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31화 (231/458)

< 제 231화. >

다리를 절뚝이며 아산댁의 부축을 받아 카메라 앞에 선 천혁수. 저 멀리 건물 안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인물들이 손을 저으며 만류하지만 천혁수는 당당히 언론사들이 내미는 마이크 앞에 몸을 세웠다.

“천혁수 후보자님! 지금 상처가 매우 심각해 보이는데 무슨일입니까?”

“차량에 저 흔적들은 설마 총탄 자국이 맞습니까?”

천혁수는 흡족하게 입꼬리가 들어 올려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참혹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기운이 쇄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민여러분, 제가 강경하게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대응을 부르짖었더니 이 놈을 무던히도 죽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놀란 언론사의 기자들이 눈을 부릅뜨며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낸다.

“그 말씀은 천혁수 후보자님을 공격한 인물이 북한측의 인물이라는 뜻입니까?”

“혹시 간첩의 공격을 받은 것입니까?”

“말씀해주십시오!”

천혁수는 손을 들어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의 입을 막은 뒤. 슬쩍 고개를 돌려 백철웅을 바라보다 말했다.

“여기 훌륭한 경호원들이 이 비루한 몸뚱이를 지켜준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 경호원들이 제압한 테러범들을 경찰에게 인계한 상황이므로, 추후 조사과정을 거쳐 더욱 명백한 배후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한 명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만약 북한의 암살 시도가 분명하다면, 그래도 지금과 같이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하여 강경대응을 고수하실 생각입니까?”

천혁수는 다 죽어가는 몰골임에도 두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를 응시하더니 말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념은 지켜야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자가 아닙니까! 이런 제가 목숨이 위태롭다 하여 신념을 저버린다면, 어찌 국민들께서 저를 믿고 의지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만은 국군장병들이 언제 날아올지 모를 총탄이 두렵지만,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숨 죽이며 천혁수가 뱉는 말들을 기록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천혁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 역시, 이 비루한 목숨을 행여나 앗아갈 테러범들이 두려운 것은 매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기에 용기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천혁수 목숨이 다 하는 그 순간까지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의 굳센 의지는 두 눈을 통해 똑똑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 기자들이 여기 저기서 시끄럽게 중구난방 질문을 쏟아내고, 어느새 지휘소 건물에서 달려나온 인물들이 카메라를 등지며 천혁수의 곁에 나타났다.

대통령의 얼굴은 매우 좋지 않았다.

카메라가 있어 가까스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조차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습니까 천혁수 후보자.”

바로 앞에 있는 대통령에게 하는 말이지만 큰 목소리로 말하는 천혁수.

“대통령님, 부디 공격을 멈추지 말아주십시오, 한미연합사령관님, UN장군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북한에 대한 공격을 멈춘다면, 정말 그들에게 지는 것입니다. 한 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쉬운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예정된 공격을 반드시 개시해야 함이 옳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천혁수의 몸이 앞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철웅과 아산댁이 얼른 쓰러지는 천혁수의 몸을 부축했고, 카메라의 플래시는 요란하게 번쩍였다.

“후보자님 괜찮으십니까!”

“후보자님!”

“빨리 응급차 불러!”

“구조대 불러 구조대!”

순식간에 장내가 아비규환으로 번지고, 힘겹게 팔을 들어 올리는 천혁수.

대통령은 저도 모르게 천혁수의 손을 맞잡았다.

“부디··· 공격을···”

대통령과 맞잡은 손에 힘이 풀리고 천혁수의 고개가 완전히 뒤로 꺾였다. 철웅이 애써서 천혁수를 커다란 벤츠 스프린터 차량에 태우고는 차량을 출발시킨다.

기자들은 천혁수가 떠나는 길까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다 그가 사라지자 다시 타겟을 대통령에게 옮겨간다.

“대통령님! 천혁수 후보자가 계속해서 강경한 태도를 취했는데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리 한국, 이대로 북한을 공격하는게 맞습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말씀해주십시오!”

대통령은 슬쩍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곁에 서 있는 한미연합사령관과 UN군 장군을 바라본다.

프랑스 출신인 UN군 장군이 자그마하게 불어로 속삭였다.

“제기랄, 외통수군··· 이봐 가브리엘, 우리 UN연합군은 한국의 북한 타격에 대하여 어떠한 불만도 제기하지 않을꺼라고 전해.”

통역사는 ‘예’하고 대답하고는 대통령의 통역사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이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한미연합군 사령관 잭 니콜슨은 대통령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우리 미군 역시, 최선을 다해 한국을 지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기자들에게 시선을 돌린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외쳤다.

“예정된 시간, 예정된 장소에 우리는 포격을 개시 할 것임을 알립니다.”

***

오후 23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

막 루시와 함께 앞으로에 대한 수다를 떠는 와중에 병실의 문이 드르륵 열리며 다급하게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오빠!”

나와 루시는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세웠다.

“우희야 이 시간에 갑자기 왜?”

덥석 내 품에 안긴 우희가 울먹이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음? 총에 맞으신거?”

우희가 화들짝 놀라며 날 똑바로 바라보고는 묻는다.

“오빠는 알고 있었어? 어떻게?”

순간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루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와 우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말했다.

“총? 할아버지? 설마 젠틀 천이 총에 맞았어 우진?”

매우 놀란 모습을 보이는 여인 둘.

산 넘어 산이었다.

난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게 그러니까, 그···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 그런건데, 어··· 한 마디로 쇼랄까? 표심을 얻기 위한? 뭐 그런거야, 우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니고.”

루시는 그렇냐는 듯 우희에게 고개를 돌리고, 우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야 그게! 내가 똑똑히 봤다고, 할아버지 몸에서 정말 피가 흐르고 있었어!”

뭐라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어깨랑 다리에 한발씩 맞으셨는데 그 총을 쏜 사람은 적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좀 아닌 것 같고, ‘가짜 피야’라고 말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싶은데, 표심을 위해 자신의 몸에 총알 자국을 만든다는게 보통 사람들이라면 가능할까 싶은 행동이라 도저히 여기 있는 두명의 여인들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품에서 전화를 꺼내며 말했다.

“할아버지랑 전화 해볼래 우희야?”

다급한 와중에 경황이 없어 그 생각은 못했는지 우희가 아차 싶은 표정과 함께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빠르게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우희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

천혁수가 편안히 누워 있는 차안, 그의 품이 요란하게 떨리니 짜증이 솟구쳤다. 상처가 흔들리며 알싸한 통증을 야기했기 때문.

품에 손을 넣고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휴대폰을 꺼내니 손자놈의 번호가 떠오른다.

“왜?”

-할아버지!

기대하지도 않았던 손녀딸의 목소리에 천혁수는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우리 우희구나.”

-괜찮으세요? 분명 쓰러지시는 걸 봤는데.

“아···”

순간 천혁수는 난감했다.

그가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에 봉착한 것.

-오빠는 그게 정치적 퍼포먼스라는데 정말 다치신거 아닌거에요?

“음, 그게 다치긴 다쳤는데,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고.”

-정말 총에 맞았다는 거에요?

“어, 그게 맞긴 맞았는데, 엄청 심하게 맞은 건 아니고.”

-무슨 총에 심하게 맞고 안 맞고가 있어요!

“어, 그렇구나.”

-대통령 그런거 안 하면 되지 왜 총까지 맞고 그러세요!

천혁수는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손녀딸의 예쁜 마음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하하, 이렇게 우희가 할애비 생각해주라고 그랬나보구나.”

-무슨!

“어쨌든 할애비는 괜찮으니까 너무 심려치 말거라, 별일 아니야.”

-후우··· 정말이지 오빠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오냐오냐, 할애비가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다치지 않고 다니마.”

-휴우··· 하여튼 쓰러진 건 엄살이란 말씀이시죠?

“그래, 걱정할 것 없다.”

-알았어요, 조만간 봬요!

“오냐, 이번일만 끝나면 우리 손녀딸 얼굴 보러 미국으로 갈테니 기다리거라.”

-네!

“이만 끊으마.”

-할아버지!

“오냐.”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헤벌쭉 웃는 천혁수.

“오냐, 우리 손녀딸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사는것까지 보고 가야지.”

-저 시집 안 가고 평생 할아버지랑 살 건데요?

“하하하, 그것도 좋고!”

***

세상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전경련의 회장들은 세상사에 관심 없다는 듯 한가롭게 요정에 모여 회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희희락락 한 모습으로 담소를 이어가는 그들, 그러나 별안간 열리는 문에 그들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그리로 돌아갔다.

각 회장들의 비서들이 빠르게 자신들의 회장에게 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알리고.

KS그룹 최태수 회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 TV틀어!”

뉴스 속보가 떠오르고 화면속 천혁수의 핏기 없는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이어 천혁수의 팔과 다리를 비추는 카메라.

“북한 놈들이 공격했다는게 사실일까요?”

조양구 회장의 말에 최태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은 모를 일이지요.”

이어서 천혁수가 총상을 입은 상태로 기자들 앞에서 하는 인터뷰를 듣고 있던 최태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제기랄, 여론이 다시 저쪽으로 많이 움직이겠어.”

“으음···”

마지막 대통령의 손을 꼭 잡은 천혁수의 대사가 압권이었다.

-부디··· 공격을···

이어 꼴까닥 뒤로 넘어가는 고개와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되는 자리. 이내 UN군 장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무엇이라 얘기하고 한미 연합사령관 역시 대통령에게 무엇을 얘기하자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공격을 재차 강조한다.

“진짜 전쟁이라도 나는 것 아닌가 싶구만.”

최태수의 혼잣말에 조양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김가 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제 놈이 가진 권력의 단 맛을 알텐데.”

전경련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조양구는 입맛을 다시며 술잔을 기울이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여론이 문제입니다. 이 정도 일이라면, 한달은 넘게 우려먹겠소, 천혁수 그 노인네가 아주 작정을 하고 쇼를 하는 군.”

회장들 중 한 명이 불쑥 말했다.

“그렇지만, 총상과 탄흔은 진짜 같이 보였습니다만?”

조양구가 ‘쯧쯧’하고 혀를차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처럼 속아서 천혁수를 칭송할 멍청한 국민들이 있을거란 말이야, 내 말은.”

“아···”

“쯧쯧, 상식적으로 생각하시게 상식적으로. 차량의 겉면이나 유리창엔 탄흔 만 있지 관통이나 깨져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총을 맞아? 그것도 종아리? 어깨? 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흘리는 피는 진짜 같이 보였습니다만.”

“진짜겠지, 자해를 했거나.”

최태수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조양구의 의견에 동조했다.

“지금은 천혁수가 총을 맞았네 아니네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닌것 같군요.”

조양구가 최태수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혹, 회장님께서는 묘수라도 생각한 것이 있으십니까?”

최태수가 묘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통 국회의원 놈들이나 우리들이, 무슨 큰일이 있을 때, 어떻게 여론을 만집니까?”

“언론사에 자극적인 뉴스들을 내보내게 만들죠, 가령 연예인 섹스 스캔들이라거나, 마약 스캔들과 같은 것들을요.”

“때로는 지독한 범죄를 저지른 놈들을 이용할 때도 있지요.”

조양구가 ‘아아!’하고 크게 감탄하며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몇몇 다른 회장들도 제법 밝은 얼굴로 히죽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뿐,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최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혁수의 총상, 공격, 테러, 간첩 따위의 키워드가 지워지도록, 더 시끄러운 뭔가를 계속 터트려야 겠습니다. 포커스가 그에게서 옮겨가 이왕이면 우리가 밀고 있는 후보자에게 향하도록.”

조양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두 후보자에게 이목이 쏠리게 할 사건들이 필요하겠군요.”

최태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자, 다들 꽁꽁 아껴둔 자극적인 뉴스 소재들좀 던져 봅시다. 천혁수가 대통령이 되면 우린 다 죽는거 매 한가지 아닙니까?”

< 제 23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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