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29화 (229/458)

< 제 229화. >

오랜만에 듣는 장저민의 목소리는 한결 톤이 업 되어 있었다.

-그대와 대화는 정말 오랜만이로군!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허허, 그저 일이 잘 풀려서이지.

“알 카에다 놈들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줄 알았더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군요?”

대충은 알 것도 같았다.

군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는 장저민.

옛날로 치자면, 장저민은 무인이고, 후진다오는 문인이었다. 옛 조선과 똑같이 무를 천대하고 문을 숭상하려는게 후진다오라면 장저민은 문보다 무를 더 숭상한달까?

-그런 날파리 같은 놈들이 감히 내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중공군이 들고 일어선다면야 지금 설치고 있는 알 카에다 놈들은 순식간에 다시 사막 안으로, 어쩌면 아프간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산발적인 테러야 다른 이야기지만.

“미국의 대통령 부시가 주석과 만남을 요청하더군요.”

-음? 그걸 그대가 전달하는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만나자는 요청이군.

“맞습니다. 중국 당내의 지도부에서 전화가 왔던 모양입니다. 내용은 대충 회유와 협박.”

-뭣?

금시초문이라는 장저민의 반응.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더 격하게 반응하며 어서 만나자고 성격 급한 장저민이 먼저 그 말을 꺼냈으면 싶었다.

-당내 지도부라니, 그 당이 우리당인가?

“맞습니다.”

-···우선 나는 아니니··· 후진다오 그 망할놈인가?

“정확한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알고 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날짜는 언제인가?

이제 내 아이들도, 그리고 루시도 슬슬 병원이 필요없는 시기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장소는 한국으로 하고, 날짜는 추후에 통보하죠.”

-흐음, 확실히 지금 한국은 바쁘지. 뭣 하면 내가 김일정 수령에게 얘기를 전해줄까?

“하하,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그런 친절은 사양하죠.”

-그렇지··· 자네는 정치인이 아니지, 어쨌든 알았네 날짜가 확정되면 얘기해주시게.

“예, 그렇게 하죠.”

-날파리가 미제 승냥이와 붙어먹겠다 하니, 바쁘게 움직여야겠군, 이만 끊지.

“그러죠.”

전화를 끊고 호석을 바라보았다.

“루시 퇴원이 언제죠?”

“3일뒤부터 가능하다 하였으나, 록펠러 어르신의 요청으로 2일정도 더 머무를 예정입니다.”

“5일, 알겠습니다.”

“예.”

***

대한민국 정치계의 꼭대기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인천으로 모이고 있는 때.

전경련의 일원들은 인천이 아닌 서울의 고급 요정에서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전쟁’에 대한 우려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지금 북한 놈들때문에 천혁수 그 인간에게 민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조 회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지껏 그렇게 강력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런 거 아닙니까?”

“왜 없습니까? 그 옛날 박통도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았습니까?”

“강력하게 대응했지만 그건 뒤에서였지, 이번에는 대놓고 하고 있지 않소. 그러니 보여주기로 딱인 것이지.”

조 회장이 ‘크음’하며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KS그룹의 최 회장을 보며 말했다.

“이제는 정말, 여인지 야인지 결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질문은 최 회장에게 했으나 장내 모두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는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최 회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여당의 후보가 어떨까 싶소.”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내 고개를 주억거린다.

조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흐음, 평소 성향으로는 야당의 인물을 추천하시리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군요.”

최태수 회장이 피식 웃으며 차를 홀짝이곤 말했다.

“야당의 후보는 노회한 정치인이지. 컨트롤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오, 반면 여당의 후보는 정치계에 떠오르기 시작한게 얼마 되지 않소. 게다가 사람을 좋아해 잔 실수가 많은 사람이지.”

모두가 ‘아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여당이든 야당이든, 우리 돈 받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놈들은 없소, 우리는 그저 고르면 될 일이지. 그리고 이왕이면 컨트롤하기 쉽게 실수가 많은 인물이 좋겠소.”

“뇌물을 받으려 하겠소? 그 인물이?”

조 회장의 딴지에 최태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상대가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그가 청렴해서가 아니라. 뇌물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시오, 0을 하나 더 붙여서 다시 줘보고, 그래도 안 받으면 다시 0을 하나 더 붙여서 쥐어주면 될 일이지요.”

“허.”

“여기 계신 분들이 돈 없다고 징징 거릴 어린아이들은 아니니 그 부분은 걱정이 없소만.”

다시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여차하면, 그집 가족을 구워 삶아도 될 일이요, 자주 있는 일 아닙니까? 청렴한척 하는 공직자들의 가족을 구워 삶는 일.”

다시 한 번 전경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 역시 같은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는 모양.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맙시다. 이제 한 후보자를 골랐으니 어떻게 밀어줄지나 고민 해보지요.”

최태수 회장의 말에 조 회장이 사전에 생각해둔 것이 있는지 얼른 나서서 말한다.

“옛날 정치 깡패 이정재를 다들 기억하시오?”

모두가 안다는 표정들이었다.

“그 놈 처럼 천혁수 그 치를 정치깡패 쪽으로 포장하면 어떨까 싶소, 여기 계신 분들중에 천혁수 그 치의 돈을 써본 사람도 있지 않소?”

“암흑가의 더러운 민낯을 드러내게 만들자?”

조양구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한다.

“거기에 조금 살을 붙인다 하여, 문제가 있겠소? 그가 사채업자 출신인걸 알고 있는 국민들이 태반인데.”

“제법 세탁이 잘 된 편이지만 확실히···”

최태수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좋습니다. 우선 그 쪽으로 가닥을 잡지요.”

조양구가 묻는다.

“여, 야의 후보자들과는 최 회장님께서 직접 만나실 예정이신지?”

“예, 그래야죠 내가 대충 계획을 전달하겠습니다.”

“예, 믿고 있겠습니다.”

***

천혁수의 말과 아산댁의 웃음소리에 당황한 운전기사. 철웅은 운전기사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괜찮으니 돌아가. 뚫려 있는 도로가 하나는 있겠지.”

“예!”

차량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깔깔 거리고 웃던 아산댁과 천혁수, 백철웅의 얼굴은 이제 저승사자라도 된듯 차갑기 그지 없었다.

“이 도로는 뻥 뚫려서 차량 통행이 원할하구나.”

천혁수의 말에는 잔뜩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

“포격 시간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약 1시간이 남았습니다.”

“이곳에서 대통령에게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천혁수가 철웅에게 말했다.

“잠시 차를 한쪽으로 멈춰 세워.”

철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의 지시에 따라 명령을 내렸다. 모든 차량이 일시에 갓길에 멈추어 서자 천혁수는 아산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점심 좀 싸왔더냐?”

“네, 어르신.”

어느새 차가웠던 표정을 풀고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차량에서 내려 트렁크로 향했던 아산댁이 다시 돌아와 김밥과 샌드위치를 가져왔다.

“넉넉하게 가져왔으니 백 대표님과 기사님도 좀 드세요.”

얼떨결에 샌드위치를 받아든 백철웅과 운전기사.

“먹어,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천혁수는 그 말을 하고는 한입 크게 샌드위치를 입안에 넣는다.

“오, 역시 아산댁의 계란 샌드위치는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호호, 입에 맞으세요?”

“그럼, 언제나 자네 음식은 입에 맞아.”

“다행이에요 어르신.”

간단한 도시락이었기에 식사는 빠르게 끝이났다. 아산댁의 손이 얼마나 컸냐면, 천혁수의 차량 앞 뒤로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샌드위치 하나와 김밥 한줄이 나눠질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퍽 만족스러웠는지 천혁수는 희미한 웃음을 띄고는 창문을 살짝 열고는 품에서 시가를 꺼낸다.

“내가 나가서 태우자고하면 철웅이 네가 기겁 할 것 같으니, 이 정도 창문은 상관 없겠지?”

철웅은 바로 운전기사를 향해 뭐라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차에서 우르르 내린 검은 양복을 입은 SKY PMC의 직원들이 천혁수의 차량을 포위하더니 검은색 우산을 펼치며 차량을 가린다.

운전기사는 완전히 창문을 내리고, 철웅이 말했다.

“편하게 태우십시오, 백부님.”

“퍽이나 편하구나.”

천혁수의 농에 아산댁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

같은시각, 인천의 한 빌딩 2층.

“뭐이가? 어째 안 지나가니? 지나갈 시간이 한참 지났다 아이니?”

유난히 길어보이는 저격총을 들고 있는 사내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쌍안경을 들고 있는 사내.

“분명히 무전은 같이 듣지 않았네?”

“그런데 왜 안 오냐 이말이야.”

“나라고 알간? 고저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디.”

“하, 당장 전화 해봐야 하지 않니?”

고개를 끄덕인 쌍안경 사내가 품에서 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뭐이 어드래?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게 맞아? 맞다고? 하!”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은 쌍안경 사내.

저격총 사내가 견착을 풀고는 쌍안경 사내에게 말했다.

“네 얼굴이 왜 그러니?”

“차를 멈춰 세우고, 밥을 먹고 있다네?”

“하, 미친.”

“덕분에 꼼짝없이 30분은 더 기다려야겠다야··· 다시 출발 하면은, 전화를 주기로 했으니까니 우리도 잠시 쉬는게 맞는것 같구만 기래.”

“쯧, 그러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쌍안경 사내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나참, 기운이 빠져서는···”

둘은 헛웃음을 지으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

일과가 매일 반복되는 것은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정상인데, 어째서인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일 보는 우리 아들, 딸들의 얼굴은 볼때마다 새롭고 볼때마다 예쁘며 볼때마다 감동적이었다.

잘못 쥐기만 해도 바사삭 부서질것 같은 여리디 연한 아이들을 양 팔에 한명씩 안고는 젖을 물리는 루시를 보자면 어느새 볼따구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는 착각이 든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거라.”

나도 모르게 열심히 루시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루시의 팔이 아플까 싶어 루시의 팔을 위로 살짝 힘을 주어 밀어 주었다.

“다 먹었나?”

내 물음에 루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 것 같아 허니, 오늘도 태양이가 먼저 식사를 끝냈네?”

사내놈이라 성격이 급한지 격하게 젖을 빨고는 쉽게 물러서는 태양이, 나는 자연스럽게 태양이를 받아 들어서는 트름을 시키기 위해 등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까악, 꺄르륵.”

“어이구~ 내새끼 트름했저여~”

어느새 별이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안아 달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별이까지 안아들어 트름을 시키고는 간호사들에게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내주고는 수유실의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호석.

그의 표정으로 보건데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잔뜩 화가 났으나 차마 표현하지는 못하고, 애써 눌러 참는 듯 말하는 호석.

“백부님께서 총상을 입으셨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막 곁을 스쳐가던 간호사가 내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아이들을 더 단단히 안고는 황급히 걸음을 놀린다.

“허니, 무슨 일이야?”

“어, 별일 아니야. 먼저 올라갈래?”

“허니 표정이 너무 안 좋아.”

“괜찮아, 올라가 있어. 이따가 설명해줄게.”

“알았어.”

루시를 올려보내고, 나는 계속 보고하라는 눈으로 호석을 쳐다보았다.

“정확하게는 다리에 한 발, 어깨에 한 발 입니다.”

총상을 입은 위치를 듣고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그거네요.”

기분좋아 보이는 나의 표정에 의아한지 호석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예?”

나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하여간 우리 할아버지 정치인 다 됐다니까?”

영문을 모르겠는지 호석은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다.

“궁금하세요? 무슨 뜻인지?”

“예, 몹시 궁금합니다.”

< 제 22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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