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69화. >
희열에 찬 표정이란 게 저런 것일까?
장저민의 얼굴은 상상의 나래로 복잡해 보였다.
"그래서, 그대가 밀고 싶은 북한의 후계자가 있소?"
꼬지에서 올리브를 빼내어 살짝 베어 물고는 고개를 저었다.
"차남과 삼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더군요,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 아시는 게 있습니까?"
'훗'하고는 콧김을 내뿜은 장저민이 잔을 들어올려 흔들고는 그대로 들이켰다.
"정보를 쉽게 캐는 것 아니오?"
"계획을 말씀드렸는데, 싼 값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유라시아 횡단철도라... 나는 왜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글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있는데 과연 장저민이 그것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중국에서 팔만한 제품이 없는 것이다. 특히나 서구권에서는 중국 제품을 혐오한다. 그것은 미래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값싼 중국 제품은 싼 맛에 쓰다가도 화딱지가 만들기 충분한 품질이니까.
좋은 유통망이 있어 봐야 오히려 서구권에만 좋은 일을 해주는 셈이었다.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내수시장을 해외에 개방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 역시, 개방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술력으로 압도 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굳이 도박수를 내밀 필요가 없었다.
중국은 내수시장 만으로 충분히 운영되니까.
"굳이 지름길 놔두고 돌아가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 해 주시죠."
"크흠, 좋은 사업 아이템을 들었으니 값을 치루는게 예의 아니겠소? 말 해 드리리다."
장저민의 입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은정은 대충 알고 있었다. 정확한 성격이야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누거나 생활을 같이 해본 것이 아니니 당연히 알지 못한다. 그래도 전 삶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대충 어떤 인물이겠거니 짐작은 할 수 있었으며, 현재는 이재형이 목숨을 내걸고 전담마크를 하고 있으니 속속들이 정보가 도착할테다.
당장, '북한군'의 일개 병사가 되려는 도전을 한다는 것 부터 제법 좋은 자질을 가졌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장저민에게는 김은정을 모르는 것 처럼 얘기했으나 내가 가장 궁금한 놈은 차남 김철정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듣고 싶기에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미래의 내가 생각하는 유통망 정보까지 오픈했다.
손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중국을 통해 북한을 손 쉽게 요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중국의 견제가 아닌 도움을 받는다면 훨씬 쉽고 편하게 북한을 장학 할 수 있으리란 계산이 깔려있었다.
"일단은 김일정의 아들은 모두 셋이오."
"알고 있습니다."
"하긴, 그정도는 대부분 아니까... 어쨌든, 삼남 김은정은 아직 너무 어리지 이제 막 성인이 되었으니까. 해서, 후계 구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소, 스위스인가? 스웨덴인가에서 돌아온지도 얼마 안 됐고, 북한의 실정도 잘 모를 것이외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김은정의 정보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어떤 '인물'이냐에 대한 정보는 쏙 빼고 설명하고 있었다. 어쩌면 장저민도 크게 중요 인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여색을 좋아 하는 것도 아니고, 재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며 학식을 갈구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인물이외다."
평가가 별로 좋지 않았다.
"모난데도 없지만 못한 것도 없소. 어쩌면 아비의 그늘에 비해 너무 평범하달까?"
장저민이 저렇게 평가하니 나는 오히려 김은정이 달라보였다.
북한과 그래도 '친하다'라고 생각하는 중국에서 김은정을 별 것 아닌 것 처럼 여긴다는 건, 김은정이 야망을 잘 숨기고 있으며 '치부'역시 만들지 않고 있는 아주 '치밀한' 인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요, 차남은 어떻습니까?"
"삼남 김은정보다 세살 위의 형이라 아직까지는 장남에 비해 후계 구도에서 많이 밀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태요."
"나이 때문입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일단은 차남이니까 그렇소."
"그렇군요."
"학식은 형제들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소, 월등 할 정도로. 그러나 제법 큰 흠이 있소."
"뭔가요?"
"바깥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나와 비슷하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장저민이 음흉스럽게 웃으며 바텐더의 손을 만지작 거리는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호색한이다?"
"크하하, 천 회장, 이 장모가 듣고 있는데 너무 직설적인 것 아니오?"
"여자 싫어하는 남자 있겠습니까? 가끔 있다고도 들었긴 합니다만."
"크큭, 그렇지... 남자는 꽃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지."
"헌데, 차남 김철정이 호색한인 것과 후계구도에서 밀리고 있는게 어떤 상관입니까?"
"듣기론, 정치, 권력 따위는 관심이 없소. 관심은 오직 오늘 밤은 누구와 보낼까에 더 많지."
들어야 할 건 다 들었으니, 이제 슬슬 자리를 마무리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김남정은 별로 추천하고 싶은 후계자가 아니니,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보시지요."
"그대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니 이 장모도 한 번 고려해 보리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쯧, 이리 가려니 아쉽군."
장저민이 바텐더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이내 내게 시선을 보내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감히, 천가 키즈의 인재를 그딴식으로 낭비 할 순 없는 일이었다.
"쩝, 빠른 시일내에 연락을 하겠소."
"살펴가십시오."
입맛을 다시며 사라지는 장저민.
아마도 오늘 장저민의 제법 오랫동안 교성이 울려퍼지지 않을까 싶었다.
곧, 다가온 호석이 장저민이 앉았던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같은 걸로 부탁해요."
내가 마시는 칵테일을 가리킨 호석, 바텐더들이 '예'하고 예쁘게 대답하고는 열심히 음료를 만든다.
"김철정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습니까?"
"코드 원과 다르게, 코드 나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쉽군요. 그렇다고 무리하게 움직이지는 말라고 꼭 전달하세요, 소중한 대원의 목숨입니다."
"예, 회장님."
힐끗 바텐더들을 쳐다보고는 호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런 인재들이 있었어요?"
"정보부 활동을 위해 다양한 방면의 인재들을 등용하고 있습니다."
"에휴, 하여간 정보가 벼슬이라니까."
***
덜컹이는 군용 트럭 안.
여기저기 찢긴 천막 사이로 함경북도의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몸을 두들긴다.
4월임에도 살을 에는 바람에 보급으로 받은 동계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거북이처럼 목을 집어넣고 추위에 버티고 있었다.
끼이이익.
브레이크 패드가 굉음을 내며 차량이 멈춰 서고, 제법 높은 계급을 가진 군관 하나가 소리친다.
"뭐하네? 썩어지고 싶니? 빨리빨리 내리라!"
호통소리에 북한군이 차례차례 트럭에서 내려 4열 종대로 도열했다.
"처음하니? 움직이라!"
발을 한 번 구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군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대충 삯은 천으로 돌돌 감겨있는 무언가를 빠르게 운반하기 시작했다.
"움직이시라요 동무."
이재형의 말에 김은정이 한 걸음 앞으로 떼다 멈추었다.
"동무,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네?"
이재형이 쯧, 하고는 혀를 찼다.
"공화국 전사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습네다. 움직이시라요!"
"동무가 도대체 내게 가르치고 싶은 거이 뭐이가?"
"공화국 인민들의 삶이, 또 공화국 전사의 삶이 궁금하다 안 했슴둥?"
"이거이... 지금 이거이... 공화국 인민의 삶이네? 전사들의 삶이네!"
조금 격해진 김은정의 반응.
"너들 뭐이가? 움직이라 안 했니?"
결국 김은정의 목소리가 높아지니 군관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았다.
이재형이 김은정을 슬며시 밀었다.
"일단 움직이시라요, 움직이면서 말하디요."
"크윽..."
삯은 천 사이로 거뭇한 떼가 뭍은 살결이 고스란히 보였다. 천으로 둘둘 말려 있었으나 그것은 누가 보아도 사람의 시체였다.
"도대체..."
척 봐도 한 두구가 아니었다.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백여구는 되어보이는 시체들.
"굶어 죽거나, 강제노동 중 죽거나, 전염병이나 병으로 죽디요."
이재형의 무감각한 말해 파르르 눈썹을 떠는 김은정.
"이 사람들... 어디로 가네?"
"일 없소, 알아서 좋을 것 없기요."
뭔가를 더 묻고 싶은 표정이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는 않는지 입을 벌렸다 닫기를 수 차례.
"많이 보고 느끼시라요, 그 다음에 생각해 보기요... 공화국을 위해서 동무가 할 수 있는 거이 뭐인지."
이재형이 말을 끝내고 허리를 숙여 시체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 넣는다. 김은정도 이내 시체의 다리를 잡으려는 듯 허리를 숙이다 비척, 옆으로 물러난다.
"우웨에엑."
속을 게워내는 김은정.
곱게 자란 그에게 시체 냄새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심리적으로도 감각으로도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
퍼억.
어느새 다가온 군관이 사정없이 김은정을 밀어 찼다.
"이 모지리 뉘가 데려왔니? 우리 공화국은 모두가 공평해야디, 동무만 쉬니? 동무만 힘드니? 썩어지기 싫으면! 날래 움직이라!"
김은정을 제외한 모두가 익숙한 모습.
눈쌀은 찌푸리지만 김은정 처럼 동요하거나 속을 게워내는 군인은 없었다.
"이거이..."
넋을 놓은 김은정의 목덜미를 들어 억지로 일으키는 군관, 그의 등을 밀며 크게 소리쳤다.
"동무가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동무들도 같이 힘들게 해주갔어, 움직이라."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다시 이재형의 앞에 선 김은정. 심호흡과 함께 시체의 종아리를 꽉 잡아 들어 올린다. 앙 다문 입과 달리, 거세게 떨리는 동공은 무엇인가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
덜컹덜컹.
언제와도 사막길을 달리는 차 안은 편안하지가 않았다. 이곳에 미친짓인 줄 알면서도 도로를 깔고 싶을 정도로 정말 심력이 어마어마하게 소모된다.
장저민을 꼬셔서 작은 활주로라도 만들어버려야 되나 싶을 정도로 매우 짜증났다.
끼이익.
"도착했습..."
철컥.
"후아..."
호석이 도착했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문을 열고 내렸다. 사실 경호 원칙상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지금 속을 게워내기 직전이니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헬기라도 탈까 싶네요."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확실히 SKY 에너지의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운송용 헬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매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죠."
"예, 회장님."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멀리로 니글니글 거리는 속이 따가운 햇볕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기에 어쩔 수 없었다. 4월의 타클라마칸 사막은 이렇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파천으로 된 막사가 즐비했던 타클라마칸 사막의 SKY의 땅에는, 어느새 크고 탄탄해 보이는 건물들이 들어 서 있었다.
지반의 문제로 모두 단층이라는 아쉬움이 있으나 그래도 전보다 훨씬 나아진 환경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니 시원한 공기가 날 반긴다.
"오?"
"에어컨입니다 회장님."
"벌써 이 정도 전력이 나옵니까?"
SKY 에너지의 타클라마칸 지부장이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사람이라면 이 날씨에 덥지 않을 수 없으니, 다들 필사적으로 에어컨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웃픈 농담에 피식 웃어버렸다.
"인정합니다. 바깥에는 죽을 맛이에요."
"그래도 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회장님께서 만족하실만한 성과가 나왔습니다."
"어디 볼까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빔프로젝터를 켜는 지부장.
그리고는 SKY 전자의 로고가 선명한 랩탑까지 부팅한다.
미래를 살다온 내게는 가혹한 부팅이 끝나고, 화면에 보이는 프레젠테이션 문서.
내가 굳이 중국에게서 '사막'을 받아내려 했던 이유.
저 멀리 아프리카나 중동이 아닌 중국을 선택했던 이유.
그리고 그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 제 26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