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39화. >
힘들 때 우는 것은 삼류.
힘들 때 참는 것은 이류.
힘들 때 먹는 것은 육류라 하였다.
무슨 말이냐면, 오늘 먹은 저녁 메뉴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는 언제나 옳았다는 소리다.
아산댁 아주머니에게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 올려주고는 천천히 걸어 거실 소파에 앉았다. 호석은 눈치껏 TV를 켜고 뉴스채널에 맞춘다.
지상파 뉴스와는 다르게 케이블 뉴스였고, 보수 언론이라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그런 채널이었다.
"저기가 고조선일보에서 하는 채널이죠?"
"예, 회장님."
확실히 뉴스의 주된 내용이 여, 야의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얘기로 가득했고, 연예인들의 자극적인 뉴스들로 가득했다.
"볼 게 없네."
막 채널을 돌리려 리모콘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
-다음 소식입니다. 얼마전 북한 간첩에 의한 테러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었던 천혁수 후보자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소식인데요...
나는 뻗었던 손을 회수하고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뉴스에 집중했다.
-천혁수 후보자의 손자이제 SKY그룹의 오너인 천우진 회장의 인터뷰 잠시 보고 오시겠습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저녁식사를 먹기 전 집 앞의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에 송출된다.
-천우진 회장님! 천혁수 후보자께서 총상을 치료한 기록이 없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천혁수 후보자를 치료했다는 의사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천혁수 후보자가 총상을 입은 것은 확실한 것입니까? 어째서 청와대에서는 천혁수 후보자의 테러사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기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누가 보아도 탐탁치 않아 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얼굴의 내가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택에서 치료받으셨습니다.
다시 화면이 전환되고 앵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천우진 회장의 말에 의하면 혼절할정도로 큰 부상을 당한 천혁수 후보자가 '자가치료'를 했다고 보여지는데요, 데스크에 나와계신 한국대병원장이시자 한국 외과의 최고 권위자 김은중박사님에게 묻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대병원장 김은중입니다.
-네, 박사님. 총상이라는게 자택에서 치료 할 수 있는 종류의 상처인가요?
화면속 의사라는 놈은 어림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총알은 총구에서 발사되는 순간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회전력에 의해 인간의 피부를 뚫고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죠, 신경이나 혈관등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소리입니다.
-그럼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단순히 칼에 의한 자상처럼 꿰맨다고 되는 치료가 아닙니다.
-자가치료가 가능한 수준의 총상도 있을까요? 영화에서 보면 분명 그런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영화는 영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앵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럼 계속해서 천우진 회장의 인터뷰 확인하시죠.
다시 화면이 전환되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내가 나온다.
-천우진 회장님! 정말 천혁수 후보자가 총상을 입은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간첩에 대한 공격이 사실입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한 말씀 해주십시오!
누가봐도 질렸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내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총상을 입었고, 치료 했으며 현재는 요양이 필요하고 안전을 위해 거취는 밝히지 않는다. 제대로 들었을테니까, 이제 갈 길 갑시다.
그 화면을 보며 피식 웃는 나를 호석이 눈치를 보다 품에서 시가를 스윽 건넨다.
나는 시가를 받아 입에 물며 멀리 주방에서 일을 하고 계실 아산댁 아주머니를 호출했다.
"아주머니, 시원한 칵테일 대짜로 부탁드려요."
주방에서 '네~'하고 대답하는 아산댁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TV에 집중했다.
-천우진 회장은 자가치료를 확언했고, 현재 천혁수 후보자의 거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요? 김은중 박사님은 천혁수 후보자의 총상 소식을 뉴스로 확인하셨습니까?
-예, 봤습니다. 확실히 어깨쪽 관통상과 허벅지에 총상이 의심되는 듯 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혼절 할 정도로 많은 출혈을 보였던 천혁수 후보자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가치료.
-인간의 다리, 특히나 허벅지 부분은 많은 영화에서도 별것 아니라는 듯 칼에 찔리거나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앵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사의 말에 집중한다.
-헌데 그건 잘못된 상식입니다. 지방층과 근육층이 두꺼운 허벅지에는 정말 많은 신경과, 주요혈관들이 가장 많이 지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허벅지에 칼이 찔린다면 뽑지 말고 그대로 병원에 와야 할 정도로 정말 생명에 위험한 부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 말씀은 자가치료는 절대 불가능하고 반드시 외과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운이 좋아 중요혈관이나 신경은 피했다 하더라도, 허벅지 깊숙히 박힌 총알을 빼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수술이 필요할 것입니다.
-박사님은 총상 수술에 대한 경험이 많으신가요?
한국대병원장은 헛기침을 하며 딴 소리를 내뱉는다. 그 모습을 본 앵커가 아차 싶은지 황급히 말을 돌린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박사님, 아쉽게도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어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소식은 역시 천혁수 후보자의 손자 천우진 회장의 소식입니다. 젊은나이에 성공해 많은 구설수에 오른 천우진 회장, 오늘은 기자들에게 폭언까지 던져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것이 그의 인성을 보여주는 예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면에 다시 한 번 앵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다.
-소설들 쓰고 있네 미친 새끼들이.
기자들에게 폭언을 내뱉는 모습이 고스란이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치 쓰레기를 보듯 기자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카메라에 담기고.
-치워요.
-예, 회장님.
다시 화면이 전환되고 앵커가 나타난다.
-보신 바와 같은 천우진 회장의 폭언에, 당시 취재를 나갔던 한우리 기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과연, 국민들이 지지하고 칭송하는 한국 재계서열 1위의 SKY그룹의 오너가 한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원색적인......
"아주 신들 나셨네."
내 비꼼에 호석이 피식 웃어버린다.
"내일부터 제법 시끄럽겠습니다."
"막말 논란 좀 있겠네요."
그나저나 호석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쩐일로 걱정을 하지 않으시네요?"
호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다 생각이 있어 하신 말씀 아닙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계산적으로 움직이시는 분이시니까."
확고한 신뢰가 느껴졌다.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니 가타부타 더 말하진 않았다.
"용팔이는 누구였죠?"
"하하, 용팔이 아니었습니다. 회장님."
내가 말한 용팔이란, 어둠 계통의 일을 하는 조폭들이나 사채업자들이 기록에 남기지 않고 치료 해 주는 의사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기록에 남겼어요?"
"개인적으로 움직이시는 분이라 디지털화된 기록은 아니겠지만, 분명 의과기록 남겼을 겁니다. 불법시술을 한 것도 아니니까요."
"어쨌든, 할아버지 치료하신 의사분, 경호인력 늘리세요 저쪽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호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대통령께 말씀하시지요."
"예?"
"대통령 주치의께서 친히 방문해 백부님을 치료하셨다 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예, 회장님."
일이 상당히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대충 어디서 용팔이나 데려와서 치료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
아산댁이 내온 칵테일을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중미다 남미다.
말이 많은 애매한 지역에 위치한 파나마.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로 일컬어지는 그곳은 아름다운 해변과 깨끗한 바다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시사철 온후한 기후도 한 몫을 보태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나마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중 하나인 파나마 운하 인근의 새하얀 백사장. 그 백사장을 소유하고 있는 최고급 호텔에 노 신사 둘이 싱글벙글 웃으며 체크인을 했다.
"대비, 숙소는 자네가 쏘게나."
"음? 더치페이 아니었어?"
"이 사람 쪼잔하게 그럴텐가? 정치인이 돈이 어디있다고?"
천혁수의 말에 록펠러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크하하, 이거 벌써 여인들에게 +요인이 될 돈줄을 내가 쥐고 있구만 그래."
"허허, 그 나이 들고서도 아직 모르시는가? 물질이 전부가 아닐세."
록펠러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말했다.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구만."
천혁수 역시 자신이 말해놓고도 민망한 듯 '큼큼' 헛기침을 내뱉는다.
어쨌거나 록펠러는 사전에 예약해놓은 전용 해변이 딸린 펜트하우스를 결제 하고는 호텔 직원에게 짐을 넘기며 천혁수에게 물었다.
"수, 내기의 규칙을 정확하게 정해야하지 않겠나?"
"자네가 돈을 썼으니, 자네의 규칙을 따르기로 하지."
"호오, 자신만만하구만 그래."
천혁수가 씨익 웃으며 꽃무니가 화려한 하와이언 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치자, 잘 단련된 가슴근육이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 모습이 가소로운지 록펠러가 말했다.
"여인들의 진심어린 '선물'을 받는 것으로 하지."
"호오, 신선한 내기구만."
"단순한 육체적 관계를 넘어선 마음까지 훔쳐오란 얘기지."
"재밌구만, 좋아."
"기한은 정확히 3일."
"오케이, 카드나 한 장 주시게, 두둑한 현금도."
"수, 자네 전업이 날강도였나?"
"흰 소리 말고."
"크하하하, 알겠네 그 정도야."
대충 펜트하우스 소파에 앉아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록펠러. 테이블 위해 정확하게 가진 현금의 절반과 카드 한장을 꺼낸다.
"자, 한도 제한이 없는 카드와 내가 가진 현금의 절반일세, 카드 비밀번호는 우리 태양이 별이의 생일."
천혁수는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셔츠를 뜯듯이 벗어버리고는 근육의 데피니션을 선명하게 만들어줄 오일을 바르기 시작했다.
"음? 등은 왜 안 바르나?"
록펠러의 질문에 피식 웃는 천혁수.
"여인이 발라줄 부분은 남겨 놔야지."
"호오, 과연."
뻔히 출입구가 있음에도 천혁수는 맨말로 척척 발코니를 통해 모래사장으로 출발한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세월의 때가 묻은 서핑보드가 들려 있었다.
"그럼 매일밤 자정마다 상황보고 해보자고."
"다녀 오시게."
***
대통령은 케이블 뉴스채널에서 흘러나온 뉴스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
힐끗 비서실장을 째려보는 대통령.
"조용히 보내자고 언론에게 따로 지시하지 않았던가?"
"자칫 언론통제로 비춰질 수 있기에, 조용히 권고만 하였습니다."
"쯧쯧... 천우진 회장이 뿔이 났겠어."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천우진을 언급하자마자 그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존재감을 과시한다.
"보게, 바로 전화오지 않는가?"
비서실장 역시 난처한 모습을 보인다.
"주치의께 바로 사실공개 하라 전하겠습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화를 받아 들었다.
"전화받았소, 천 회장."
-음? 기다리셨나 봅니다?
"방금 막 언론사의 보도 보았습니다."
-아아, 대충 예상하셨던 모양이네요.
"그렇소... 내가 과한 친절을 베풀어, 천혁수 후보자께 피해를 준 것 같습니다."
-글쎄요, 친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반응이 까탈스럽지만 대통령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극적인 뉴스를 뱉어내는 언론사 답게 천우진에 대해서도 매우 공격적인 보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보고는 받았겠지만, 천혁수 후보자는 청와대 주치의가 직접 치료했습니다. 해서, 주치의에게 일러 치료사실을 공개하라 얘기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을 힐끗 바라보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선전화를 들어 올린다.
-아뇨, 아직 공개하지 말죠.
"내가 잘 못 들었습니까?"
다시 손을 들어올리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내선전화기를 내려 놓는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할아버지 치료사실 아직 공개하지 말자고요, 그래서 전화드렸습니다.
"지금 여론이 천혁수 후보자는 물론, 천우진 회장께도 안 좋게 흐르고 있습니다만?"
-지금 북한 테러 사건이 다시 대두되는 것도 대통령께는 별로 좋지 않은 일이잖아요?
"으음..."
확실히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 테러사건이 크게 이슈화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분명했다.
-공개 시점은 우리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예.
"그대도...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
-저쪽에서 하는 공격이 하도 치졸해서 말이죠.
"전경련이 개입한 모양이군요."
-하여간 활활 불타오를 때 까지, 불을 끄진 말자는 얘기입니다. 이제 불길은 시작이니까.
"도대체... 천 회장 당신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부탁드리죠.
말은 부탁이었으나, 강요로 느낀 대통령.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쨌든 상대적 약자이기 때문. 모든 일이 청와대에서 비롯된 일이고 현재 천혁수가 해당 의혹들을 당하고 있는 것 역시 청와대의 사후 처리 문제 때문이었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후우, 알겠소... 당의 입장에서도 조용히 해주길 바라고 있으니."
-좋네요.
"그나저나... 천혁수 후보자가 파나마에 입국하셨더이다."
-예? 그래요?
"모르셨소?"
-휴가라도 즐기실 모양이네요.
"흐음... 듣기로는 제법 심각한 상처였소만."
-워낙 튼튼하신 분이라.
"언론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니 모쪼록 주의하셔야 할 게요, 이런 시기에 휴양지라니..."
-뭐, 걱정은 감사합니다. 이만 끊죠.
"알겠소."
< 제 23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