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65화 (265/458)

< 제 265화. >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로.

김남정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동무레 나를 알고 있나?"

이제는 제 놈이 상위에 올라서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듯 건방진 언사가 놈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나를 모르나 보네? 나는 대한민국 SKY그룹의 오너 천우진이다."

천우진의 말에 주변인들의 반응을 살핀 김남정, 주변인들의 얼굴에 놀란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일까.

"유명한 사람인가 보군."

피식 웃으며 탁자를 툭툭 두들긴 나.

"어디가서 지지 않을 만큼."

"재밌구만."

김남정이 딜러가 돌린 카드를 보고는 말했다.

"레이스."

나는 카드를 확인 하지도 않고, 집은 손을 내밀었다.

"두배."

테이블 내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작은 욕설과 함께 카드를 덮어 딜러에게 전달한다. 자신들이 죽었음을 의미한다.

"두배 더!"

김남정이 질 수 없다는 듯 테이블 앞으로 몸을 바짝 당긴다. 나는 여유롭게 앉아 대꾸하듯 말했다.

"전부."

김남정이 비릿하게 입꼬리 들어 올린다.

"동무레 카드도 확인 안했디 않니?"

"왜? 프리미엄 핸드라도 들었어?"

"들었디, 어지간하면 지지 않을 패야."

자신만만한 반응.

얼굴에도 분명 '나 좋은 패요'하고 써 있는 것 같았다. 이제 테이블 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썩어질 수 없디."

김남정 역시 제 앞에 있는 것을 앞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테이블에 앉은지 고작 두번째 게임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딜러가 김정남의 패를 받아 오픈한다.

A가 두장.

손 안에 들어오는 패 중, 가장 좋은 패가 분명했다.

거의 확신에 찬 어조로 승부를 보더라니, 믿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

내게 손을 내밀어 패를 달라하는 딜러.

나는 김정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임의 승패가 뭐가 되었든, 시간 좀 주지?"

"대승인데 그깟 시간 쯤이야."

기꺼이 내주겠다는 소리.

"푸핫, 길고 짭은 것은 대 봐야지."

내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여유롭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김남정. 딜러의 손에 의해 나도 확인하지 않았던 내 패가 오픈되고.

스페이드 킹과 스페이드 10.

"오, 나쁘지 않은데?"

피식 웃어버리는 김남정.

대충 확률로 따지면 8:2로 내가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딜러가 헤즈업을 알리며 보드 위에 3장의 플랍을 열었다.

클로버 잭, 스페이드 A, 다이아몬드 3.

에이스가 한 장 더 오픈되며 쓰리 오브 카인드가 된 김남정이 거의 확신에 찬 얼굴.

"아웃츠가 4개가 있군."

내 말에 김남정이 피식 웃는다.

"원래 기다리는 패는 잘 나오지 않는 법이지."

"글쎄, 오늘은 내가 런이 좋은 날 같은데?"

퀸 한장이 나오면 마운틴으로 나의 승리가 확정되는 상황.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결정된다. 어느새 테이블 주변에 꽤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카지노에서도 현재 게임이 매우 크게 느껴질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어서 한 장의 카드가 더 오픈되고.

"아아!"

사람들은 아쉽다는 듯 탄성을 토해냈다.

나의 승리를 바라는 것일까? 그들의 눈에는 클로버 10카드가 안타까운 모양이다.

열린 카드가 스페이드였다면 내가 플러시도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아쉽지만 클로버 카드.

"확률은 더 줄었군."

김남정의 입꼬리는 더 들어올려진다.

"나한테 이기면 당신 아버지가 더 좋아하겠지?"

"길티, 공화국 전사는 남조선 아새끼에게 저서는 안되니."

이제는 여유까지 생겼는지 내 말도 여유있게 받아친다. 대충 98퍼센트의 확률로 내가 저 있는 보드였다.

딜러가 나와 김남정의 눈치를 보며 테이블을 쿵쿵 두들기고는 마지막 리버 카드를 오픈한다.

""와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진다.

"쉣!"

"맙소사 미쳤군, 정말 런이 미쳤어!"

김남정이 거칠게 칩을 앞으로 밀어버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픈된 카드는 스페이드 퀸이었다.

딜러가 잭, 퀸, 에이스를 위로 들어 올리며 '마운틴!'을 외친다. 나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분한지 카드를 빤히 바라보던 김남정에게 말했다.

"졌다고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지?"

"공화국 사내는 입이 무겁디."

입맛을 다시는 김남정의 눈빛이 요사스럽다. 확실히 바텐더가 얘기했던 것 처럼, 지금 김남정은 도박이 분비하는 도파민에 잔뜩 빠져있는 상태로 보였다.

어째서 미래에 김남정이 삼남에게 밀려 '암살'까지 당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호석을 바라보니 어느새 나타난 대원들이 칩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하고, 나와 김남정은 호석을 따라 카지노를 걸어 로비의 카페에 앉을 수 있었다.

"남조선 아 새끼를 만났다는게 알려지먼, 공화국에서 거품을 물갔구만 기래."

돈 잃은 놈 중에 속 좋은 놈 없다더니, 김남정이 딱 그짝이었다. 거친 언사에 호석이 눈살을 찌푸리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동무래 날 보려는 목적이 뭐이가?"

"현 북한의 제 1 후계자의 위치에 있는 네 놈이 어떤 인간이가 궁금해서."

내 입에서 역시 좋은 말은 나가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 보다 실망이 컸기 때문이다. 미래에 분명 탈북자들의 입에서 김남정에 대한 좋은 얘기가 흘러 나왔었는데, 아마도 김은정이 북한을 거머쥐고, 그를 비난하기 위해서 사용한 장기말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크큭, 동무래 입담이 쎄구만 기래, 목숨이 아깝지 않간?"

"그 말을 그대로 반대로 돌려주고 싶은데?"

"뭐이라? 하하하하! 내레 오늘 일은 잊어버리디 않갔어."

굉장히 짧은 대화였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격언으로 세세하게 보려 했지만 아무리 봐도 김남정은 김일정의 후계가 될 깜냥은 아닌 것 같았다.

등에 업은 권력을 믿고 설치는 망둥이에 불과 해 보였다. 어째서 이 놈이 삼남 김은정에게 밀려 결국 숙청을 당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이래서 중국이 널 밀어 줬나 보군."

"무슨 소리네?"

중국에서도 김남정을 밀어 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둔한 놈이니 컨트롤하기 쉬울 것이라는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 물론, 태생적으로도 중국과 연관이 있는 놈이니 더 쉽게 생각한 경향도 있을터였다.

중국에서 특별히 김남정을 밀어준다 하니 나 역시, 김남정이 어떤 인물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바텐더의 말과 꼭 맞는 꼴을 보자니 굳이 놈을 보기위해 마카오에 올 필요는 없었지 싶었다.

망나니인 척 하는 것인지, 진짜 망나니인지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놈의 과거가 어떻든, 이제 이놈은 다시 떠오를 수 없는 해였다.

뭐가 진짜던, 놈은 큰 사람이 될 깜냥은 아니었다.

이미 싹수가 노랗다는 뜻.

세상을 오시하는 눈을 벌써부터 가졌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감히 날 내려다 보는 저 눈 역시, 그릇이 작음을 증명하는 것.

"날 만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감히 아바이 동무를 입에 담기에 궁금했디."

"뭐 대충 목적은 달성 한 것 같으니, 이만 일어나지."

김남정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별로 중요한 얘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페에 도착해 주문한 커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무래 장난하네?"

"가죠."

놈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 건 다 봤다.

놈의 수행원들의 입을 통해, 김일정에게 나와 놈이 만났다 정도의 보고만 들어가도 이번 마카오 행은 성공적이라 볼 수 있었다.

분한지 김남정은 얼굴을 붉히며 뭐라 소리친다.

그러나 나는 이미 놈을 내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기에 들리지 않았다.

"저 놈 정보는 파기하세요."

"필요 없으십니까?"

"여차하면 후계로 밀어볼려고 했는데, 하도 엉망진창이라."

"그래서 더 필요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멍청한 것은,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놈이 똑똑한지 멍청한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오만한 것은 반드시 문제가 될 터였다. 특히나 중국이나 북한같은 특수한 상황의 나라라면 더욱 더.

"아뇨, 사고 칠 놈이니까 무시하는 게 좋습니다. 제 살을 저 주둥이로 까 먹을 놈이니까요."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김장원 사장한테 둘러봤으면 보고나 하라고 전달해주세요, 계획은 세웠으려나."

"예, 회장님."

***

김일정은 한숨을 내 쉬며 자신의 앞에 당당히 서 있는 김은정을 바라보았다.

"뭐이네? 내레 아직도 네 땡깡을 받아줘야 하네?"

"아닙네다 아바이 동무."

"왜 또 찾아 왔어? 말해보라."

"아바이 동무의 친위대원듕에, 리재형 동무를 주시야요."

"그거이 전부가?"

"내레 그에게서 공화국 전사의 길을 배워볼까 합네다."

픽 웃음을 흘린 김일정.

"말은 좋다야."

"참말입네다."

"호위총국장에게 말해 놓을테니 해 보라."

"감사합네다!"

밝게 웃으며 자신의 방을 벗어나는 김은정의 뒤통수를 쓰게 바라보는 김일정.

"쯧쯧, 아직도 어리구만."

제 형들은 벌써부터 지도부의 고위 인사들에게 얼굴을 보이고 술잔을 기울이며 작은 정치를 하고 있는데 김은정은 이상만 쫒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외국으로 돌렸던 자신 때문일까를 고민하던 김일정이 고개를 털며 자식들 일을 머리에서 지웠다. 아직은 자신이 건재하니 벌써부터 후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한편.

바깥으로 나온 김은정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경계를 서고 있는 리재형의 앞에 섰다.

"동무는 이제 내 사람이디. 알았네?"

"알갔습네다."

"동무가 그랬디? 공화국의 하 전사부터 시작하면 어떻겠냐고?"

"그렇습네다."

"내레 하 전사가 되겠다고 하면은, 아바이 동무가 입에 거품을 물기야, 그러니 조용하게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 보라."

리재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선 궁 바깥으로 나가는 거이 먼저가 아이겠습네까?"

"길티... 기래, 그 부분도 알아서 하갔어. 내일 아침녘에 오라. 준비 해 놓디."

"알갔습네다."

***

아침 댓바람부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리재형을 안내하는 김은정.

"특별히 받아냈디."

제법 넓은 부지의 단독주택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웃는 김은정에게 리재형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공화국의 하 전사들은 일케 좋은 곳에 살지 않습네다."

"길켔지, 거의 전부를 군부에서 살지 않간?"

"그렇습네다. 그러니 그것이 문제 아니갔습네까?"

김은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동무는 지금 내보고 그 돼지우리에서 살란 얘기란 말이네?"

"하전사는 하전사 답게. 장성은 장성답게.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그것이 옳은 것 아니겠습네까?"

"......"

"말만 하전사가 되먼은, 공화국의 인민들이 비웃야요, 세력이 전혀 없는 동무께서 형님들을 이기는 방법은."

툭툭.

가슴을 때리는 리재형.

"이것밖에 없이야요."

"마음?"

"그렇습네다."

뭔가를 한참이나 생각하는 김은정.

"이 리재형이를 믿어주신다면, 내레 인민들이 진심으로 따를 수 있는 공화국 전사의 길을 알려주갔습네다."

"동무래 명줄이 여러개이가? 총살로 썩어질 소리를 하는구만 기래."

실실 웃는 김은정.

그만큼 리재형의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매우 위험한 얘기였다. 그러나 리재형의 눈에는 김은정의 두 눈에 맺힌 욕심이 보였다.

"같이 가겠습니까?"

"안내 해 보라. 공화국 전사의 길이 무엇인디. 이 두눈으로 똑똑이 봐 주갔어."

리재형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따라오시라요."

***

아침부터 접시 가득 먹을거리를 담아오는 김장원.

얼굴이 푸석푸석 하고 머리가 새집을 지은 것이, 전날밤에 또 술을 펐구나 싶었다.

"밤새 마시셨나 봐요?"

"으따, 정보라는 것이 술집에 다 있지 않겄습니까?"

"그래서, 제법 모아 오셨고요?"

"흐흐, 며칠은 나가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곧 좋은 시기가 마카오에 올 겁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김장원.

"회장님이 고로코롬 야그하먼, 꼭 뭔 일이 터지던디요... 마카오 입장에서는 악재인가 봅니다잉."

"악재죠, 전 세계적인 관광 악재."

"고작 한나절을 조사했습니다만, 여그는 관광악재 터지믄 상권이 싹 죽어부는디."

"그러니까요, 좋은 때죠. 진입하기."

"아따, 그라믄 무리를 해서라도 알아보고 댕기야겠네요잉."

알아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여 주고는 커피를 홀짝였다.

나와 비슷하게 적당량의 접시를 가져온 호석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코드원이 막내 돼지의 문을 열었습니다."

마시던 커피를 내려 놓았다.

"오우, 엄청 빠른데요?"

"막내 돼지가 보기보다 순수했던 모양입니다."

그럴리가 있나.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일텐데.

"조심하라고 하세요, 의심의 끈을 놓지 말라고."

"예, 회장님."

신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콕콕 찍으며 김장원에게 말했다.

"고키부리 핫 라인 가지고 계시죠?"

"잉? 도쿄 도지사 선거?"

"고키부리 그 놈, 욕심 많은 놈이니까 여기를 좀 건드리라고 하세요."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답한다.

"알겄습니다."

< 제 26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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