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4화. >
장저민이 먼저 일어나 회의실을 벗어나고 정적이 자리잡았다.
"우리도 갑시다."
노회한 정치인 상무위원의 말에 후진다오를 지지하던 세력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기, 기다리시오!"
후진다오가 다급히 말려보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후진다오는 끝났음을 알았기 때문.
장저민이 저렇게 나갔으니 최소한 후진다오의 목은 내어줘야 일이 마무리 될 터.
"부주석, 너무 오만하셨소. 자리에 오를 때 까지 감추고 감추셔야 했소."
"기다림이 너무 길었던 것 아니오? 인내심이 바닥 난 것 아니오!"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오, 부주석은 천자가 아니었음이고."
"이제와 감히 나를 팽 하겠다?"
쫙.
상무위원 7인.
그들 중 수장역할을 하고 있는 정치인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는 후진다오의 뺨을 올려친다.
"어딜! 네 놈의 욕심 때문에 우리 목도 위태로워졌어,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네 놈 목 하나로 마무리 하거라."
"나 혼자 죽으라고? 그렇게 될 것 같아? 내가 죽으면 네놈들도 끝이야!"
"흥! 주석께 다시 한 번 충성맹세를 하고 진심으로 천자로 모신다면 용서해주시겠지."
"멍청한, 장저민 그 자가 한 번 배신한 너희들을 다시 받아주리라 생각 하는가?"
"쯧쯧."
혀를 차는 상무위원들.
"네 놈이 약화시킨 군부다. 이제와 쿠데타라도 일어날 것이라 생각 하는가? 우리는 힘이 없어."
대세는 장저민에게 있음을 장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직 후진다오만이 헛꿈을 꾸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아주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는 예의 항상 드나들던 별관으로 향한 장저민.
"하하하하하! 오늘은 내 기분이 아주 좋으니 향이를 오라 이르거라."
"예, 각하."
기분이 좋아서 분내를 맞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분내를 맞고.
좋은 일이 있어서 분내를 맞고.
나쁜 일이 있어서 분내를 맞고.
다른 것들은 핑계일 뿐, 장저민은 그저 분내에 미친 놈이었다.
기분 좋은 얼굴로 곡차를 마시고 있는 장저민의 품속 전화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전화 받았소."
-천우진입니다.
기분이 좋은 장저민은 자신에게 좋은 무기를 쥐어준 천우진의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하하, 천가께서 어쩐일이오?"
-주둔지 문제로 중국에 들렀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후진다오는 처리가 되었나요? 별다른 소식이 없어서 연락해봤습니다.
"좋은 무기를 함부로 쓸 수 없어 시간이 흘렀소. 오늘이 길일인 것 같더이다."
-아하, 끝났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소."
-후진다오는 어떻게 처리 됩니까?
"당내 지도부 인사들이 제 살길을 찾으려면 후진다오를 내 놓지 않겠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만.
기분이 워낙 좋았고, 또 천우진이 저런 얘기를 하니 장저민이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태껏 천우진과 일을 진행하며 손해 본 것이 없기 때문.
물론,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의 일부를 내 주었지만 자신이 얻은게 더 많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 장가, 경청해 보겠소."
-후진다오가 '도주'를 하게 된다면, 당 지도부 인사들에게 더 강력한 철퇴를 휘두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저민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쓰게 웃는다.
"후진다오가 아무리 멍청해도 목숨이 아까워 도주할 인사는 아니오, 그래도 부주석의 자존심이 있지. 대국의 자존심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걸 버리는 행위인데 그가 그럴리 없소."
-도주 할 놈이 아니어도 도주가 된다면?
"음? 설마?"
-장 주석께 이 천가가 미국과의 조율에서 서운케 한 부분이 있어서 굳이, 말씀을 드립니다.
"SKY가 그리 해 주실 수 있겠소? 당 지도부에서 이 몸이 움직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소만."
-요즘 알 카에다 놈들 테러가 보입니까?
장저민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SKY PMC투입이 결정되고 3일 뒤 부터, 중국 땅에서 알 카에다 놈들과 탈레반 놈들의 테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은밀합니다.
"으음, 확실히..."
장저민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천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음이 없으시다면 알겠습니다. 어차피 주둔지 컨트롤타워 때문에 왔다가 괜스레 신경이 쓰여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음, 아니오. 확실히... 머리가 잘못을 하고 도망갔으니 다음 책임소재를 물어야 할 인사들이 있겠지. 그리 합시다."
-좋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
전화를 끊고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넘어 왔네요."
호석이 웃으며 묻는다.
"사실은 회장님이 꼭 놈을 포획하고 싶으셨던 것 아닙니까?"
"말 한 마디에 천냥빚을 갚는 세상 아닙니까?"
"하하, 장저민이 오늘 기분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시야가 좁아졌군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도 아이가 있는 집안의 가장 아니겠습니까."
"위험요소는 모두 제거한다."
"그래야죠, 이건에게 배운게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내미는 호석.
서류의 내용은 후진다오의 그간의 행적과 우리 대원들의 침투 루트, 작전 계획등이 담겨 있었다.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마치 야반도주 하는 것 처럼."
"예, 회장님. 장저민이 승인 한 일이니 SKY의 깃발 하나로 모든게 해결 될 것입니다."
"좋습니다. 바로 진행하세요."
"예!"
***
제법 긴 이야기였지만 후진다오는 침착하게 내가 하는 얘기들을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놈은 세상에서 없어지는게 편하다는 얘기야."
"그럴수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감히 혓바닥으로 내 숨을 담은 죄라고 생각 하도록."
"살려주시오!"
"네 놈 하나가 가는 것으로 네 놈의 가족들은 목숨 만큼은 지킬 수 있을거다."
"나는 아직 쓸모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 대국의 부주석이 아니오! 부디 나를 장기 말로 쓰시오, 장기 말로!"
"아직도 말이 좀 짧네, 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릎으로 기어와 내 바짓가랑이를 잡는 후진다오.
"죄송합니다. 평생의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살려주십시오."
"글쎄, 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날 죽이겠다고 대놓고 협박하던 놈을 말이야."
"주군께서도 단순히 돈 때문에 장저민과 일을 진행하는게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어? 전혀 아닌데? 돈 때문에 맞아."
과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후진다오.
"아닙니다! 그럴리 없습니다. 그런 푼돈이 아니라 미래의 더 큰 돈을 원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너랑 일을 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고?"
"제가 주석의 자리에 앉아 주군께 이 대국을 드리겠나이다!"
먼저 알아서 굴복하고 나오니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려 했다. 억지로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 하고는 말했다.
"그럼 한 번 믿어 봐? 어떻게?"
"믿어주십시오 주군!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래?"
간절하게 빛나는 후진다오의 두 눈.
"그럼 테스트를 좀 해보자."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후진다오가 흠칫 놀란다.
눈치가 빠른 놈이었다.
상자를 열었던 대원들이 다가와 후진다오를 양쪽으로 붙잡았다.
"데려가서 교육 시키세요."
"예!"
대원들이 자신을 끌고가니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동공으로 날 바라보는 후진다오.
"어, 어디로 보내시는 겁니까! 주군! 주군!"
"다녀와, 죽지는 않을 거야."
"주군! 주구우우운!"
언제부터 내가 제 놈의 주군이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머릿속까지 무협지에 절여졌나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끝내지 않으십니까?"
어느새 곁에 다가온 호석의 질문.
"아직은 숨을 붙여놔도 좋으니까요."
"음, 보안에 각별히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오사마 빈 라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놈의 머릿속에 우리가 완전히 지워지도록 만드세요, 아직 여유기간이 석달 정도 있을테니까 충분하겠죠?"
"아예 무지로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고요, 죄 많은 놈이니까 현세가 지옥같은 것도 괜찮겠죠."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후진다오는 시간을 길게 잡으세요, 1, 2년으로 될 교육이 아닐테니까."
"예, 회장님."
"여차하면 깨끗하게 처리해야 할 순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항상 유의 해 주시고요."
호석이 흥미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묻는다.
"혹, 후진다오를 이용해 중국을?"
"아직 모르죠. 세상의 흐름이 바쁘게 돌아가니까."
사실 그대로를 얘기한 것이다.
이제 시대의 흐름, 세상의 움직임이 내가 아는 것들과 많이 달라졌다. 그만큼 SKY라는 내가 만든 그룹 하나가 전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대해졌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미래들이 전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역사가 그런것이지 '기술'이 바뀐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기술'과 '영향력'을 내가 쥐고 있느냐, 타인이 쥐고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기술과 영향력.
난 그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최대한 많은 것들을 쥐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뭣같은 세상을 씹어 먹겠죠?"
"예?"
"아닙니다. 며칠은 저 두 놈 교육하는 것 좀 지켜보다 가시죠, 그래도 주둔지 때문에 왔다는 핑계를 둘러댔는데, 일 하는 척은 해 줘야지."
"하하, 알겠습니다."
"우루무치 시였나요? 신장위구르 최대의 도시가?"
"예, 그렇습니다."
"그쪽에 숙소 잡죠."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
신장위구르 지역은 참 이상한 지역이었다.
두 가지 무슬림이 존재 했는데, 회족이라 불리는 무슬림 민족과 위구르족이라 불리는 무슬림 민족이 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주 정책'때문에 현재 위구르 지역의 한족은 회족과 위구르족의 수보다 많았다. 월등한 차이 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해서 알 카에다와 탈레반 잔존 세력이 굳이 내가 거들지 않았더라고 해도 이곳을 거점으로 종종 중국 내륙에 잔인한 테러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는 한족에게 차별을 당하며 '독립'을 꿈꾸는 위구르족의 폭동 또한 자주 발생하는 편이었다.
공산당인 중국이 가만히 보고 있을리 없는 건 당연하고, 많은 군사력으로 인권 탄압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이구야, 개판이네 개판."
최대의 도시라더니 정말 개판이었다.
무슬림들의 기본 문화 역시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피부색으로만 회족과 위구르족, 그리고 한족을 가릴 수 있었다.
위구르족은 현재 전 세계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나도 2016년쯤이 지나서야 '아 그런 민족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
"흠."
미래에 분명 위구르족 수용소가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널리 전파되던 순간이 있었다. 그 만큼 현재 위구르족은 중국의 한족과 중국 정부와의 관계가 최악이라는 얘기.
"잘만 요리 하면, 참 괜찮겠네요."
"예?"
"그런게 있습니다."
호석은 또 몹시 궁금하다는 눈치로 날 바라본다.
이내 포기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내가 얘기해주지 않을 걸 아는 모양.
'후진다오와 위구르족이라...'
< 제 25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