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28화. >
한국이 포격을 경고한 시간은 오후 2시.
“여기 이렇게 있는게 맞는거가?”
“기라믄? 어찌 할래? 최고 사령관 동무가, 꼭 지키고 있으라 않간?”
포격이 예정되어 있는 군사시설의 병사들의 동요가 시시각각 커져가고 있었다. 이제 포격까지 약 7시간이 남은 시점이기 때문.
“보라, 최고 사령관 동무께서 우리들 걱뎡하디 말라고 고기 반찬 나오지 않네?”
“이게 우리가 먹는 마지막 괴기일수도 있는거 아이네?”
“동무래 정치범수용소라도 가고 싶네? 헛소리 하디 말고 밥이나 먹으라.”
“······”
“어차피 죽을 놈들이믄 이런 괴기 반찬 먹이는게 말은 되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된다 이 말이야.”
“후우··· 길티 하갔어.”
“기래, 묵자.”
***
같은시각 천혁수의 저택.
아침부터 천우진의 전화를 받은 천혁수는 수저를 잠시 내려 놓고 통화에 집중했다.
-이제 몇 시간 안 남았네요?
“그렇구나.”
-미국도 UN도 난리라고요?
“그래, 그나마 미국에서는 우호적인 반응이라 다행이다. 만약 미국에서조차 강력하게 반대 했다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겠지.”
-여당이 우려하는 것 만큼 국민들 반응이 나쁘진 않네요?
“오히려 응원하는 입장이지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쌓인게 많았던 모양이에요.
천혁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용건이나 말하거라, 말 돌리지 말고.”
-티 났어요?
“네 놈이 되도 않는 국민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쩝, 아니 7시간 남았는데 저번 암살 시도가 1차라면서요? 그럼 2차든 3차든 뭐가 있을거 아닙니까.
천혁수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네 놈이 이 할애비 걱정을 다 하고, 오늘 해는 서쪽에서 뜬 모양이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할아버지를 걱정했다니? 간첩 놈들이 불쌍해서 그놈들 걱정하는거죠.
“끌끌, 나는 오히려 놈들이 좀 공개적인 장소에서 시끄럽게 굴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UN놈들과 여당 놈들, 그리고 야당놈들의 입을 꾹 닫게 만들 수 있을테니까.”
-역시 강경파는 할아버지 뿐인가봐요?
“요 근래에는 점점 여야에서도 강경하게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더구나, 아무래도 국민들이 시시각각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여간 국개의원들 표심은 쯧.
천혁수가 내려 놓았던 수저를 다시 들어올리며 말했다.
“하여간 통화는 이만 끝내자구나, 아침 먹고 나가봐야 하니.”
-PMC 정보부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데요?
“그래, 철웅이가 의심종자들을 마킹하고 있다.”
-아, 그러면 미리 알아차릴 수 있겠네요.
“오냐, 국정원과도 협업하고 있으니 네 놈이 걱정할 일 없다. 우희와 루시, 그리고 우리 강아지들이나 잘 보고 있거라.”
-증손주들 보고 싶어서 어떻게 참으신데.
“저 김씨 놈에게 엿 한방 먹이고 미국으로 갈터이니, 그리 알고 있거라.”
-하하, 예 알겠습니다.
“끼니 거르지 말고.”
-예, 장모님이 매일 음식 가져오세요.
“그래, 끊으마.”
끊는다는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전화를 끊은 천혁수는 수저를 들어 아산댁이 만들어준 들깨 미역국을 퍼 올렸다.
통화를 한다고 약간은 미지근한 온도지만 그 맛은 일품이었다.
고개를 들어 얌전하게 앉아 있는 아산댁을 바라보는 천혁수.
“상처는 괜찮으냐?”
“네, 어르신 걱징하지 마셔요.”
“오랜만에 몸 쓰느라 고생했다.”
“호호, 결리던 어깨가 말끔하게 나았습니다.”
“그래? 천상 현장 체질이구나, 그간 간지러워서 어떻게 참았더냐?”
“푸훗, 저도 그럴줄 몰랐죠.”
아산댁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천혁수에게 다가온 백철웅.
보통 식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뭔가 보고 할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왜.”
천혁수의 말에 백철웅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의심자 스물 셋이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슷하다라.”
“예, 오전부터 지방에서 시외버스를 탑승했습니다.”
“상경중이다?”
“예, 백부님.”
“짐은?”
“가벼운 편입니다.”
“어딘가에 무기고가 따로 있는 모양이군.”
슬쩍 시계를 확인한 천혁수가 물었다.
“인천에서 모이던가?”
“예, 백부님. 여야의 당대표와 대통령, 국방부 장관, 한미연합사령관 등등, 모두가 인천에서 모일 예정입니다.”
“움직임 주시하고, 인천으로 모인다면야 확실하겠지.”
백철웅이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평소 보다 무거운 옷을 준비했습니다.”
“방탄복을 껴 입어라?”
“죄송합니다.”
“어차피 놈들이라면 머리를 노리지 않을까 싶은데.”
“그 부분은 확실히 저지하겠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인천에서 직접적인 공격은 없을거라 생각되는 군, 아마도 내가 따로 움직일때를 노리겠지.”
“예, 백부님.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 그 부분은 철웅이 네가 알아서 하고.”
다시 아산댁에게 고개를 돌린 천혁수.
“심심하면 같이 가겠느냐? 오랜만에.”
아산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묻는다.
“정말요?”
“그래, 가끔은 관절에 기름칠을 해줘야 하지 않겠더냐?”
아산댁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들어올리며 말한다.
“전 좋아요.”
“하하,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구나, 매일 겸양과 교양을 떨고 있더라니.”
천혁수의 말 처럼 현재 아산댁의 얼굴은 좀 처럼 보기 힘든 얼굴이었다. 항상 기품있어 보이던 그녀는 지금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어디선가 피가 흐를것 같은.
“아이들 준비 시키겠습니다.”
“편한대로 하거라.”
“네, 어르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보위성 국가 보위부 부장실.
보위부장 현해철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초조한 얼굴로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컥.
노크도 없이 열린 문에 신경질 적으로 째려본 현해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부장실 내부로 들어온 인물은 다름 아닌 김일정.
소리를 질렀던 현해철의 놀란 얼굴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어버리는 김일정.
“우리 보위부장 동무, 기분이 안 좋구만 기래?”
“죄, 죄송합네다 최고 사령관 동무.”
“아이디, 그럴수 있지 않간? 곧 있으믄 동무래 모가디가 날라 갈지도 모르는데.”
“······”
현해철은 대답을 할 수 없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푹 숙이며 속으로 욕을 삼키는 것 뿐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일정은 속도 없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한 6시간 남았네?”
“맞습네다.”
“동무래 똥줄이 타고 있갔구만 기래. 어드레, 만족조라도 불러줄까?”
“아입네다.”
“기래? 저승 가는 길, 하고 싶은 것 하고 가야 하디 않갔네?”
“고저, 가기 전에 애미나이 얼굴이나 한 번 보게 해주시라요.”
김일정이 ‘쯧쯧’하고 혀를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 작전 시작도 안 했는데, 동무래 머릿 속에는 실패밖에 없는 모양이디?”
“··· 죄송합네다.”
“쯧, 동무래 마디막 소원, 기억하고 있갔어.”
차마 감사하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현해철.
“작전 읊어 보라, 얼마나 가능성 있나 직접 판단해야갔어.”
“알갔습네다.”
소파의 상석에 앉은 김일정이 잘 볼 수 있도록 그의 앞에서 흰색 칠판 앞에 선 현해철. 사전에 준비된 사진들과 지도등을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여기 이 도로위를 지날 가능성이 8할인데, 사전에 공화국 전사들이 이 도로를 지나도록 하기 위해 다른 통로를 틀어 막을 생각입네다.”
“계속 하라.”
“예, 최고 사령관 동무. 기래서, 이 도로를 지날때 우선 대전차 지뢰를 터뜨릴 생각입네다.”
“포 같은 것은 가져갈 수 없으니 대전차 지뢰를 가져 갔는 모양이구만 기래.”
“맞습네다. 현재 우리 공화국 전사들의 무장은 개인 소총, 권총, 수류탄이 전부이며 지뢰 6개를 가져 갔습네다.”
“땅굴로 옮기는 것이 그거이 한계였나?”
“기렇습네다.”
김일정이 고개를 주억거리다 물었다.
“투입된 인원은 어떻게 되지?”
“특등 전사가 아홉, 일등 전사가 스물넷입네다.”
“한 동안 남조선에서 벌어오는 달라는 없겠구만 기래.”
“그것 역시 새로 교육을 하고 있는 전사들이 있습네다.”
“살 수 있는 놈들은 살려 오라.”
“······”
현해철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들이 동귀어진을 해도 천혁수를 암살 할 수 있다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어렵네?”
“가능한 노력하갔습네다.”
“쯧, 안된다는 소리구만 기래.”
“죄송합네다. 최고 사령관 동무.”
“너무 급박했네? 해철이 자네 답지 않군 기래.”
“기것도 맞지만은··· 남조선의 SKY그룹이라는 곳의 전사들이 우리 공화국 못지 않게 제법 대단합네다.”
“미제 자본주의에 쩌든 놈들과 어찌 우리 공화국의 신념으로 무장한 전사들을 비교하네?”
“어렸을때부터 SKY의 돈으로 교육받는 아이들도 있습네다.”
“돈으로 쇄뇌를 시켰다 이 말이네?”
“비슷합네다.”
김일정이 잠시 ‘흐음’하고 뭔가를 손가락으로 소파의 팔 걸이를 두들겼다.
“자본주의도 에법 무섭구만 기래.”
“······”
예민한 문제이기에 현해철은 역시 말을 아꼈다. 지금은 최대한 그의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이었다. 안 그러면 이번 암살 작전이 실패했을때 진짜 모가지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
“최선을 다하라. 그 모가지 내 손에 들려있어.”
“명심하갔습네다 최고 사령관 동지.”
***
약속작소를 향하는 천혁수의 차 안.
차량 안에는 평소와 다르게 운전기사, 철웅, 천혁수, 아산댁 이렇게 넷이 탑승하고 있었다.
인천에 가까워지면 가까워 질 수록, 천혁수의 얼굴도 철웅의 얼굴도 아산댁의 얼굴도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냄새가 나는 구나.”
천혁수의 말에 백철웅과 아산댁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이 느끼기에도 짙은 피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선두를 달리던 벤츠 스프린터 차량이 멈추어서자, 자연스럽게 뒤를 따르던 모든 차량들이 멈추어섰다.
운전기사에게 눈짓을 보낸 백철웅.
운전기사는 빠르게 소곤거리며 무전을 교환한다.
“앞에 도로가 맨홀 공사중이라고 합니다.”
운전기사의 말에 뒤에서 듣고 있던 천혁수가 말했다.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돌아가자구나.”
천혁수의 말에 백철웅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운전기사를 힐끗 바라본다.
운전기사 역시 알아들었는지 작게 소곤거리며 무전을 보내고는 선두의 차량이 유턴하는 것을 따라 차량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도로를 달리는데, 역시 선두에 선 차량이 먼저 멈추어 선다.
이제는 백철웅이 눈치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무전을 보내는 운전기사.
그 사이 천혁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또 무산 공사라더냐?”
말투는 자상하고 기쁨이 담겨 있었지만 천혁수의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공사장으로 달려가 공사를 하고 있을 인부들을 찢어 죽일것만 같은 맹수의 눈이었다.
그 기백에 살짝 움츠러든 운전기사가 말했다.
“도로 아래 하수도 배관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백철웅 역시 천혁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포정으로 말했다.
“공사하는 인부들이 혹, 조선족은 아니냐 물어봐라.”
“예.”
다시 짧은 무전이 오가고.
“맞다고 합니다.”
천혁수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 놈들이 감히 호랑이를 쥐덫으로 잡으려고 하는구나.”
아산댁이 홀로 깔깔 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 제 22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