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77화 (277/458)

< 제 277화. >

중국 상하이 인근의 항구 도시.

그 외곽에 위치한 SKY전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장소였다. 상하이에 공장이 많은 것은 아니나, 특별히 중국 당국에서는 SKY전자가 들어 설 수 있게 많은 편의를 봐주었고, 덕분에 SKY전자는 유통상 편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상하이가 애초에 못사는 동네는 아니었기에 경제 파급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중국 일부의 경제학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SKY건설에서 주도하는 상하이 외곽의 SKY아파트는 인기가 드높았고 SKY덕분에 외곽의 빈민촌의 경제 활성화를 불러왔다.

그 모든 '공'이 SKY가 아닌 '장저민'주석을 칭송하는 목소리로 이어지니 장저민과 SKY그룹 입장에서는 윈윈이라 할 수 있었다.

SKY전자는 값싼 노동력을 얻고, 장저민은 명망을 얻으니 말이다.

"조상근 책임님."

한창 설계도를 들여다보던 책임연구원 조상근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 소연씨."

뒤를 돌아본 조상근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책임연구원 조상근을 부른 여인이 미모의 신입사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처음 입사 했을때 사람들이 모두 '오!'하는 소리를 냈을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빼어난 편이었다.

중국이라는 땅덩이에 많은 인구 중, 상위 1퍼센트에 들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당장 스크린에 데뷔해도 어색하지 않을 미모의 소유자이니,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할 정도로 여자에게 면역력이 없던 조상근은 속 마음이 훤히 들어나는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대했다.

"퇴근시간 됐는데, 양꼬치 어때요?"

슬쩍 시계를 보니 확실히 퇴근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아, 그럴까요?"

"네~ 배고파요, 사주세요~"

"하하, 소연씨가 사달라면 사드려야죠."

"제가 잘 아는 집이 있어요, 그리로 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기는 조상근의 팔짱을 껴 오며 노골적으로 여성성을 어필하는 왕소연.

조상근은 헤벌쭉 웃으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홀린듯 그녀를 따라 나선다.

지글지글.

원재료를 알기 힘든 소스를 치덕치덕 바른 양꼬치가 숯 위에서 맛있게 구워지는 소리를 낸다.

"여기가 주변에서 가장 맛있어요, 아는 사람들만 오는 그런 곳이에요."

"오, 그래요?"

"네, 한번 드셔보세요, 후회 안 하실 걸요?"

"알겠습니다. 고수는 뺀거 맞죠?"

"네~ 그렇게 주문 했어요."

왕소연이 얼른 먹어보라는 듯, 조상근의 술잔에 맥주를 따라준다.

"짠~"

방긋 웃은 조상근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양꼬치를 입에 넣는다.

"오, 정말 맛있는데요?"

"그렇죠?"

베시시 웃으며 눈웃음을 살살치니 조상근은 심장이 녹아버리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평소답지 않게 조금 과음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같이 잔을 비웠지만 왕소연은 시간이 훌쩍 지나도 멀쩡했고, 조상근은 조금씩 조금씩 시야가 흐릿해짐을 느꼈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조상근의 허벅지 부근을 만지며 스킨십을 해오는 왕소연. 조상근도 싫지 않은지 연신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먹었다.

어느순간, '쿵'하고는 알류미늄제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은 조상근을 확인한 왕소연.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

사무실에서 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홍차는 제법 깊은 풍미를 낸다.

요즘 이 여유있는 시간에 푹 빠져 지내던 참이었다. 늘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바쁜날이 있어야 이와 같은 여유를 감사하게 느끼겠지만.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호석이 방 안에 들어왔다.

그가 들고 있는 종이뭉치의 두께를 보자니, 적어도 한 시간은 빼앗기겠구나 싶었다.

"정보부의 보고서입니다."

"어우, 양 봐라."

엄살을 부려 봤더니 호석이 피식 웃으며 조용히 책상위에 서류를 올린다.

"회장님께서 중책을 맡은 직원들의 연애사까지 파 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해서, 양이 많습니다."

"괜히 그랬나 싶기도 하네요."

"정보부에서도 양이 많을 것 같아 줄이고 줄인것이 이 정도 양입니다."

"그렇겠죠, 우리 임직원이 몇명인데."

별 수 없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한장, 한장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살펴보라고 한 이유를 정보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특이점이 있는 '사내연애' 혹은, '중국'과 관련된 여인들이나 남성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진행된 결과물만 있었다.

"하여간, 중국놈들은 참."

내 입에서 툭 하니 불만이 튀어나오니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확실히, 회장님이 말씀하셨던 것 처럼 미인계나 미남계 등, 정에 기댄 접근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 삶.

그러니까 내가 삼현의 비서실에 있을 때.

정말 많고 많은 산업 스파이들을 처리해야 했다. 각 나라별로 별의 별 방법을 동원해 더러운 짓을 일삼는데 게중에 중국의 육탄공세는 정말이지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나는 장저민의 태도로 볼 때, 분명 전 삶과 비슷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까 하여, 굳이 정보부의 인력을 동원해 안타깝게도 우리 직원들의 뒷조사를 해야 했다.

미인계나 미남계에 당하면 약이 없다.

'사랑'이라는 이상한 무기로 무장한 그들의 마음은 굳건한 '신뢰'가 쌓여 벗겨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제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간다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허울로 그것을 각오하고 비장하게 걸어가더라.

많이든 산업스파이에게 이용당해 감방을 가더랬다.

이왕이면 우리 SKY에는 그런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물론, 우리 기술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하는 노력이기도 했다.

"이거는 괜찮고, 이것도 괜찮고."

한참 서류를 넘기는데 중간 쯤에서 손이 멈추었다.

어디서 많이 본 시나리오였다.

"왕소연, 이야 스펙이 어마어마 하네요?"

힐끗 내가 보는 서류를 확인한 호석.

"아, 저도 기억납니다. 증명사진부터 워낙 미인이라 제법 시선을 빼앗더군요."

"오, 형수님이 들으면 등짝이 날아갈 소리를 하시네요?"

"하하, 회사니까 듣기야 하겠습니까?"

"확실히 미인은 미인이네,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가 참 인재도 많아요, 사상이 썩어서 문제지."

"6개월 전 상하이 공장이 첫 중국인 사원들을 뽑을 때 입사한 신입으로 이미 미모로 상하이 공장에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렇겠어요, TV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얼굴인데. 게다가 미인대회 출신에, 3개국어를 한다라 그 중국에서."

"출신 자체는 대단한 집안은 아니었습니다. 없는 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있지도 않은 애매한 수준이죠."

정보부가 요약해 놓은 보고서를 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호석의 말 처럼 집안 사정에 비하여 드높은 스펙이었다.

"이건 좀 파볼 필요가 있겠네요."

"예, 정보부에서도 미심쩍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 미리 사람을 심어 놓았다고 합니다."

"오, 우리 정보부 일 잘하네."

다시 서류에 집중하며 몇몇,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 서류들을 추려 호석에게 전했다.

"나머지는 괜찮아 보이고, 그거 몇장만 심도 있게 관찰하면 되겠네요, 처음부터 교육받은 스파이 놈들도 있을테니까 제법 오랫동안 마킹해야 할 겁니다."

"예, 회장님. 정보부 인력을 충원한 상태라 문제 없을 겁니다."

"여차하면 국정원에서 좀 빌려 오세요, 그쪽에서도 산업스파이 전담팀 따로 있잖습니까?"

호석이 웃으며 답했다.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그래요, 할아버지가 대통령인데, 이럴 때 써먹어야죠."

"하하, 알겠습니다."

다시 여유를 즐기려고 했는데, 품속에서 바쁘게 몸을 떠는 전화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네."

-회장님, 박무성입니다.

"아~ 박 사장님."

-많이 바쁘십니까?

"아니요, 말씀하세요."

-크흠... 참... 사채업자가 할 얘기는 아닙니다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박무성이 아니던가. 지하경제의 2인자에서 1인자가 되어 지금은 그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무슨 일인데 망설이세요? 이거 궁금하네."

진심이었다.

그는 굳이 내 허락을 받고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지하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던, 내가 피해를 입을 사람도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물론, 지금 지하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자금들은 할아버지의 유산이고, 그 유산의 주인은 나니까 적당한 보고만 들으면 되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내가 쩐주라는 얘기.

-참... 제가 살다살다 이자를 받아내지 못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하하하하."

진짜 웃음이 터져나왔다.

올해 들었던 얘기중 가장 웃긴 얘기였다.

지하 세계에서 박무성의 별명이 '야차'였다.

그런 사람이 이자를 받아내지 못했다니, 나는 그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놈이 누구인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누가 우리 야차한테서 이자를 토해내지 않았을까요?"

-후우... 주한 중국대사 하이밍이 실종되고, 그가 중국 명의로 돈을 빌렸으니, 중국 정부에게 돈을 내놓으라 했습니다.

"오우야, 박 사장님 깡 좋다. 중국 애들 무서운 애들인데."

-대부업 하는 놈이 떼인 돈 못 받아내면, 되겠습니까?

"계속 해보세요, 지금 막 재미있을것 같으니까."

-원금 20억은 받았습니다만... 한달 치 이자를 못 받았습니다. 하이밍 대사가 단골 고객이기도 해서, 선 이자를 떼지 않은게 이렇게 후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알 것 같았다.

박무성은 분명 중국 정부에 이자 플러스 원금에 대한 지급을 요청했을테지만, 중국 정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원금만 준 모양.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치례를 했다고 생각했을테고, 감히 자신들에게 '이자'까지 토해내라고 달려들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을 터.

"이야, 장저민한테 이자 달라고 했는데 안 줬다는 얘기네요?"

-후우... 그렇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제 손을 떠난 일 같습니다.

"우리 사장님 그래도 일 열심히 하시네, 그 이자 얼마 안 해서 사장님 사제로 채우셔도 될 텐데."

-그럴수야 있습니까? 원칙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인 될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회장님께서 저를 신뢰하시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정확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쉬운 법이다.

한 번 유야무야 넘어가면 그 다음은 잦아지는 법.

원칙이란 것은 절대 불변해야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돈'에 관련했다면 고리 업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이제 쩐주한테 이르시는 겁니까?"

-하아... 정말 이 시장에 들어와 이런일은 처음입니다. 하이밍 그 자의 행방도 묘연해 찾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람을 잘 찾는 집단이 사채업자였다. 그런 박무성이 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렇겠죠."

-음? 그 자의 행방을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이쪽 사람들은 참 촉이 좋다.

지금쯤 저 깊은 심해 어딘가에 잠들어 있으니 찾을 수 없는게 당연하다.

"이자라... 그건 내가 알아서 하죠."

-...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크게 웃었으니까."

-앞으로 중국인과의 거래는 자제하라 아이들에게 이르겠습니다.

확실히 촉이 좋은 양반이라, 지금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듯 보였다. '중국'을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는 중국인들에게 고리를 내 주고 돌려받기 힘들 수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

"그렇게 하세요, 당분간 그쪽이랑은 마찰이 잦을 테니까."

-예, 회장님.

전화를 끊고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웃은 건 웃은 것이고, 감히 내 돈을 삼켰다 하니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오른다. 이 분노를 어떻게 토해내야 잘 했다 온 세상이 떠들까를 고민했다.

한 대를 맞았으면 열 대, 백 대를 때려줘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

감히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여러모로, 아무래도 개입 해야겠네요."

호석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물었다.

"당분간은 중국과 잠잠히 지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한 번은 어렵지, 두 번은 쉬우니까요. 이번에 참으면 다음에도 참아야 하는 법입니다."

"으음."

"그, 왕소연? 그 여자도 보러갈 겸. 출장이나 가죠."

피식 웃은 호석이 내게 물었다.

"좋은 핑계가 생겨 육아에서 도망치시는 것은 아닙니까?"

나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정 대표님은 한국에서 쉬세요, 휴가드릴게."

"커험, 아닙니다. 바늘이 가는데 실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 대표님이랑 다녀와도 됩니다. 요즘 할아버지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고 말이 많은데, 잘 됐죠."

"커험험! 아닙니다! 제가 가야죠! 암암."

정대표도 어지간히 임신한 와이프 곁에 있기 싫은 모양이다. 하여간... 유부남의 삶이란.

"말 나온김에 바로 가는걸로 하죠."

"예, 회장님. 전용기 준비시키겠습니다."

"네."

< 제 27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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