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34화. >
밀문이 막혔는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대통령.
-가능하긴 한 겁니까?
“글쎄요, 그건 나중의 문제죠?”
과거 대한민국에서 여러번 간첩들의 대통령 암살 시도가 있었다. 번번히 북한은 실패했고, 거기에 분노했던 독재 시절 대통령은 북파공작원이라는 허명으로 많은 청년들을 지독한 훈련의 고통에 몰아 넣었다.
물론, 단 한차례도 시도해보지 못한 대한민국.
때마다 어떤 이벤트가 발생했고, 해당 이벤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논란이 없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국제정세에서 세계 열강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대한민국의 위치에서는 그럴 수 밖에.
-··· 나는 모르는 일로 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어떠한 보고도 듣지 않는 것으로 하지요, 나머지는 천 회장께서 알아서 하시리라 믿습니다.
허락이었다.
사실, 대통령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곧 있으면 대통령이 될 할아버지에 의해 언제든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올해까지는 현 대통령의 임기이기 때문에 얘기를 꺼낸 것일 뿐이었다.
“천가는 원한을 잊지 않아서 여쭤본겁니다.”
-원한을 잊지 않는다라··· 그럼 내 부탁도 천 회장께는 실례가 되는 부탁이었겠군요.
“겉으로 보여지는 허례허식이야 뭐, 어쨌든 대통령님의 뜻 잘 이해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잘 말씀드리죠.”
-예, 고맙습니다. 천혁수 후보자는 당분간 두문불출 하시겠군요?
“그래야겠죠? 일단은 총상을 입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 발표할 성명문에서는 추가 공격에 대한 이슈는 아예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시죠.”
다시 루시가 잠들어 있는 병실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대통령과 대화를 하는 사이 잠이 깨버린 나는 옥상정원으로 향했다.
호석은 지금쯤 늦둥이를 만들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있기에 내 곁을 지키는 대원은 군말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시가 가지고 있나요?”
내 질문에 대원이 품에서 내가 즐기는 시가를 내민다. 아마도 호석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은 모양.
“후우.”
대원과 마땅히 할 대화가 없으니 잠시 망설이다 전화기를 꺼냈다.
-오냐. 야 밤에 자지 않고.
“대통령한테 전화가 와 가지고요.”
-그래? 뭐 때문에?
“성명문을 발표 할건데, 할아버지 테러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양이더라고요.
-아아, 북한의 도발에 참지 않겠다는 내 말때문이구나.
“그런 것 같네요.”
-그래서, 네 놈을 시켜 나를 설득하라 하더냐?
역시 돗자리를 깔아도 굶어죽지 않을 우리 할아버지.
“크큭, 정답입니다.”
-애초에 추가 공격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김씨 일가 놈이 진짜 무슨 짓을 저지를 지 알 수 없으니까.
“PMC 정보부에게 들은 말로는 북한군은 대피하지 않았다던데요?”
-쯧쯧, 멍청한 김씨 놈 때문에 애꿎은 젊은피가 흐른게지.
“우리가 진짜 공격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여태껏 그래 왔으니까.
공감되는 얘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물었다.
“TV보고 계신가요?”
-그래, 보고 있다.
“성명문 발표 하고 있나요?”
-이제 하려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게요?”
-네 놈 전용기좀 쓸까 한다.
“아, 예. 언제든지요.”
-오늘 밤에는 출발 할테니 그리 알거라.
“알겠습니다. 루시랑 우희가 좋아하겠네요.”
-쯧··· 총상을 보고 난리를 치겠구나.
“덕분에 할아버지 엄살은 못 부리시겠네요.”
-이 놈아 진짜 아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길래 무슨 그런 쇼까지 하고 그러세요? 그거 아니어도 충분히 대통령 할 수 있는데.”
-동네방네 튼튼하다고 자랑하려고 그랬다 이놈아.
“기절 퍼포먼스라니, 이제 할아버지도 정치인 다 되셨네요.”
-잔소리는 그만 하거라, 우희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으니.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전경련 얘기는 들으셨나요?”
-철웅이에게 대충 들었다. 놈들이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더군.
“대통령이 정보를 주더라고요? 할아버지 설득시키는 조건으로.”
-하하하, 역시 공짜로 일 하지는 않는구나.
“그럼요, 제 시간은 다 돈인데요.”
-그래, 무슨 헛꿈을 꾸고 있다더냐?
“여당쪽 인사를 밀어붙일 모양이에요, 할아버지 테러 사건을 묻힐 만큼 자극적인 뉴스들을 뽑아내면서.”
할아버지는 그럼 그렇지 하는 반응을 보인다.
-쯧쯧, 정치인이나 기업하는 놈들이나, 그 구닥다리 방식은 버리질 않는구나.
“그만큼 증명된 방법이란 얘기겠죠?
-여차하면, 여야 통합까지 하겠구나.
“그래야하지 않겠어요? 둘이 합치는게 아니라면 할아버지 지지율 따라잡기 힘들테니까.”
-복잡한 정치 얘기는 그만 하자구나, 이 할애비가 알아서 할테니.
“옙, 도움 필요하면 말씀하시고요.”
-오냐, 알았니라.
***
김일정과 당 지도부 인사들이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의 성명문 발표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떠한 도발에도 참지 않으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해상국경 문제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 말씀드립니다. 도의적이고 신사적인 태도로 무던히 얘기했으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는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이제는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김일정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말했다.
“저 간나 새끼레, 뭐라고 하는 거이네?”
과연 그가 한국말을 못 알아듣고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자신을 업신 여기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불만이라는 의중을 드러내는 것.
지도부 인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김일정의 불편한 심기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기를 바랐다.
“동무들, 혓바닥이 잘렸간? 왜 말이 없네? 남조선 아새끼들이 포격했다는 우리 인민군들 피해상황 읊어보라.”
다들 눈만 데구르르 돌리고 있고 눈치만 살폈다.
그들이 피해상황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피해상황을 얘기했다가 김일정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보위부장 동무가 없으니까네, 이렇게 조용하구만 기래. 우리 공화국의 미래가 아주 조용하갔어.”
잔뜩 비꼬는 김일정.
그의 눈이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가고.
-해서,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정중한 사과와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리란 약속들 듣고자 하므로···
“저 간나 새끼가 지금 나보고 사과를 하라고 하는구만 기래? 동무들 생각은 어떻지?”
인민무력부 부장 리인구가 말했다.
“당장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야카지 않캈습네까?”
“뭐이 어드레?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자?”
“그렇습네다. 감히 최고 사령관 동무의 사과라니요, 가당치도 않은 일입네다.”
“무력부장 동무.”
“예, 말씀하시라요 최고사령관 동무.”
“집에다 대가리를 놓고 왔네?”
김일정의 공격적인 언사에 흠칫 놀란 표정을 짓는 리인구.
“지금 우리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믄, 미국 놈들이 가만 있을 것 같네? 이미 명분은 대한민국에 있다 이기야.”
“역사상 단 한번도 우리는 사과를 하지 않았습네다. 최고사령관 동무의 뜻이 공화국의 뜻이고, 최고사령관 동무의 말이 공화국의 말이 아이겠습니까?”
이번에는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김일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연평도 인근에서, 남조선 아새끼들 배 박살낸 놈이 뉘기지?”
“인민무력부 소속 해상군입네다.”
“어쨌든 이번일로 제재를 가할 것 같으니, 우리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갔네?”
리인구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 말씀은···”
“기래, 그 책임자 놈에게 사과하라 전하라, 기리고 정상회담 일정 잡아 보라, 내가 직접 움딕여야겠어.”
“명 받잡겠습니다.”
***
대한민국 대통령이 성명문을 발표하던 시각.
후진다오 역시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섰다.
그 역시 당 최고 인사로서 성명문을 발표하는 중이었다.
사마군이 써준 대본을 쭈욱 읽어가기 시작하는 후진다오.
“우리 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에 침략해 테러를 일삶는 무뢰배들은 모두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패잔병들이며, 국제적 수배자 명단에 오른 알 카에다 세력으로 판별되었다. 전쟁이후 후조치가 미흡했던 미군 때문에 우리의 국경을 넘어온 무뢰배들을 미국은 직접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금 자신들이 듣고 있는 말이 맞나 싶은 표정들을 짓는다.
“또한, 무뢰배를 처리하는 것만큼 중요한것은, 미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 카에다 세력에 의해 숨져간 공안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후진다오의 성명 발표에 장저민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악다구니를 썼다.
“저런 멍청한 놈이 지금!”
“고정하십시오 각하!”
“지금 고정하게 생겼는가! 저 멍청한놈이 우리땅에 미군은 들여오자 얘기하고 있음이야!”
“우선 군부부터 소집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제기랄··· 군부의 필요성을 인민들이 느끼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후진다오 저 놈이 악수를 두는 군.”
“당에서도 제법 반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고정하시지요.”
장저민이 화가난 듯 미지근한 차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내려놓았다.
“알 카에다 놈들 쓸어버리는데 최대한 지원해줄테니, 미국놈들이 얼쩡 거리기 전에 처리하자고 해.”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막 다른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따르르릉, 따르르릉.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보좌관은 심기가 불편한 장저민을 대신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각하, SKY그룹의 천우진 회장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장저민이 전화를 건네 받았다.
“전화 받았소.”
-오랜만입니다. 주석.
“그러게 오랜만이외다. 지금 내가 몹시 바쁜데, 급한 일이 아니라면 다음을 기약하고 싶군.”
-후진다오가 사고라도 친 모양이군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장저민.
그가 알기로 천우진은 지금 미국에 있었고, 미국은 현재 새벽시간이기 때문에 후진다오의 성명따위는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천우진이 미국 외교부의 고위인사도 아니잖은가.
“어떻게 아셨소?”
-후진다오에게 몇 번 전화가 오더군요, 갖잖은 협박이었습니다.
“하, 놈이 그대에게도 약을 치려 했군.”
-저번에 미국과의 만남을 얘기했던 것 기억 하십니까?
“그렇소, 하고 있소.”
-후진다오가 더 설치기 전에 합의를 보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흐음.”
-대한민국도 이제 조용해지는 찰나니, 어떻습니까?
“그리하지.”
-혹 후진다오 놈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내게 도움을 청하시지요, 꽤 괜찮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장저민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그의 심기가 어지럽혀지는 얘기었기 때문.
“그럴일은 없을 것이외다.”
-그렇다면야.
“날짜는 통보해주길 바라겠소, 말했지만 바빠서 이만 끊어야겠군.”
-그러시죠, 근 시일내 연락하겠습니다.
“알았소.”
전화를 끊은 장저민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확실히 천우진이 말했던 ‘무기’라는 것이 매력적으로는 느껴졌다. 차마 자존심상 그에게 그것을 달라 얘기하기는 싫지만, 빼앗아 오고 싶다는 욕심에 입맛을 다신 것이었다.
“SKY감시 더 철저하게 하고, 천우진 회장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말라 전해.”
“예, 각하!”
“신장위구르 공안부, 무력부 불러. 직접 명하지.”
“예!”
< 제 23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