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66화. >
본래 도쿄 도지사의 자리는 신타로라는 사람이 장기집권을 하던 자리였다.
정치에는 관심 없는 척, 고키부리 전 총리는 역사바로알기 재단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는 명분은 역사와 정치에 관심없는 일본의 1030세대의 문제점을 꼬집고, 바른 어른으로서 국가에 이바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물론 대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속으로는 그는 아직도 정권의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일본의 특이한 정치계.
하나의 당이 오랫동안 장기집권을 하면서 여당은 점점 덩치가 커지고 상대적으로 야당들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그러다보니 나라의 살림살이가 전부 여당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고, 그 부분이 문제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대의명분까지 가져갈 수 있었으니, 그가 노렸던 1030세대를 넘어 이제는 4050까지 점점 고키부리를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 자리수던 지지율이 이제 두자리까지 올랐군."
흡족하게 지지율 통계를 바라보는 고키부리.
딱, 딱, 딱.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한참을 고민에 빠졌지만 마땅히 고민을 타파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천혁수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그의 여론은 조금 더 나빠지기까지 했으니 더욱 타이밍이 애매하다는 판단.
금 밀수 역시, 천혁수와 천우진의 마음에 들지 않게 했기에 그들에게 외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키부리는 더욱 열심히 역사바로알기 재단의 일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썩은 동아줄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떨어지면 끝을 모르는 심연으로 빨려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
정치 명가의 처가를 버렸다.
개뿔 가진 것 없는 자신은 정치 명가였던 처가의 척살 1호 대상이 되었을테니, 천우진이라는 끈이 떨어지면, SKY 시큐리티의 경호원들이 없다면 언제라도 암살을 당할테다.
"고생이 많습니다."
해서 자리에서 일어난 고키부리는 오늘도 자신의 집을 경호해주고 있는 경호원들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마음에도 없는 감사를 표한다.
무덤덤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던 경호원들.
"예, 예, 알겠습니다."
그 중 책임자로 보이는 경호원 하나가 고키부리에게 다가와 전화기 하나를 건넨다.
무엇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전화기를 바라보는 고키부리.
"받아보시죠, 보안회선입니다."
고키부리는 일본 특유의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두 손으로 받아 조심스럽게 귓가로 가져간다.
"전화받았습니다. 고키부리입니다."
-잉, 잘 지냈소?
익숙한 말투.
언제나 그의 목을 옥죄고 있던 무서운 야쿠자 놈의 전화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고키부리.
"하이! 김 상도 잘 지내셨스무니까!"
어느새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고키부리였다.
-아따, 나야 회장님이 겁나게 챙겨줘부니까, 못 지낼 일이 없지요잉.
"다행입니다!"
-인자부터는 일본어로 할라니까, 잘 들으쇼.
"하잇!"
-이번에 도쿄 도지사 선거 있다죠?
"그렇습니다."
-거기에 나가세요, 회장님 지시사항입니다.
고키부리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는가 싶었다.
"현 지지율은 신타로가 압도적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럼 바로 출마 선언을 하겠습니다. 기간이 오래 남지 않았으니."
-바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걱정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만간 보자고잉, 여그 마카오 끝나고 바로 넘어가불라니까.
"하잇! 김 상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다리지 말고, 열심히 하면 되야.
"하잇!"
전화가 끊길 때 까지 허리를 숙이고 두손으로 공손히 전화를 귓가에 가져가고 있던 고키부리가 전화가 끊긴것을 몇번이나 확인하고는 밝은 표정으로 경호원에게 다시 전화를 넘긴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지 모르겠으나 경호원은 피식 웃으며 품에 휴대폰을 갈무리한다.
"당분간 행실은 더 조심히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회장님 지시사항이니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느새 일본의 전 총리 고키부리는, 천우진의 충실한 개가 되어 있었다.
***
전화를 끊은 김장원에게 물었다.
"뭐래요?"
"아따 고 새끼, 겁나게 좋아해붑니다."
대충 알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튀어나온다.
"좋겠죠, 목 빠지게 다시 정계 진출을 꿈꾸고 있었을테니까."
"그랴도 그 놈이 죽기 살기로 입을 털고 다니니께, 요즘에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얘기하는 어린놈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요?"
"예, 심지어 일본은 한국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한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고키부리가 했잖아요? 고개 숙여서 공식석상에서."
"그러믄서 고키부리가 다시 재조명 받기도 하죠잉."
요즘 일본에는 통 관심이 없었지만, 김장원과의 짧은 대화로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역사바로알기 재단이란 것이 제법 큰 돈을 투자하니 좋은 아웃풋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좋습니다. 도쿄도지사 되면 더 열심히 하겠죠."
"고키부리가 도쿄 도시사 되불믄, 아마 다른 넘들도 우리쪽으로 기웃거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확실히."
김장원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산에 기대어 커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별로 없는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가던, 정치 하는 놈들은 똑같다. 확실한 지갑을 찾고, 그 지갑에 기대어 대가리를 키운다.
그리고 대가리가 적절하게 커졌다 싶을때, 그 지갑을 차버리고 새로운 지갑을 찾는다.
허나, 애초에 내가 작은 지갑도 아닐테니 나보다 더 좋은 지갑은 찾기가 어려울 터. 한번 내게 빨대를 꽂으려고 했던 놈들은 죽을때까지 피를 빨아주면 될 일이다.
"일본은 대충 정보부 돌려서 지금 도지사 하는 놈 먼지만 좀 털어봅시다."
내 말에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노트에 뭔가를 끄적인다. 아마도 내 지시사항을 적어놓고 나중에 전달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것을 보니 하루 빨리 전자기기의 발전이 필요해 보였다. 아날로그 감성인 펜과 노트도 좋지만, 타블릿에 타블릿 전용펜으로 필기 하는 세상도 살다 오지 않았던가. 그 편의성을 잘 알고 있으니 또 다시 현 기술에 아쉬움이 커진다.
"어땠어요? 마카오는."
기다렸던 질문이었는지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조사를 해 봤는디, 겁납니다잉."
"겁이 난다고요?"
"아뇨, 허벌나게 돈 다발을 쌓아 놓을 수 있겄다. 뭐 그런 야그입니다."
"아아 겁나게 많이?"
"예예, 그 말이죠잉."
호석과 내가 동시에 피식 웃어버렸다.
희번득거리는 김장원의 눈만 보더라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욕심과 탐욕이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계획은요?"
"여그 마카오가 특이한 것이 크게 세개의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계속 해 보세요."
"첫째는 당연이 짱개들이겄죠?"
"예, 그리고요?"
"두번째 넘들은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마카오 본토 넘들입니다."
"세번째는요?"
"아, 고 넘들은 크게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처럼 이제 막 진입해볼까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는 넘들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순위를 매기면요?"
"순서대로 말씀 드린 겁니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오래 받아서, 고놈들이 최고인줄 알았는디, 아닙니다. 여그서는 중국 놈들이 와따지라."
"어째서 그렇죠?"
"마카오는 원래 관광업이 없었습니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순박했던가 봐요잉, 그란디 중국 자본이 투입되믄서, 홍콩처럼 겁나게 발전해불고 있으니까, 반중 감정이 아예 없다고 혀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루 사이에 제법 많은 걸 보고 온 모양.
내가 알던 지식과 상당부분이 맞아 떨어졌다. 나 역시 마카오에 오기 전에 PMC정보부를 돌려 마카오의 실태를 알아 보았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호석 역시 아주 흡족하단 얼굴로 김장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잉? 어째, 두분은 알고 있었는 갑소잉?"
김장원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나와 호석을 바라본다.
"우리 사장님 실력 녹슬었나 싶어서 확인 해 봤습니다."
"와따메, 회장님 겁나게 서운한 소리를 하요잉... 이빨빠진 호랭이도 호랭이 아닙니까."
진심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서운함을 표하는 김장원.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서운해요?"
"아따,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쪼까 싱숭생숭 하다 뭐 그란거지요."
"그래요? 흐음, 마카오 접수 할 겸해서 정보부 직원들 파견할까 했었는데, 내가 김 사장님 실력을 너무 무시했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김장원.
호석이 이때다 싶었는지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그럼 독거미 파견은 미루겠습니다."
"에헤이, 실장. 아니 대표님 잠시만 기다려보쇼잉."
황급히 양 손을 뻗어 막 전화기를 꺼내는 호석을 만류하는 김장원.
"나가 생각해 보니께, 이거이거 사이즈가 겁나게 거시기 해부니까, 꼭 도움을 받아야 쓰겄다 싶더라 이겁니다. 암만해도 나가 많이 녹슬지 않았겄습니까 회장님?"
"방금 전에는 괜찮으시다고? 막 서운하다고 하지 않으셨나?"
"왐마왐마, 누가 그런 소리를 지껄여 불었데요? 확 혓부닥을 꺼내가지고 조세로 조사불라."
"크크큭."
결국 호석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고, 나 역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김 사장님 혼자 버거우면 파견 보낼까요?"
"여윽시 나으 회장님만이 지를 생각해주시는 구만요, 아따 성흔이 망극해불죠잉."
호석에게 고갯짓을 하니 다시 전화를 들어 올린다.
김장원이 잔뜩 기대한 얼굴로 슬쩍 운을 뗀다.
"거시기 기간이 쪼까 걸리지 싶은디요."
입이 마르는지 혀를 날름 거리며 입술을 핥는다.
"그렇죠?"
이때다 싶은지 얼른 달려드는 김장원.
"그라쥬, 짱깨 넘들이 겁나게 드세붑니다잉, 고 넘들 끽소리 못허게 할라믄 시간도 시간인디 또, 비용도 비용 아니겄습니까?"
"맞네, 비용이 문제네."
"그라고 원래 이런 바닥에서는 100퍼센트 내 돈으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라."
"그럼 어떻게 해요?"
"안 그랴도 또, 요즘 우리 대한민국 경제가 대 SKY그룹 땜시 활황이지 않습니까?"
"오, 그래요? 난 몰랐던 사실인데."
"에헤이, TV만 틀먼은 SKY, SKY. 아주 그냥 연호를 하는디 회장님 겸손이 지나치십니다잉."
아주 신이 난 김장원.
어떻게든 오래 삐대고 싶은 모양.
이왕이면 독거미와 함께 말이다.
"혀서, 사채시장 쪽에 요즘 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다 이말이지라."
"아하, 그럼 사채시장쪽 자본을 들여 오겠다?"
"마른 오징어도 쥐어 짜먼은 액기스가 나와 부는디, 그 짝은 지금 홀딱 젖은 오징어다 이 말입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지분 구조는 어떻게 될까요?"
"또, 회장님도 그렇고, 우리 대통령님도 그렇고 근본이 그짝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살 어르고 달래줘야 고 넘들도 뻘 소리가 없다 이거지요잉."
호석이 눈썹을 꿈틀 거리며 말한다.
"죽고 싶으면 무슨 소리를 못할까."
김장원이 아차 싶은지 손을 뻗으며 정호석을 만류한다.
"아따 대표님 또 뭣을 그리 삭막허게 하실까잉... 감히 대들 넘들은 당연히 없죠잉, 그란디 가족같은 우리가 서로 앙금이 생겨서는 되겄습니까?"
손을 뻗어 호석의 등을 두들겨 주고 김장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분율은?"
"아따 말해 뭐합니까? 당연히 회장님이 8이죠잉."
"나머지 2는?"
"지가 알아서 삭~ 분배 해불겄습니다."
"그럼 기간은요?"
"지가 요것도 처리해불고, 잉? 고키부리 고놈 도지사까정 말든어 불고, 6개월만 주십쇼."
"확실해요 6개월?"
"우리 정보부 에.이.스! 들을 붙여 주시믄 무슨 일이든 못허겄습니까?"
"그렇죠? 에.이.스를 붙여 드리면."
"예, 에.에.스를 붙여 주셨을 때 가능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호석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같은 김 사장님 장가길에 이 천우진이가 레드카펫 한번 깔아드려야죠 대표님?"
"하하하,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독거미 잠깐 자리 비워도 코드원이랑 문제 없겠죠?"
"예, 회장님."
"진행하세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김장원이 허리를 깊이 숙인다.
"충성을 다하겄습니다 회장님."
"그, 마른 오징어 잘 짜보세요 얼마나 나오나."
"예!"
< 제 26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