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38화. >
본래라면 차량이 우리집 주차장 내부까지 들어갔어야 하지만 길을 막고 있는 기자들 덕분에 그럴 수 없었다. 부득이하게, 혹은 내가 원해서 차량에서 내려 기자들 앞에 섰다.
"천우진 회장님! 천혁수 후보자께서 총상을 치료한 기록이 없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천혁수 후보자를 치료했다는 의사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천혁수 후보자가 총상을 입은 것은 확실한 것입니까? 어째서 청와대에서는 천혁수 후보자의 테러사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이미 준비된 질문들을 던지는 기자들.
그들의 면면을 훑어보다 말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택에서 치료받으셨습니다."
기자들이 놀란 눈으로 묻는다.
"분명 인천 지휘소에서는 과다출혈로 혼절 할 만큼 많은 양의 피를 흘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택에서 치료를 할 정도로 경미한 부상이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럼 현재 천혁수 후보자는 자택에서 요양중인 것입니까?"
"사건이 있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천혁수 후보자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택에서 요양중인 천혁수 후보자의 건강은 괜찮은 겁니까?"
자택에서 요양하고 있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저들은 그렇게 몰고 가고 싶다는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흘리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현재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관심있게 정보를 파 본다면 할아버지가 이미 한국에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당장 출입국 관리소에서도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할아버지의 거취는 안전상의 이유로 밝힐 수 없습니다."
나는 아예 할아버지의 소재에 대하여 일언반구의 어떤말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현했다.
"혹자는 총상이 거짓이기에, 그것이 완전히 아물 시간이 필요해 모습을 감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천혁수 후보자의 거취를 감춘다면 그 의혹에 힘을 보태주는 행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총상을 입은게 맞습니까? 방송에 보도되던 천혁수 후보자의 출혈이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려왔습니다. 혼절할 만큼 많은 양의 출혈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혁수 후보자에 대한 테러가 정말 북한 간첩에 의한 소행이라면, 청와대에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게 이상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애초에 내 얘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무슨말을 해도 악의적으로 자르고 붙여 제 놈들 입맛대로 조작했을 놈들이었다.
놈들의 등에 타고 있는 놈이 마치 커다란 산군이라도 되는양 행동하고 있었다.
"소설들 쓰고 있네 미친 새끼들이."
내 입에서 툭.
본심이 튀어 나왔다.
일순간 당황스러운 표정들을 짓는 기자, 아니 기레기 놈들.
"동북아일보, 고조선일보. 두 개 언론사에서 뭔 기자들을 이렇게 많이 파견 하셨데? 누가누가 소설 잘 쓰나 공모전이라도 열리나?"
기레기 놈들이 자존심이 상했을까 울긋불긋 얼굴을 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치워요."
"예, 회장님."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빠르게 달려 들어 몸으로 부딪히는 기자들을 뒤로 밀어낸다.
나는 뚜벅뚜벅 대원들이 열어준 길을 걸어 이 세상 어떤 곳보다 편안한 내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우진 회장님! 정말 천혁수 후보자가 총상을 입은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간첩에 대한 공격이 사실입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한 말씀 해주십시오!"
원색적인 나의 비난에 말을 잃었던 놈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목소리를 드높인다.
놈들이 듣고 싶은 대답이 분명 있나 보다.
나는 문 앞에서 뒤 돌아 답했다.
"할아버지는 총상을 입었고, 치료 했으며 현재는 요양이 필요하고 안전을 위해 거취는 밝히지 않는다. 제대로 들었을테니까, 이제 갈 길 갑시다."
기레기 놈들은 만족스러운지 몸뚱이에 힘을 풀며 대원들이 밀면 미는대로 그대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내 대답에 놈들의 목적이 달성된 모양.
호석이 다가와 문을 열며 작게 질문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회장님."
"언론이요?"
"놈들이 노리는 바가 있어보였습니다."
"그렇겠죠, 정치부, 사회부, 연예부까지 아주 두 언론사 모든 부서가 출동한 것 같더만."
철컥.
오랜만에 현관문을 통과하니 기분이 어색했다. 항상 주차장에서 바로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만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라고 새롭네요."
피식 웃은 호석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저 기자들에게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혹을 더욱 부채질 할 인터뷰가 중요해 보였습니다. 회장님이 하신 인터뷰가, 그들의 목적에 충족해 보였고요."
정확한 판단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으신가 봅니다."
내 얼굴을 본 호석의 판단이었다.
"놈들이 하려던게 노이즈, 바이럴이라죠?"
"아, 지금 여당 후보자와 야당 후보자가 적극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 걸 말씀하십니까?"
"예, 서로가 자극적이지만 사실이 아닌걸 주구장창 떠들고 있잖아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아마 결국에는 반전되는 결과들이 나오겠죠, 가령 사람을 우선 생각한다던 여당 대표의 갑질 논란이라던가 불륜 논란들은 '인간미'넘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테고, 정직, 신뢰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던 야당대표의 뇌물수수 논란 역시 가벼운 통장잔고 들을 보여주며 빈곤한 삶을 보여주는 뭐 그딴 방식이겠죠."
호석이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언론이 유린하는 여론이란 게, 불타오르면 불타오를 수록 좋은 겁니다. '반전'되었을 때 그 임팩트가 아주 효과적이거든요, 기억에도 오래 남고."
"백부님의 부정적인 여론을 뒤집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예, 아주 쉬운 방법이 있죠."
"쉬운 방법이라..."
그게 뭐냐는 듯 날 바라보는 호석.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지만 굳이 지금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는 않았다. 할아버지가 노발대발 할 만큼 싫어하실 것 같으니까.
"그건 비밀로 하죠, 할아버지 설득이 먼저일 것 같아서."
"크음."
호석이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완전이 내 곁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모양이다 한결 편해진 사이가 된 것 같달까?
"할아버지한테 요양하시면서 몸관리나 좀 잘 하시라고 전해주세요."
호석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백부님 하루 일과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총상 입고도 계속 같은 일과신가요?"
"폐에 구멍이 뚫려도 계속 하실 분이십니다."
"하여간 노인네 똥고집 누가 말려."
호석이 또르르 눈을 돌려 못들은 척 다른 곳을 쳐다본다. 아산댁은 피식 웃으며 어느새 내 자켓을 받아들고 있었다.
"회장님, 어르신 들으시면 섭섭하셔요, 말씀 너무해요."
"아 그런가요? 할아버지 고집이 어디 보통이어야죠."
"호호호, 그래도 아침마다 하시는 운동때문에 아직도 정정하시잖아요."
"관절 상할까봐 그렇죠."
"제가 더 신경쓸게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편안하게 소파에 앉았다. 어느새 소파 앞 테이블 위에는 아산댁 아주머니표 칵테일이 놓여 있었다.
"오늘은 오미자 벌꿀집으로 맛을 내봤어요, 라임이랑 드라이 진 역시 들어갔고요."
아산댁 아주머니의 설명에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최고의 식전주네요."
"호호호, 오늘도 고단백 식단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예, 할아버지한테도 단백질 식단으로 잘 드시라고 좀 전해주세요, 그래야 벗어도 훌륭한 몸 나오지."
아산댁과 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
"예?"
"뭐, 그런게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들과 다르게 나는 혼자 계속 피식 거리며 칵테일을 홀짝였다.
달짝 지근한 벌꿀집과 오미자 청이, 라임과 탄산수를 만나 오묘한 달콤상큼 풍미를 내준다. 끝맛에 적절하게 알싸한 알콜향은 가뜩이나 재밌어지는 상황에 절로 웃음짓게 만들었다.
***
같은시각 워싱턴.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
록펠러의 저택에 마련된 체력단련실 내부에서 천혁수는 다친 왼 팔을 움직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오른팔 하나에만 의지해 팔굽혀펴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후흡, 후."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는데 돌연 천혁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흠, 오한이라..."
온 몸에 열이 오른 상황에 갑자기 몸이 떨리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천혁수.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거울 속에 미친 왼쪽 어깨에 붙여져 있는 반창고에 핏물이 베어 나온다.
"상처 때문인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물을 한모금 마신 뒤 운동에 열중하는 천혁수.
곧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체력단련실의 문이 열리고 데이비드 록펠러가 들어온다.
"수, 오늘도 먼저 나와 있구만 그래."
"아, 이제 왔나?"
"자네가 너무 일찍 이러난게야."
록펠러는 한쪽편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아령 하나를 들어 올리며 거울속에 비친 천혁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거 참, 사기적인 몸뚱이구만, 누가 자네를 자네 나이로 보겠다? 목 위로만 가리고 보여주면 20대 청년이라해도 믿겠어."
피식 웃는 천혁수가 말했다.
"이 사람, 자네도 지금부터라도 움직이면 할 수 있네, 시간은 좀 필요하겠지만."
"글쎄, 죽기 전에는 가능할까 싶군."
"어허, 우진이 놈이 하던 말 기억 안나시는가? 우리가 100살은 거뜬하다 하잖은가."
록펠러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내가 지금부터 자네같은 몸뚱이 만들려면 식단조절에 운동까지 미친듯이 해야겠지, 이 나이에 그게 무슨 추태인가? 그냥 건강하게만 살겠네."
천혁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네 아직도 아침엔 괜찮은가?"
록펠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이 사람! 문제 없지!"
"글쎄, 자네 뱃살을 보니 문제가 없지 않을 것 같은데."
"어허, 내기라도 하시겠는가!"
"우진이 놈이 말하지 않던가? 내가 LA에서 어마어마 했다고?"
"나도 언론에 알려질까 참고 있는 거지 어마어마 하다네 친구."
둘의 눈이 활활 불타오른다.
"나는 젊은 여인들도 거뜬해."
"허허! 마찬가지일세!"
둘의 말싸움이 한창인 때, 어느새 들어온 데이비드 록펠러 4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바깥에서 다 들립니다 아버님들, 주책이에요 주책."
"크음."
"흠흠."
"뭣 하면 사돈어르신 휴가 삼일 남았는데, 어디 좋은 곳이라도 다녀 오시던가요 두분이서."
록펠러는 지기 싫은지 천혁수를 보며 말했다.
"남미 어떠신가!"
"남미?"
"그래! 남미 여인들이 열정적이기로 소문이 자자하지."
"정말 자신있는 모양이야 대비."
"물론이지."
"좋아 가자고, 거기라면야 카메라 걱정 할 필욘 없겠지."
"걱정 마시게, 우리들이 누구인지 관심없는 여행객들만 잔뜩인 곳으로 고를테니."
"좋아."
그렇게 둘은 이상한 내기를 상의하며 체력단련실을 빠져나가고, 천우진의 장인이자 록펠러의 아들인 록펠러 4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휴, 청춘들이야 청춘들."
이내 손을 뻗어 자신의 아버지가 들어올리던 아령을 슬쩍 들어올리는 그.
부들부들.
"음...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인가."
다시 아령을 내려 놓고는 더 가벼운 놈을 골라 들어올리다 문득, 혼잣말을 내뱉는다.
"아, 요즘 언론 시끄럽던데 사돈 어르신 휴가 가도 괜찮나?"
분명 둘의 대화로 보건데 '휴양지'로 갈 확률이 높아보였다. '유흥'이 유난히 발달한 휴양지로 말이다.
"쯧, 뭐 알아서 하시겠지."
다시 아령을 들어올리는 그.
부들부들.
"아 오늘따라 몸이 무겁네 흠흠, 운동은 여기까지만 해볼까?"
< 제 23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