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68화. >
밝게 웃으며 위풍 당당하게 걸어오는 인물.
현 중국의 주석이자 당 지도부의 최고위 인사, 장저민이었다.
“오랜만이오 천 회장.”
표정부터 자신감이 줄줄 흐르는 것이 중국땅에서 이제 무서운 것이 없는 모양이다.
“예, 오랜만입니다.”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은근슬쩍 언짢음을 표현한다. 이제 볼 장 다 봤다 이걸까?
“베이징의 SKY전자를 둘러보다 들렸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얼굴도 안 보고 가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장저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별다른 일이 없으면 굳이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영, 신뢰 할 수 없구만."
하여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눈치가 귀신이다.
"원래는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졌습니다."
"원래는 있었다?"
"김남정을 아십니까?"
"알지요, 김일정 동지의 적자가 아니오?"
"적자라... 이미 중국은 그를 후계자로 확정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장남 승계가 원칙적인 사회니까 당연한 것이지."
확실히 북한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아직까지는 '장남'이라는 허울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반박할 얘기가 마땅치 않았다.
"직접 김남정을 본 적은 있습니까?"
"몇 번 봤소."
"마카오에 들렀다가 그를 만났죠."
"오, 그렇소?"
장저민은 제법 흥미롭다는 얼굴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는 어떻소? 5년 전인가에 마지막으로 본 것 같은데."
"보고는 계속 받고 계실거 아닙니까? 그가 어떤지."
툭 하고, 비수를 던져 봤다.
어차피 네 들이 후계자로 만들고 싶은놈에 대해서 보고 받고 있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하하하, 왜 그렇게 생각하오? 우리가 굳이 그에대한 보고를 받는다고."
"멍청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놈이더군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그랬소? 안타까운 일이군, 적자가 별로라니 말이오."
1도 안타깝지 않은 얼굴로 안타깝다 말하는 장저민.
"헌데, 그것과 내가 김남정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는 의심과 어떤 연관이 있소?"
"내가 오해를 했던가 봅니다. 주석께서 김남정에게 관심이 없다면 다행이군요."
"관심이 없지는 않소만."
"나는 중국과 북한이 제법 친하게 지내기에, 당연히 김일정의 후계에게도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랬군, 결국 제 나라의 일이 아니겠소? 북한 역시 우리 중국에 관심이 많겠지만, 다른 나라의 일에 나설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그렇군요, 다른 나라의 일에 나설 수 없다라."
나를 가만히 살피던 장저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왜 그러오? 뭔가 아쉬워 보이는데?"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 표정이 드러났나요?"
"그렇소."
"북한의 후계자 자리에 발을 디뎌볼까 해, 얘기를 꺼냈는데 주석께서 다른 나라 일에 나설 수 없다하니 아쉬웠나 봅니다."
장저민이 태연한 표정을 애써 유지하려는게 느껴졌다.
"후계자 자리에 간섭을 한다라."
"북한은 대한민국에도, 중국에게도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왕이면 우리 입맛에 맞는 사람을 후계자로 내세우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크흠, 그렇군..."
"해서, 김남정과 이곳 중국이 사이가 좋다하여, 한 번 만나보았습니다. 어떤 놈인가 싶어서."
"만나 보았더니 영, 별로다?"
"그렇습니다."
"흐음..."
장저민이 뭔가 생각에 잠긴 사이,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에서 준비되어 있던 위스키 중, 괜찮은 것을 골라 온더락 잔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를 따랐다.
힐끗 장저민을 쳐다보니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잔 더 만들어 장저민의 앞에 내려 놓고 중국 베이징의 야경을 내려다 보며 위스키를 홀짝였다.
"생각이 많으신가 봅니다."
"이제와 무엇을 숨기겠소?"
어느새 곁에 선 장저민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내게도 하나 줄까 하는 표정을 짓는데 난 고개를 저었다.
시가는 태워도 담배는 태우지 않았다.
폐 속에 연기를 담아야 하는 담배는 건강에 치명적이기 때문. 물론 시가 역시, 폐 속으로 연기가 일부 들어가지만, 그것도 너무 자주만 피우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김남정에 대해서 보고를 받고 있었소."
그러니까, 다 알고 있는 걸 굳이 숨기고 그러냐고 말 하고 싶으나 한 번은 참았다.
"헌데, 허수아비를 세우고자 한다면 당연히 멍청한 놈이 좋은 것 아니겠소?"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김남정이 멍청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오만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중국이 만든 영향일수도 있는 것이다.
"멍청한 것은 관계가 없습니다만, 문제는 놈이 오만하다는 것이지요, 주제를 모를 정도로."
"오만이라..."
장저민이 들고 있는 잔에 내 잔을 부딪혀 건배를 하고는 말했다.
"개를 좋아하십니까, 고양이를 좋아하십니까?"
"둘다 별로요."
"하하, 애완동물을 싫어하시나 봅니다."
"그런 건 사치스러운 일이니까."
사치의 끝을 달리는 종자가 할 얘기는 아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개는 주인보다 자신을 낮추죠, 주인을 진심으로 따를 줄 아는 동물입니다."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는 오만하여 주인을 친구 혹은, 아랫사람으로 생각한다고들 하죠. 해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가 된다고들 합니다."
위스키를 홀짝인 장저민이 날 똑바로 바라보고 말한다.
"김남정은 고양이다?"
"길들이기 힘든 놈일 겁니다. 너무 망가져있는 놈이거든요, 훗날 중국의 뜻을 그 놈이 따를지는 미지수입니다. 만인의 위에서 오시해야 할 성격인지라."
"감히, 제왕의 눈을 가졌다?"
글쎄, 난 저렇게 멋있게 표현할 생각이 없었으나, 장저민의 입에서 김정남이 멋있게 포장되어 나타났다.
"그러니 적당한 후계가 있어야 하지 않나. 뭐,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우리 SKY도 개성공단에 관심이 많습니다."
"음? SKY의 덩치로도 개성공단이 관심이 가오?"
피식 웃은 나는 다시 뒤돌아 바 테이블로 향해 위스키를 더 따랐다.
병을 흔들며 장저민을 바라보니 그도 목구멍으로 남은 위스키를 털어 버리고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의 술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기업은, 사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이죠."
"인건비?"
"주석을 속여서 무엇하겠습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국보다 인건비가 쌉니다."
"하하, 그건 뭐, 부정할 수가 없군."
"우리 입맛에 맞는 후계자가 나온다면... 개성공단을 조금 더 확대 할 수도 있는일 아니겠습니까?"
장저민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사람, 그게 목적이었구만... 개성공단 전체를 꿀꺽 해 보고 싶었던 것이야."
"안전한 현금 창구가 아니겠습니까?"
장저민이 위스키 특유의 오크 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헌데, SKY가 우리 공화국에 집중하지 않으면, 우리로서도 손해인데?"
"땅 덩이부터 차이가 나고, 구매력부터 차이가 납니다. 중국에서 SKY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생산 후, 바로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중간 유통 마진을 SKY가 가져갈 수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유통업까지 허가를 받은게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제법 SKY 전자의 제품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그 부의 재분배는 중원을 넘어, 온 중국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줄겁니다."
"전세계 어디든 3일 안에 배송을 해주겠다는 그 유통망에 우리 공화국도 포함 시켜서 말인가?"
"주석께서 지금처럼 비호만 해주신다면야,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장저민.
"SKY가 약속했던 도로 공사가 지지부진 하다는 얘기가 들리오만?"
"아직까지 SKY 전자를 비롯한 생산라인이 활성화 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건이 없는데 유통망부터 늘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해외로 수출하는 양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충 둘러대실 것이오?"
거 노인네,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후진다오가 라이벌로 있을 때는 어떻게든 빨리 무엇인가를 해결하려는 조급함이 보이더니, 그 정적이 사라지니 침착하고 똑똑하게 느껴질 정도로 장저민이란 사람이 변화 한 것으로 느껴졌다.
하긴, 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적들을 처리하고 능력을 증명했을테니, 얕잡아 보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 모른다.
나 역시 전삶과 이번 삶까지, 수많은 적들을 처리해오지 않았던가? 내가 장저민을 얕잡아 보는 일은 없었다.
"이거 영, 사내 둘이 술을 마시는데 재미가 없습니다."
장저민이 눈을 빛내며 '험험'하고 헛기침을 내뱉는다.
딱, 하고는 손가락을 팅기니 호석이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숙인다. 이어서 그의 뒤로 두 명의 여인이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으로 내부로 들어왔다.
장저민의 눈은 그녀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유명한 바텐더들을 모셨습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대회에서 수상도 했다하니, 그녀들이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즐겨 보시죠."
"칵테일이라... 그거 좋지요."
여인들이 아름다운 동작으로 칵테일을 만들고, 장저민은 그 장면에 빠져 흐뭇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대외 수출의 경우 사전에 예약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SKY 덕분에 중국에서도 해외로 뻗어나갈 수출망이 확보되는 일이니 더 좋지 않습니까?"
"음... 선약이 있었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소."
태도가 이렇게 갑자기 바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좀생이 같던 장저민이 호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호색한, 호색한 하더니, 여인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가 싶었다. 하긴, 확실히 이 시절의 중국 여인들보다. 한국 여인들은 세련되고 미인인 것이 틀림없으니, 장저민이 혹 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특히나 저 여인들은 천가키즈 출신으로 특별하게 관리받고 특별하게 키워진 인재들이었다.
칵테일 제조가 끝났는지 잔 안에 붉은색 음료를 따르는 여인의 손을 잡는 장저민.
나는 부드럽게 장저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꽃은 꺾였을 때, 그 수명이 얼마 남지 않는 법이지요."
"관상화란 얘기요?"
눈썹을 꿈틀 거리는 장저민.
"아름다움을 오래 유지 할 수 있는 건, 온전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감히 천가 키즈의 인재를 매춘부로 전락시킬수는 없는 일이었다.
"크음... 그렇군."
"지식과 식견이 넓은 여인들입니다. 아름답고 똑독한 꽃이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소, 예기라는 얘기 아니오?"
예기.
예술하는 기생을 일컫는 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옛날 사람인가 싶으나, 딱히 그에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일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북한의 후계자를 우리 입맛대로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 내게 중국에게도, 그리고 우리 SKY에게도 아주 좋을 계획이 하나 있습니다."
"좋을 계획?"
장저민은 오른손으로 자꾸만 바텐더의 손을 만지작 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바텐더는 내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손 정도는 내줄 수 있는 모양이다.
나 역시 다른 바텐더가 따라준 술을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
"우리 SKY LINE이 전 세계적 유통망 개설에 열을 올린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알다마다. 우리 땅에서만 늦어지고 있지 다른 국가에서는 활발히 활동 하더이다."
꽃을 꺾지 못하게 했다고 투정을 부리나 싶었다.
손가락을 팅겨 바텐더에게 손짓하니, 그녀가 사전에 준비했던 지도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 놓는다.
"세계지도?"
나는 그 위에 칵테일 잔 안에 올리브를 꽂아 넣어놓았던 꼬지를 꺼내 길게 선을 내었다.
세계지도 위에 작은 점 같은 대한민국을 출발해 중국을 넘어 유럽,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선.
"북한을 우리 입맛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지금 SKY의 자금력과 영향력을 통해 이런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맙소사."
장저민이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본다.
"지금 육로로 된 길을 열겠다는 얘기요?"
"이왕이면 철도가 어떨가 싶습니다."
장저민이 다시 지도를 빤히 바라본다. 그로서는 너무나 놀라운 얘기인 모양.
"만약, 우리 계획대로 된다면야... 거기서 나오는 경제적 파급력은 아마 상상을 초월하겠죠, 말 그대로 SKY LINE이 추구하는 유통 혁신이 될 것입니다."
장저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어마어마 할 것 같소."
"이름하야, 유라시아 횡단철도."
"이름도 좋군."
칵테일잔을 모두 비우고 장저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제 북한의 후계에 관심이 좀 생기셨습니까?"
"생기다 마다, 꼭 입맛에 맞는 놈을 골라야겠소."
"똑똑한 놈이 좋습니다. 그래야 제 놈보다 높이 있는 사람에게 고개 숙일 줄 아니까."
"완벽하게 이해했소."
< 제 26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