지에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뻘짓을 숨기기위해 별 시덥잖은 짓거리를 한다라고 생각하는게 여기서도 훤히 보였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 제 놈의 잣대가 고작 그 정도 수준인 것이다.
SKY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글로벌 그룹사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라클' 그러니까 '기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사막을 다시 울창한 숲으로 만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미라클'이라는 수식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다는게 내 판단이고, 나만의 마케팅 방법이다. 세상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지 모르는 미친짓을 해야 크게 성장하는 법이다.
남들과는 다른 사고, 남들과는 다른 생각.
그런것들이 세상을 바꾸고 남보다 앞서가는 법이다.
"흠,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이자때문은 아닐테고, 뭐가 더 있소이까?"
"아직 북한 후계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것 같아 뵙고자 했습니다."
"아아, 그 문제."
"유라시아 횡단 철도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현 북조선의 수장이 멀쩡한데 굳이 후계문제를 집중할 필요가 있겠소?"
"얼마 전 공식석상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적이 있습니다. 김일정이 말이죠."
"그랬지."
"그의 건강 문제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저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바라본다.
마치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한 표정.
"행여나 변고가 있을시에, 우리 입맛에 맞는 지도자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럴일은 없지 않겠소?"
"글쎄요, 세상 일은 모르는 게 아닙니까?"
< 제 28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