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3화. >
장저민은 멍청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무기를 언제 사용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닐 '녹음'파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자신을 위협하는 정적 후진다오를 한 순간에 몰락 시킬수도 있고, 그저 잠깐의 헤프닝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벌써 무기를 손에 넣은지 한 달이 지났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때가 되었어, 안 그래?"
장저민의 말에 정확히 '무슨 때'를 얘기하는지 모르는 보좌관.
그저 눈알만 굴리며 장저민의 눈치를 살핀다. 요즘 당 지도부 내에서 장저민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후진다오, 그 놈을 너무 키웠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이야."
"맞습니다."
"가자고, 대회의."
"예! 각하!"
회의장에 진입할 때 부터 이미 장내는 소란스러웠다. 후진다오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당내 인사들과 장저민을 중심으로 있는 당내 인사, 그리고 군부인사들이 치열하게 설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
"아무리 우리가 미국을 들먹였다고 해서! 주석께서 미국과 SKY를 끌여들인 일은 큰 실수라고 할 수 있소!"
"후진다오 부주석께서 당과 상의 없이, 주석님과 상의 없이 성명을 발표한것이 이 일의 시작 아니겠소? 시작부터 어긋난 것은 인정하지 않고 어째서 결과적으로만 나오는지 모르겠군."
"자네 말이 지나쳐! 부주석께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하셨으면 그러셨겠나? 그리고, 부주석께서 원하신 것은 미국의 사과와 보상이었어! 우리 대국의 자비로 미국놈들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준 것이지!"
"하! 부주석의 행동은 해석하기에 따라 감히 각하를 무시한 월권행위로도 볼 수 있소!"
"저, 저! 저래서 무식한 군부놈들은 쯧."
"말씀 다 하셨소!"
쾅!
장저민은 보란듯이 부술듯 문을 열고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미친듯이 싸우던 인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한다. 어쨌든 아직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상이기 때문.
"바깥에서도 다 들릴정도로 아주 개판이군."
장저민의 핀잔에 후진다오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말한다.
"그만큼 주석께서 보인 행동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장저민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자네가 싸 놓은 똥을 내가 치우고 있어."
"사과와 보상을 바란 것일 뿐입니다."
"상의가 필요했어, 나는 자네가 요즘 부쩍 의심스러워 자네가 자꾸만 천자인 척을 해, 뻔히 자네 앞에 천자가 있는데."
천자.
하늘의 자식.
하늘이 내려준 사람.
중국은 오직 그 사람들만 한족을 이끌 수 있다는 주나라 시절 만들어진 미신을 믿어왔다.
"우리 공화국의 천자는 나야."
손발이 오그라들 얘기지만 장저민을 지지하는 세력에서는 곳곳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크음."
후진다오가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내비친다. 속된말로 현재 장저민이 내뱉은 말이 '개소리'라는걸 모르는 당내 지도부 인사들은 없었다.
허나, 그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중화사상의 정점.
그것은 표현하는 하늘이 내려준 인물 천자.
민족주의, 선민사상을 일반인들에게 세뇌하듯 가르치는 중국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국가의 주석을 신격화 하기에 아주 적절한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화사상으로 국가가 일어났고 국가가 유지되고 있으며 현재 체재를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사상 자체를 틀어버릴 순 없었다. 당장 그랬다가는 중국이 무너질 게 뻔하기 때문.
그렇기에 장저민은 유치하면서도 절대 부정하기 어려운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것이었다.
툭.
장저민이 USB하나를 올려 놓는다.
"후진다오 네 놈이... 감히 역심을 품고 있다는 증거이다."
장저민의 보좌관이 빠르게 다가와 USB를 가지고 회의실 내부 컴퓨터에 장착하고는 파일을 재생시켰다.
-그렇소, 후진다오요.
-갑작스러워서 조금 놀랐습니다.
-이해하오,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 이미 장저민 주석과의 관계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회의실 내부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음질이 좋지는 않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후진다오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렇군요, 헌데 내게 전화를 주신 이유는?
-정치라는 게, 그리고 사업이라는 게, 어디 한쪽에만 편중되어 있겠습니까? 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양쪽을 오가야 하겠지요.
......
후진다오가 파리하게 변해지는 안색을 하고는 외쳤다.
"그만! 그만! 이게 무슨!"
"닥치고 더 들어 보시게. 과연 자네가 자네 입 밖으로 무엇을 내뱉는가."
장저민쪽 당 지도부 인사들은 이미 눈으로 후진다오를 죽이고 있었다.
-그대가 장저민 주석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오.
-장저민 주석이 그대에게 한 약속이 지켜질것이라 확신하시오?
-군부의 힘이 악화 된다면 장저민 주석은 끈 떨어진 연이 될 신세요.
"왕빠단!"
"저런 천인공노할!"
"때려 죽일 놈이!"
녹음 파일이 계속 재생 될 수록 슬금슬금 후진다오 곁을 지키던 지도부 인사들이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장저민이 언제까지 하늘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는 이미 저물어가는 해 임을 어찌 모르지?
-그럼 네 놈은 떠오르는 해인가?
-뉘에있어 나보다 높은곳에 있을까.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군.
-두고 보지.
마무리까지 정말 완벽했다.
그는 바깥에서 '장저민'을 국가 주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역심'이라 표현해도 될 정도. 당장 이 녹음 파일이 외부에 유출돼 중국 언론에서 보도된다고 한다면, 후진다오의 관사에 수 없이 많은 중국인들이 몰아닥칠 것이었다.
감히, 그들의 자존심인 '천자'를 모독했기 때문.
"부주석... 자리에서 내려 오시오."
결국 후진다오의 곁을 항상 지켜주고 지지하던 노회한 정치인의 입에서 그를 팽하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난, 후진다오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군."
장저민의 말에 후진다오의 얼굴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당장 '정치인생'이 끝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 어쩌면 제 놈의 가족들까지 싸그리 죽을지도 모를 일.
"주석, 관용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상무위원, 네 놈은 그 자리를 계속 유지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는 가?"
"부주석께서 단독으로 진행한 일이외다."
"글쎄, 네 놈들이 한패가 아닐까 의심스럽다만."
다시 고개를 돌린 장저민.
"서기."
"예! 각하!"
"철저하게 조사 해."
"예!"
***
사막의 고운 모래를 거칠게 가르는 군용 지프차들.
이곳저곳 삼엄한 중국 공안 경비대가 보였지만 우리를 제재하는 인물들은 없었다.
차량 제일 선두에 붙어 있는 SKY의 선명한 로고 때문에 프리패스를 허락 받았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 가운데 건설되고 있는 SKY 에너지와 PMC의 주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SKY의 인력과 자재,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는 이곳.
아이러니 하게도 '비용'은 SKY가 내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이 부담하고 있으니 SKY만 노 났다.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차량에서 내려 고운 모래를 밟았다.
푹신한 감각과 함께 제법 모양을 갖춘 주둔지에 절로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신장위구르 경제가 아주 박살났죠?"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예, 알 카에다가 움직여서도 그렇지만, 한족이 아니니 중앙진출이 어려워 도태되고 있습니다."
"인건비 싸겠네요."
"예, 일 자리 자체가 없는 실정이니까요. 요즘 중국은 자식농사도 제재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걸음을 옮겨 SKY 에너지의 지휘 막사 안으로 들어가니 한창 회의에 열을 올리던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하고는 상석에 앉아 SKY 에너지의 대표를 바라보았다.
"고비 사막쪽은 어때요? 원할하게 건설되고 있습니까?"
"지시하신 내용대로 우선 지반 다지기에 힘 쓰고 있습니다."
"지형 특성상 모래바람이 아래쪽으로 잘 닫지 않는 곳들을 선정하셨죠?"
"예, SKY 건설에서 전문가들을 파견해 주었습니다. 따로 지질학자 몇 분도 함께 설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건설 대표님은 언제 오시죠?"
"내일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이야 우리 대표님이 알아서 잘 진행하고 계시니 한시름 놓이네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회장님."
대표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먼 타지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SKY 에너지가 이곳에서 석유를 대체 할 수 있는 에너지 생산원을 만들어내는 일이니까, 여러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 말씀드리고 싶네요."
대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직원들 전부다 자원한 겁니다 회장님. 승인해주신 파견 조건이 워낙 좋으니 다들 힘내서 일 하고 있습니다."
"고생하는 만큼 보답을 받아야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경영주가 어디 많은가요."
"대표님도 직원들 복지에 힘 써 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이곳에 더 앉아 있어봐야 일 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었다. 이미 지시사항은 대표가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을테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주변에 우리 PMC 대원들이 많이 주둔하고 있을겁니다. 바쁘게 출동하는 날도 많을 거고요."
"예..."
"알 카에다 놈들이 이곳에 올 일은 없을테니까 걱정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표.
직원들 역시 전혀 걱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중국이 테러로 몸살을 앓을 때도, SKY의 깃발은 전혀 건드리지 않더군요. 그래서 직원들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어달 안에 우리 PMC가 알 카에다 뿌리를 뽑을 거니까, 혹 불안하신 분들이 있으셔도 안심하시고 일 해 주십시오."
"예, 회장님."
막사를 벗어나기 전 일어서 있는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저쪽 PMC 훈련장 부근으로는 접근을 불허 합니다. 혹시라도, 실수라도. 접근하지 마세요."
""예! 회장님.""
막사 바깥으로 나오니 사륜바이크가 날 반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PMC 훈련소 까지는 약 1km가 떨어져 있기에 이동수단이 필요했다.
거리는 1km가 떨어져 있는데 끝 없이 펼쳐진 모래평원 덕분에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착각을 일게 만든다.
"에너지 직원들한테 얘기했지만, 경비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전하세요, 기밀 사항이니까."
"예, 회장님."
사륜바이크에 오르며 호석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물건은 잘 오고 있답니까?"
"예, 회장님 곧 도착 할 겁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훈련소로 향했다. 당연히 대원들이 훈련하고 있는 곳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우리 대원들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훈련소 내부 깊숙하고 으쓱한 곳.
"가져오세요."
대원 둘이 작은 나무 상자를 하나 옮겨 놓는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내려진 나무상자.
고갯짓을 확인한 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나무 상자를 열었다.
"무울... 물..."
빈라덴이 곧 죽을 사람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를 흘리며 애걸한다.
"교육시키세요, 머릿속에서 SKY란 단어가 사라지도록."
"예!"
오늘은 오사마 빈 라덴은 곁가지 같은 존재였다.
메인디쉬가 어찌나 기다려지는지 1분 1초가 길게 느껴졌다.
끼익.
자동차의 브레이크 소리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왔나요?"
"예, 회장님."
빈 라덴이 들어 있던 나무상자와 같은 컨디션의 나무상자가 내 앞에 내려진다.
대원들 역시 익숙한 모습으로 상자를 열고.
그 안에서 눈을 껌뻑이며 세상을 확인하는 사람.
"이 놈들! 내가 누군줄 아느냐! 공화국의 부주석 후진다오다!"
"알지, 잘 알지. 끈 떨어진 실패한 정치인."
어느새 빛에 적응이 되었는지 나를 확인한 후진다오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린다.
"너, 너는!"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말했다.
"맞아. 천우진이야."
"네, 네 놈이..."
"말하지 않았던가?"
"무엇을 말이냐."
"두고 보자고."
입을 헤 벌리고 그대로 굳어버린 후진다오.
"뱉은 말은 꼭 지켜야 되는 병이 있어서. 너 살려오느라고 제법 고생했다. 내가."
"그, 그런!"
"천가는 원한을 잊지 않거든 절대."
< 제 25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