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79화 (279/458)

< 제 279화. >

초췌한 모습의 왕소연이 알려주는 정보를 차근차근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교차정리하는 정호석.

'어디에 있냐.', '주소가 뭐냐', '위치가 어디냐'와 같이,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단어를 다르게 하며 계속 왕소연의 정신력을 갉아 먹는다.

애초에 완전하게 굴복한 것 처럼 보이던 왕소연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를 방지하고자 하는 호석의 집착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회장님, 확실 한 것 같습니다."

여러번의 교차검증이 끝나고 왕소연이 말한 정보를 이제 확인만 하면 될 차례.

"시간 길게 끌 것 있습니까? 빠르게 치고 들어가죠, 오히려 그게 놈들에게 변수로 작용할 겁니다."

내 말에 호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놈들은 중국땅에서 감히 자신들을 공격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겠죠."

"정보처 블랙들의 특성을 파고 들자고요, 빠르게 대응할 수 없도록."

각 국가의 블랙 요원들은 화이트 요원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폐쇄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각국 정보부처의 수장급이 아니면 그들의 존재까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고, 경찰이나 공안등의 협조를 받기도 어려운 특징이 있고, 나는 그것을 파고 들 생각이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놈들 역시 만만의 준비를 갖추겠으나 시간의 여유를 빼앗는다면 대처가 불가능 할 테다. 또, '블랙'들 끼리도 유기적으로 연동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용하면 지금 왕소연이 우리에게 잡혀 있는 것을 꿈에도 모를 터.

"왕소연."

"마, 말씀하세요."

"네 복귀 시간이 언제였어?"

"......"

대답하지 못하는 왕소연.

애초에 복귀 시간 역시 정해져 있지 않은게 분명했다.

"바로 들어가도 되겠네요, 왕소연이 말한 주소 주변 훑어보고 바로 작전 들어가죠."

"예, 회장님 바로 대원들 몇 파견시키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왕소연을 불렀다.

"이봐."

"네, 네."

"무기 창고 따로 있지?"

그래도 나름 블랙 요원들의 지부를 터는 일인데 놈들의 무장 상태를 의심해 볼 필요는 있었다.

놈들은 분명 최소한 권총은 소지했을 터. 그런데 우리 대원들은 맨몸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이, 있습니다."

"주소 불러, 가져오게."

"권총 세 자루가 전부입니다."

호석을 바라보니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

"그거면 충분하다는 군."

다른 대원 하나가 빠르게 왕소연에게 접근해 주소를 받아 적고는 사라진다.

"얼마나 걸리겠어요?"

호석이 손목을 들어올려 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약 2시간 후, am 03시에 시작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시간대도 적당 하네요."

"잠시 눈 붙이시죠, 1시간 30분 뒤에 출발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죠."

호석이 슬쩍 왕소연을 바라보고는 다시 날 바라보았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정보가 확실하다면. 천가의 자비는 없으니까."

"예, 회장님."

"정보가 틀렸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겠죠?"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예."

***

모든 대도시는 이면적인 느낌이 있다.

한 곳이 휘황찬란하게 발전된 현대의 시대상을 보여준다면 다른 한 곳은 낙후된 시설과 한 눈에 보아도 더러워 보이는 길거리, 그리고 감히 홀로는 걷기에 두려워 보일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풍광을 가진 빈민가.

이런 빈민가에는 공권력의 손이 잘 뻗지 못하는 법이다. 해서, 블랙 요원들은 이런 곳을 좋아하나 싶을 정도로. 누구나 쉽게 예상하지만 들어오기 어려운, 뭐 그런 느낌의 동네에 왕소연이 알려준 주소가 위치해 있었다.

탁.

차에서 내리자 마자 들숨에 악취가 진동을 한다.

하긴, 전 삶 마지막까지 중국인들은 노상에서 대소변을 보는 일이 흔한 일이었으니, 지금의 시대상에서는 오죽 할까. 게다가 빈민가에 와 있으니 길바닥이 말 그대로 똥 오줌 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휴."

한숨을 내 뱉으며 왕소연이 알려준 건물을 바라보았다.

"저기에요?"

"예, 회장님."

"냄새가 짜증나니까, 빠르게 처리 합시다. 준비는 끝났죠?"

"돌입 후, 4분 안에 정리 될 겁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빠르게 작전을 진행시킬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치안이 불안정한 빈민가 답게 주변을 거니는 행인은 커녕, 길 고양이나 하다 못해 곤충도 눈에 보이지 않는 특이한 환경 덕분이었다.

제 놈들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선택한 빈민가가 오히려 제 놈들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주는 셈.

"진입."

호석의 무전에 허름한 3층 주택의 창 안으로 번쩍번쩍 불빛들이 요란스럽다.

툭, 툭. 텅, 쨍그랑.

요란한 소리는 덤.

아마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의 격발음과 피탄음, 그리고 몸싸움으로 인한 소음일테다.

번쩍이는 불빛은 총구에서 뿜어지는 것일테고.

"금고 같은 거 있으면 싹 털어 오라고 하시고, SKY건설에서 창고 섭외 했죠?"

"예, 전자의 창고는 보안이 삼엄해서 패스했고, 건설사의 창고를 빌렸습니다."

"그리로 싹다 옮겨 오는 것으로."

"예, 회장님."

어느새 건물 안에서는 불빛이나 소음이 터져나오지 않았다.

"대충 끝난 것 같네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석의 무전기에 속속들이 보고가 도착했다.

-치익, 1팀 클리어.

-치익, 2팀 클리어.

-치익, 3팀 클리어.

-치익, 지원 클리어.

"호, 호. 본부 진입한다."

호석의 무전에 나와 호석의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빠르게 정면으로 진입한다.

"먼저 움직이시죠 회장님."

"그러죠."

상하이 공단 지역에서 대원들이 가져온 금고를 열심히 열고 있는 사이, 묶여있는 장발의 남성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들어 날 확인한 남성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처, 천우진?"

"왜 놀라고 그래? 감히 내 회사에 장난질 칠 생각을 했으면, 당했을 때도 생각을 했어야지."

당황도 잠시, 놈은 살기를 포기한 눈으로 푹 고개를 숙였다.

놈도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국가던 블랙 요원들의 실패한 작전을 옹호해주지 않는다. 정보부처가 실패한 정보요원들을 살려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발각 되는 순간 그들은 국가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국가의 명예가 더렵혀지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 또한, 국가적 분쟁 상황이 될 수 있으며, 국제법상 타국가에서 정보 활동은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그것 역시 '산업스파이'가 국제적인 비난을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해서, 미래에는 정보부와 관련된 인사들 보다는 '돈'으로 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발전하지 못한 중국이 제법 야만적인 행동을 했다고 보는게 옳았다.

대원하나가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왕소연을 데려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내에게 밀었다.

왕소연이 힘 없이 밀려 그 사내에게 툭하니 부딪히고는 철푸덕 쓰러진다.

"으음..."

보이진 않지만 놈의 두 눈이 떨리고 있을테다.

왕소연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자신의 미래가 어떨지 미리 짐작할 수있을테니 말이다.

"길게 말 안 하지. 필요한 정보가 있다."

"......"

예상했던 반응이다.

드르륵,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와 놈 앞에 놓고는 앉았다.

"나를 잘 알겠지? 그럼 내 출신도 알고 있나?"

"사채업?"

이번에는 그래도 호응을 해준다.

"맞아, 사채업. 사채업자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해?"

"고리가 다 똑같지, 돈 받아내는 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닌가?"

"오, 똑똑한데? 이 쪽에 관심이 있었나?"

픽 웃어버린 사내가 살기를 포기한 눈을 하고는 말했다.

"그냥 죽여라, 내게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없을테니까."

"그래? 좀 더 들어보지 그래?"

"무슨말을 한 들, 변함은 없다."

제법 기백이 있는 놈이었으나, 난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런 놈들 쯤이야 널리고 널린게 세상이니까.

난다 긴다 하는 놈들 수십, 수백, 수천, 수만을 상대해야 올라올 수 있는 자리가 최고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런 자리의 정점에 있던 사내가 나의 할아버지였고 그 할아버지가 쏟아내던 기백에도 코웃음 치던 나다.

이런 놈들의 기백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란 소리였다.

"사채업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건 '돈'이고, 그 돈을 어떻게 빌려주고 어떻게 받아오냐가 아주아주 중요하지."

"그래서?"

"그런데 중국 정부가 나한테 돈을 빌렸네? 뭐, 푼돈이라서 그렇게 중요한 액수는 아니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놈.

놈이 생각하기에도 중국 정부가 내게 손을 내밀 이유가 보이지 않나보다.

"도대체 얼마를 빌렸기에 그러지?"

"뭐, 액수는 얼마 안 돼, 한화로 20억."

"풋, 우리 공화국이 그 돈이 없어서 손을 벌렸다고? 개소리군."

"뭐, 정확히는 대사관 놈이 중국 명의로 빌렸다는게 정확하겠네."

"그렇군, 그래서 뭐? 우리 대국이 고작 그 돈을 갚지 않았을리가 없을텐데? 대국은 자존심이 있는 나라다."

제법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중국도 대외 국제 사회에 '쪽팔림'을 알고 있으니 체면치례를 위해 20억을 갚았다.

"맞아, 갚아줬어."

"그런데?"

"이자를 안 주더라고."

"뭣? 이자?"

"그래, 이자. 사채업자한테 가장 중요한건 돈이라니까? 어떻게 빌려줬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받아내었는지도 중요해."

"지금 그 몇 푼 안되는 푼돈 때문에 우리 공화국의 국가안전부 지부를 털었다?"

고개를 저었다.

"계산이 틀렸어, 내가 움직였자나? 전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비싼 사람중 하나라고 내가."

"하."

"해서, 이자도 받아 낼 겸, 내가 움직였으니까 인건비도 받아 낼 겸, 감히 우리 SKY에 빨대를 꽂으려고 했으니까 그 피해보상비도 받아낼겸, 겸사겸사."

"미쳤군."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재미고."

"제 정신이 아니야... 애초에 정보가 잘 못 되었군."

짝!

손뼉을 마주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채업자는 돈을 잘 받아 내야 돼,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이 더럽고 치사하고 살 떨릴만큼 치가 떨려서 사람들이 무시하고, 괄시하고, 천대하지."

"잘 아는군."

"그럼, 나도 결국 사채업 출신 아니겠어?"

저벅저벅 곁에 다가온 호석이 품에서 사진을 꺼내 날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는 놈의 얼굴에 뿌렸다.

촤라락 소리를 내며 흩날린 사진이 놈의 얼굴과 몸 곳곳에 맞고는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뒤쪽으로 손이 묶여 있기에 모이를 주워 먹는 비둘기처럼 사진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숙였던 놈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 도대체 어떻게?"

다시 날 바라본 놈에게 턱짓으로 왕소연을 가리켰다.

"제기랄..."

사진속에는 매우 단란한 가족들의 삶이 들어 있었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지부장이란 놈의 깨끗한 얼굴과 함께 말이다.

"자, 어떻게 생각해? 나 정도면 제법 대단한 사채업자 같지 않아?"

"까드득."

잔뜩 분노에 찬 얼굴.

"넌 죽는다. 반드시."

입술을 질끈 깨어문 놈. 주르륵 피가 흐르지만 분노로 인해 활활 타오르는 눈은 바뀌지 않는다.

"대신, 네가 합당한 정보를 불고 간다면, 네 가족들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고, 조용하게 현금으로 한와 1억씩을 전달하지, 두당 1억을 말이야."

활활 타오르던 눈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하다 이내 포기를 담았다.

"약속은... 지켜지겠지?"

"네가 더 잃을 게 있나?"

"후우... 말 하겠다. 원하는 게 뭐지?"

"국가안전부? 네 놈들 정보부처가 거기던가?"

"그렇다."

"거기서 관리하는 운영비?"

놈이 입을 떡 벌리며 멍하니 날 바라본다.

"에이, 뭘 놀라고 그래? 그 정도는 되야 내가 움직이는게 수지가 맞지."

"어마어마한 미친놈이었군..."

"이 자리까지 꽁으로 오르진 않았을 거 아냐?"

"할아버지 후광을 이용해 성공했다고 평가한 국가안전부의 고위 인사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야..."

"원래 꼰대들이 그래."

작게 한숨을 내 뱉는 놈.

"담배 되나?"

어깨를 으쓱이며 호석을 바라보니 호석이 내게 시가를 하나 건네고, 놈에게는 담배를 꺼내 건넸다.

"국가안전부의 비자금 관리는 내 소관이 아니다. 대신... 블랙 요원들의 활동비 지급처는 알고 있지."

"아하, 거기서부터 타고 올라가라?"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면."

"사채업자의 필수 덕목중 하나가 끈기야 끈기."

"하..."

< 제 27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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