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62화 (262/458)

< 제 262화. >

[ 부쉬 대통령, 빈 라덴에게서 이라크와의 접점이 드러났다 발언. ]

[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미국-이라크 전쟁 신호탄 ]

[ 전쟁의 키는 오사마 빈 라덴이 쥐고 있다. ]

[ 부쉬 대통령 '테러와의 전쟁' 대승리! 솟구치는 지지율, 불안에 떠는 이라크. ]

봄기운이 성큼 다가온 2월의 대한민국.

외신의 보도와 미국과 이라크 간의 불화 등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뉴스였다.

그런 뉴스들 보다 오히려 우리 할아버지에 대한 뉴스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 2월 25일, 역대 최고의 지지율의 대통령이 취임한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천혁수 대통령의 행보! ]

[ 한 마음 한 뜻, 처음으로 민족 대통합? 과연 국민들 80퍼센트의 지지를 받는 천혁수 대통령은 유일하게 욕먹지 않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 ]

[ 파격적인 인사 단행 예고! 새 나라에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 긴장하는 기득권 ]

언론들 역시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지는 않았다. 감히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

그도 그럴게 고조선일보와 동북아일보는 거의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 방통위 고위공직자들, 언론사와 유착관계 밝혀져, 천혁수 대통령 철퇴를 말하다. ]

마른 오징어도 쥐어 짜면 물이 나온다 하더니, 애초에 고조선일보와 동북아일보는 마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짜면 짤 수록 더러운 구석이 너무나 많았다.

여태껏 그 더러운 것들을 '정치인'들의 비호와 '경제인'들의 비호로 살아남았던 모양이지만, 이제는 그게 쓸모가 없어졌다.

"건강하셨습니까 회장님."

환갑이 다 되어가는 KS그룹 최태수 회장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직 쌩쌩한 내 나이에 건강을 묻다니. 그 만큼 최태수의 자세가 낮아졌다는 뜻이었다.

"건강은 회장님이 더 챙기셔야죠?"

"하하,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난 상석에 앉고, 내가 엉덩이를 소파에 붙이고 나서야 자리에 앉는 최태수.

옛날 사람 답게 확실하게 '윗사람'이라 생각해서인지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치밀한 예의로 작용하고 있었다.

"모든 계열사를 정리 해 왔습니다. 회장님."

두 눈 가득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

후회와 회안 역시 가득했다.

그가 내민 서류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내가 보기에 서류에 장난질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런쪽에는 나보다 더 전문가인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서류를 토스했다.

"박 대표님, 강 본부장 확인 해 보시죠."

강기태 투자총괄본부장과 찰리 박이 얼른 내가 건넨 서류를 마음껏 유린하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면 무엇부터 하실 생각입니까?"

어쨌든 KS그룹을 내가 인수하는 형태로 진행 할 예정이다. 그러니 최태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다시 일어 서 볼 생각입니다. 그래도 작은 공장에서부터 시작한 KS니까요."

"호오."

"회장님이 인수대금을 그저, 넉넉히 책정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전경련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나보다.

감히 SKY에게 비빌 생각은 하기 힘들테니, 그의 눈은 다른 이들에게 향해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찰리 박에게 물었다.

"KS건설은 가만 두세요, 인수에서 빼는걸로."

찰리 박이 탐탁찮은 표정으로 묻는다.

"KS건설이 가진 부동산 중에 제법 알짜들이 있습니다."

나라고 모를까? 미래에 KS건설이 신도시 건설로 제법 든든한 현금주머니를 만드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푼돈에 연연하지 맙시다. 여기 최 회장님이 SKY에 충성을 다 하시겠다는데."

화색이 된 최태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다 말했다.

"그, 조양구 회장 있잖아요?"

"예, 회장님."

"그 양반이 가지고 있는 국적기 회사가 참."

최태수는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깜냥 없는 이가 감히 국적기를 운영한다는 게 잘못이지요."

"그렇죠?"

"예, 회장님."

"우리 SKY가 이번에 백령도와 울릉도에 공항을 지을 것 같거든요?"

"아아! 그 전에 처리하겠습니다."

좋은 사냥개를 얻었다.

비난의 화살은 이제 최태수에게 쏠릴테다. 최태수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물이니 나는 실익만 챙겨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찰리 박에게 말했다.

"아까 얼핏 보니까 KS산하 계열사들 부동산에 거품이 좀 있더군요, 공시지가와 비교해보세요."

찰리 박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그 역시 비싼 것을 싸게 살 때에 희열을 느끼는 모양이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최태수 회장이 입맛을 다신다. 공시지가와 현 시세는 제법 차이가 크다는 걸 그도 알고 있기 때문.

"공시지가 대로는 말고, 그래도 한 5~10퍼센트 정도 적절한 가격으로."

"예, 회장님."

한시름 놓았다는 듯 차를 입가로 가져가는 최태수.

이제 내가 없어도 저 세사람이 알아서 KS그룹 인수합병 절차를 밟아 나갈테니 나는 엉덩이를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일은 세분이 처리하시는 걸로 합시다. 내가 가볼 때가 있어서."

"예, 회장님. 책임지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들어가십쇼!"

강기태의 인사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깊이 고개를 숙이는 최태수를 힐끗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그대로 호석을 따라 차량에 올랐다.

"파주로 모시겠습니다."

"예."

***

파주 PMC 인재 양성소.

삼엄한 경비가 이 곳이 인재 양성소라는 느낌보다는 군부대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곳.

외부에서는 알지 못하지만 이곳은 PMC정보부의 핵심이 자리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재 양성소의 경비를 보는 SKY 보안팀 역시 내부에 정보부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저 기업 비밀을 지키는 곳이라고만 얘기 해 줬을 뿐이다.

"아따 회장님 얼굴 뵙기가 하늘에 별 따기요잉."

오랜만에 만나는 김장원 사장의 얼굴.

"그러게요 몇 개월 만이죠?"

"아따 나가 회장님한티 겁나게 섭섭해분디?"

"일본에서 재미 좋았다고 들었습니다만?"

"흐흐흐, 인자 나가 없어도 고키부리 그 바퀴벌레 놈이 알아서 움직여 붕게, 나가 이라고 편합니다."

"끝나고 한잔 하죠, 찰리 박이랑 강기태 본부장까지."

"워메, 그라믄 나야 좋죠잉."

"파트너 없어져서 서운 했죠?"

김장원이 픽 웃으며 말했다.

"아따 그 살인귀 놈은 영, 정이 안가붑니다. 정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그... 이재형이 갸는 잘 살고 있답니까? 저그 위쪽이 솔찮 항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시잖아요? 그 사람 실력. 오히려 김 사장님이 더 잘 알지 않나?"

"그렇다면 다행이지요잉."

뒤쪽에 있던 호석이 김장원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마침, 코드 원에게 온 보고를 들을 생각인데, 같이 가지?"

"잉? 그 살인귀 놈 코드명이 코드 원입니까? 훠따 간지 나부네잉."

저 사투리가 참 정겹다.

오늘은 뒷고기에 소주를 한잔 해야겠지 싶었다.

타닥, 타다다닥.

빠르게 루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자기야, 나 오늘 회식 할 것 같네. ]

띠링~

[ 집에서 해. ]

[ 어... 일 얘기를 해야 되는데. ]

[ 쑤가 정원에 비닐 하우스 만들어 줬어, 아이들 바깥에서 놀아야 된다고. 거기 따뜻하더라, 환풍구도 있어. ]

답정 너였다.

[ 아, 그렇구나. ]

[ 아산댁 아주머니가 맛있는 고기 준비해주신데. ]

[ 그래, 그건 못 참지. ]

[ 응~ 기다릴게 일찍 와. ]

휴대폰을 집어 넣는데 호석이 웃으며 손을 내민다.

"왜요."

"여기부터는 전자기기 반입 금지입니다 회장님."

"나도 예외 없이요?"

"죄송합니다."

"원래는 대충 하는데 나 왔다고 제대로 하는 거 아니죠?"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의심의 눈초리로 호석을 바라보다 못내 아쉽다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건냈다.

띠링~!

마침 울리는 문자메시지 알림 소리.

"큽."

갑자기 웃는 호석.

"왜요?"

"사모님께서 야관문주를 준비 하셨답니다."

김장원이 옆에서 실실 거리며 말한다.

"프흐흐, 아따 인자 우리 회장님 셋째 놓을 때 됐지요?"

"크흠, 헛 소리 그만하고 보고나 들으러 갑시다."

내 옆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김장원.

"그러고 보니 김 사장님, 월드컵 4강에 우리나라가 올라갔습니다만?"

"야, 그란디요?"

"그때 우리 내기 하지 않았습니까? 김 사장님이 장을 지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잉? 지가요? 아따 기억이 가물가물 한디."

호석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기억나게 해드려?"

호석의 삭막한 표정에 굳은 김장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따 기억 나부네잉... 거시기 소원 들어주기였지요?"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기 계신 정 대표님, 백 대표님은 셋째 임신이었고, 김 사장님 박 대표, 강기태 본부장은 결혼하기였습니다만?"

"워메, 지옥길이 열리겄구마이라."

솔직한 표현에 호석과 내가 흐뭇하게 웃었다.

"올 해 안에 식 올리는 걸로."

"워따 지가 나이가 있는디 그거시 쉬울까 모르겄습니다잉."

"내일부터 매일 3명씩 맞선 보시는 걸로, 비용은 내 돈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네요잉."

대화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지하 깊숙한 곳 까지 들어온 우리. 보안 직원들이 까탈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우리를 세세하게 뜯어보듯 수색했다.

내가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절차에 예외는 없는 모습.

"마음에 드네요, 오늘 직원들 회식 자유롭게 하라고 하세요."

호석이 뿌듯한 표정으로 '예!'하고 대답한다.

정보부, 그것도 특급 기밀들을 다루는 곳은 이래야했다. 어떤 부서의 장이라고, 임원이라고, 회장이라고 해서 예외를 둬서는 안 되는 일.

그 만큼 이 내부에서 직원들이 정말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으리란 신뢰가 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질 뿐이었다.

곧 마련된 브리핑 룸.

브리핑 룸 바깥에서 안이 보이지 않았고, 방음까지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내부에서 이뤄진 이야기를 바깥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다는 뜻.

물론 내부에서는 바깥을 살필 수 있는 특수재질의 유리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CCTV역시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네, 얼굴 뵙는 건 두번째죠?"

딱딱하지만 아나운서와 같은 목소리를 가진 여인.

멋들어진 투피스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는 몸매의 소유자인 그녀는 우리 PMC정보부의 독거미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이름과 인사기록은 나와 호석, 철웅만이 알고 있었다. 그저 코드명 독거미로만 부를 뿐.

"이따가 집에서 회식 있는데, 독거미도 오세요 아산댁 아주머니의 손맛이 듬뿍 담겨 있을테니까."

"어머, 선배님이 요리 해 주시는 건가요?"

특유의 딱딱한 목소리를 버리고 기대감 가득한 소녀같은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온다.

"아시죠? 아주머니 음식."

"알다 마다요, 꼭 가야겠네요."

김장원이 불쑥 튀어나와 '흐흐'하며 순박한 웃음을 짓더니 말한다.

"아따 반갑습니다잉, 나는 김장원이라고 하요."

"네.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다시금 독거미의 모습이 된 그녀가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호석과 나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는 브리핑에 집중했다.

"현재 코드 원에 보고에 따르면, 김남정은 중국측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며 김일정의 신뢰 역시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보고를 받고 따로 조사를 해 본 결과 역시, 코드원의 짧은 보고와 일맥상통 하고 있습니다."

"후계구도 전체는 어떻습니까?"

"현재는 장남 김남정이 유력하고, 차남 김양정은 딱히 권력구도의 관심이 없어 보였으며, 삼남 김은정은 아직은 어려 일군 세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 됩니다."

"현재까지는 장남 김남정이 유력하다?"

"예, 회장님."

정보부의 보고는 사실일테다.

분명 과거의 김남정 역시 유력한 김일정의 후보자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인지, 어떤 연유인지 김남정은 후계자 자리에서 밀리고, 무려 삼남의 젊은 혈기가 가득한 김은정이 그 자리에 오른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피의 숙청이 진행된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이었다.

"삼남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했습니까?"

"북한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보의 제한이 많았습니다."

"청와대에서 건너온 정보는 어땠죠?"

"현 북한의 권력의 중심 인물 5명의 세세한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였습니다."

"당장 김일정이 죽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움직이겠습니까?"

"장택성, 리인구, 리인평은 당연히 김정남을 지지하며 그를 수령 자리에 앉힐 것입니다."

"다른 둘은?"

"그들은 중립적인 입장이기에, 김정남의 자질이 충분하다면 굳이 딴지를 걸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SKY PMC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정원이라는 기관이 있지만 그래도 SKY PMC의 정보를 난 더 신뢰하고 있었다. 여태껏 해당 정보들로 많은 일들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미래에 내가 알던 지식과 현재 독거미의 브리핑이 상충하는 부분이 많아지니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흐음..."

호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마음에 안 드시는게 있습니까?"

"아뇨, 뭔가 좀 이상해서요."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툭, 툭.

나는 삼남 김은정의 사진을 두들겼다.

"난 이 놈이 뭐가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 정보들에는 이 놈에 대한 게 없네요?"

호석이 날 빤히 바라본다.

"이번에도 감 입니까?"

"예, 촉이 왔달까?"

호석이 독거미를 바라보며 말한다.

"코드 원에게, 김은정과 접촉하라고 해. 회장님의 촉이다."

독거미가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한다.

"예! 회장님의 감이라면 믿을 만 하죠!"

어째서 내 감이라는 두루뭉술한 설명에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아니, 단순히 촉이라니까요?"

"여태껏 회장님의 촉이 단 한번도 틀린적이 없습니다. 정보부의 분석 결과 100퍼센트 일치라는 놀라울 정도의 정확도를 보였죠, 이제 우리 정보부는 회장님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습니다."

독거미의 말에 피식 웃은 내가 호석과 김장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재들을 모으라니까, 무슨 광신도들을 모아 놓으셨어요?"

< 제 26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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