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80화. >
지부장이라는 놈에게 모든 정보를 얻기까지 많은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정보 계통에서 일을 하는 놈인 만큼 눈치가 빨라서 일까. 어차피 제 놈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술술 불어 놓고 담배를 비벼 끄며 내게 말했다.
"약속했던 것 처럼... 내 가족들은 반드시 챙겨주리라 믿지."
"물론이지.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야."
고개르 끄덕이며 눈을 감는 놈.
이제 다가올 최후를 담담히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힐끗 호석을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이리저리 손짓하니 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바닥에 비닐을 깔기 시작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뒤 돌아 걷기 시작했고 그런 내 곁에 호석이 바짝 따라 붙는다.
"정보 검토 해야죠?"
"예, 회장님.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저 놈이 말한 상부쪽에 적당한 USB하나 던져주세요."
"거짓 정보를 흘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일단은 뭔가 성과가 있어야 계속 유지할 거 아닙니까?"
"예, 알겠습니다."
"속도전이 중요할 것 같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보자고요, 내 소중한 이자들이 어디로 세어나가면 안되니까."
"하하, 예. 진행하겠습니다."
완전히 창고를 벗어날 즘.
퉁. 퉁.
소음기를 통한 권총 격발음 두 발이 들려왔다.
감히 SKY를 건드리려 했던 두 인생이 끝나는 소리였다.
"쯧."
입맛이 씁쓸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호석이 먼저 말을 뱉었다.
"우선 우리쪽에서 먼저 둘의 가족에게 접근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적절하게 보상하시고. 1억은 좀 작고, 두당 3억쯤 주세요."
"예, 회장님."
"중국에서 3억이면 큰 돈이죠?"
"예, 우리나라에서 15억쯤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괜찮네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며칠이나 걸릴 것 같아요?"
호석이 힐끗 시계를 확인하고는 답했다.
"72시간 안에 작전수립 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럼 그 안에는 몇개 골랐던 인물들 있죠?"
"예, 산업스파이 의심인물들이요."
"그 놈들 제대로 파 봅시다. 처리할 거 처리하고 건너가자고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되니까."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죠."
"예."
***
장저민의 보좌관이 한껏 뿌듯한 표정으로 차를 음미하고 있는 장저민에게 품에서 꺼낸 USB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뭐지?"
"각하께서 원하시던 물건입니다."
"내가 원했다?"
"SKY전자에서 가져온 물건입니다."
"호오."
SKY가 언급되자 반응을 보이는 장저민.
"전문가들이 검토는 했나?"
"지금 보고를 위해 각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예!"
한껏 기분이 좋아진 장저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보좌관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힘차게 말했다.
"안내 해, 과연 어떤 보고들을 할지 기대가 되는 군."
"예! 각하."
장저민이 회의실 내부로 들어서자 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내들이 예를 차렸다.
"됐어, 됐어. 바로 시작하지."
성격이 급한 장저민의 말에 빠르게 정리된 내부. 보좌관이 장저민에게서 다시 USB를 받아 컴퓨터에 연결시킨 뒤 그들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 USB에 담긴 설계도면을 보면 반도체 회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왼쪽 상단에 적혀있는 코드를 해석했을 때, 이 회로도는 SKY 휴대폰의 메인 CPU임을 알 수 있습니다."
"CPU? 그건 컴퓨터에나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
"맞습니다. 하지만 SKY는 특이하게도 휴대폰에도 중앙처리장치를 삽입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미래의 미래를 위한 준비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오, 그래서 그렇게 빠르고 성능이 좋았나 보군."
"예, 단순 메모리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타기기에 비해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머리를 긁적인 장저민이 슬쩍 보좌관을 보며 눈치를 준다. 이런저런 어려운 얘기는 생략하고 본론만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뜻.
"자, 자, 각하의 일정이 바쁘므로, 짧게 요약해서 중요한 것만 말씀하세요, 나머지는 여기 계신 전문가들이 분석을 하시고."
보좌관의 말에 앞에 서서 브리핑을 하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쨌든, 이 회로도를 토대로 시제품을 완성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만약, 이게 현재 생산되고 있는 SKY의 제품의 반도체 회로도가 맞다면."
"맞다면?"
"우리 역시,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당장 SKY와 같은 품질을 만들어낼 순 없습니다. 핵심 반도체를 갖게 만든다 해도 내외부, 그리고 디스플레이까지 산재한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핵심을 알아 왔으니 나머지 부품들은 분해 후, 재설계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을때 6개월 이내에 완벽한 동급의 제품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장저민이 탕! 하고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바로 진행해! 자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이 없어!"
"예! 각하!"
흐뭇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사내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IT시장 청사진이 가득해 보였다.
"뭣들하고 있어? 빨리 나가서 일 봐! 하루가 급해!"
장저민의 축객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급히 바깥으로 나서는 사내들. 그런 사내들의 뒤통수를 장저민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보좌관에게 말했다.
"SKY공장들이 철수 할 날이 머지 않았구만."
"만약 우리 연구진들이 SKY의 제품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면, SKY를 내쫒고 그들의 공장설비를 그대로 사용하면 바로 양산까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오호라, 그거 좋군! 초기 투자비용이 확연하게 줄겠어."
"국책 사업 느낌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경영인이 필요치 않을까 싶습니다."
장저민이 피식 웃으며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적당한 인물이 있나?"
보좌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지만, 그의 성과가 있으니 모른척 해주는 장저민.
보좌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예! 각하, 제가 인물들을 추려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래그래,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향이를 오라고 해, 오랜만에 귀를 간지럽히는 가락이나 들어야겠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겨우 하루를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는 핑계로 루시에게 갖은 구박을 당하며 열심히 아이들을 케어했다.
"루시, 아이들은 전문가 손에 크는게 제일 좋데."
침대맡에 누워 입을 떼자 마자 루시가 콧방귀를 뀌며 등을 돌려 눞는다.
"지금 돌아 누운거야?"
"자야 돼, 새벽에 애들 깬단 말이야."
"이모님들 계시잖아, 잘때는 좀 푹 자."
"애들이 엄마 품을 찾아서 그게 잘 안 돼."
"안 되더라도 계속 해야지, 그래야 버릇들어. 좀 독하게 마음 먹어도 돼."
"태양이 별이 눈을 보고 그런 말 할 수 있겠어? 나보다 더 팔불출이면서."
"음, 그건 인정."
정말이지 자식새끼들이 이렇게 예쁘다는 건 낳아봐야만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우는 소리만 들어도 절로 눈쌀을 찌푸리던 내가 이렇게 바뀔줄은 몰랐다.
-으아아앙!
멀리서 들리는 태양이 놈의 울음소리.
녀석, 누굴 닮아서 이렇게 목청이 좋을까 싶다.
벌떡 일어나는 루시의 어깨춤을 잡아 목에 키스를 해주고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애들 볼게, 편히 자."
"웬일이래."
"조만간 또 중국 출장 있거든."
"또? 당분간은 안 된다니까?"
-으아아아앙!
"읏차, 우리 태양이 저러다 숨 넘어가겠다."
"안 된다 그랬어!"
"태양아 기다려라 아빠가 간다~"
"천우..."
더 말을 하려는 루시의 입술을 입술로 막아버리고는 부리나케 아이들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안고 얼러주고 있는 이모님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들어 얼러주었다.
"아이고, 회장님 주무셔도 되는데요."
"하하, 아닙니다. 이모님들도 쉬셔야죠."
"어첨, 마음씨도 고우시지... 하긴, 회장님, 사모님 마음씨가 고우시니 아이들 얼굴도 이렇게 곱지요, 제가 여태껏 본 아이들 중에 얼굴로는 으뜸이라니까요?"
"하하, 그래요?"
"그럼요~ 연예인 해도 되겠다니까요?"
"그럼 어떻게 이참에 우리 SKY광고 우리 새끼들이 하라고 할까요?"
"어머머, 매출 엄청 오르겠네."
"하하하."
"호호호."
이모님들과 정답게 수다를 떨다 보니 다시 새액, 새액 잠에 빠진 태양이.
나는 조심스럽게 태양이를 침대에 눕히고는 이모님들과 눈인사를 나누고는 아이들 방에서 나왔다.
야심한 시각인데 어쩐지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무시무시한 잔소리가 날아들까 걱정되기 때문.
발코니에 나가 한가롭게 별을 바라보며 위스키를 홀짝이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회장님."
"어? 정 대표님 퇴근 안 했어요?"
"하하하..."
멋쩍게 웃는 호석.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야, 오늘은 또 뭐가 드시고 싶으시다는데요? 숙모도 너무하지 매번 새벽에."
"쩝... 먹덪인지 뭔지 진짜 후..."
"우리 집으로 오신 거 보니, 과일 종류가 드시고 싶으신가 보네요."
"예..."
"뭔데요?"
"애플망고가 드시고 싶답니다."
"와,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물건이네요."
"하하, 회장님 댁에는 있지요."
맞다.
얼마전 장인어른께서 손수, 국제택배로 붙인 애플망고가 분명 있었다.
"우리 숙모 입맛도 고급이시네."
"딸내미가 아니기만 해 봐라..."
"하하, 딸이 가지고 싶으신가 봐요?"
"아들 놈들은 지긋지긋 합니다."
"인정, 태양이 목청때문에 저도 아주 죽겠습니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드는 호석.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루시가 죽이려고 해요."
"쯧..."
"그러니까, 출장 날짜나 빨리 뽑아보세요, 시가나 진득하게 태우게."
"예, 정보부 아이들을 좀 다그쳐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중국에 USB는 넘어갔죠?"
"예, 장저민이 잔뜩 신이나서 기생들을 불렀다고 합니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꼴이라니."
"신설된 부서가 있다는데, 아마 그곳에서 해당 USB를 통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나 걸리겠어요?"
"그래도 전문가들이 붙었으니 2개월 이내에는 답이 나오지 싶습니다."
"기간은 넉넉 하네요?"
"특별히 SKY 전자 메인 팀이 달라 붙은 일입니다. 허술하게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놀랐다.
그렇게 심도 있게 만들었다면, 오히려 중국의 기술력을 높혀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
"아, 걱정하실 일은 없을것이라고 연구소장에게 확답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퇴보하면 퇴보했지, 진보하지는 못할 거랍니다. 차라리 역설계를 하는 것이 더욱 빠를 거라고 하더군요."
"이야, 심혈을 기울여서 짝퉁을 만들었나보네요."
"예, 그렇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우리가 이자만 받아내면 되겠네요."
"예, 건네받은 정보 파악은 끝났고, 이제 작전만 수립하면 됩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중국에 다녀온지 이제 이틀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본래 얘기했던 72시간보다 조금 빠른 상황.
"내일 오후에는 갈 수 있겠는데요?"
"커험... 최대한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내가 아니라 정호석 역시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요, 이 육아지옥에서 얼른 벗어나봅시다."
"예!"
호기로운 대답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애플망고는 펜트리에 있습니다. 잘 익었나 확인하고 가져가세요."
"...예."
금세 풀이 죽는 모습이 웃음이 터져나온다.
"자, 그럼 내일은 늦게 출근하는 걸로 하죠? 오후에 출국일정으로 출근하는 걸로."
"으음... 저는 먼저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이 더 편할 정도로.
집에 있기가 싫은 모양이다.
< 제 28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