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48화 (248/458)

< 제 248화. >

장저민은 거칠게 서류에 서명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자존심이 뭉게졌으니 밝은 얼굴을 하긴 어려운 모양.

"먼저 일어 나겠소."

나와 부쉬.

둘중 누구도 장저민을 말리지 않았다. 나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렇고, 부쉬는 내게 뭔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

장저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부쉬가 내게 물었다.

"폭리가 아닌가 싶군요."

"다른곳에 신경 쓸 타이밍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보국에서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던 정보가 이제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부쉬가 말하는 정보란, 내가 빈 라덴을 중국으로 보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랬다면 굳이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얘기했겠습니까? 알 카에다의 수장이 내 수하라면 말이죠."

"흐음."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지 않는 부쉬.

"대통령께서는 한 가지만 생각 하시면 될 일입니다. 지지율 상승. 원하는 바, 뜻하는 바를 이루시기 위해서는 우선 차기 대권을 차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장저민이 서명했던 서류에 서명을 남긴다.

"서류가 세상에 공개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이제 부쉬도 내가 완전한 파트너는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을 터였다. 개인적으로 부쉬에게 얻어낼 것은 다 얻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게 이제 부쉬는 필요치 않았다.

단물을 다 빨았으니 버려도 그만이란 얘기.

"타클라마칸 사막의 주둔지 건설에 대해서는 누구와 상의 할까요?"

"따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의뢰비는 견적을 뽑고 따로 알려드리죠."

"좋습니다."

부쉬는 대충 악수를 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로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회담이었을 터.

오로지 SKY만 노 나는 회담이었다.

부쉬가 사라지자 호석이 조용히 밀실 내부로 들어왔다.

"굳이 6개월을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호석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목을 딸 수 있는 빈 라덴을 왜 오랫동안 살려두느냐는 뜻이었다.

"아직 단물이 남아서요."

"흐음."

"의뢰를 맞자 마자 바로 처리하는 것도 문제가 있잖아요?"

"생포라는 조건이 걸려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행여나 오사마 빈 라덴이 이상한 소리를 떠들어 그것이 SKY에 누가 될까 두려운 모양.

"그래서 길게 잡았습니다. 그 놈 정신개조가 좀 필요하잖아요?"

"아..."

"PMC대원들 준비시키세요, 주둔지 완공 즈음에 넘길 테니까."

"예, 회장님."

자리에서 일어나 탁 트인 바깥으로 나가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김일정이 잠을 자고 있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원들은요?"

호석이 곁에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움직였습니다. 음, 너무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병신이 아닌 이상, 쉬쉬 할 겁니다. 원한을 잊지 않는 천가가, 그냥 보내주기엔 좀 그렇잖아요?"

"그렇습니까."

"할아버지 몸뚱이에 구멍을 내준 놈인데 그래서야 되겠어요? 워낙 효자인지라."

"하하하, 회장님이 효자셨군요."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효자시죠."

실 없는 농담을 던지다 문득 떠올라 물었다.

"어떻게 늦둥이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크음... 삼주차입니다."

"오, 임신 3주?"

"예."

"이야, 이거 오랜만에 강기태 본부장이랑 찰리박까지 불러서 한 잔 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봐주십시오. 마누라가 죽일지도 모릅니다."

"아하, 하긴... 예민할 때니까."

쩝 하고는 입맛을 다시는 호석.

아마도 술 자리가 아쉬운 모양이다.

"이번 일 까지만 처리하고 잠깐 미국에서 쉴 테니까, 대표님도 휴가 좀 가시죠."

호석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려면 저 이북 돼지 놈을 가만히 놔두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행여나 있을 김일정의 복수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 껄끄러운 모양.

"저택에서 가만히 있을 예정이니까, 편안하게 다녀오셔도 됩니다."

신뢰 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보는 호석.

"에헤이, 아직 우리 애기들 첫돌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딜 돌아다니겠어요?"

"크음... 그럼 미국에서 휴가를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비용은 제가 쏘겠습니다. 삼촌."

"하하하, 그래."

***

김일정이 묶고 있는 방.

SKY그룹과 천혁수를 의식했기에 굳이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SKY호텔이 아닌 차선으로 선택한 호텔이었다.

간 밤에 천혁수와 천우진 때문에 지쳤는지 쥐죽은 듯 잠을 자던 김일정이 어느순간 눈을 번쩍 떴다.

"끄읍!"

눈을 뜨자 마자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어깨춤에 팔을 가져가는 그.

이내 부들부들 떨리는 눈으로 어깨춤을 바라보려 하지만 살 때문에 잘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

바로 이불을 걷어 차고는 바닥을 딛는데 찌르르 울리는 고통이 허벅지에서도 느껴진다.

"이, 이게 무슨."

당황스러운 상황에 침을 꿀꺽 삼킨 김일정이 고통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에 몸을 비춰본다.

"마, 맙소사."

이내 놀란 눈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거울 속 김일정은 어깨부위와 허벅지 부위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빨갛게 물든 붕대는 그에게 출혈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간 밤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잠을 자고 일어났다는 사실.

황급히 가운을 동여맨 김일정이 방문을 열었다.

"일어나셨습네까! 최고사령관 동무!"

문 밖에는 그의 친위대가 버젓히 경계를 서고 있는 상황.

쾅!

다시 문을 닫은 김일정은 침대에 걸터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리 방 안을 둘러봐도 어떠한 침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누워있던 침대도 깨끗하기만 했다. 그 어디에도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 경계를 서고 있는 호위부와 친위대의 경호원들은 경악 할 만큼의 훈련을 받은 공화국의 특급전사들.

헌데 그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소음도 없이 누군가 침입해 자신의 몸에 손을 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본인 까지도 누군가 제 몸에 손을 데었다는 걸 느끼지 못했으니, 그의 당황스러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

그러던 어느 순간.

침실안 탁자위에 놓인 정체 불명의 상자가 눈에 띈다. 핏빛으로 붉디 붉은 작은 상자.

딸깍.

상자를 열고 그대로 의자에 주저 앉아 버린 김일정.

그의 두 동공에는 피로 글자가 쓰여진 메모지와 피가 묻은 북한군의 군용대검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메모지를 확인하는 김일정.

[ 살려는 드릴게. ]

메모를 확인한 김일정이 소리를 질렀다.

"호위부장!"

문이 열리고 황급히 들어온 호위부장.

"일정 취소하고, 날래 돌아갈 준비 하라."

"최, 최고사령..."

"준비하라!"

***

북한의 테러사실은 암암리에 인정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었다. 천혁수 후보자에 대한 지지율이 3포인트 반등한 가운데, 현 야당의 대권주자와 여당의 대권주자가 단일화를 감행한다는 속보가 전국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뉴스 화면이 전환되며, 마이크 앞에 서 있는 야당의 대권주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범죄조직과 연루되고, 법이 금지하는 성매매를 강행하는 등의 신뢰할 수 없는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이 옳습니다. 국민여러분. 그렇기에 저와! 사람을 위해 온 삶을 바쳐온 여당의 후보자가 이렇게 단일화를 결심하였음을 온 국민 앞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각종 뉴스 채널은 물론 신문들도 빠르게 해당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둘의 단일화로 인해 다른 후보자들은 사실상 의미 없는 선거라 생각했는지 사퇴하기에 이르렀으며 자연스럽게 천혁수와 야당의 대권주자의 양강구도가 완성되었다.

KS그룹 최태수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TV의 전원을 끄며 말했다.

"지지율은 어떻지?"

"현재 천혁수는 38퍼센트, 이창호는 51퍼센트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음, 단일화를 하면서 일부 이탈자들이 천혁수에게 몰린 모양이군."

"예, 회장님."

"별 다른 이슈가 없다면 우리 계획대로 진행 되겠어."

만족스럽다는 듯 진득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최태수.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회장실 내부로 여비서 하나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구."

"천혁수 후보자입니다."

최태수가 비서실장을 바라본다.

알고 있었냐는 질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대답은 당연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비서실장 역시 천혁수의 행보를 예측할 순 없기 때문.

"드시라고 해."

어쩔 수 없이 여비서에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태수. 천혁수는 최태수의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돈을 굴리던 사람이었기에 갖추는 예의였다.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최태수의 정중한 인사에 천혁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들기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가 회장실의 가장 상석이기에 비서실장은 눈쌀을 찌푸렸으나, 최태수는 개의치 않고 옆에 앉으며 묻는다.

"한참 선거로 바쁘실 분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최 회장 덕분에 더 바빠서, 얼굴이나 좀 보러 왔네."

"하하하, 저 때문에 바쁘시다니요?"

천혁수가 물끄러미 최태수를 바라보았다.

"네 놈도 그렇고, 이건 그 놈도 그렇고... 욕심들이 너무 많았어. 정상영이는 그렇지 않던데... 쯧."

최태수가 볼살을 찡긋 거리며 어금니에 힘을 주고는 말했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뒤에서 수작질을 한다고 뜻대로 될 성 싶으냐?"

"언제나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알지 않습니까?"

천혁수가 회장실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다 말했다.

"이 정도면 되었지 더 많은 것을 바라더냐."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습니다만."

"쯧쯧, 그릇에 비해 식탐이 과하구나."

"제 그릇을 어디 간장종지쯤으로 아셨나봅니다?"

최태수의 비꼼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천혁수.

그런 천혁수의 얼굴이 꼴 뵈기 싫었는지 최태수가 말을 붙였다.

"그나저나 아이들이 필요하셨으면 저에게 말씀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외국에서 정치하신다는 분이 무슨 추태입니까?"

천혁수가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아래 딸린 식구가 몇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그리 작아서야. 아무래도 네 놈은 이 커다란 공룡을 운절할 깜냥은 아닌 듯 하구나."

가만히 있던 비서실장이 천혁수에게 쏘아붙였다.

"말씀히 지나치십니다. 대통령자리에 사채업자가 발 붙일 깜냥이 아니니 이리 심통을 부리십니까?"

프스스 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흘리는 천혁수.

"충직한 개새끼를 얻었구나."

비서실장의 얼굴이 뻘겋게 물든다.

막 입을 열려는 비서실장의 어깨에 철웅의 손이 닿았다.

표독스러운 눈으로 철웅을 째려보는 비서실장.

철웅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만들 하지."

최태수가 둘을 만류하는 사이 천혁수가 품에서 작은 초대장 하나를 꺼내 최태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전경련 아이들 얼굴이나 보자고."

피식 웃은 최태수.

"많이 급하신 모양입니다? 전경련에 술이라도 대접해주시려고요?"

"파하하."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웃던 천혁수가 다시 고개를 내려 최태수를 빤히 바라보고는 말했다.

"살고 싶거든, 오너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지를 찢어발길 것만 같은 천혁수의 흉포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네 놈에겐 특별히 직접 전달해주러 온 것이다. 최 형에겐, 제법 빚이 있으니."

천혁수가 언급한 최 형은 최태수의 아버지를 일컬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했으면 좋겠구나."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어깨를 두들겨주고는 자리를 떠나는 천혁수.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최태수는 숨을 내쉴 수 있었다.

< 제 24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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