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72화 (272/458)

< 제 272화. >

도쿄 시부야의 거리.

언제나 젊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그 곳에 고키부리가 선거유세를 위해 가장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는 길거리를 점거했다.

그의 선거 유세차 주위로 구름같이 모여 있는 군중들.

-우리 일본은 아쉽지만, 계속해서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계신 모두가 알고 계신 사실일 것이며,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옳습니다!""

거의 광신도처럼 고키부리의 말에 맞장구를 처주는 사람들.

고키부리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더욱 큰 목소리로 말을 연설을 이어갔다.

"아따, 돈이 좋긴 좋구마."

군중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불쑥 혼잣말을 내뱉은 김장원.

그의 곁을 지키던 PMC 대원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돈으로 사람 부리는 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글제, 자본주의 시장엔 돈이 신이고, 황제제."

"돈 좀 많이 쓰셨겠는데요? 저 많은 사람들 고용 하려면."

"잉, 쪼까 써 부렀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김장원을 보며, '얼마나?'하는 눈빛을 보내보는 대원.

"웜마? 느 나를 보는 눈깔이 꼭, 회장님 돈 허투루 쓴다 뭐 그런 눈빛이다잉?"

"하하 그럴리가 있습니까?"

"아닌디? 꼭 그란 것 같은디?"

"그냥 얼마나 썼나 궁금해서 그럽니다. 그러는 사장님이야 말로 어디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 아닙니까?"

머리를 긁적이는 김장원.

"흐흐, 티 났냐?"

"예, 많이 났습니다."

"나가 얼렁 마카오 가야 한다고 않혔냐? 그랑게, 얼렁얼렁 고키부리 저 놈 도지사 맹글어야제."

"그래서 회장님 돈을 막 쓰셨습니까?"

"워따, 너 서운하게 야그한다잉, 어차피 정해진 예산에서 끌어다 쓴 것인디."

"확실해요?"

김장원이 대원을 힐끗 째려보고는 게슴츠레 하게 눈을 뜨고는 말했다.

"아따, 이 놈 귀신이 저리가라 해부네잉... 쪼까 모자랄까 싶어가지고 내 사비도 쪼까 털었다잉."

대원이 피식 웃으며 번쩍번쩍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본다.

"저놈들이 푼돈에 움직일 놈들이 아니잖습니까."

"글제, 기레기 놈들이 다 똑같제."

씁쓸하게 웃은 김장원이 대원의 등을 '짝'소리 나게 두들기고는 말했다.

"아그들은 준비 됐제?"

"예, 야쿠자놈들로 준비 했습니다."

"이권은 학실하게 챙겨 줬냐잉?"

"사장님이 지시하신대로 처리 했습니다."

"잉, 그려. 보상이 학실허야, 뒷 말이 없는 것이여. 우리 회장님 봐라잉 얼매나 보상이 학실허냐?"

"맞습니다."

다시 시선을 멀리 고키부리에게 던지는 김장원.

-도쿄의 취업난을 해결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찾고! 늙고, 낡은 문화를 뿌리째 뽑으며! 도쿄의 근로자들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만들고! 은퇴 후 노후가 어려운 노인들까지! 이 고키부리가 책임을 지고! 총대를 매고! 앞으로......

고키부리의 일장연설은 끝을 맺지 못했다.

웅성웅성.

한 눈에 보아도 '나 야쿠자야'하는 사내들이 전방위에 걸쳐서 저마다의 손에 연장을 들고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주춤주춤 물러나는 군중들.

"아따, 아그들 연장 살발해분다잉."

"흠, 야쿠자 놈들은 저런 연장을 쓰나봅니다."

"도끼에, 일본도에. 아주 영화를 찍어분다잉."

"대충 적당히 말리라고 하겠습니다."

막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대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김장원.

"되았어, 그냥 허게 둬 봐. 어차피 죽이지는 않을테니께."

"당하게 두라는 말씀이십니까?"

"판때기를 거하게 깔아 뒀는디, 뒷맛이 더러브먼 쓰겄어?"

"......"

"주요 장기는 잘 피해서 쑤시라고 해 놨으니께, 괜찮에."

"그렇습니까."

"잉, 그라니까 살살 가드라고."

***

쾅, 쾅.

여기저기 곡괭이 질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려퍼지는 탄광의 갱도 앞.

열악한 환경속에 제대로 된 안전장비나 마스크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북한의 노동자들. 그러나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이번엔... 아오지 탄광이가?"

김은정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재형.

"동무래 도대체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게 뭐이가?"

"보고 느끼시라요, 나중에. 나중에 얘기 합시다."

둘이 말을 섞는 와중에 갱도 안에서 세 사내가 걸어 나왔다. 정확히 가운데 있는 사내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거의 끌려나오듯 나오고 있었다.

"뭐이가?"

군관 하나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갱도 바깥으로 나온 사내들을 붙잡았다.

"돌댕이가 떨어졌습네다."

군관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의식이 없는 사내의 턱을 움켜쥐고는 좌로 우로 둘러보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쯧, 갔구만 기래."

"어떻게 합네까?"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하네? 네 놈들은 날래 일 하라!"

쭈뼛쭈뼛 바닥에 환자를 내려 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갱도로 옮기는 사내들.

"날래날래 움직이라! 썩어지고 싶니!"

어느새 군관의 곁에 군인들이 곤봉을 쥐고는 서 있었다.

"아, 아닙네다!"

사내들이 황급히 다시 갱도 안으로 들어가고, 군관은 뒤 돌아 이재형과 김은정을 바라보더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환자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외쳤다.

"이거 치우라."

"어디로 치웁네까?"

"저짝에 가믄, 썩어지고 있는 것들이 있디, 대충 던지고 오라!"

한숨을 푸욱 내쉰 김은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사내의 머리 맡에 섰다.

이제는 다 죽어가거나, 죽은 시체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김은정이었다.

***

지도를 툭툭 두들기고 있는 장저민이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유라시아 횡단 철도, 어떻게 생각하지?"

"그 계획이 실행만 된다면, 성장이 멈추었던 우리 공화국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예! 각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런데 이걸 제안한 게 SKY인게 좀 걸려."

보좌관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까지 SKY 공장에서 뭐 빼온 기술이 없지?"

보통처럼 물어 봤으나 장저민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 챈 보좌관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면목없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안 되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는데, 사소한 것 하나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게 말이 되나? 오히려 SKY의 제품을 가져와 역설계 하는 게 더 빠르겠어."

"SKY의 보안이 워낙 철저해 빈틈이 없습니다."

"차일피일 시간이 뒤로 밀리다보면 SKY는 우리 중국에서 단물을 다 빨아먹고 다시 제 놈들의 뿌리인 소국으로 도망가겠지."

"최대한 서둘러 보겠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어?"

보좌관이 슬쩍 장저민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우선 비용 문제로, 최대한 많은 인원을 투입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인건비가 더 싸다?"

"기술을 가져오면 포상금을 걸었습니다."

"무일푼으로 부렸다는 소리군."

"SKY에서 주는 월급이 있으니, 인민들에게는 작은 돈이 아닙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저민.

"확실히 효과적이긴 하겠어, 적은 돈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기에는."

"예! 각하!"

우렁차게 대답하는 보좌관에게 눈쌀을 찌푸리며 말하는 장저민.

"칭찬 아니야, 여태껏 해 왔던 구식 방법 그대로가 아닌가?"

"......"

"시대가 변했고 세상이 변했으면, 방식도 변해야지... 이제 회유책을 써보도록."

"회유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인민들을 SKY의 중심에 넣을 수 없다면, SKY의 중심에 있는 놈들을 우리쪽으로 데려오면 될 게 아닌가?"

"아..."

"그게 돈이든, 목숨 값이든.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예,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저민이 지도에서 눈을 떼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사관에 연락해서 약을 치라고 그래, 뻣뻣한 것들 있으면 다시 기름칠을 해 주고."

"유라시아 철도 때문이십니까?"

"그래, 미리미리 약을 쳐 놔야 나중이 편하지."

"음... 현재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인민들 피 빨아먹는 놈들 조져, 그럼 나올테니까."

"예, 각하."

"그리고."

톡톡.

테이블 위 사진을 두들기는 장저민.

"북한의 김은정 동지 아닙니까?"

"이 놈, 우리는 앞으로 이 놈을 김일정의 후계로 삼는다."

"김남정은 버립니까? 송 부인의 자식인데..."

"한족의 피가 흐른다고 다 한족이더냐."

"......"

"이제부터 김남정이한테 가던 지원을 끊어, 칼 같이. 멍청한 놈이 도박에 빠져서는... 쯧."

"예, 각하."

"또, 사막에서 SKY놈들이 도대체 뭘 하는지도 알아 봐, 아무래도 우리 대국의 땅에 다른 군사시설이 있다는게 눈엣가시 같이 느껴지니까."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소파에 깊이 몸을 묻은 장저민이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오늘 기분이 별로이니... 아이들을 준비 하도록."

"아, 예! 알겠습니다."

"인민들의 고혈을 빠는 놈들도 불러, 뺏기만 하면 반감을 사니까."

"예!"

***

싱글벙글.

어린아이들의 정신세계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저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자면, 절로 내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만 같았다.

"우쮸쮸."

"까르륵."

뽀뽀를 안 하고는 베길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들.

"우르르르르 까꿍! 우르르르르 까꿍!"

살짝 살짝 던져주기만 해도 뭐가 그리 좋은지 양 팔, 양 다리를 활짝 펴고는 해맑게 웃는 태양이, 그리고 별이.

"허니! 애들 뇌 흔들린다니까! 아직 그런 장난 하면 안 돼!"

"아 그래?"

"그래!"

"미안미안, 몰랐어."

엄마라는 존재는 슈퍼맨이 아닐까 싶을 만큼, 어디선가 아이들의 위험이 닥처오면 항상 저렇게 튀어나와 내게 경고를 한다.

"태양이 별이 맘마 먹을 시간 됐으니까, 허니 분유."

"옙! 마님!"

바깥에서는 수십만의 직원들이 존경하는 나도 집에서는 열심히 분유를 제조해야 했다. 이게 유부남의 삶일까?

"우진, 저기 저 놈 같이 일하는 놈 아닌가?"

데비 할아버지의 말에 열심히 분유를 섞으며 TV로 시선을 던졌다.

뉴스 화면 가득 복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고키부리가 보였다.

"어? 그러네요?"

데비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테러를 당했다는데? 그것도 복부에 칼침으로."

"오우야... 아프겠다."

"그게 다인가?"

"예? 그럼 뭘?"

"같이 일 하는 놈 아니었어?"

"에이, 어떻게 사람이 바퀴벌레랑 같이 일을 해요? 바퀴벌레는 퇴치해야지."

"음? 친한 줄 알았네만?"

"혹시 애완용으로 키울 수 있을까 해서 간 좀 보고 있죠. 꼬라지를 보니까, 이제 완전히 애완용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피식 웃는 데비 할아버지.

"퍽이나, 너라면 식용으로 키울 것 같구나."

"오우야, 그건 거절 하고 싶은데요?"

"하긴, 벌레는 삼키는 것이 아니지. 세상에 맛 좋은 것이 만읂데 말이야."

"그렇죠? 크게 신경쓰지 마세요, 어차피 저것도 쇼하는 것 같은데."

"쇼?"

"왜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도 쇼 좀 하셨잖아요?"

"아아, 그거."

"예, 아마 할아버지한테 정치 좀 배운 모양이네요."

데비 할아버지가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는 날 불렀다.

"우진."

"예."

"혹시 우리 주니어도?"

매번 구박만 하더니, 그래도 아들이라고 장인어른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글쎄요, 필요하면?"

"크음... 잘 부탁하네."

"그럼요, 할아버지 아들이기도 하지만, 제 장인어른이시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더 걱정 돼."

"뭐가요?"

"너는 네 할애비한테도 총알을 먹이잖으냐!"

"에헤이, 그건 할아버지가 자작극이고."

데비 할아버지가 막 무엇인가를 얘기하려고 입을 열려는 때, 주방쪽에서 루시의 외침이 들려온다.

"허니! 온도 체크하고 빨리 먹여! 애들 울잖아!"

"응응, 금방 가 루시!"

< 제 27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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