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60화 (260/458)

< 제 260화. >

보통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개표방송.

시시각각 변화하는 후보들의 개표 내역을 바라보며 일희일비 해야할 그 방송이.

날이 지나기도 전에 거의 끝물에 올랐다.

-다음은 경남입니다. 천혁수 후보자 68퍼센트, 이인구 후보자 31퍼센트. 이어서 경북입니다. 천혁수 후보자 71퍼센트 이인구 후보자 28퍼센트. 이어서 전남지방 천혁수 후보자 81퍼센트 이인구 후보자 18퍼센트......

압도적인 표 차이.

더이상 개표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으로 할아버지가 표차이를 벌렸다.

-이제 3만표만 더 개표가 진행되면 거의 확정이라고 봐야합니다. 사실상 천혁수 후보자 당선이란 얘기와 같습니다.

앵커조차 이변은 없을 것이라 단정하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모든 표가 할아버지가 아닌 야당의 대선 후보자에게 몰려야 이길 수 있었다.

"더 볼 필요도 없네요."

할아버지는 날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애초부터 볼 필요 없었지."

별이와 태양이에게 장난을 치던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들 앞에 섰다.

"이만 끝냅시다. 밤이 깊었으니 다들 쉬러 가자는 말이오."

기자들 역시 더 이상의 촬영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한 모양,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당선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런 김칫국을 벌써 마시기엔 이르니, 그것은 내일 공식입장 발표로 합시다."

보통 때라면 달려들었을 기자들.

하지만 고조선일보와 동북아일보가 이 자리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 부터 이미 언론들은 나와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순순히 물러나는 기자들.

"쑤, 오늘 기분도 좋은데 한잔 하지."

데비 할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 역시 고개를 주억거린다.

짝!

나는 박수를 치며 모두의 집중을 받아내고는 말했다.

"그럴 줄 알고, 벌써 연회장 세팅 해 놨습니다. 가시죠!"

"오, 우진. 역시 자네 센스는!"

"우리 호텔 최상층입니다. 온수풀도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껏 즐겨주십시오."

***

아이들과 함께 할아버지들이 수영장에서 즐기는 사이, 할아버지가 대통령에게서 받아온 정보를 토대로 서류를 준비해온 철웅.

나를 필두로 호석과 철웅은 그 서류를 보며 다양한 의견을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보위부장 현해철이 숙청을 당하고 나서 현재 북한의 권력은 김일정과 호위총국, 정보총국이 삼등분 하고 있다는 얘기네요?"

"보위부의 실권자가 죽으며 많은 중진들이 이곳저곳의 권력자들에게 붙어 있는 실정입니다."

철웅의 차분한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이인자는 누구라고 봐야 됩니까?"

"호위총국장 리인구는 완벽하게 김일정의 사람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이인자로 보긴 어렵습니다."

"정보총국장 박근이?"

"김일정이 아직 젊기 때문에 후계자 문제가 없는 상황, 사실상 이인자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력한 후계자는 역시 김남정이나, 김일정은 그에게 많은 권한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호석과 철웅의 말에 갑자기 떠오른 미래 지식.

분명 김남정은 자신의 동생의 권력욕에 숙청을 당하는 인물이었다.

71년생의 그는 벌써 30대에 접어든 나이. 이제는 슬슬 나랏일을 기웃거릴 때가 되었다.

"이거이거, 이 놈 말이에요."

"김남정이요?"

"예, 권력욕 없는 놈입니까?"

호석이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알아보겠습니다."

내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한 모양.

김일정이 죽고, 그의 삼남이 왕권을 차지하는 북한.

그러나 아직 삼남은 84년생으로 어리디 어리니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보는게 옳았다.

"김남정이만 잘 꼬득여도, 충분히 흔들 수 있겠는데요?"

"김일정은 아직 후계를 두고 싶지 않은 듯 해, 아들들을 외국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접근이 용이하지 않겠습니까?"

철웅 역시 고개를 주억거린다.

"말씀하신대로 진행하겠습니다."

"PMC정보부 이용해서 김남정이 놈 소재 파악하고,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라고 전달 하세요."

"예! 회장님."

호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핫라인은 어떻습니까?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요?"

"예, 회장님. 물론 보안상의 이유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호석이 말한대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암호'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본래라면 이 시절 준공계획이 시작되었을 개성공단을 통해 어쩌면 더욱 쉽게 핫 라인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와 할아버지가 개입하며 남북이 동시에 합작으로 하는 사업따위는 없었다.

물론, 김일정이 놈이 몸에 구멍이 나며 몸을 웅크린 영향역시 적지 않았다.

대신, 나와 할아버지가 개입하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실향민들을 위해 마련된 정기적 남북 이산가족 찾기 사업이었다.

역사 바로알기 재단이 선두에서 북한의 실향민들과 대한민국의 실향민들, 혹은 이산가족들에게 만남을 주최하는 행사는 6개월마다 한번씩 정기적으로 판문점 근처에서 일어난다.

그렇다고 이산가족들을 이용해 북한 내부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이재형과 PMC대원에게 정보를 연락을 닿게 할 순 없었다. 너무나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 게다가 북한에서는 '남'쪽과 접촉하면 삼엄한 조사를 한다고 하니 일반인들에게 짐을 지게 만들 순 없는일.

"어쨌든 중국과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는 내에 처리해야 할 일입니다."

내 말에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바로 철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빠르게 일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할아버지에게도 따로 언질은 하겠지만, 국정원장의 경우, 우리 입맛대로 인사배치를 해주길 희망합니다."

철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부분은 사전에 백부님과 회의를 통해 선발한 인재들이 있습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국정원장에게 바라는 것은 '사명감' 하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대표님."

"예, 회장님. 백부님 역시 동의하실 사안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시느라 싱글벙글인 할아버지들을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국과 SKY의 사이가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좋을 순 없습니다. 북한과 연결된 핫 라인은 수명이 짧다는 얘기에요."

호석이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장저민이 완전히 당을 장악하고나면 바쁘게 움직이겠지요... SKY의 기술을 빼 먹으려고."

"맞습니다. 그때는 완전히 갈라선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사이가 악화될테니, 그 전에 끝내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됩니다. 그래서 4년이란 시간을 말한 겁니다."

"예, 회장님. 믿어주십시오."

둘의 표정을 보니 철웅과 호석이 아니라면 누굴 믿겠나 싶었다.

"자, 지루한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도 즐깁시다!"

우리는 누가누가 몸이 더 좋나 자랑이라도 하듯 답답한 와이셔츠 상의를 찢어발기며 온수풀에 뛰어들었다.

***

광화문.

역사적으로도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지만, 조선시대의 경복궁과, 그 뒤편에 자리잡은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 광장은 상징성 역시 가지고 있었다.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상이 든든하게 지키는 그 광장에서 할아버지의 당선소감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역사상 더 없이 깨끗하고 청렴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고 달려나갈 새 세상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천혁수가! 이제는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을 대신해 앞장서서 지휘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 단언합니다."

""천혁수! 천혁수! 천혁수!""

참 신기한게.

천혁수를 연호하는 사람들 모두가 실제 지지자들이었다. 보통 정치인들이 연설을 할 때면 돈을 주고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쁘락치들을 심어 놓는데, 지금 이 자리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우린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얘기.

진심으로 할아버지의 행보와 신념에 반해 모인 지지자들이라는 얘기다.

"앞으로 이뤄질 인사이동 역시! 여태껏 있었던 관행들과 썩어빠진 인사청탁은 절대 없으리라 단언하며!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걷게 되더라도, 국민께서 선택해주신 이 천혁수를 믿고! 지켜봐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각 요직을 맡을 인물들은 깨끗하고 청렴해야 하며, 그 분야의 공부가 철저하게 이루어진 전문가들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믿습니다!""

힐끗 호석에게 귀엣말을 속삭였다.

"광신도 집단인가요?"

호석이 가까스로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는다.

"또한, 사전에 말씀드렸던 검경유착, 정경유착을 뿌리 뽑고! 검찰 역시 많은 개혁이 시도 될 예정이며! 국민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행정개편을 시도하리라 다짐합니다. 야당과 여당으로 갈라진 2당체재의 정치계 역시 개혁의 바람을 불어 넣어 다양하고, 다변적이며! 국민들의 니즈에 맞는 정책들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먹고 살 걱정 없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리라 다짐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그 말을 그렇게까지 신뢰하지는 않았었다.

분명 높은 자리에 올라도 삽질을 하는 인물들이 쎄고 쎗으니까. 헌데 지금 할아버지를 보자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고 1원 한장도 허투르 쓰지 않는 할아버지란 것은 알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저토록 잘 어울리실지는 꿈에도 몰랐다.

볼수록 새로웠다.

어쩌면 할아버지 역시 저런 높은 자리가 체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현재 할아버지가 말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된다면 정말 혁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일 터.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높은 자리에 앉은 놈들은 꼭 제 안위를 챙기니 어쩌면 당연한 일.

내가, 전 삶에 모진 핍박과 결국은 마지막까지 사냥개로서 살아야 했던 나는 기득권을 처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원대한 복수의 칼날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기득권에게 닿았다고 보아도 옳았다.

그저 썩어빠진 기득권들의 모가지를 따 버리는 일은 쉬웠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뿌리부터 다르게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그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기득권 놈들을 모조리 씹어먹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 눈에 뭐가 들어갔나."

새삼스레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뭔가 커다란 일을 해낸 것 같았다. 일신상의 이득이야 두말이 필요 없고, 대의까지 채워진 완벽한 일이란 생각이 드니 절로 두 눈이 뜨거워졌다.

"나라가 약하니 핍박 받는다는 핑계까지 모조리 씹어먹어 줘야죠, 그렇죠?"

맥락없는 나의 말에 호석과 철웅이 굳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둘의 표정 역시 세상 더 없이 뿌듯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회장님."

돌연 둘이 깊숙하게 고개를 숙인다.

둘의 감사 인사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은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복잡한 감사가 담겨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사채업자의 해결사 일을 하던 둘.

자연스럽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테다. 물론, 대 놓고 감이 둘에게 손가락질 할 수는 없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고서야 미친놈들도 아니고 그럴 깡다구를 가진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두 분이 잘 도와주셔서 된 겁니다."

"회장님의 놀라운 능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겠죠."

"사실, 백부님께서 은행을 만드실 때만 해도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쩐귀'라는 하찮은 이명으로 불리면서도 재벌놈들보다 더 많은 선행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재벌 회장은 우러러보고 백부님은 무시했죠, 우리가 사채나 한다면서..."

그리고 그 무시는, 앞에이는 호석과 철웅 역시 당했을테다.

"언젠가 한 번, 우리 딸 아이가 '아빠는 직업이 뭐야?'하고 묻더군요."

"너도 그랬냐?"

"나라고 다르겠냐... 너도 대답 못했지?"

"못했지..."

철웅과 호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한다.

"이제는 당당하게 가족들 앞에서 자랑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모시는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나아가 전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SKY의 회장님이다! 그리고 나는 SKY그룹의 영원한 동반자인 SKY PMC의 대표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장님. 내가 모시는 사람이 이 나라 대통령이다!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내의 눈 시울이 시뻘겋게 물든다.

내가 괜한 스타트를 끊었구나 싶었다.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자자, 신파는 그만 찍읍시다. 아직 우리 끝난 거 아니에요, SKY도 계속 성장 할 거고, 대한민국도 계속 성장 할 겁니다. 우리 목표가 고작 대한민국이 아니었잖아요?"

결연한 표정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둘.

"갑시다. 세상까지 씹어 먹으러."

"예! 회장님!"

"예! 회장님!"

< 제 260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