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76화 (276/458)

< 제 276화. >

인천의 한 허름한 횟집.

SKY LINE의 물류창고가 인근에 있기 때문에 종종 직원들이 방문하는 모양이다.

막 소주를 한잔 들이키고 회를 한점 입에 넣으려는데, 대원 중 하나가 예쁘게 포장된 와이셔츠 하나를 내게 내민다.

"카라에 피가 묻으셨습니다."

호석의 말에 턱을 집어넣어 카라를 내려다 보려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뭐, 대표님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대원을 올려다 보며 고맙다는 눈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어차피 초장을 흘릴수도 있으니, 이따가 갈아입죠."

"예, 회장님."

대원이 자리를 떠나고.

호석이 내 술잔에 소주를 따르며 물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제법 명망높은 정치인들이 사라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혹, 문제가 될 여지는 없느냐는 질문이었다.

두 거대 정당의 수장급인 인사들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내 와이셔츠에 묻은 피가 그것에 대한 증거일테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행방을 알 수 없을것이다. 자신들이 '요정'으로 간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을리도 없고, 중국 대사관에게 뒷돈을 받으러 간다고 자랑했을리도 없으니 가족들도 알기 힘들테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우리나라 정치 꼭대기에 앉은 놈들은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좀 먹고 있죠."

"그렇습니까..."

"청렴하고 대의를 가진 초선 의원들이 어쩌면 더 필요한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그 초선 의원들을 더럽히는게 원로들이니까."

"저는 회장님께서 분노로 인해 조금 과한 처사를 하신게 아닌가 하여 여쭸습니다."

원로 정치인이라는 놈들이 중국에게 유라시아 횡단철도라는 국책사업의 이권을 넘기려고 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기에 분노 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들이 나라를 팔아서 분노한 게 아니라, 그들 본연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처사에 화가 난 것이었다.

무엇보다. 유라시아 횡단 철도는 '내 것'이었다.

감히 내 것에 손을 뻗으려는 그 생각 자체가 잘 못된 것이란 얘기.

"아뇨, 차일피일 느리게 처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말려죽이나 한번에 죽이나. 어차피 놈들은 죽을 놈들이니까요."

"그렇습니까..."

"급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사건건 걸림돌이 될 놈들입니다. 지금도 할아버지의 문화혁명이란 공약에 대해서 사사건건 말이 많던 놈들 아닙니까?"

"그렇죠."

"실제로 세상은 문화의 파워가 곧 경제의 파워로 변화될 겁니다. 대한민국은 그리고 SKY는 당연히 문화를 선도해야 하죠. 그래야 더 높이 비상할 수 있으니까."

"썩은 것은 그래서 도려내셨다라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정확하네요."

짠.

호석과 잔을 부딪히고 소주를 들이켰다.

도다리가 씹히는 맛이 아주 제법이었다. 역시 봄에는 도다리, 도다리 하더니 이유가 있었다.

"회가 다네요, 달아."

"하하 제철이잖습니까."

"한국은 빠르게 정리하고, 북한으로 넘어갑시다. 할아버지가 하루 빨리 은퇴하고 싶어서 안달이신데, 손자로서 효도 해 드려야죠."

"하하하... 그래도 회장님 계획이 모두 이뤄질려면 최소한 12년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급하게 먹은 것은 체하는 법이니까요."

호석이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국역시 급하게 처리한 게 아니냐 질문 할 법 하지만 호석은 잘 알고 있는것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한국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까지, 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것이다. 얼마든지 그러니까 IMF이후라던가 삼현이 무너진 이후에 나는 얼마든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완벽하게, 체기 없이 진행하기 위해 지금까지 시간을 보내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의 기득권들에게 더 시간을 줄 필요가 없었다. 길 놈들은 알아서 기고, 대들 놈들은 알아서 대들게 하고자 하는대로 처리하면 될 뿐이었다.

기면 살고, 대들면 죽는다.

단순한 논리로 뜻한 바를 이루면 되는 것이다.

현 대한민국의 기득권 놈들은 제대로 된 놈들이 없다. '자수성가'라고 씨부린다면 나는 비웃음을 흘려주고 싶었다. 권력에 기대 기생하던 놈들일 뿐이었다. 여태껏 굳건했던 양당체재에 기대어 수많은 서민들의 고혈을 쥐어짜 지금의 권세를 만든 놈들이다. 나는 그런 놈들은 존경해주고 존중해줄 생각이 없다.

"할아버지 세금 개혁에 박차를 가하라고 하세요, SKY는 언제나 정직하게 납입할거니까."

"예, 회장님."

"그나저나 코드원은 잘 하고 있답니까?"

"얼마전에 아오지로 향한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아오지요? 내가 아는 아오지? 거기는 정치범들이 가는 곳 아니었습니까?"

"뭐, 비슷합니다. 가서 살아돌아오는 이가 없다고들 하죠."

"그런데 코드원이 김은정이랑 거길 갔어요?"

"그들은 북한의 군인 신분 아닙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겁니다."

"아아, 일종의 관리자나 교관같은 느낌인가 보군요."

"예, 맞습니다."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김은정이라는 놈을 직접 보진 못했으나, 김일정의 아들이니 어련히 알아서 곱게 자랐을테다. 그런데 아오지 같은 곳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그 멘탈이 괜찮을까 싶었다.

"코드원이 어련히 잘 하겠죠?"

"그럴겁니다 회장님. 그 역시 가장 아끼는 여동생이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내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녀도 될 '거부'였다.

이건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그 재산을 내게 처분했으니 어마어마한 현금부자라는 얘기.

"이번 임무가 끝나면 코드원도, 자유롭게 살라고 해야겠습니다."

호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코드원은 회장님의 이상을 보고 충성하는 놈인지라 그렇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내 이상을 보고 있다?"

"우리 대원들 전부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습니다."

"내 이상이 뭔 줄 아시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호석이 술을 한잔 들이키고는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운다.

"회장님은 항상 이기적이고, 본인 밥그릇만 챙기신다 말씀하시지만, 이상하게 회장님이 걸어가는 길이 대한민국을 살리고, SKY를 흥하게 만들며 덕분에 대원들은 바깥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가족들에게요."

"흐음."

"회장님이 가는 길이 곧, 대한민국이 커가는 일이니까. 세상의 시선이 우리 SKY를 대단하게 생각하니까. 회장님과 함께라면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들 합니다."

"오우야, 너무 과찬인데? 단단히들 오해하고 있네요."

호석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우리 테이블 주변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대원들에게 크게 외쳤다.

"네 들이 말씀드려 봐라, 군인때가 좋았냐 지금이 좋냐?"

"대리, 이철형! 저는 군납비리에 이용되다가 덤탱이 쓰고 짤렸습니다! 국민들을 수호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먹고 살던 제가! 그딴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불명예 퇴직을 해야 했습니다!"

"오우야, 우리 대리님 국가에 서운한 게 많겠네."

내 말에 그때의 설움이 떠오르는지 눈시울이 붉어진 이철형 대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직업특성상, 가족들은 군인들이 많이 거주 하는 거주지역에서 생활했고, 불명예전역을 한 저를 손가락질 하는 다른 군인들의 가족들때문에, 언제나 저는 집에서 죄인이었습니다.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제 직업이 처음으로 수치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무엇인가 많은 회한이 뭍어나오는 말이었다.

"그러던 중, 정호석 소령님의 부름을 받아 SKY에 올 수 있었고 회장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순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창피하기만 했던 이 아빠가, 이제는 아이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친구들이 부러워 하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어깨가 부르르 떨릴만큼, 손발이 오그라드는 칭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속 깊이 뿌듯함을 감출 순 없었다. 나중에 내 새끼들, 태양이와 별이도 저렇게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 친구의 부모들 역시 저를 부러워하고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SKY에 재직하고 있는 많은 임직원들 역시 주변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만큼, SKY는 국가에 이바지 하고있으며 그 커다란 기업의 꼭대기에, 회장님이 계십니다."

"이거이거, 우리 회사 입사 조건에 정신교육이 붙어있는 건 아니죠?"

내 농담에 대원들이 여기저기서 피식피식 웃지만 모두가 이철형 대리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회장님이 가시는 길이 SKY가 가는 길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계셨다면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SKY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모두가 우러러보고 부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런 SKY는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습니다. 회장님의 이상이 대한민국을 그리고 SKY를 올바르게 이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다 싶었는지 호석이 잔을 높게 들어 올리며 외쳤다.

"자! SKY를 위해! 위하여~!"

"위하여~!"

기분이 좋았다.

소주가 달게 느껴질 만큼.

"아 몰라~! 오늘은 마시고 죽읍시다! 사장님 셔터 내리세요, 오늘 여기 우리가 전세냅니다."

"사모님이 일찍 들어오시라고 했습니다. 회장님."

"여기 나만 와이프 바가지 긁힙니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겁니다. 여기 정 대표님은 현재 형수님이 임신 중인데도 오늘 회식 끝까지 하시겠답니다!"

""오오오오~! 정호석~ 정호석~""

"회장님... 그러면 저 죽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마시자~!"

오랜만에, 미친듯이 소주를 들이부은 날이었다.

날 믿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

한달 뒤, 중국 주석궁.

장저민이 손에 들린 서류를 부들부들 떨면서 읽었다.

"이게 지금 무슨 창피한 짓거리지?"

장저민의 보좌관은 차마 고개를 들 면목이 없다는 듯 푹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감히 소국에 파견한 대사라는 놈이... 소국에서 고리를 써? 그리고는 도망쳐서 내게 이딴 것이 날아오게 만들어?"

하얀 종이위에 선명하게 찍힌 한국어.

그것은 '차용증'이었다.

한국으로 파견을 보낸 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관이 중국의 인장을 찍은 정식 차용증이었다.

돈을 빌리면서 감히 제 놈의 명의가 아닌 중국의 이름으로 돈을 빌린 것이었다.

"돈은 내주고... 하이밍 이 놈 찾아."

보좌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각하! 감히 소국의 고리업자에게 돈을 내주시다니요!"

"이 멍청한 자식아! 이게 바깥에 알려지면 우리 공화국은 개망신이야 개망신! 하이밍 이 멍청한 놈이... 정치인들을 꼬시라고 했더니, 돈을 갖고 튀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각하."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하이밍 대사는 그렇게 멍청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예전부터 한국 관료들을 관리 잘 하던 인사였습니다."

"헌데?"

"공화국에서도 하이밍 대사에 대한 대접을 섭섭지 않게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한화 20억원을 빌리고 도망이라니요... 뭔가 어설픈 곳이 많습니다."

장저민도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계속 해 봐."

"정보총국과 공안정보부를 움직여보겠습니다. 일단 하이밍의 소재를 먼저 파악하는게 급선무인 것으로 보입니다."

"겨우 20억은 적다는 얘기지?"

"하이밍 대사가 해먹기로 했다면 얼마든지 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공화국의 자본가들과도 연결된 커넥션이 있습니다."

"좋아, 수상하긴 수상하구만, 조사 해."

"예, 각하!"

장저민은 차용증을 찢어 발기며 말했다.

"돈은 보내 줘, 고리 업자들은 뒤가 없는 놈들이니까."

"쯧... 알겠습니다."

"사막에서 SKY가 뭘 하고 있는지 확인 했나?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난 것 같은데?"

"태양광 전지를 개발해 발전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태양광 발전소? 아직 효율이 극악이라 하지 않았나?"

"예 맞습니다. 현재 SKY의 발전소도 높은 효율은 보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위구르 자치구에 SKY가 판매하는 전기의 용량만 보더라도 발전율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장저민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SKY가 전기를 팔고 있다?"

"예, 그렇습니다."

"왜? 돈이 없는 게 아닐텐데?"

"사막에서 발전한 전기를 팔아, 물을 사고 있습니다."

"물?"

"대부분 식수용이 아닌 농사용이었습니다."

장저민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다.

"농사용? 사막에서 농사라도 짓겠다는 얘긴가?"

"듣기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의 SKY지역에 하루에도 트럭 수십대의 물량의 물이 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북경대 교수들의 말로는 모래바람을 저해시켜 태양광 발전 효율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멍청한 짓거리를 한다고? SKY가?"

"그러니 소국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사막에서 뭐 대단한걸 하려나 했더니... 역시 그 땅은 쓸모가 없는 모양이야... 공장에나 집중 하자고."

"예, 각하!"

장저민이 툭 하고는 USB하나를 보좌관에게 던졌다.

"공화국을 좀 먹는 장사치들에게 가져온 자금이다. 이제부터 SKY의 기술자들 회유책 제대로 실행 해 봐."

"예! 각하! 이 돈이라면 틀림없이, 가능할 것입니다."

"바로 시작 해."

"예!"

< 제 276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