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36화 (236/458)

< 제 236화. >

아내와 딸 아이를 꼭 안고 있던 현해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미나이··· 오랜만에 안아 보는 구나 기래.”

“꼭 가셔야 합네까?”

“별 수 있네? 공화국에서 살고 싶으믄 가야지.”

그의 아내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살 수는 있는 겁네까?”

현해철은 이렇다 하게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희야는 어떻게 합네까?”

현해철이 고개를 돌려 어느새 자신의 가슴팍까지 자란 딸을 바라본다. 제법 나이를 먹었다고 뭔가를 아는지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상태.

“걱뎡하디 말라, 희야도, 분이도. 잘 살 수 있으니.”

항상 애미나이라고 부르던 현해철이 오랜만에 아내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 사실이 더 서러운지 현해철의 아내의 눈에서도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 내린다.

“나중에 보자우.”

현해철이 말한 ‘나중’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린 현해철이 뚜벅뚜벅 걸어 공장처럼 찍어낸 아파트를 벗어나 차도 별로 없는 도로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가능한, 나중에··· 오래오래 살다 오라. 먼저 가 있을테니.”

뒤 돌아 읊조린 현해철은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석궁에 도착한 현해철.

경비를 서던 인물들은 현해철을 알아보고 경례를 올렸지만, 현해철은 평소와는 다르게 경례를 받아주지 않고 그저 무시하며 그들을 스처지나갔다.

그가 경례를 받아주지 않으니, 그들은 경례자세 그대로 요지부동 할 수 밖에.

어느새 주석실 앞에 도착한 현해철이 똑똑똑 노크를 하고는 내부로 들어갔다.

“왔네?”

현해철은 역시나 김일정에게도 경례를 올리지 않았다. 이제 자신은 군인이 아니란 생각이기 때문.

어깨를 으쓱인 김일정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테이블 앞 소파에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차가운 금속물체 권총이 놓여 있었다.

“앉으라.”

자신의 맞은편을 가리키며 앉으라 말한 김일정.

현해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동무래, 마음을 정한 모양이디?”

“태어나 단 한번도 공화국에 부끄러운 일을 하디 않았습네다. 죽어야 한다면, 공화국의 영광으로 생각할 생각이야요.”

김일정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내레 이래서 동무를 싫어해. 동무에게는 공화국이 하늘이거든.”

김일정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현해철의 두 동공은 씁쓸하게 변해갔다. 자신의 조부부터 공화국에 충성을 다 하던 인물들이었다. 모두가 한자리를 차지 했던 집안.

자신의 조부는 김일정의 아버지때에 최측근이었다. 그러나 체재가 변화하며 김일정이 수령 자리를 물려 받았을 때 부터, 자신의 집안은 세가 줄기 시작했다.

김일정과 자신의 아버지는 사사건건 부딪혔고, 결국 어느날, 자신의 아버지는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결정까지 했었다.

김일정은 공화국을 위해서가 아닌, 공화국이 곧 자신이라며, 자신을 위한 충성과 맹세를 바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민통합을 위한 수령의 신격화는 마치 자신이 ‘신’인양 행동하는 김일정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김일정은 삐뚫어졌다. 현해철은 김일정이 속내를 숨기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공화국이라는 커다란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말이다.

“동무, 하나만 묻갔어.”

“말씀하시라요.”

“지금 공화국은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 날 수 있갔네?”

“남조선이 원하는 사과를 해줘야 합네다.”

“나보고 고개를 숙이라?”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줘야 한다는 얘깁네다.”

“기거이 기말 아이간?”

“최고사령관 동무께서 길케 생각하면 기런것이지요.”

“쯧, 동무라고 다른 의견을 내진 못하는구만 기래··· 최소한의 성의라고 했으니까, 내례 직접 남조선의 대통령을 만나 보갔어.”

애초에 기대가 없었으면서도 핀잔을 늘어놓는 김일정. 현해철은 김일정의 의견에 짐짓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북한과 남한의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것은 성의를 보이는 게 맞는 일이기 때문.

김일정이 잠시 고민하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물었다.

“공화국이 저 미제의 앞에 쓰러질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내 준다면 공화국의 미래가 보장된다면, 동무래 어떡하갔어?”

현해철이 생각하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김일정이 원하는 답 역시 정해져 있었다.

“알고 있잖습네까?”

“역시 그렇네?”

“기래서 자네가 불편해, 언제 내 모가지를 노릴지 하루하루가 불안하거든.”

김일정이 스윽, 도라지 그림이 그려진 담배를 현해철에게 내밀었다. 현해철 역시 그 담배를 들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인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네?”

“공화국에 충성을 다한 전사로서 부탁이 있습네다.”

“말해보라.”

“가족들을 부탁드립네다.”

“걱뎡하디 말라, 평생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해줄테니.”

“믿갔습네다.”

“먼저 가 길 닦고 있으라.”

“가는 길이 다를 수 있지 않습네까?”

“하하하, 그렇네? 나는 지옥이고 자네는 천국이네?”

종교가 없어야 할 북한에서 감히 사후세계의 다름을 입에 담은 현해철.

그러나 김일정은 끝까지 자신의 뜻에 한번을 따르지 않는 현해철의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동무를 참 좋아했디··· 대쪽같은 거이 공화국의 전사 답다 생각했어.”

“미련없습네다.”

“기래··· 가라우, 그런데 동무도 아마 나랑 같은 곳에 가 있을거이야, 동무레 가족은 볼 수 없겠디.”

“공화국 전사들이 언제부터 혀가 이렇게 길었습네까? 쏘시라요.”

피식 웃은 김일정이 권총을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곧 보자우.”

탕! 탕!

그렇게 두 발의 총성이 주석궁에 울려 퍼졌다.

***

록펠러 저택에서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삶은 역시나 달콤했다.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아이들을 한번씩은 안아 주었다.

그때마다 우희가 달려와 어깨의 실밥이 터진다며 할아버지에게 폭풍 잔소리를 한 것은 안 비밀이다.

어쨌든, 할아버지는 평소 무뚝뚝하고 냉철한 척 연기하시지만, 증손주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여느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세상 더 없이 자상한 얼굴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효도 한 느낌.

저렇게 밝으신데 이제 돌아가세요 하기가 좀 그랬다.

“저 먼저 한국에 다녀올까 하는데요.”

해서, 나 먼저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음? 왜?”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으신다.

“장저민, 부쉬와의 만남도 있고, 곧 정상회담도 이뤄진다면서요?”

“김일정이 놈이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야, 국제적인 제재 때문도 그렇지만, 한국의 강경한 반응이 예상외였겠지.”

“그래서요, 참견 좀 하려고.”

“흐음··· 나도 그 정상회담 쯤에는 한국에 가지 싶구나.”

“예, 먼저 들어가 있을테니 천천히 오세요.”

“오냐 알았다.”

“우리 애들 잘 부탁드려요.”

할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걱정 말거라, 네 놈 핏줄이기도 하지만, 내 핏줄이기도 하니.”

“그렇다면야.”

스윽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는 철웅에게 물었다.

“백 대표님?”

“예, 회장님.”

“정 대표님은 밤마다 바쁘신 것 알죠?”

움찔 몸을 떠는 백철웅.

할아버지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대한민국 월드컵 결과로 내기를 한게 좀 있거든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쯧쯧, 그렇게 이 놈이랑은 내기를 하지 말라 전했거늘··· 굳이 질 내기를 했구나.”

백철웅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전 세계에 단 한명도 한국이 월드컵 4위를 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놈은 했고?”

“예, 백부님.”

내게 시선을 돌린 할아버지.

“이 놈아 무당은 네가 하는게 옳겠구나.”

피식 웃으며 답했다.

“어쨌든, 그 내기 결과로 소원들어주기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백 대표님과 정 대표님이 늦둥이 갖는게 소원이었습니다.”

“크읍.”

할아버지가 억지로 웃음을 삼키며 백철웅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오냐, 네 놈 뜻은 잘 알았다. 한국에 가거든 칼퇴근 시켜주마.”

“예, 정 대표님은 심지어 미국으로 가족까지 불렀습니다.”

“크크큭, 호석이 그 놈 장기 출장때마다 좋아하더라니, 이렇게 당하는구나.”

***

3일뒤 한국.

태양이, 별이와 처음으로 하는 이별에 어찌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집에만 붙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루시의 출산 예정일 약 45일 전부터 함께하고 있었으니 언 두달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바깥일은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다.

물론 SKY그룹은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사전에 계획하고 있던 것들만 수습해도 대한민국 1위,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출산전에 출시했었던 SKY터치폰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전세계 모바일 시장 점유율 38퍼센트에서 61퍼센트로 치솟으며 단숨에 세계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 자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눈치를 보는 장저민이 SKY터치폰을 중국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만들어준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 북, 미의 정상회담이 훌쩍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사전에 도착한 부시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과 만찬이 예정되어 있······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만큼, 대한민국에는 부시가 공식적인 방문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내 앞에서 아산댁 아주머니가 만들어준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고있는 중이었다.

“오, 이 음식의 역사를 듣게 되니 맛이 더 훌륭한 것 같습니다. 미스터 천.”

“그래요? 입에 맞다니 다행입니다.”

“아주 훌륭한 셰프님이 이 집에 계셨군요.”

집을 둘러보는 부시가 말을 이었다.

“집도 정갈하니 아주 좋습니다.”

“그런 표현도 할 줄 아십니까?”

“하하, 한국에 오는데 한국 정서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정치적 센스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상대방에게 매력적이고 호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

그러니 공격적이고 마초적인 미국시장에서 강력한 대응 강경한 대응으로 아직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가보다.

“내일 저녁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장저민 주석이 오겠습니까?”

“반드시 올 겁니다.”

“호오. 그 자존심 높은 늙은이를 어떻게 구워 삶았나 심히 궁금하군요.”

“안되면 되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내지요.”

부시가 좋아하는 마초적인 대답.

그가 크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웃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그보다 대통령께서 중국의 주석에게 무엇을 얘기하려고 이런 만남을 원하는지 궁금하군요.”

“중국땅에 미군이 발을 딛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사막을 통해 중국으로 밀입국하는 탈레반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헛소리였다.

그가 진짜로 노리는 것은 저런 것이 아닐 터.

“믿으라고 하신 말씀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푸핫, 거짓말이 어설펐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말 하기를 꺼리는 것 같으니 내가 먼저 입에 담기로 마음 먹었다.

“신장 위구르쪽부터 해서, 중국을 무너뜨리고 싶으신 겁니까?”

부시가 수저를 내려 놓고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그 주변에는 다른 자치구도 있지요.”

“내몽고, 티벳?”

“오, 역시. 천은 이해가 빠르십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봉기 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겁니다. 나는 그때, 중국의 체제변환을 노리고 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 역시, 알 카에다 놈들을 중국에 풀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 처럼, 미국 역시 알 카에다 놈들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나도, 부시도.

입꼬리를 씨익 들어올리고 있었다.

물론 부시와 같은 꿈을 꾸고 있진 않았다.

나는 전부를 삼키고 싶었고, 부시는 허명을 떨치고 싶은 것일테니까.

< 제 23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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