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63화 (263/458)

< 제 263화. >

지글지글

고기 익어가는 소리에 코가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자동반사 같은 것이기에 온 가족이 같은 모습이다.

오늘의 요리사는 아산댁이 손질한 고기를 맛있게 굽는 두 분의 할아버지셨다.

"할아버지는 청와대에서 주무시지 뭐 하러 여기까지 오셨어요?"

"이 놈아, 그 집은 너무 커."

"거기서 편하게 셰프들이 만든 요리를 드시지 굳이 여기서 고기를 구우세요?"

할아버지가 옆에서 실실 웃으며 고기를 뒤집는 데비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이 놈이 보자마자 승냥이처럼 달려드는군 데비."

"크큭, 어쩌겠는가? 이 집안의 실세인데."

"잉, 쯧쯧. 이제 내 편이 사라지는구만."

"할아버지 편 거기 파란 지붕에 잔뜩 있잖아요."

할아버지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데비 할아버지도 재밌어 보였는지 은근슬쩍 발을 걸친다.

"원래 대통령들은 외로운 법이지. 원래도 외롭던 친구가 걱정이구만."

"어허, 자네까지 이럴겐가?"

"쯧쯧, 그러게 그 나이에 대통령은 무슨."

"뭐야? 지금 자네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 같은데?"

"질투는 무슨, 손자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면서."

어느새 다가온 루시가 데비 할아버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할아버지의 팔짱을 낀다.

"우리 젠틀 천한테 왜 이래요? 나는 항상 우리 젠틀 천 편!"

"잉, 쯧쯧 손녀 딸 키워봐야 하나도 소용 없다니까?"

루시가 저러니 별 수 있나.

"저도 사실 할아버지가 매일 보고 싶었습니다."

데비 할아버지가 배신감에 찌든 얼굴로 날 바라본다.

"썩을놈."

친구는 닮는다더니 어느새 할아버지와 비슷한 말투를 쓰시는 데비 할아버지.

덕분에 웃음꽃이 활짝 피고. 가족끼리 진행되는 저녁식사는 즐겁기만 했다.

한참을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각자 주변에 있는 상대화 대화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술자리나 으레껏 있는 일이니 누구 하나 기분나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김장원이 저 놈이, 언감생심을 꿈꾸고 있구나."

할아버지의 말에 샴페인을 홀짝이며 고개를 돌려 김장원을 바라보았다.

PMC정보부의 ACE 독거미에게 추근대고 있는 김장원. 그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인가보다.

"우리 직원이 확실히 매력적이죠?"

피식 웃는 할아버지.

"순한 둘이 연애하면 제법 재미있겠어."

"저 두 사람이 순하다고요? 세상 순한 사람들이 다 죽었나."

아산댁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머 회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혜지가 얼마나 착한데."

"혜지요? 아, 독거미."

"혜지 쟤가 얼마나 순수하고 순진한데요, 연애 한 번 못해봤을걸요?"

아산댁의 목소리가 컸을까? 독거미의 얼굴이 홍시마냥 달아 오른다.

그 모습에 헤벌쭉 웃는 김장원이 묻는다.

"아따, 고런 사정이 있었소? 대한민국 사내 새끼들 눈까리가 다 삐었고마, 이런 경국지색을 몰라 봐 불고."

"아, 아니거든요?"

"흐흐, 혜지씨 내일은 뭐하요?"

"그건 왜요?"

"으따 거시기, 클래식이라고 영화가 하나 나왔는디 그렇게 기똥차다 안 하요? 주말이기도 허고잉... 나가 극장은 혼자 가본 적이 없어가지고, 잘 아시믄 좀 도와주쇼."

그 모습에 할아버지가 작게 말씀하신다.

"보기보다 제법 수완이 좋구나."

나도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놀라운데요?"

내 사람이 연애를 하겠다고 저렇게 열과 성을 다하는데 도와줘야지 싶었다.

"내일은 쉬세요, 정보부는 잘 돌아가고 있을테니까?"

"예?"

"그래, 가끔은 쉬고 문화생활도 즐겨야지,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살게 만들고자 주 5일 근무제를 확정시킨 것이니."

할아버지가 쐐기를 박는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직장인들이 쉴 수 있도록, 법정 근로일을 제한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강제성이 없었다. 천천히 차츰, 차츰 진행할 예정이었다.

또 원한다면 회사에서는 주말에도 사람을 부릴 수 있었다. 다만, 본래의 인건비 보다 더 많은 지출이 필요했다.

한창 물 오른 할아버지의 지지율이 다시 한 번 상승하던 순간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상이 찌푸려지는 사태였지만, 서민들에게 직장인들에게는 다르게 작용했다.

"그래 혜지야, 너도 좀 쉬어도 돼. 너도 이제 늙어가는 것도 생각해야지. 네 나이가 벌써 서른 여섯이야."

아산댁의 말에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김장원이 얼른 입을 열었다.

"워따, 혜지씨 나이가 서른 여섯이요? 워메워메, 나가 쪼까 들이대기가 껄쩍지근 혔는디, 얼굴만 보고 스물 여섯인 줄 알았구마."

립서비스가 제법이다.

독거미의 얼굴은 더 붉게 물들었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챙피하니까 그만 얘기해요, 영화는 보러 갈테니까."

"잉, 알았소잉. 인자 입에 자꾸 채울라니께, 약속 지키쇼잉."

"알았다구요!"

김장원이 테이블 밑으로 슬쩍 엄지를 들어올린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철웅과 호석이 대화를 나누다 나를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향했다.

"뭐에요?"

"김남정이 소재 파악 되었습니다."

"코드원이 바쁘게 움직이나봐요?"

"김은정을 파다보니 자연스럽게 습득한 정보인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확인하고, 적당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가를 입에 물었다.

"계속 해 보세요."

"김남정의 해외 일정이 잡혔다고 합니다."

"왜요?"

"내부 후계 구도에 뭔가 변동이 있는 듯 합니다. 덕분에 김남정이 바쁘게 움직이려는 듯 보입니다."

"후계구도?"

"회장님이 말씀하셨던 삼남 김은정이 심상치 않다는 코드원의 보고입니다."

"디테일 하지는 않은가 봐요?"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은정은 뭐 하고 있다는데요?"

"현재, 북한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잘못들었나 싶었다.

"입대요? 장교나 장성으로 가는 건가요?"

"일반병으로 지원하려는 듯 보인답니다."

"엥? 이유는 뭐죠?"

"보여주기식 쇼가 아니겠습니까?"

"제 형들이랑은 다르다? 핏줄을 믿고 설치는 게 아니라 직접 몸소 실천해보이겠다?"

호석과 철웅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들도 나와 같이 판단한 모양.

"그러니까요, 그 놈 그거, 쉽게 볼 놈 아니라니까."

"이번에도 회장님 촉이 맞았습니다. 김은정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일정 역시 그런 김은정에게 마음의 추가 기우는 것으로 보이고요."

"오케이, 일단은 더 지켜보고. 당장 접촉할 수 있는 건 김남정이란 얘기잖아요?"

"예, 회장님."

"그 놈 해외 일정 자세하게 뽑아보세요, 얼굴은 한 번 봐야지."

"준비하겠습니다."

***

며칠 뒤.

마카오 국제공항에 착륙한 전용기.

"워따 여그가 중국이 맞습니까? 뭐에, 몇년 전만해도 여그 아무것도 없었는디."

김장원의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마카오는 망해가는 도시였다.

포르투갈이 어지러운 국제정사와 자국내 여론을 의식하며 식민지배하던 도시들을 해방시켜주는 와중에 중국과 함께 통치하자는 압의가 이뤄지고 나서, 쓰러져 가던 마카오를 살린 것이 중국정부였다.

중국정부는 망해가는 마카오에 '카지노'라는 관광산업을 중점으로 발전시키는 중이었고, 이제부터는 폭발적인 성장을 할 도시이기도 했다. 해서, 미래에 홍콩과는 달리 마카오는 별 문제 없이 중국에게 흡수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땅이었다.

"여기가 동양의 라스베가스거든요."

"잉, 도박꾼들 돌아댕기는 유흥의 도시라는 말씀이시죠?"

김장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김 사장님 이제 백수 그만 하셔야죠?"

"워따, 꼬박꼬박 월급 주시믄서 백수라니,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월급 값 하시라고요 이제."

김장원이 특유의 요사스레 빛나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솔찮이 기대 되네요잉, 무슨 일 하라고 하실지."

"적성에 잘 맞으실 겁니다."

"그라믄 좋죠잉."

"일단, 가 봅시다."

"예!"

포르투갈 양식의 건물들과 중국 양식의 건물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마카오.

그리고 현대적이고 휘황찬란한 현대식 빌딩들 역시 공존하며 이색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은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처럼 보였다.

"와따 사람 많네요잉."

"길진 않지만, 제법 오랫동안 유명세를 떨칠겁니다."

"잉? 지금 모습만 봐서는 영, 망할 것 같지 않은디요."

"중국이랑 붙어먹으면 원래 잘 되질 않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지 김장원은 고개만 갸웃거린다.

카지노와 관광산업으로 고도의 성장을 이루지만, 관광과 카지노가 전부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곧 다가올 사스라는 전염병 역시 위기감을 고조 시키지만, 사상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를 불러올 20년도의 전염병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힐테다.

물론 그간 벌어온 돈으로 어찌어찌 버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 전에 이곳 마카오에서 제법 괜찮은 캐시 카우를 만들어 볼까 싶었다.

현금이 움직이고, 자금을 세탁하는 일에는 또, 카지노 만큼 편안한게 없으니 말이다.

지금도 제주와 부산, 서울의 호텔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 카지노를 운영중이지만, 한국의 특성상 규모는 작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카오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미국의 라스베가스는 진입장벽이 높지만, 마카오는 진입장벽까지 낮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 꿀들이 다 떨어질 때까지만 딱! 빨아먹다가 처리 합시다."

"예?"

"카지노가 있는 호텔의 사장 자리, 괜찮지 않아요?"

"지가요?"

"싫으시면 다른 사람 시키고."

"워메... 혜지씨가 상당히 좋아하겄는디요?"

벌써부터 여자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그 야생의 들개같던 김장원 사장도 애처가가 될 모양이다.

"그러니까 SKY PMC 정보부의 꼭대기정도 오른 사람이랑, 우리 김사장님이랑 급이 맞아야지, 안 그래요?"

"그라죠잉... 워따 상상만 해도 좋네잉."

피식 웃으며 김장원에게 그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이 지역 밤무대 주름잡는 놈들 조사 해 오세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도 알아 오시고."

"잉, 그라죠잉... 도박과 돈, 유흥에는 요, 요 주먹들이 빠지믄 섭섭하죠잉."

"그렇죠? 확실히 김 사장님 전문분야죠?"

"흐흐, 믿어주십쇼 회장님. 나가 여그 마카오 확 먹어불라니까."

김장원과 두런두런 대화를 하는 사이, 호석이 곁으로 다가왔다.

"호텔 찾았습니다. 회장님."

호석의 보고에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말했다.

"바로 움직이죠."

"예, 현재 김남정은 카지노에서 유흥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럼 더 좋네요, 자연스러운 만남."

호석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마침 김남정이 즐기는 게임이 텍사스 홀덤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제법 자신있는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양.

"마음에 드네요."

"워메 큰일났네요 그놈, 가뜩이나 지갑이 가벼울텐데, 포커 도사한테 걸려부렀네."

"가 봅시다. 김남정이 지갑 털어버리러."

""예! 회장님.""

< 제 26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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