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27화 (227/458)

< 제 227화. >

수화기 너머 부시가 말을 고르려는 듯 고민을 이어갔다. 거듭 얘기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가지 방면으로 보여질 수 있는 일이었다.

'자주국방'을 함부로 부르짖는 대통령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에겐 어려운 문제였다.

물론 나 역시, 완전한 자주국방을 현 시기에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요즘 북한이 부쩍 거슬리게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었다.

"최근에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 발표하신 성명문을 보니 이라크와 북한 등은 악의 축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크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핵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니, 뭐 이미 핵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ICBM기술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알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니 굳이 가타부타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북한이 핵에 목을 메는 이유는 미국이 한 몫을 거들고 있으니까.

"동맹국이자 우방국인 우리 영토에서 얼마전 일어난 제 2 연평해전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있을 수 밖에, 이미 보고를 받았습니다. 한국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지요.

"그렇습니다. 지난날, DMZ내부에서도 많은 한국인들이 희생당해 왔으나, 전쟁을 두려워 해 제대로된 보상이나 사과를 듣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그래야 한다면 국민으로서 억울 할 것 같군요."

-흐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천이 원하는 것을 말 해 주겠습니까? 자주국방이라는 말은 너무 큰 틀이라 당장 이렇게 하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미군의 철수 얘기까지 튀어나올 것 같군요.

오래전부터 미군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은 많았다. 모든 미군이 그렇다기 보다는 어느 집단이나 꼭 한 두명의 미친놈이 있듯이, 미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인들을 무시하는등의 폭력사태나 성범죄까지.

자극적인 것이 시청률이 높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사건들만 뉴스에 보도되다 보니, 미군의 인식이 나빠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것이 여러모로 좋았다. 어쨌든 지금의 대한민국은 '핵'이라는 절대반지를 가지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도발에 의한 이란 전재를 달았습니다."

-도발의 범주 역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중국 주석과의 비공식 만남으로는 조금 과한 것을 요구하는 듯도 합니다만.

순순히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부시.

확실히 군사적으로,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 제법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군과 한국군은 알게 모르게 신경전을 펼치며 꼭 무력도발이 아니더라도 대북방송이나 흔히들 얘기하는 '삐라'라는 전단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도발하고 있을터였다.

UN군의 눈치따위를 보지 않는 북한은 낡은 무기가 오작동을 일으켰다며 대한민국의 군사시설에 가끔 총탄을 쏴대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는 놈들이었다.

대한민국 군인들은 항상 이를 갈지만, UN과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

이번 NLL에서 일어난 연평해전도 어쩌면 이것에 연장선이라 볼 수 있었다. 너무나 보수적인 메뉴얼을 따라야만 했던 억울한 해군들만 희생당했다. 애초에 북한의 태도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희생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어젯밤에 한국에서 북한의 간첩이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자인 우리 할아버지의 집에 침입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습니까?

"이렇게 대놓고 쓰레기 짓을 하는 북한 놈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게 답답할 뿐입니다."

-하, 스파이라니... 역시 북한은 상종할 가치가 없는 국가입니다.

"해서, '무력도발'이라는 전제하에, 완전한 자주국방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흘렀으면 싶습니다."

짧은 침묵 뒤에 말을 잇는 부시.

-물론, 그것은 그대의 할아버지와 대화 혹은 서면을 통해 전달하고요?

정치인의 꼭대기라는 대통령의 자리를 고스톱으로 딴 것은 아닌지, 확실히 눈치는 빨랐다.

"그럼 더 좋고요."

-흐음, 그 정도라면야... 조만간 진행하겠다 약속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는 직접 장저민을 만나고자 하시는 겁니까? 물론 비공식 적으로요."

-그렇습니다.

"흠... 그럼 위치를 대한민국으로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서로가 서로의 국가에 발을 딛기가 조금 그렇잖습니까?"

-호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그 김에 미스터 천이 요구했던 것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락을 하고 말이죠.

"예."

-그렇게 합시다. 급한 일은 아니니, 장저민 주석 그에게 원하는 날짜를 말해보라 해주시길 바랍니다.

웬일로 미국이 중국에게 한 발 물러나 준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

그게 무엇인지 아직 알 길은 없으나, 솔직히 알 필요도 없지 싶었다. 미국과 중국은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서로 친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예, 좋은 날을 잡아보겠습니다. 아, 조만간 SKY 항공우주기술에서 로켓 발사 시험이 있을 예정입니다."

-인공위성입니까?

"예, 지난번에 얘기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언제쯤 발사할 예정입니까?

"올해는 지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잠들기 전 모유를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서둘러 정원에서 일어나 손과 옷의 냄새를 맡았다.

"시가 태우신지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냄새는 안 날 겁니다."

"그렇죠?"

"예, 혹시 모르니 이것을 조금 뿌릴까요?"

"뭔데요?"

호석의 손에 들린 분무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인체에 전혀 무해한 탈취제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의 오래된 전통방식으로 만들어낸 향수라고 보셔도 됩니다."

"확실히 무해한거죠?"

"예."

나는 양팔을 쫙 벌리고 그가 뿌려주는 분무기에 몸을 맡겼다.

"후진다오가 마음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에요,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국에게 연락을 다 하고."

내 말에 호석이 피식 웃는다.

"전화로 언성을 높히더니 마땅한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그나저나 요즘 벌레 새끼는 조용하네요?"

"아, 최근에 도시 하나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종교 설파에 매진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쯧, 벌레가 발광할 수 있게 약이라도 조금 쳐 주세요."

"예, 지시하겠습니다."

"놈은 하루도 편해서는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

신장위구르 지역에 몇 없는 시가지.

중국 전체 면적의 약 16퍼센트를 차지 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구역이지만 대부분이 못 쓰는 땅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한정적이었다. 그렇기에 넓은 크기에 비해 인구 밀집도는 낮았고, 덕분에 400이 조금 넘는 병력으로도 도시를 장악 할 수 있었던 알 카에다.

이제는 완전히 '무슬림' 문화를 잊어버린 위구르 족들, 그런 그들에게 계속해서 종교를 전파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영향력을 키워가던 빈 라덴이, 교단의 앞에 서던 것과 다르게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사막을 가로질러 오는 말 한마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부터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말.

그리고 그 말의 기수는 높다란 깃발을 펄럭이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깃발에 생김새 때문에 빈 라덴은 몹시 긴장한 것이었다.

"저건 학살자 놈들의 깃발이 아닙니까?"

보고를 받고 왔기에 빈 라덴은 먼저 알고 있었으나, 그의 부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인물은 아직 모르고 있었던 모양.

빠드득.

깃발만 보고도 이를 가는 부관을 빈 라덴이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이제 중공군이 개입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불란 만들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학살자 놈들은 무수히도 많은 우리 전사들을 신의 곁으로 보냈습니다!"

"쯧, 대의를 생각해야지 대의를."

"......"

"우리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

"... 알겠습니다."

차분히 말이 시내까지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은 알 카에다 무장세력.

말을 타고 달려온 기수는 쪽지 하나를 잔뜩 굳은 얼굴로 경비를 서고 있던 사내에게 던지고서는 망설임 없이 고삐를 돌려 다시 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거 가져와!"

조금은 흥분한 것 처럼 보이는 빈 라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부관.

"뭐해! 감히 학살자 놈들이 뭐라고 씨부리는지 궁금하지 않아? 가져오라고!"

재차 언성을 높이니 별 수 없이 몸을 움직인 부관은 해당 쪽지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글자가 쓰여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오사마 빈 라덴에게 공손히 쪽지를 전하는 부관.

부들부들.

쪽지를 보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이 외쳤다.

"이 도시는 대충 정리 된 것 같으니, 다음으로 움직이자. 이 시간에도 핍박받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을 위해서!"

부관은 이번에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무슨 쪽지이기에 그러십니까?"

"그, 그깟 쪽지 따위 때문이 아니다! 신의 뜻을 위해서이다."

빈 라덴의 친위대 중 하나가 눈을 부릅 뜨고는 외쳤다.

"오오! 신의 개시를 받은 것입니까!"

"그렇다! 우리는 내일, 새로운 도시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알라의 뜻을 전파한다!"

그러자 친위대들이 경외가 어린 표정으로 말을달려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외치기 시작했다.

"사도께서 알라의 개시를 받으셨다!"

부과는 최대한 찌푸려진 인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눈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떨어뜨린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 우리의 주적은? ]

한국에서 쓰는 언어라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그는 알 길이 없었다.

오직 SKY PMC 밑에서 3개월간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받은 오사마 빈 라덴만이 그 쪽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으음, 신의 개시를 받았더니 몹시 피곤하군, 나는 먼저 쉬어야겠어."

오사마 빈 라덴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말의 고삐를 당겨 발길을 재촉했다.

***

12시간.

앞으로 대한민국이 경고했던 시점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현해철 동무."

김일정의 목소리에 보위부장 현해철이 각잡힌 자세로 대답했다.

"말씀하시라요 최고 사령관 동무!"

"어째 말이 없네? 엊그제인가 우리 공화국 전사들이 남조선의 그 개대가리 새끼 모가지를 따러 가지 않았간?"

"우선 1차 작전은, 간 보기 였습네다."

"그 말이 뭐이가? 실패 했다는 말이간?"

이글이글 타오를 것 같은 김일정의 두 눈에 현해철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실수 했음을 인지 할 수 있었다.

"그렇습네다."

"우리 공화국 전사들 몇이나 투입됐는데 실패 했지?"

"이등 전사 17명이 투입되었고, 그중 둘이 살아서 연락을 보냈습네다."

"나머지 열 다섯은?"

"보고 받은 내용으로는 게 중 열 셋이 죽었고 둘은 남조선의 '국정원'이라는 기관에 끌려갔다고 합네다."

"국정원?"

"옛날 안기부, 중앙정보부와 같은 일은 하는 기관입네다. 그 이름이 '국가정보원'이라 바뀌었습네다."

김일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난번에 우리 공화국 전사들이 남조선에 70명 정도 있다 하지 않았네?"

"맞습네다. 정확히 74명의 전사들이 있고, 113명의 지원조가 있으며 339명의 달라조가 있습네다."

"헌데 어찌해 17명만 투입되었네?"

"74명 공화국 전사중에 이등전사가 44명, 일등전사가 21명, 특등전사가 9명입네다. 일든전사들과 특등전사들의 전력을 최대한 아끼기위해 우선 1차적으로 천혁수를 지키는 경호원들의 실력을 확인한겝니다."

"전부다 투입했으믄, 그 간나 새끼 모가지는 진즉이 따지 않았간?"

현해철의 얼굴에 약간의 답답함이 떠올랐지만 그는 애써 표현하지 않았다.

"우리 공화국 전사들이야 당연히 일당백의 용사들이디만, 기래도 기본 무장은 갖출 수 있어야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네다."

"기래서."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전사들에게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출 시간을 줄 수 없었고, 결국 전사들이 상할까 우려 돼, 일단 천혁수부터 파악을 한 것입네다."

"천혁수 그 개대가리 새끼의 모가지를 따 왔어야, 지금쯤 남조선 아새끼들 궁둥이가 뜨거워져 감히 우리를 선제타격하겠다는 저 헛소리를 멈출수 있디 않았간?"

"아직 12시간의 시간이 남았으니, 최대한 빠르게 놈의 모가지를 따오겠습네다."

"확실하네?"

현해철은 욕지거리라도 뱉어내고 싶었다.

아무리 공화국의 이등전사들이 흔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였다.

특수훈련을 받는 성난이리들은 이등전사라 할 지라도 김일정의 친위대 급 전투력을 자랑한다. 그런 이등전사 17명이 맨손전투 혹은 대검전투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듣기로는 약간의 부상만 있었을 뿐, 천혁수 측의 경호원들은 큰 상처가 없다고 들었다. 그것은 그의 경호원들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방증.

"남조선 아 새끼들은 아무 애미나이들이나 총을 들고 설티디 않잖네?"

"맞습네다."

"기러니까, 날래날래 무장 시켜서 벌집을 만들어 주면 되는 일 아니갔어?"

"오늘 새벽녘에 무장을 완료할 계획입네다."

"이번엔 확실 하갔디?"

"그렇습네다."

김일정이 한쪽 눈썹을 꿈틀 거리며 물었다.

"동무의 모가지도 걸 수 있네?"

"......"

"어찌 말이 없니? 말해 보라."

"오늘 내로 천혁수 그 치의 모가지를 가져오디 못하면은, 제 모가지를 내 놓겠습네다."

김일정이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길티, 놈의 모가지를 가져오지 못하면은, 남조선 아새끼들은 필시 우리 신해주를 공격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면이 서질 않잖네? 그러니까, 만약에 대비해서라도 욕받이가 필요하지 않갔네?"

"걱정하디 마시라요 최고사령관 동무, 공화국에 감히 사령관 동무께 욕을 할 변절자는 없이야요."

"그래야디, 하루하루 우리 인민들을 위해 잠을 설치며 이렇게 격무에 시달리는데 말이야."

"맞습네다."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헛소리를 내뱉는 김일정.

현해철은 지금 김일정을 보고는, 과거 유학시절 배웠던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것이 이런것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날래 일 보라, 모가지를 지키고 싶거든."

"예!"

축객령에 자리에서 일어난 현해철.

각 잡힌 모습으로 경례를 올리고 주석실의 문 바깥으로 나오니 이미 문 앞에는 기쁨조 여인들 중, 만족조 임무를 띄고 있는 여인 여섯이 대기중이었다.

현해철은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모가디가 날라가게 생겼구만 기래..."

작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듣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 제 22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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