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75화 (275/458)

< 제 275화. >

한편, 같은시각 마카오.

밤 하늘을 수 놓는 별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휘황찬란한 마카오의 밤.

김장원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슬리퍼를 찍찍 끌고 공항에서 나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여보세요.

"아따, 혜미씨. 나 안 보고 잡소?"

-바빠서 별로.

"흐흐, 나 인자 막 마카오 공항 왔는디, 어디요?"

-알아요, 지금 나오신 거.

독거미의 대답에 김장원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아따 인자 나으 스케쥴까지 줄줄이 꿰고 있소?"

-정보부라서 아는 것 뿐입니다.

"흐흐, 거그서 나으 스케쥴이 주요 정보도 아닐틴디 말입니다."

-마카오에서 처리할 일들이 있으니, 김 사장님 정보도 알아야겠죠? 일 입니다. 일.

선을 긋는 독거미지만 김장원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 듯 했다.

"흐흐, 알겄습니다. 일 해야지요? 어디계시오? 나가 바로 달려갈라니까."

-기내 슬리퍼 신고 달려오시게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내려 자신의 신발을 바라보는 김장원.

"월래? 아따... 신발이 어디가부렀데?"

-일본에서 일은 확실히 처리한 게 맞으세요?

"아따 그것은 나가 확실히 해부렀제, 혜미씨는 나만 믿으면 돼요."

-글쎄요, 영... 신뢰가 안 가시는 상이라.

"나가 혜미씨 볼 생각에 겁나게 설레갔고, 구두를 놓고왔는갑소, 얼렁 다시 드가서 찾아 올라니께, 혜미씨 있는 위치나..."

말을 하다 말고 멈춘 김장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을 있는다.

"그라고본게, 나가 기내 슬리퍼 신었는지 어찌 아시고?"

-구두는 제가 챙겼어요.

"구두는 제가 챙겼어요."

전화기와 뒤쪽에서 동시에 들리는 음성.

휙 하니 고개를 돌려 뒤쪽을 확인하는 김장원.

그곳에는 독거미가 항공 포켓에 쌓인 김장원의 신발을 흔들고 있었다.

"혜미씨! 아따, 나를 마중 나왔소? 워메 성은이 망극혀라."

쫄래쫄래 독거미에게 걸어가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와락 껴 안으려 하는 김장원.

퍽.

독거미가 들고 있던 신발 주머니를 던졌다.

"워메 아프거... 거 말로 헙시다. 말로."

"신발이나 갈아 신으세요, 창피하니까."

"옙, 옙!"

기내슬리퍼를 대충 집어 던지고 제 신발을 신은 김장원이 먼저 걷기 시작한 독거미를 따라 황급히 걷기 시작했다.

"아따, 같이 갑시다 같이. 나가 그랴도 저 먼 타국에서 일 하고 온 놈 아니오?"

칭찬해달라는 강아지처럼 꼬랑지를 흔드는 김장원. 그 모습에 독거미가 마지못해 툭 말을 뱉었다.

"그러니까 마중 나왔잖아요?"

"아따... 고것이 칭찬이요?"

"싫으면 따로 갈까요?"

"아뇨아뇨, 또 고것은 아니고... 뭐랄까 나가 나이도 있고... 혜미씨도 나이가 있고, 그라니까 어, 그렇다고 혜미씨가 늙었다는 야그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쇼잉, 나으 눈에는 혜미씨가 전지현이고 김태희니께, 절대로다가 그런 마음은 아니요잉."

팍 고운 눈썹을 찌푸린 독거미가 말했다.

"뭐요, 말 해요. 빙빙 이상한 말 실수 하지 말고."

"흐흐, 술 한잔 헙시다."

잠시 멈췄던 독거미가 '흥!'하고 콧방귀를 끼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아따... 참말로 어렵구마잉."

김장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독거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 걸음 걷던 독거미가 다시 멈춰서며 뒤 돌아서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가요?"

"거시기..."

"난 소주 아니면 안 마셔요."

김장원이 활짝 웃으며 얼른 그녀 곁으로 달려간다.

"아따, 지도 쐬주를 참말로 좋아하지라잉. 가만있어보자... 여그 쐬주 맛집이 어디더라?"

피식.

독거미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가 얼른 표정을 바꾸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곁을 김장원이 헐레벌떡 따라 걸었다.

***

나를 보고 당황하는 국개의원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툭툭 내가 앉을 자리를 방해하는 중국 대사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하는 대사.

"너는 무슨 짓거리인데?"

"뭐요? 이 사람이 눈에 뵈는게 없어? 나 주한 중국대사 하이밍이오!"

"알아."

"알고도 이런 짓을 한다고?"

"장 주석에게 전화 한 번 할까? 중국 대사 하이밍이 나를 없인 여겼다고?"

"......"

내 입에서 장저민이 튀어 나오니 당황한 듯 보이는 하이밍.

"천우진 회장, 예의를 갖추세요!"

얼마전 할아버지에게 물 먹었던 대선 후보의 외침에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나라 팔아먹을 놈들한테 무슨 예의? 네 놈들은 친일파 매국노에게 예의를 차리나? 아아, 그래서 아직도 대한민국에 친일파가 그득그득 한가?"

"뭐야?"

힐끗 호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계신 국개의원님들 사진좀 박아 보세요, 저 살짝 열린 가방틈사이로 보이는 만원권 지폐도 잘 나오게."

나를 따라왔던 PMC대원들이 국개의원들과 하이밍 중국대사의 보좌관들을 무시하고는 내부로 들어와 여기저기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붉게 얼굴을 물들인 무리들.

"어때? 하이밍, 이제 좀 앉아도 되나?"

"크음..."

중국 대사가 못내 슬금슬금 엉덩이를 비키고.

자리에 앉은 나는 손을 뻗어 글라스 안에 주전자에 담긴 독한 소주를 가득 채워 따랐다.

꿀꺽, 꿀꺽.

단 숨에 글라스를 비우고는 말했다.

"사대? 사대? 시대가 어느때인데 사대냐 이 개새끼들아."

"이 사람이 정말!"

쾅! 쨍그랑.

그대로 내려친 술잔이 깨져 비산하더니 내 손아귀를 마구 찢어발겼다.

"저, 저!"

피가 흐르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손아귀를 그대로 바라보았다.

"좋게 가려고 했는데 꼭, 피를 보게 만들지."

"도대체 이게 무슨..."

"쪽팔린 줄 알아라. 국가에 이바지 하라고 국민들이 뽑아 놓은 것들이 하, 고작 1억 남짓한 돈에 자존심을 팔아?"

"이러고도 네 놈이 무사 할 것 같아! 네 할애비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우리를 이렇게 없인 여겨도 될 것 같냐고!"

손바닥에 박힌 유리조각 하나를 뽑아 그대로 나에게 호통을 치는 국개의원의 얼굴을 향해 던져 버렸다.

픽.

유리조각이 놈의 볼을 스쳐가며 생체기를 만들었다. 손바닥으로 볼따구를 만지는 놈에게 말했다.

"될거 같아. 대한민국은 내꺼니까."

"저, 저! 오만한!"

그래도 정치밥을 먹었다고 기세가 등등하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사고회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피가 흐르는 손을 뻗어 술 주전자를 입으로 가져가 들이 붓듯 술을 마시고는 크게 숨을 내 뱉었다.

"담배 한대 주세요."

대원들 중 하나가 얼른 담배를 내밀었다.

"스읍, 후...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려고 그랬다."

"하! 우리는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 없..."

쿵, 쿵.

다시 입을 놀리려는 놈에게 테이블 위를 넘어가 턱주가리를 쥐는 호석.

"들어, 회장님 말씀하신다."

서슬퍼런 기세를 흩날리는 호석에게 감히 무어라 얘기하는 놈들은 없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부들부들 손을 떨고 있는 중국대사 하이밍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나라의 입법부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네 놈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뭣 같은 놈들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천천히 천천히 네 놈들을 좀 바꿔볼까 싶었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었을까? 몇몇 의원놈들이 침을 꿀꺽, 꿀꺽 삼킨다.

"도무지 이 나라의 썩은 물들은 사라지지가 않아, 아무리 약을치고 지랄을 해도 말이야. 일본에게 붙어 먹어야 할때는 일본에 붙어 먹고, 미국에 붙어 먹어야 할때는 미국에 붙어 먹고, 이제는 중국에게도 붙어 먹고 싶은가? 혹, 이 중에 북한이랑 붙어 먹은 놈은 없는가?"

내 말에 대답하는 놈들은 없었다.

그러나 부들부들 분한 마음을 감출수는 없는지 두눈 가득 복수심과 분노를 담고 있는 의원놈들.

고개를 돌리니 대사 놈도 마찬가지인 모양.

"대충, 네 놈들은 구제불능이란 얘기야 도무지 변하지가 않아. 여기 있는 네놈들이 대한민국 입법부의 수장노릇들을 하고 있으니, 이 나라가 바뀔 턱이 있나."

고개를 살짝 들어 호석을 바라보았다.

"대원들 몇이나 왔습니까?"

"총원 42명입니다."

"이 요정, 정리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잠시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호석.

대원들이 요정을 정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중이 진심인지를 알아보려는 모습이었다.

내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을까? 호석이 작게 숨을 내뱉으며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눈을 하고는 말했다.

"10분이면 충분합니다."

"바깥으로 세어나가지 않게 하는데 10분입니까?"

"예, 회장님."

주한 중국 대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리들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내가 바쁜 일이 있어 이만 일어나겠소."

잔뜩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고, 나와 호석의 대화가 어떤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한 모습이었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던 유리조각 중, 가장 큼지막한 놈을 왼손으로 들어 그대로 놈의 종아리를 찍었다.

푹.

"끄으으윽."

"앉아, 목 아프다."

중국 대사 하이밍에게 거침없이 손을 쓰는 나를 보고 놀라다 못해 이제는 두려움에 떠는 국개의원놈들. 이렇게까지 막 나갈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참, 너무 신사적으로 했어 그렇지?"

옆자리에 앉은 젊은 국회의원을 바라보고 한 말에 그가 푹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회장님."

종아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는 하이밍 역시 애원한다.

"나는... 나는 중국의 대사입니다! 이럴수는 없소! 이럴수는!"

하이밍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대선 후보였던 놈의 턱주가리를 움켜쥐고 있는 호석에게 말했다.

"놔 주세요, 할 말이 많아 보이는데."

"예, 회장님."

호석이 놓아주자 턱을 어루만진 놈이 말했다.

"이런 더러운 방식을 쓴다면, 당신이나 우리나 다를게 뭐야?"

"그 소리가 하고 싶었나?"

"내 말이 틀린가? 지금 네 놈이 하는 짓거리가 정의라도 되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이야 자유니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아쉽게도 나는 정의를 위해서 이러는게 아니야."

"우리가 부정부패를 일삼기 때문이 아니라고?"

"어, 아니야."

"그럼 왜 이러지? 우리를 쓰면 될 일 아닌가? 우리 목숨 줄을 가지고 우릴 써먹으면 될 게 아니냔 소리야!"

제법 기백 좋게 들이댄다.

허나 애초부터 틀려먹었다.

"내가 만들 제국에 잔 대가리 굴리는 새끼들은 필요가 없거든."

"제국? 하! 미친놈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살 수 있는 세상이던가."

"독재라도 할 셈인가? 하, 이미 진행되고 있는건가? 저 개돼지 같은 국민놈들은 천혁수를 물고 빨고 신이 났으니, 네 놈 꿈에 가까워졌겠군, 안 그래?"

"그러게, 그래서 나도 이제는 빠르게 움직여 보려고, 한국부터 확실하게 정리해야, 다른데 눈을 돌리지 안 그래?"

"그러니까 결국은 네 놈이나 우리나 다를게 하나 없는거 아닌가? 그러니 네 놈은 우릴 비난 할 자격도 없어!"

제 놈도 제 놈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나보다.

"내 제국에 너 같은 새끼들은 없을 거니까, 다르지 않을까? 나는 청탁 같은 걸 받으면서 내 세상을 만들 생각이 없거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직접 만들거니까."

"하! 어디 한 번 지켜보지, 네 놈이 말하는 제국이 생길 수 있는지 말이야."

"미안해서 어떡하지? 너는 내 제국을 지켜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오늘이 네 마지막일 것 같거든."

놈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내가 제 놈을 살려주지 않을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피가 흐르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위에 여기저기 조각난 유리들을 한데 모으며 대선 후보자를 바라보았다.

"살고 싶나?"

"......"

뭔가 잔뜩 고민에 찬 모습.

이내 몸을 움직이며 양반다리를 풀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조아리는 놈.

"살려주십시오 회장님... 회장님이 만드실 그 제국의 개가 되어 성실하게 일하겠습니다."

나는 툭툭 유리 조각을 모아놓은 곳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래? 그럼 개새끼 답게 여기 사료좀 먹어 봐. 잘 먹으면 혹시 알까? 살려줄지. 여태껏 여기저기서 잘 받아 먹고 살았잖아?"

< 제 27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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