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71화. >
후진다오를 데리고 주둔지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시계가 넓은 사막 한 가운데.
주둔지 건물에서 앞으로 십여미터쯤 걸어가서는 뒤돌아 말했다.
"내가 이 사막을 변화 시킬 것이다."
머릿속에 의문이 드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후진다오.
"이 사막에, 적어도 SKY의 땅에는 푸르른 생명이 들끓게 만들 것이야."
"그렇습니까."
"그때, 내가 네 놈을 저 중국 땅으로 보내겠다."
후진다오의 눈에 절망이 서렸다.
사막을 푸르른 생명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 부터가 허무맹랑한데, 그러고 나서야 자신을 바깥으로 내보내겠다는 말이니, 한 마디로 자신을 영영 이곳에 가둬두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
"약속하지, 5년 안에 너는 저 곳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5년..."
"그 안에, 네 놈은 중국을 SKY의 아래에 둘 수 있는 방법을 생각 해 보아라. 힌트를 주자면, 네 놈이 얘기했던 문화를 기억하고."
대답을 망설이던 후진다오가 끝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문화... 예, 주군."
***
매앰, 매앰.
매미가 우는 도쿄의 4월.
열도라 부르더니 더워서 열도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과는 사뭇 다른 날씨에 김장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흐미, 더운거..."
정장 상의를 거칠게 벗어던진 김장원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워낙 독고다이를 좋아하는 그였기에 일본 땅에도 홀몸으로 도착했다.
사실, 독거미라 불리는 PMC 정보부의 꽃과 함께 오고 싶었으나 그녀는 바쁘다는 핑계로 김장원과 함께 가는 도쿄행을 거부했다.
"쩝."
뭐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신 김장원이 사전에 얘기가 된 곳으로 향하자 PMC 대원들 둘이 그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잉, 더운디 고생이 많타잉... 얼릉 가자, 할 일이 태산이니께."
"예."
탁.
차량에 오르자 마자 김장원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대원에게 물었다.
"고키부리 고놈은 뭐더고 있냐?"
"도쿄 내부에서 제법 알려진 시민단체들에게 열심히 기름칠을 하고 있습니다."
"잉, 그려?"
"예. 사장님."
시계를 슬쩍 본 김장원이 다시 시선을 대원에게 돌렸다.
"여그서 그놈 있는데까정 얼마나 걸리냐?"
"약 40분 거리입니다."
"워따 멀다잉... 서둘러 가자잉 나가 얼렁얼렁 처리하고 마카오로 넘어가야 된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잉... 고것은 아닌디, 거시기 나가 쪼끔이라도 더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안 그라냐."
"하하, 알겠습니다. 과속 좀 하겠습니다."
"잉, 좋아. 카메라 찍히불믄, 나가 비용처리 해불라니까 걱정을 하덜 말고 밟아부러."
"예."
부아아아아앙.
김장원의 뜻대로 그들이 탑승한 세단이 도쿄의 도로를 질주했다. 본래 40분 거리라고 했던 목적지까지 그들이 도착하는데는 28분여가 소요되었다.
"워따 30분도 안 걸려부렀다. 운전 솜씨 좋네잉."
"카메라도 안 찍혔습니다."
"캬, 굿이여, 굳."
"감사합니다."
"여그냐?"
"예, 미리 차를 시켜 놓으라고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장원이 성큼성큼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2층 카페 내부로 들어가 흡연실을 통째로 빌리고 앉아 있는 고키부리에게 다가간 김장원.
고키부리가 제법 유창한 한국어로 우렁차게 인사했다. 마치 한국의 조폭처럼.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상!"
"잉, 그려. 식사는 자셨고?"
"하잇, 혹 식사 전이십니까?"
"아녀아녀, 고것은 중한것이 아니고."
"하잇, 말씀 하십시오."
완전한 아랫사람처럼 고키부리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몸을 묻은 김장원 앞에 뒷짐을 지고 섰다.
"아따, 인자 도지사 할 사람이 뭔... 앉거요 누가 보면 욕하겄어."
"감사합니다."
칙칙.
담배에 불을 붙인 김장원이 고키부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꿀꺽, 꿀꺽. 김장원이 담배 한 개피를 다 필 동안 고키부리는 슬쩍슬쩍 김장원의 눈치를 보며 침만 삼켰다.
"어이, 도지사 될 양반."
"예! 김상!"
잔뜩 긴장한 얼굴, 덕분에 커다란 대답이 튀어나온다.
"암만해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도지사가 되불라믄 쪼까 아파야 쓰겄는디, 각오는 되었남?"
"아, 아파야 한다는 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잉... 나가 시간이 겁나게 없어부러서, 얼렁 우리 고키부리 선생을 도지사로 맹글고 떠나야겠다 이 말이제."
"어쨌든 제가 도지사가 될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글제, 그것도 겁나 빠르게."
고키부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그렇다면 무슨 고통이든 감내 하겠습니다!"
"학실허제?"
"예!"
"좋아잉,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자고잉."
침을 꿀꺽 삼킨 고키부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헌데, 어떤 방법인지..."
"잉, 별거 아니여. 테러 한 번 당해불자고."
"테, 테러?"
"고 선생은 그냥 하던 대로만 해, 나가 나머지 것은 알아서 해 불라니까."
"알겠습니다."
"사전에 통보 없이 일을 진행 할테니께, 대충 '아~ 이것이 김장원이가 야그 한 일이구나~'하고 생각허먼 되야."
"와, 완벽한 연기를 위해 일정을 말씀 해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잉, 여윽시 도지사 될 선생은 다르구마잉, 알아들은 것 같으니께 이만 일어 나자고."
"예."
망설임 없이 담배를 비벼 끈 김장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깥으로 나가 흡연구역을 지키고 있는 PMC 대원들에게 뭐라 바쁘게 설명하고 있는 김장원.
고키부리는 요사스럽게 빛나는 눈으로 그런 김장원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야, 이게 봉황인가요?"
"금으로 장식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오, 좋다~ 대한민국 대통령 사치스럽고."
"하하하, 그래도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데 겉치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존경을 받아야 하는 자리니 그렇게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그대로라죠?"
내 질문에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쯧쯧, 옛날에는 굶어 죽는 사람도 그렇게 많았다더만... 대통령은 금칠이나 하고 앉았고, 나라 꼴 좋~다."
철컥.
집무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할아버지.
"이 놈아, 그러는 네 놈 사무실에는 별 것 없더냐?"
"대기업 회장 사무실이랑 대통령 사무실이랑 비교하면 됩니까?"
"모르긴 몰라도 네 놈 사무실이 더 비쌀 것 같다만."
"대한민국보다 SKY가 돈이 많은데 그래야죠?"
"네 놈의 SKY도 결국은 대한민국이 뿌리야."
"이야, 우리 할아버지 대통령 다 되셨네."
털썩 소파에 앉아 넥타이를 풀어헤친 할아버지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목 아퍼! 앉아."
"옙!"
"또 혼자 온게냐?"
"아뇨, 정 대표님이랑 같이 왔잖아요?"
"이 놈아, 호석이 말고! 우리 똥생이들 말이다."
"일 얘기 하는데 왜 가족을 데려 옵니까."
"쯧쯧, 벌써 3일을 못 봤구나."
"공사가 다망하실 대통령이시니까 당연한거죠."
"그래, 아이들은 별 일 없고?"
피식 웃으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루시, 우희, 데비 할아버지까지 아주 지극정성이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쯧... 오냐. 네 놈 얼굴은 지겨우니까, 얼른 일 얘기나 해보거라. 오늘은 나도 집으로 퇴근해야겠어."
"대통령 집은 청와대 아닙니까?"
"산삼물을 뒤집어 쓰고 싶은 게냐?"
찻잔을 들고 당장이라도 내게 끼얹을 것 같은 모션을 취하는 할아버지. 나는 황급히 손사래 치며 말했다. 할아버지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기에.
"항복, 항복!"
"일 얘기나 해."
품에서 시가를 한대 꺼내 할아버지에게 권하고는 물꼬를 텄다.
"제가 중국 다녀온건 아시죠?"
"철웅이에게 보고 받았다."
"장저민 놈이 슬슬 탐욕을 부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
"예, SKY 공장에도 노골적으로 산업스파이를 심었으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여기."
탁탁, 테이블을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여기 청와대, 혹은 대한민국에도 제법 많은 중국놈들이 숨어 있을 것 같은데요."
"정치권에도?"
"중국자본 처먹는 놈들이 분명 있겠죠."
"흐음..."
"제가 장저민한테 유라시아 횡단 철도라는 떡밥을 뿌리면서 북한 후계 구도에 간섭하자고 옆구리를 찔렀거든요?"
할아버지가 알겠다는 듯 입꼬리를 들어 올리신다.
"호오, 그러니까. 그 유라시아 철도를 홀라당 삼키려면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에 돈 지랄을 제법 할 것이다. 뭐 그런 얘기구나?"
"예, 그때를 기 해서, 중국 돈 받아먹어 나라를 좀 먹고 있는 짱개 새끼들 일거에 처리해버리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일리 있구나."
할아버지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북한의 후계 문제는 무엇이냐?"
"현재 가장 유력한 후계자는 할아버지 정보에 의하면 김남정이었잖아요?"
"그랬지."
"근데 그 놈은 후계자가 될 제목이 아니에요."
"허면 더 좋은 것 아니냐? 써 먹기가 쉬울테니."
"너무 오만합니다. 감히 세상을 제 아래로 볼 놈이거든요, 쥐뿔 능력도 없으면서."
"네 놈과 같지만 다르구나."
훅 치고 들어오는 할아버지의 공격에 명치를 어루 만졌다.
"와, 아프게 때리시네, 말로."
할아버지가 웃으며 철웅에게 시선을 던졌다.
"맞지 않으냐? 오만하게 세상을 오시하는 것은 같고, 능력이 없는 것은 다르고."
"예, 맞습니다. 세상을 내려다 볼 자격이 있어 내려다 보고 계시니까요."
"이 놈들이 이제는 아주 신 보듯 하는구나."
할아버지가 입술을 삐죽 내미신다.
나는 철웅에게 엄지를 척 들어 올려 주었다.
"흰 소리는 됐고, 그래서? 후계가 뭐?"
"저는 코드원... 그러니까 김일정의 친위대로 위장했던 이재형을 통해 김은정이라는 삼남을 꼬셔볼까 합니다. 김남정의 대체로 세울까 싶거든요."
"북한의 후계 구도를 바꾸겠다?"
"예."
"그것 때문에 네 놈의 대계중 하나라던 유라시아 횡단철도에 대한 떡밥을 장저민이라는 붕어 놈에게 던졌고?"
"그렇죠."
"장저민도 제법 오래 해 먹은 놈이지, 아래로 떨어질 줄을 모르던 놈이다. 그 놈이 네 놈의 말을 쉽게 듣겠더냐?"
"에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안 되면 되게 해야죠?"
차를 호로록 마신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뭐, 네 놈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없으니, 믿지 않을 방도가 없구나."
어깨를 으쓱이며 할아버지를 따라 산삼차라는 그것을 한 모금 들이켰다.
"해서, 내게 그 말을 하는 이유는?"
"후계자 일은 제가 알아서 진행시킬겁니다."
"나는 나라 단속이나 철저하게 해라?"
"에헤이, 또 말씀을 그렇게 하실까. 할아버지 편한일 드리려고 하는 건데."
"이 놈아 네 놈이 둘 다 하면 되지 않느냐, 나는 편하게 내 똥생이들이나 보면서 허허실실 웃고 싶구나."
"또또, 마음에도 없는 말씀 하시네. 집에서 며칠 쉬면은 일 없냐면서 기웃거리실거면서."
"크흠, 하여간 나라 팔아먹는 정치인들, 공무원들 조지라는 얘기더냐?"
"예, 그런일에 할아버지가 앞장스셔야죠, 부폐척결하는 청렴한 대통령! 얼마나 프레임이 좋습니까?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르는 지지율!"
크게 한 숨을 내쉰 할아버지.
"다음 대통령도 나 보고 하라는 소리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2년만 채워주세요 할아버지."
"허허... 은퇴는 물 건너 갔구나."
"그러니까요, 할아버지만 너무 일 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장인어른 좀 꼬드기고 있습니다."
"응? 데비 주니어를?"
"하하, 예."
할아버지가 픽 웃어버리셨다.
"미국까지 삼키겠다라... 이 놈이 정말 철혈의 제국을 세우려고 작정을 했구나."
"그러니까요, 그 제국의 상황제 노릇하시면서 편안하게 은퇴하게 해 드릴테니까 조금만 더 고생해주십쇼."
"오냐, 어디 한 번 해 보자!"
< 제 27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