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35화. >
오사마 빈 라덴이 한가롭게 티 타임을 즐기며 TV채널을 돌리다 후진다오의 성명문을 확인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고, 멍청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남들을 조종하고 부하들을 세뇌시켰다.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과거에는 무슬림이라 불러도 되었겠지만, 오랫동안 한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정통성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 종교 자체가 억압받는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나 그런 그들 마저 어느새 그럴듯한 무슬림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그는 제법 똑똑한 사람이었다.
쿵!
“곧 총공세가 이어질 것이다!”
비명처럼 내지른 빈 라덴의 말에, 그의 부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여태껏 중국의 공안들은 매우 소극적인 반응으로만 대응해왔다.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 다소 무리한 작전을 요구할 때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었던 원동력 또한 그것에 있었다.
공안들은 마치 지키는 척만 하고 길을 열어주듯 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더욱 세력이 커지길 바란다는 듯 말이다.
“어째서 그렇습니다?”
“후진다오가 미국을 들먹였어, 이렇게 되면 미군이든, 공안이든 둘 중 하나는 행동을 보일 수 밖에 없다.”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던 부하들이 때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그는 말을 잇는다.
“모두 모여, 성전을 알린다.”
““예!””
잠시 후.
오사마 빈 라덴이 소처럼 우두커니 진격에 진격을 거듭해 점령한 세번째 도시, 허텐지구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광장 중앙에 서 있는 마오쩌둥의 동상이 무색할 만큼, 광장 중앙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복색은 중국인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모두가 하나같이 이슬람 문화권에서나 볼 수 있는 복색들을 하고 있었다. 게 중에 중동 아랍권의 생김새를 가진 인문들은 많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유전자에도 동양인의 유전자들이 깊이 침투 했기 때문인 모양.
오사마 빈 라덴은 광장을 가득 매운 약 삼천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크게 외쳤다.
“이제 성전의 때가 도래했다!”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집중하는 사람들.
빈 라덴의 말은 어느새 중국어로 통역돼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전달 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어느새 환호를 내뱉으며 결의를 다지는 사람들.
별로 입에 담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직접 당해본 오사마 빈라덴은 입을 열어 외쳤다.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중국!”
모두가 하나가 되어 외치는 중국.
오사마 빈 라덴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자신이 처음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와 카스지구를 점령했던 순간, 되돌릴 수 없던 일의 시작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었다.
이제는 미국도 중국도 그를 찾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터, 그러나 미국보다 중국보다 무서운 놈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수사기관에게 잡혀간 전적도 있던 빈 라덴, 그런 곳에서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그가, SKY PMC에게 잡혀갔을때는 전혀 아니었다.
여타 수사기관들과 달리 인도적인 차원, 혹은 인권문제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들은 이세상 그 어떤 단체보다 오사마 빈 라덴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뇌시켰던 내용, ‘중국 공격’만이 남아있던 오사마 빈 라덴, 시간이 흐르며 그 암시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이제와 발을 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가자! 고비 사막을 넘어 본토로!”
““본토로!””
후진다오가 미국을 건드린 상황, 눈치가 빠른 빈 라덴은 이제 단체로 움직이는 것은 지양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단상에서 내려온 오사마 빈 라덴이 부하에게 말했다.
“무기를 지급해.”
“현재 친위대가 가진 무장도 부실한 상태입니다.”
세 개의 도시를 침략 점령하며 새로운 신자들을 모으고 그 신자들에게도 일부의 무기를 전달한 상황 무기가 많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폭탄 위주로 지급해, 소총과 분대화기는 친위대만.”
“예!”
“산개 시켜서 침투하라고 해, 자하드의 뜻이다.”
잠시 망설이던 부하가 물었다.
“어디까지 가라고 합니까?”
“가능한 베이징과 가까운 곳.”
“예!”
***
벌컥, 주석실의 문이 열리고 장저민의 보좌관이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와 경례를 올린다.
“뭐야?”
어젯밤 군부의 인물들과 향후 계획을 읊으며 술을 마시느라 속이 쓰린 그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알 카에다 세력들이 여기저기 산개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뭐?”
“후진다오의 성명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미친놈들이 눈치를 챘다?”
“예.”
“제기랄, 서둘러 경계단계를 올리라 그래, 한 놈도 본토에 발을 디밀지 못하도록, 중원은 반드시 지켜야 해.”
“예!
막 몸을 돌리는 보좌관을 불러세우는 장저민.
“신장위구르 공안들 바로 출동시켜, 아직 남아 있는 놈들이라도 싹을 말려!”
“명령 받잡습니다!”
보좌관이 서둘러 주석실을 벗어나고, 장저민은 물끄러미 고위 지도부 인사들의 단체 사진을 바라보았다.
“제기랄 멍청한 놈.”
그의 시선은 후진다오의 젊은 얼굴에 닿아 있다 이내 시선을 돌려 전화기를 집는다.
-여보세요.
한국어는 알지 못하지만, 저 단어의 뜻 만큼은 알고 있는지 장저민이 방금 막 잠에서 깬 목소리를 낸 상대에게 말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오, 천 회장.”
천우진이 있는 곳은 미국, 북경과의 시차가 있으니 그곳은 지금 새벽녘이었다.
-요즘 국가 정상들은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는게 유행인가봅니다.
천우진의 삐딱한 목소리에 장저민이 눈썹을 꿈틀거리지만 분을 삭혔다.
“그대가 한 말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소.”
-내가 한 말이요?
“그렇소, 저번에 분명··· 후진다오의 약점을 쥐고 있다 들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천우진의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필요 없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매우 불쾌해 하시며.
“후우···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멍청한 놈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소.”
-알 카에다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마치 중국의 상황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말에 장저민은 말을 고르다 이내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소, 눈치를 챘는지 놈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소,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단체가 아닌 소규모 단위로.”
-미국에게 했던 것 처럼, 소규모 산발적 테러라도 자행할 모양이네요.
“나도 그렇게 판단했소.”
-오우야, 엄청 귀찮겠다. 그런데 주석의 입장에서는 좋은일 아닙니까? 산발적 테러가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공안의 필요성은 더 올라갈테니.
장저민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오, 인민들은 공안에게 의지하겠지··· 그러나 미국에서 있었던 911과 같은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난다면···”
-아아, 무능한 천자라는 소리를 듣겠군요.
장저민이 시뻘게진 얼굴로 버럭 소리라도 지를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대로 중국의 정상 자리에는 ‘천자’라는 하늘에서 내린 사람만이 오를 수 있다고들 얘기했다. 그리하여 중원 땅에는 한족들이 자리 잡았고, 기타 작은 소수족들을 탄압하면서도 국가가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왜?
천자가 다스리는 땅이니까, 천자와 같은 핏줄을 가진 한족이니까.
의외로 과거의 오래된 이 문화는 사람들에게 잘 먹혔다. 북한도 그렇지만 중국 역시, 주석이라는 존재는 ‘신격화’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무능한 천자’혹은 ‘천자가 아니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급격하게 힘을 잃어갈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만큼 산발적으로 흩어진 알 카에다 놈들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 미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전적까지 있으니까.
“해서, 나는 사사건건 걸림돌이 될 후진다오를 쳐 내고 싶소.”
-가격이 좀 올랐습니다. 상한가를 맞아버려서.
“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말을 끝내진 못한 장저민.
그때와 지금, 후진다오의 약점의 가치가 달라졌다는 천우진의 말.
자신의 과오를 누굴 탓 할 수 있을까? 장저민 역시 국가 정상의 자리에 고스톱을 쳐서 따낸 것은 아닌지 빠르게 분노를 삭히고는 물었다.
“얼마가 되었소.”
-글쎄요, 지금 막 일어난 상태라 뭘 받아야 할지 모르겠네··· 잠에서 깨면 얘기 합시다.
장저민이 이를 짓 씹었다.
-아, 그리고 미국이랑 만나는 날짜는 잡았습니다. 그때 마저 얘기하는 것으로 하죠?
“그러면 너무 늦소!”
-에헤이, 후진다오가 미국에게 기웃거렸다는 것 까지 세트로 나가면 한방에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놈을 따르는 놈들까지 한방에 엮을수도 있고.
“가능한 빠른 날이었으면 좋겠군.”
-안 그래도 그렇습니다. 4일 뒤, 한국.
“4일이라···”
-그 안에 알 카에다 놈들도 일을 벌이진 못할 겁니다. 산개해서 흩어지면 이동수단이 많이 제한될테니까, 어쨌든 놈들의 본거지는 사막 아닙니까?
“후우··· 무슨뜻인지 알겠소, 대한민국이라.”
-그럼 그때 뵙죠.
먼저 끊어버린 천우진.
장저민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이내 수화기로 전화기 본채를 ‘쾅쾅’ 내려 치더니 박살내버린다.
***
할아버지가 도착하는 날, 마침 루시와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역시 병원을 떠나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두 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리자, 그 곳에는 집 안의 온 사용인들과 함께 대비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를 필두로 모든 가족이 나와 있었다.
“레드카펫만 깔려 있으면 무슨 왕 행차 하는 것 같겠네.”
내 농담에 루시가 푹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더니 도도도 달려가 대비 할아버지가 아닌 우리 할아버지에게 안기는 그녀.
“천~”
누가 보면 우리 할아버지 손녀라고 해도 믿을만한 광경이었다.
할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루시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고생했느니라 루시.”
“아니에요, 젠틀 천이 더 고생이지, 다친 곳은 괜찮으신건가요?”
겉 보기에는 멀쩡 하지만 안쪽에 붕대가 감겨 있음을 느낄 수 있기에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의 어깨를 바라보는 루시.
“하하, 이 할애비 아직 튼튼하니 걱정하지 말거라.”
대비 할아버지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이거 원, 총 안 맞은 할애비는 서러워서··· 수, 자네 어디서 총 없나? 나도 좀 덜 아픈곳으로 한 방 부탁하네.”
그의 농담에 장모 록산나 여사가 웃더니 말했다.
“아이들 추워요, 얼른 안으로 들어가셔요.”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태양이와 별이기에 누구도 록산나 여사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다친 팔로도 얼른 내게 다가와 양 팔을 뻗는다.
“괜찮으시겠어요?”
“이 놈아, 끄떡 없다. 저 어린 것들이 얼마나 무겁다고.”
“에이, 무리하시는 것 같은데.”
거의 내 품에서 아이들을 빼앗듯 양 손으로 들어올린 할아버지.
아이를 안아본 경험이 많은지, 할아버지의 자세는 자연스러웠다. 아이들도 할아버지 품이 나쁘지 않은지 울며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오냐, 그래. 내가 너희들의 증조 할애비다. 나를 알아보고 울지도 않는구나.”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진짜 괜찮으신 모양이다. 어깨 관통상이라길래 걱정했는데 말이다.
“우르르르 까꿍! 우르르르르 까꿍!”
“어우, 할아버지 아직 그런거 하면 안된데요, 너무 어려서 뇌 흔들린다고.”
“크음, 그러냐?”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 아래로 흔들다 내 말에 얼른 멈추고는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우희가 피식 웃으며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다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할아버지!”
“음? 왜 그러냐, 우리 손녀.”
“어, 어깨.”
“음?”
어느새 할아버지의 어깨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 음, 분명히 안 아팠는데?”
태양이와 별이는 우리 할아버지에게 고통도 잊게 만들어주는 그런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어우, 나이좀 생각해요 거 좀.”
나는 얼른 할아버지 품에서 아이들을 빼앗아 안아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조심하셨어야죠! 하여튼······”
뒤쪽에서 우희의 폭풍 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그, 그래. 치료부터 해야겠구나.”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일을 만드시지 않았으면······”
나는 구멍이 뚫릴것만 같은 뒤통수를 무시하고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겨 저택 내부로 움직였다.
우희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잔소리를 잘하나 하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 제 23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