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9화. >
높다란 빌딩에서 별 다른 안전장비 없이 다시 창문을 통해 사라진 이재형.
"어우야."
나도 모르게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털어내고는 호석을 바라보았다.
"빈 라덴 교육은 다 끝났다고요?"
"예, 회장님."
"후진다오가 문제네요."
"아직 사용처를 결정하지 못하셨습니까?"
"예, 아직까지는."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내일 들리시겠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중국이 작은 땅덩이도 아니고 베이징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는 비행기로 이동 후, 다시 사막용 지프차를 타고 한참을 움직여야 했다.
그 일정의 피로도를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거절하고 싶은 상황.
"빈 라덴은 예쁘게 포장해서 아프간으로 보내세요, 후진다오는 계속 교육 진행하시고."
"예, 회장님."
"우리는 내일 바로 한국으로 넘어가죠, 선거가 며칠 안 남았으니까."
"예."
***
인간의 문명이 닿지 않은 것 처럼, 암흑이 짙게 깔린 타클라마칸 사막의 밤.
쿵, 쿵.
쿵, 쿵.
간헐적으로 무엇인가 두꺼운 나무판자를 때리는 소리가 고요한 사막에 울려 퍼진다.
별로 이뤄진 강이 흐르는 하늘 아래 고운 모래만이 가득한 땅.
그리고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관 하나.
"제발... 제발..."
애처롭게 애원하는 하나의 목소리.
끼이익.
어느새 관으로 다가온 위장복을 입은 사내들이 관 뚜껑을 열어 관 내부 인물의 안위를 살핀다.
"이상 무."
"닫아."
건강만 살피고는 다시 관 뚜껑을 닫으려 하는 인물들. 황급히 손을 내 뻗으며 그들을 만류하는 관 내부의 인물은 후진다오였다.
"제발! 주군께서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소! 그러니 제발 살려주시오! 아니, 차라리 죽여주시오!"
너무나도 간절한 외침.
그러나 사내들은 그의 외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발로 가슴팍을 밀어 차 다시 눕히고는 관 뚜껑을 닫는다.
"제바아아아아알!"
다시 어둠이 관 속에 자리잡고.
뚜껑이 열리며 모랫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전갈들이 스멀스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듯 후진다오의 살갗을 간지럽힌다.
"크흐흑."
후진다오의 두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계속 흘러 나왔다.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천혁수와 현 대통령이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만 드나들며 확인하는 비밀정보 같은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천혁수의 말에 대통령이 힐끗 그의 눈치를 살핀다.
"예, 곧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 역시 다음 대통령은 천혁수가 될 것이란 뜻을 돌려 표현한다.
"내가 좀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대통령의 눈썹이 꿈틀 거린다.
아직 대통령이 아니니 그 곳에 출입을 허가 할 순 없었다.
"내 권한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권한 안의 일이기도 하지요, 어차피 아무도 모를테니."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쉰 대통령이 찻잔을 내려 놓고 묻는다.
"아침부터 굳이 청와대 일정을 잡으신다 했습니다. 역시 이유가 있었군요."
"그 정보에 꼭 필요한게 있을까 하여 보고자 할 뿐입니다."
"시일을 다투는 일입니까?"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라 뭐라 대답하기 어렵군요."
빤히 천혁수를 바라보던 대통령이 묻는다.
"국가에 이바지 하는 일입니까 아니면, 천가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까?"
천혁수 역시 대통령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천가에 도움 되는 것이 곧, 국가에 이바지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대통령이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듣기에 따라 매우 위험한 말씀입니다. 천혁수 후보자."
"안 된다니 어쩔 수 없지요."
용건은 끝났다는 듯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천혁수를 황망하게 바라보는 대통령.
"허허, 잠시 앉아 보시지요."
천혁수의 팔을 잡아 다시 소파에 앉히고는 묻는다.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실수는 없겠습니까? 이제 제 정치 생명도 끝이 났으니,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천혁수 후보자께서 양해를 해 주시지요."
"손자 놈이 말하더이다."
"무엇을요?"
"천가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고."
"으음..."
대통령은 지금 천혁수의 말이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마치 '정보를 안 줘? 그럼 너에게 원한을 갖겠다.'라고 얘기하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
"아, 대통령께 원한을 품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현 여당의 정치인들이 작당모의를 했으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그런 것 까지 대통령께 뒤집어 씌울수는 없는 일 아니오?"
"크흠, 다행입니다. 허면 원한을 잊지 않는다는 게 어떤 뜻입니까?"
천혁수가 왼 팔을 들어 자신의 오른쪽 어깨와 왼쪽 허벅지를 콕, 콕 찌르며 말했다.
"여기와 여기, 구멍이 났지요."
그 중 다시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여기는 구멍이 두 개인데, 다른 하나의 구멍을 낸 놈은 이미 세상에서 지웠습니다."
대통령이 입을 크게 벌렸다.
"서, 설마."
천혁수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말했다.
"자연히 남은 하나의 구멍을 낸 주인공 역시 세상에서 지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우리 천가의 방식입니다."
"... 그 구멍을 낸 주인공이, 내가 아는 그 자가 맞습니까?"
"글쎄요, 누구를 생각하시는 지 내가 대통령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도 아니고 어찌 알겠습니까?"
이제와 발뺌을 하지만 대통령이 바보도 아니고 천혁수의 뜻을 모를리 없었다.
"천혁수 후보자... 자칫 심각한 전쟁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아직 대한민국의 국력은 그렇게 상승하지 못했어요... 압도 할 수 없으니 피해가 막심 할 것입니다."
천혁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런 복잡한 것들은 손자놈이 전문이니, 난 손자놈이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힌트를 내 주면 될 일입니다."
"지금 후보자께서는 대통령만 볼 수 있는 특급비밀 정보를 누설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것은 국가 보안법에 중대한 위법행위임을 아십니까?"
"글쎄요, 나는 그렇게 얘기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대통령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천혁수 역시 평안한 표정을 유지 하던 것을 깨버리고는 흉신악살의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통령님."
"말씀하시오."
"이 천혁수가... 손주 놈에게 힌트 하나도 못 줄 정도로 체면을 구겨서야 하겠습니까?"
"앞으로 두어달 뒤면 후보자께서 얼마든 알아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굳이 내게 어려운 부탁을 하셔야겠습니까?"
"천혁수, 이 석자를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라의 안위와 안녕에 보탬이 되었으면 되었지, 일신의 안위를 위한 일이 되지는 않으리라 말입니다."
"크음..."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는 천혁수.
"끝내 신념을 지키시겠다 하면, 만류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천가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는 그 말을 명심 하시길 바랍니다."
"......"
"우리나라는 참 신기한 것이, 대통령 임기가 끝난 사람의 말로가 좋지 않더군요."
혀로 만든 싸늘한 비수 한 자루를 대통령의 가슴에 꽂아버리고는 집무실을 벗어나려는 천혁수.
"거기가 아니오."
대통령의 말에 걸음을 멈춘다.
이내 소파에서 엉덩이를 뗀 대통령이 집무실 책상 뒤쪽으로 향해 숨겨져 있던 버튼을 누른다.
"이쪽이 입구요."
대통령이 백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
오후 8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선거 개표방송.
이렇다 할 정당이 없던 할아버지는 SKY그룹의 본사 대회의장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해야 했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 모두가 스크린으로 개표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설치된 방송 카메라에 그대로 우리 모습이 송출되고 있을 터.
"돼지 놈은 잘 만나고 왔더냐?"
개표 방송이 짧은 것도 아니고 새벽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심심하셨는지 먼저 말을 붙이는 할아버지.
"잘 만나고 못 만날게 있나요? 겁이나 한번 더 주고 왔죠."
"직접 보지 못해 아쉽구나."
"이번 개표 방송때는 조용할까 싶네요, 어디 포탄이라도 안 쏠까 싶어요."
"단명하려면 무엇이든 못할까."
절대 지지 않겠다는 할아버지의 굳센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네 놈이 알아보라고 했던 것 말이다."
"아, 예."
"알아 보았다."
살짝 놀랐다.
굳이 이렇게 빠를 필요는 없다 생각했었다.
아직 북한과의 관계를 한번에 조용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기에는 우리나라의 국력과, 할아버지의 정권장악력이 확실시 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
"벌써요?"
"이 할애비가 그 정도 능력은 돼."
"오오."
진심어린 감탄에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웃는다.
"체면을 생각해서 일찍 끝내 보았다. 막상 당선이 되면 바쁠 것 같기에."
피식 웃은 내가 말했다.
"에이, 어차피 할아버지 당선되면 천가키즈에서 알아서 좋은 인재들이 움직일겁니다. 할아버지는 그저 부당한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철저한 능력을 위주로 선발 해주시면 됩니다. 설사 그게 천가키즈 출신이 아니더라도요."
할아버지가 도끼눈을 뜨시고는 말한다.
"애초에 인사청탁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능력있는 놈이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세상이야, 날 때부터 좋은 수저 물고 태어난다 하여 높은 자리에 앉는게 나라를 좀 먹는 멍청한 일이지."
"그러니까요, 대통령은 올바른 길로 인도만 하면 됩니다. 일은 알아서 인재들이 해줄테니."
"말이 쉽구나."
"지금 SKY가 그러고 있잖아요?"
피식 웃는 할아버지.
"해서, 내가 가져온 정보는 쓸모가 없으렸다?"
"에헤이, 왜 또 말이 그쪽으로 튀나요."
"필요는 하다?"
"그럼요, 아주아주 필요하죠."
고개를 주억거리던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래서, 돼지 머릿고기는 언제 먹을 수 있더냐."
"정보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4년 이상을 보고 있습니다."
"가능한 내 첫 임기 내에 끝내겠다?"
"사전에 준비할게 많잖아요? 국방력도 끌어 올려야 하고, SKY의 방호벽도 더 단단히 둘러야 하고요."
"멱을 따는 것은 쉽게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가지 따는 건, 지금이라도 당장 가능 합니다. 물론 우리쪽에서도 희생이 따르겠지만."
이번엔 할아버지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굳이 중국에서 놈의 얼굴을 보고 온다더니... 뭔가를 해 놓은 모양이구나."
"정확히는 그 전에요, 이번에는 핫 라인을 설치했죠."
"4년 이상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준비 하느냐?"
"4년 안에 무시 할 수 없는 국방력을 갖춰야겠죠, 할아버지 임기 내에 일단 '핵'을 장착할 예정입니다."
"결국은 핵이구나."
"당장 핵을 이길만한 기술을 만들긴 어렵거든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할아버지.
"핵 보다 더한 것도 가능하다는 듯이 들리는데?"
"가능하죠."
"가능하다?"
"정확히는 '핵'을 운송하는 방법이 달라질겁니다."
"그렇다라..."
난 확신에 찬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4년 뒤에는 북한을, 또 4년 뒤에는 미국을, 또 4년 뒤에는 중국을 먹을 겁니다."
할아버지가 픽 웃어버리며 멍하니 태양이와 별이를 바라보다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되겠구나."
"꼭 그렇게 될 겁니다. 할아버지가 대통령자리에 앉아계시는 동안."
"그럼 우선은 오늘 당선 되는게 먼저겠구나."
"그건 따 놓은 당상이고."
"파하하하, 오냐 가 보자!"
< 제 25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